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이야기]<601>一簞食와 一瓢飮으로 在陋巷을 人不…
시대가 바뀌면서 퇴색하는 말이 있다. 安貧樂道(안빈낙도)도 그 가운데 하나다. ‘논어’ 雍也(옹야)편에서 공자는 제자 顔回(안회)의 安貧樂道를 칭찬했다.
簞(단)은 대그릇, 瓢(표)는 바가지이다. 一簞(일단)과 一瓢(일표)는 적은 양을 나타낸다. 食은 ‘먹을 식’이 아니라 ‘밥 사’로 읽는다. 在(재)는 ‘∼에 산다’는 말이다. 陋巷(누항)은 누추한 골목이란 뜻이다. 堪(감)은 堪耐(감내)한다는 뜻이다. 其(기)는 앞의 말을 받는다. 한 대그릇의 밥과 한 바가지의 물만 마실 정도로 어려운 생활을 하면서 누추한 골목에 사는 일을 가리킨다. 憂(우)는 근심이란 뜻이다. 본래 喪服(상복)을 갖추고 슬퍼하는 모습을 나타냈다.
回(회)는 顔回(안회)이다. 也(야)는 주제화하는 어조사이다. 改(개)는 고친다, 바꾼다는 뜻이다. 본래 들이닥친 재앙을 다른 것에 옮겨 바꾼다는 뜻을 나타냈다. 其樂(기락)의 其는 앞서의 其와 다르다. 가난한 생활을 가리킨다고 보기 어렵다. 其樂의 其는 안회가 추구하는 삶과 가치를 가리킨다. 賢(현)은 어질다는 뜻이다. 哉(재)는 감탄의 어조를 지닌다. ‘賢哉回也’는 ‘回也賢哉’를 뒤집어서 감탄의 뜻을 강화한 표현이다.
공자는 안회에 대해 “其心(기심)이 三月不違仁(삼월불위인)이니라”라고 했다. 오랜 기간 동안 그 마음이 仁을 어기지 않는다고 평가한 것이다. 안회의 安貧은 외적, 물질적 조건에 관계없이 仁과 道를 추구하는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는 말이다. 物神主義(물신주의)가 만연한 시대이기에 本然(본연)의 마음을 지키고 있는 사람이 그립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한자 이야기]<602>力不足者는 中道而廢하나니 今女畵이니라

今女(화,획)(금여획), 이보다 우리를 질책하는 아픈 말이 또 있을까? ‘논어’ 雍也(옹야)편에서 염求(염구)가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道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만, 저는 힘이 부족합니다”라고 말하자 공자는 엄하게 꾸짖었다.
力不足(역부족)은 ‘힘이 모자란다’는 말이다. 中道(중도)는 ‘길 가는 도중에’라는 뜻이다. 而(이)는 어조를 고르는 조사이다. 廢(폐)는 본래 쓸모없는 것을 버린다는 뜻인데 ‘그만두다’나 ‘쓰러진다’의 뜻으로도 쓴다.
中道而廢(중도이폐)는 흔히 ‘길을 가다가 중간에 그만둔다’로 풀이하지만 적절치 않다. 중간에 그만둔다면 抛棄(포기)이기 때문이다. 정약용의 설을 따라 ‘길을 가다가 중간에 기력이 모자라 쓰러진다’의 뜻으로 보아야 한다. 意志(의지)는 있지만 힘이 다해 어쩔 수 없이 쓰러지게 된다는 의미라야 옳을 듯하다. 女(여)는 ‘여자’가 아니라 2인칭을 나타내는 너 汝(여)와 같다. (화,획)은 ‘그림 화’와 ‘그을 획’의 두 가지로 읽을 수 있는데, 여기서는 후자로 읽는다.
‘시경’ 小雅(소아) 거할편에 “높은 산을 우러러보고 큰길을 걷노라”라는 구절이 있다. ‘예기’에서 공자는 “시를 지은 이가 仁을 좋아함이 이와 같구나! 道를 향하여 걷다가 중도에서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의 늙음도 잊은 채, 나이가 부족한 것조차 알지 못한 채 나날이 힘껏 부지런히 부지런히 행하다가 죽은 후에야 그만두는 것이다”라고 했다.
‘예기’에서 말한 中道而廢는 이 雍也편에서와 달리 죽는다는 뜻이 강하다. 하지만 ‘죽은 후에야 그만둔다’는 ‘死而後已(사이후이)’야말로 자기완성을 위해 노력하는 인간의 참모습인 것이다. 力不足을 핑계로 포기한다면 공자는 말하리라, “지금 너는 금을 긋고 있다!”라고.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