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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국 신라 원효 (海東國 新羅 元曉 )

작성자이준황n|작성시간26.06.06|조회수25 목록 댓글 0

해동국 신라 원효 (海東國 新羅 元曉)

종국 종남산 대 사찰에 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법당이 있다.
더위가 수그러지는 늦 여름 절 행사로 천여 명이 법당에 들어 한창 법회를 하는데, 말단

승려 한 분이 하도 소피가 급해 살며시 나와 소피를 보고 법당으로 향하는데,
난데 없이 머리 위에 '널 판지'가 물레 비행기 처럼 윙윙 돈다.
황당 신기하여 따라 쳐다보니 이리 '윙윙' 저리 '쉭 시익' 재주를 부린다.
순간, 승려 자신도 모르게 법당으로 달려가  예도 가릴 새 없이 소리소리 지른다.
"하늘에 '판자'가 날아 다닌다. 하늘에..."

놀라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한 법당 안 모두가 밖으로 나와 구경을 하는데,보일락 말락

재주를 부리던 판자가 건너편 높은 봉우리 언덕으로 날아 간다.법당 안엔 한사람 없이

모두 나와 널판지 따라 산 봉우리로 이동을 했다.
스르르 널판지가 내려 앉는 순간 조금 전 자기네가 있던 법당 쪽에서 천둥벼락 치는
소리에 놀라 돌아보니,뒷산이 산사태로 법당을 밀어 덮쳐 흔적도 없이 내려 가는 것을

믿을 수 없이 목격 했다. 정신들을 차려 보니 대중 가운데 내려앉은 '판자'가 천명의 목

숨을 건졌다.
그 널판지에,... [ 海東國  新羅  元曉 (해동국 신라  원효 )] 라고 쓰여 있다.

👉원효가 아침에 중국 쪽 천기를 보는데,종남산 대 사찰에 천여 명이 법회를 하는데 정오

좀 넘어서 뒷산 산사태로 법당을 덮치는게 영상 필름처럼 보여와 워낙 위급 하기에
'해동국 신라 원효'를 적어 공중 부양술로 날려 보냈다고 한다.
그 후,  천명 이상이 신라로 찾아와 원효의 제자 되기를 원했다. 경북 영천에 지금은 터만

남아 있는 '千佛寺(천불사)'에 천명을 수용하여 천의 부처가 낫다고 하여 '천불사'라 하고,

남은 열 두명 중 8명이 대구 팔공산(八公山)에 들어가 성불했다고 하여 '팔공산'으로 부르

고, 나머지 4명은 경북 문경 산북 '대승사' 뒤 사불산(四佛山)에 들어가 부처가 되었다고 하

여 '사불산'이라고 함이다.

팔 공 산 (八公山)

계곡이 아름답고 산봉이 웅자하여 많은 사적을 품고 있는 팔공산의 옛 이름은 공산(公山)

-부악(父岳)이었다. 신라 말에 '견훤(甄萱)이 서라벌을 공략할 때 고려 태조가 5,000의 군사

를 거느리고 후백제를 정벌하러 나섰다가 견훤에게 역습을 당한 곳이 바로 이 산이다.

태조가 포위 당하여 생명마저 위태로왔을 때 신숭겸(申崇謙)이 태조와 옷을 바꿔 입고

적진에 뛰어들어 전사함으로서 태조의 목숨을 살렸다고 하는 데, 신숭겸을 비롯하여

김락(金樂)등 8명의 장수가 이 산에서 전사하여 팔공산이라 이름을 고쳐 불렀다 한다.

원효(元曉)
617~686(진평왕 39~신문왕 6) 신라의 승려.
686년 3월 30일 70세로 혈사(穴寺)에서 입적.

661년 의상과 당나라 유학 길을 가다가 당항성(唐項城: 南陽)에 이르러 한 고총(古塚)에서

잠을 자다가 목이 말라 마신 물이 해골에 괸 물이었음을 알고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렸으며

사물 자체에는 정(淨)도 부정(不淨)도 없다고 대오(大悟)하고 돌아왔다.

그 후 분황사(芬皇寺)에서 독자적으로 통불교(通佛敎)를 제창 불교의 대중화에 힘썼다.

한국 불교사상 가장 위대한 고승의 한 사람으로 추앙되고 있다.(펌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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