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이야기]<609>述而不作하고 信而好古하니 竊比於我老彭이니라
述而不作(술이부작)의 성어는 바로 이 ‘논어’ 述而편의 첫 장에서 나왔다. 述而편에는 공자가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한 내용과 공자의 모습, 태도, 행동에 관한 기록이 많다. 모두 37장이며, ‘논어’ 가운데서 명구가 가장 많다.
述(술)은 옛 道를 따라 전하는 일, 作(작)은 새로 만드는 일이다. 述은 길에서 영력을 지닌 짐승으로 진퇴를 점쳐 점에 따르는 일을 가리켰으므로, 따른다는 뜻을 갖는다. 믿을 信(신)의 목적어는 古(고), 즉 옛 道이다. 好古(호고)는 옛 道를 좋아함을 말한다. 문장 처음의 竊(절)은 가만히라는 뜻으로, 화자(주체)의 조심스러운 마음을 드러낸다. 比(비)는 견준다는 뜻이다. 老彭(노팽)은 殷(은)나라의 어진 대부라고 한다. 우리 我(아)자를 붙여 친근감을 표시하면서 공자는 옛 인격자를 닮고 싶다고 겸손하게 말한 듯하다.
‘중용’에 “仲尼(중니, 공자)는 堯(요)·舜(순)을 祖述(조술)하고 文王(문왕)·武王(무왕)을 憲章(헌장)한다”는 말이 있다. 공자는 옛 도를 祖述한다고 했지 敷衍(부연)한다고 하지 않았다. 祖述은 道를 創始(창시)하는 것은 아니되 옛 道를 현실에 맞게 재해석하는 일을 포함한다.
그리고 공자는 ‘논어’ 憲問(헌문)편에서 “옛날 학자들은 자신을 위한 학문을 하였는데 오늘날 학자들은 남에게 보여 주기 위한 학문을 한다”고 개탄하여, 爲人之學(위인지학)이 아니라 爲己之學(위기지학)을 하라고 촉구했다. 爲己之學은 갇힌 공부가 아니기에, 泰伯(태백)편에서 공자는 “篤信好學(독신호학) 守死善道(수사선도)”를 강조했다. “독실하게 믿으면서 학문을 좋아해야 하고 죽음으로 지키면서 도를 잘 행해야 한다”는 가르침은 현실 속의 실천을 강조한 말로 풀이된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한자 이야기]<610>默而識之하고 學而不厭하며…
중국 윈난 성을 여행하다가 시골 학교의 붉은 벽에서 ‘學而不厭(학이불염), 誨人不倦(회인불권)’의 문구를 보았다. ‘논어’ 述而편의 이 장에서 따온 것이다.
默(묵)은 묵묵하다는 뜻이다. 뒤의 而(이)는 부사어를 동사에 순하게 연결해주는 기능을 한다. 識는 ‘알 식’과 ‘표할 지’의 두 음과 뜻이 있는데 여기서는 ‘표할 지’이다. 默識(묵지)란 공부한 내용을 묵묵하게 마음에 새겨두는 일을 말한다. 길에서 들은 내용을 곧바로 길에서 떠드는 道聽塗說(도청도설)과 정반대이다. 學而不厭(학이불염)의 而는 ‘∼하면서’의 뜻을 나타낸다. 싫어할 厭(염)은 힘들어해서 厭症(염증) 느끼는 것을 말한다. 不厭(불염)은 싫어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誨(회)는 사리에 어두운 사람에게 말로 가르친다는 뜻이다. 倦(권)은 피로하다, 게을리 하다의 뜻이고 誨人不倦(회인불권)은 남 가르치길 게을리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何有於我哉(하유어아재)는 ‘어느 것이 내게 있는가’로도 풀이할 수 있고, ‘무슨 어려움이 내게 있겠는가’나 ‘이것 말고 무엇이 내게 있으랴’로도 풀이할 수 있다. 앞의 풀이라면 공자가 저 세 가지에 대해 부족하다고 겸손하게 말한 뜻이 된다. 주희의 해석이 그랬다. 하지만 정약용이 말했듯이 공자는 誨人不倦을 늘 自任(자임)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이 세 가지라면 무슨 어려움이 내게 있겠는가’로 풀이하는 것이 좋겠다.
‘맹자’는 공자가 “성인의 경지에는 나는 이를 수가 없다. 나는 배우되 싫증을 내지 않으며, 남 가르치길 게을리 하지 않는다”라고 한 말을 실어 두었다. 공자는 늘 학문과 교육을 스스로의 責務(책무)로 인식했던 것이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