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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누고싶은얘기들

세상을 바꾼 전쟁

작성자이준황n|작성시간26.06.14|조회수31 목록 댓글 0

저자 윌리엄 위어는 미 육군 헌병 출신으로 한국전쟁 때 종군기자로 활동했다. 이후 여러 지방신문

기자로 일하다가 뉴잉글랜드전화회사에서 32년 동안 홍보담당자로 근무했다. 이 책은 저자가 임의로

인류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전투 50개를 선정하여 쓴 것이다. 그 가운데 일부만 소개한다.

 

마라톤전투

 

마라톤전투는 기원전 490년에 발생한 제2차 페르시아전쟁 중, 그리스의 마라톤평원에서 밀티아데스

장군이 이끄는 1만 명의 그리스군이 다리우스王이 이끄는 20만 페르시아군과 싸워 승리를 거둔 전투

를 말한다. 전투가 끝난 뒤 그리스군 전령이 42.195㎞ 떨어져 있는 아테네까지 달려가 승전보를 전하

고 탈진하여 죽은 悲事를 기념하여 마라톤 경주가 생겨났다.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발행한 <독도는 한국 땅> 기념동전

 

그리스군 총사령관인 칼리마코스 장군은 마라톤평원의 아테네 쪽 고지에 올라가 적정을 자세히 관

했다. 얼핏 봐도 그리스군의 10배는 넘어 보이는 페르시아군은 예상대로 기마병이 많았다.

마라톤평원과 같은 전장에서는 기마병이 절대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에 페르시아王 다리우스는 일부

러 이곳을 골라 대군을 상륙시켰을 터였다.

칼리마코스는 스파르타에 원병을 요청했지만 중요한 종교행사가 있어서 조금 늦을 것이라는 답변

만 돌아왔다. 칼리마코스는 스파르타군을 기다려야 할지 먼저 공격해 야 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스군에는 10명의 장군이 있었다. 그들은 전투가 있을 때는 하루씩 교대로 전군을 지휘

했으며, 중요한 전투는 전쟁위원회를 소집하여 투표를 통해 결정하는 개떡 같은 제도가 있었다.

 

칼리마코스는 그리스의 민주주의제도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장수였다. 그는 막 상륙하고 있는 바로

이때 페르시아군을 공격하는 게 가장 유리할 것이라고 판단했지만 다른 장군들이 공격에 반대하자

그들의 의견을 존중하여 결정을 미루었다. 상륙을 마친 페르시아군의 기마병들은 즉각 이쪽으로 진

군해오고 있었다. 칼리마코스는 민주주의도 좋고 스파르타의 원군을 기다리는 것도 좋지만 승리를

위해서는 지금이 적을 공격할 적기라고 판단했다.

 

페르시아 기마대가 전면에서 달려오고 있었다. 그리스군은 밀티아데스 장군이 지휘하는 날이었다.

그는 페르시아군만큼 군대를 길게 늘어세우기 위해 중심부에는 4열만 배치하고 좌우를 8열씩 배치

다.그리스군의 핵심 전력인 중장비 보병은 특유의 느린 걸음으로 대열을 맞춰 전진하기 시작했다.

그 인간방패 뒤를 보병이 따라갔다. 그리스군이 200m쯤 전진했을 때, 페르시아군의 궁수들이 중장

보병들을 향해 활을 쏘기 시작했다. 화살은 중장비 보병들의 갑옷을 맞고 모두 튕겨져 나갔다.

그리스군은 속도를 높여 페르시아군을 덮쳐나갔다.

 

페르시아 보병은 필사적으로 그리스군의 중심부를 공격했지만 별 효과도 없이 계속 엄청난 전사자

냈다.그리스 병사들의 창은 더 길고 갑옷은 더 두꺼워 페르시아 병사들의 창이 닿지 못했던 것이

다.페르시아군의 주력이 물러가는 그리스군의 중심부를 공격하는동안, 8열로 구성된 그리스군의 양

날개가 자연스럽게 페르시아군을 에워쌌다.

가운데로 몰린 페르시아군은 자기들끼리 뒤엉켜 대혼란을 겪었다. 후퇴하던 4열의 그리스군 중심부

도 돌아서서 페르시아군 공격에 가담했다. 페르시아가 자랑하는 기마병과 궁수들이 전혀 쓸모없게

되면서 페르시아군은 지리며렬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해변 쪽으로 포위망이 조금 열리자 혼돈에 빠져 있던 페르시아군은 정박해 있는 전함을 향해

빠르게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리스군이 추격했지만 7척의 전함만 격침하고 대부분의 전함을 놓쳤다.

훗날 그 전함은 그리스를 재침(제3차 페르시아전쟁)하여 아테네를 불바다로 만들었는데, 그 사이 그

리스군의 테미스토클레스 장군이 지휘하는 함대가 페르시아 함대를 험난한 살라미스 해역으로 유인

하여 궤멸시켜버렸다. 이로써 병력면에서 절대 열세에 있던 그리스군은 당시 세계 최강이던 페르시

아군을 맞아 3전 3승을 거두었다.

 

저자는 이 마라톤전투를 ‘민주주의를 지켜낸 전투’라고 평가했다. 10명의 장수가 투표로 공격 시간을

결정했을 정도이니 고대그리스(기원전 1100~기원전 146)는 민주주의의 종주국이라는 찬사를 듣기

에 충분하다. 고대그리스는 기원전 146년 코린토스전투에서 고대로마에 패하면서 멸망했다. 이후 민

주주의는 2천년 가까이 긴 동면에 들어갔다가, 1789년 선거에 의해 미국 초대 대통령이 선출되면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흔히들 영국을 민주주의의 종주국이라고 하지만, 영국은 상굿도 세습왕정이 지

속되고 귀족제도가 존재하는 非민주적인 국가다. 페르시아제국을 계승한 이란에서는 옛 패전을 기념

하는 마라톤경기가 금기로 되어 있다.

 

출처:문중13  남성원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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