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이야기]<615>求仁而得仁이어니 又何怨乎리오
공자와 제자들은 신념을 에둘러 밝히고는 했다. ‘논어’ 述而편에서 제자들은 衛나라의 內紛(내분)에 대해 공자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 궁금해 했다. 위나라 靈公(영공)은 어리석고 부인 南子는 음탕했다. 기원전 496년, 세자 괴외(괴외)는 南子를 죽이려다 실패하고 국외로 망명했다. 영공이 죽은 뒤 南子는 공자 영(영)을 즉위시키려 했으나 사양하자, 괴외의 아들 첩(輒)을 세웠다. 그가 出公(출공)이다. 이로써 16년 동안 부자간에 정권 다툼을 벌였다.
공자의 제자 염유(염有)가 “선생님은 위나라 임금(즉 出公)을 인정할까요?”라고 하자 자공(子貢)은 “내가 곧 물어보죠”라고 했다. 자공이 들어가서 “伯夷(백이)와 叔齊(숙제)는 어떤 사람입니까?” 물으니 공자는 “옛날의 어진 사람이다”고 했다. 자공이 “그들은 세상을 원망했습니까?”라고 하자 공자는 위와 같이 대답했다. 자공은 나와서 “선생님은 위나라 임금을 인정하지 않습니다”라고 했다.
求仁(구인)은 인을 추구한다는 뜻이고, 得仁(득인)은 인을 실행했다는 뜻이다. 何(하)는 의문사이다. 한문에서는 의문사가 목적어이면 술어(동사)보다 앞에 온다. 또 한문에서는 과거 시제의 보조사가 발달하지 않았다. 문맥상 何怨乎(하원호)를 ‘무엇을 원망했겠는가’로 풀이했다.
백이와 숙제는 孤竹國(고죽국)의 왕자들이었다. 아버지가 숙제를 후사로 세웠으나 숙제는 형 백이에게 양보했고 백이는 부친의 명을 어길 수 없다며 도망했다. 숙제도 도망했다. 공자는 그들이 인을 실행했으며 부자 사이에도 형제 사이에도 원망이 없었다고 보았다. 人倫을 중시한 공자는 王位 때문에 부자가 다투는 일 자체를 악으로 보았기에 출공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역사적 맥락을 떠나, 求仁而得仁은 이상의 추구야말로 인간의 숭고한 행위임을 가르쳐 준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한자 이야기]<616>飯疏食飮水하고 曲肱而枕之라도…
曲肱之樂(곡굉지락)이라고 하면 팔을 베개 삼아 누워 살만큼 가난하더라도 도리에 맞게 생활한다면 그 속에 즐거움이 있다는 뜻이다. 그 출전이 바로 ‘논어’ 述而편의 이 章이다. 주세붕의 ‘學而歌(학이가)’도 “배우고 잊지 마세. 먼 데 벗 즐겨 오니. 내가 곧 있으면 남이야 아나마나. 부귀를 부운같이 보고 팔 굽혀 베개하오”라고, 종장에서 이 장을 이용했다.
飯(반)은 그릇에 담아 먹는 것을 말한다. 疏食(소사)는 菜食(채식)으로 보는 설과 거친 밥으로 보는 설이 있다. 후자를 따랐다. 飮水(음수)는 즙(汁)이 아니라 맑은 물을 마신다는 뜻이다. 曲肱(곡굉)은 팔을 굽힌다는 뜻, 枕之(침지)는 그 팔을 베개 삼는다는 말이다. 樂亦在其中矣는 즐거움이 절로 그 속에 들어 있노라고 완곡하게 표현한 것이다.
富且貴(부차귀)의 且는 ‘∼하면서 ∼하다’라는 구문을 이룬다. 不義而富且貴는 정의롭지 않으면서 재물이 풍부하고 또 신분이 고귀함을 말한다. 於我(어아)는 ‘나의 관점에서 보면’이다. 如(여)는 ‘∼과 같다’는 말이다. 浮雲은 쓸모없고 사라지기 쉬우며 나와 상관없다. 불의로 얻은 재물과 신분은 내 인격주체와 상관없음을 비유한 말이다.
學而편에서 자공(子貢)이 “가난해도 비굴하지 않고 부유해도 교만하지 않으면 어떻습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그것도 괜찮다. 하지만 가난해도 즐기고 부유해도 예를 좋아하는 것만 못하다”라고 했다. 정의롭지 못하면서 부귀하다면 옳지 않다. 그러나 부귀하지 않다고 비참해 해서는 더욱 안 된다. 가난해도 도리를 알고 즐기는 생활이 바람직하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