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이야기]<619>子不語怪力亂神이러시다
‘삼국유사’ 紀異(기이)편의 서문에서 일연 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성인은 禮樂(예악)으로 나라를 일으키고 仁義(인의)로 가르침을 베풀었으므로 怪力亂神(괴력난신)은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제왕이 일어날 때는 반드시 남과 달라야 大變(대변)을 타고 大器(대기)를 쥐어 大業(대업)을 이룰 수 있었다. 우리 삼국의 시조가 모두 신이하게 출현한 것이 무엇이 괴이한가?” 일연 스님은 ‘논어’ 述而(술이)편의 이 章을 인용하되 제왕의 출현 때마다 신이한 일이 보고되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子는 선생이란 뜻인데 여기서는 공자를 가리킨다. 不語(불어)는 말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과거 시제로 풀면, 말하지 않았다가 된다. 단,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가볍게 말하거나 억지로 떠들지 않는다는 얘기이다. 怪(괴)는 怪異(괴이)의 일, 力(력)은 勇力(용력)의 일, 亂(난)은 悖倫(패륜)이나 昏亂(혼란)의 일, 神(신)은 鬼神(귀신)의 일이되 모두 상식과 윤리를 벗어난 일을 가리킨다.
공자는 은나라의 上帝(상제) 관념, 주나라의 天命(천명) 사상과 禮制(예제)를 계승하되 하늘에 대한 관심을 인간에 대한 관심으로 바꾸었다. 그렇기에 제사도 인간 삶을 인간답게 하기 위한 방법으로 파악했다. ‘논어’ 先進(선진)편에 보면, 季路(계로) 곧 子路가 귀신 섬기는 일에 대해 묻자, 공자는 “사람 섬기는 일도 제대로 못하는데 어떻게 귀신을 섬길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죽음에 대해 묻자 “未知生(미지생), 焉知死(언지사)?”라고 반문했다. “사람답게 사는 일도 다 모르는 데 어찌 죽음을 말하겠느냐?”라는 뜻이다. 衛靈公(위령공)편에서 공자는 “사람이 道를 넓히는 것이지 道가 사람을 넓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중용’의 “道는 사람에게서 멀리 있지 않다”는 말과 통한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한자 이야기]<620>三人行에 必有我師焉이니 …
三人行에 必有我師焉이니 擇其善者而從之요 其不善者而改之니라
三人行은 적은 수의 사람이 함께 길을 간다는 말이다. 여러 사람이 함께 일한다는 뜻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공자는 기원전 497년 56세에 실각하여 노나라를 떠나 14년간 여러 나라를 유세하다가 기원전 484년 69세에 고향으로 돌아갔다. ‘논어’에는 길 떠나는 이야기가 많다. 述而편의 이 章은 그 한 예다. 어떤 텍스트에는 첫머리에 我(아)가 있다.
必(필)은 ‘반드시 ∼하다’라는 뜻이다. 有는 어떤 텍스트에는 得(득)으로 되어 있다. 我師(아사)는 나의 스승이란 말인데 반드시 道學의 스승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품성의 면에서 스승도 있지만 견문 지식 기예 재능의 면에서 스승이 될 만한 사람도 있다. 擇其善者(택기선자)는 사람이 지닌 품성이나 견문 지식 기예 재능 가운데 좋은 것을 고른다는 말이다. 세 사람이 갈 때 한 사람은 꼭 선하고 한 사람은 꼭 악할 리가 없다. 두 사람을 통틀어 좋은 점을 고른다는 말이지 한 사람만 고른다는 말이 아니다. 其不善者(기불선자)는 그 사람이 지니고 있는 훌륭하지 못한 점을 가리킨다. 앞에 擇자가 생략되었다. 從之의 之는 善者를 가리키고, 改之의 之는 不善者를 가리킨다. 단 지시 기능 없이 음조를 고르는 기능만 있다고 보기도 한다.
‘논어’ 里仁(리인)편에서 공자는 “見賢思齊焉(견현사제언)하고 見不賢而內自省也(견불현이내자성야)”라고 했다. 현명한 사람을 보면 그와 나란해질 것을 생각하고 현명하지 못한 사람을 보면 안으로 성찰한다는 말이다. 먼 길을 우연히 함께 걷게 된 사람들, 우리는 모두 길 위에 있다. 그 길 위에서 우리는 남을 통해 스스로의 참 존재를 자각하게 된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