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이야기]<621>子釣而不綱하시며 弋不射宿이러시다
김시습은 ‘愛物義(애물의)’라는 글에서 “군자가 짐승을 기르는 것은 늙고 병든 백성을 위해서요, 고기 잡고 사냥하는 것은 잔치와 제사를 받들기 위해서다. 따라서 오로지 그 일이 적당한지 어떤지 짐작해야 할 뿐이지, 어질게 대한다고 해서 반드시 죽이지 않는 것은 아니며, 죽인다고 해서 모두 잡는 것을 이득이라 여겨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 논지는 ‘논어’ 述而편이 이 章과 통한다.
子는 스승이란 뜻으로, 공자를 가리킨다. 釣(조)는 낚시로 물고기를 잡는 것을 말한다. 而는 앞 구절과 뒤 구절을 ‘∼하되 그러나’의 관계로 이어준다. 綱(강)은 그물 網(망)이 잘못 된 것 같다. 不綱(불강), 즉 不網(불망)은 그물질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弋(익)은 주살로, 오늬에 줄을 매어 쏘는 화살이다. 射은 맞힐 석과 쏠 사의 두 음과 훈이 있다. 여기서는 맞힐 석이다. 宿은 잠들어 있다는 뜻이니, 여기서는 잠자는 새를 가리킨다.
張載(장재)는 西銘(서명)에서 “民吾同胞(민오동포), 物吾與也(물오여야)”라고 했다. “民은 나와 동포요, 생물은 나와 함께한다”는 말로 인간과 인간, 인간과 생물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생태계를 이룬다는 뜻이다. 하지만 ‘맹자’ 盡心(진심) 上편에서는 “군자는 생물에 대해서는 사랑하기는 해도 어질게 대하지 않는다. 백성들에 대해서는 어질게 대하기는 해도 친족같이 대하지는 않는다. 친족을 친족으로서 친하게 대하여 더 나아가 백성들을 어질게 대하며, 백성들을 어질게 대하여 더 나아가서 생물을 사랑하기에 이른다”고 했다. 또 ‘논어’ 鄕黨(향당)편에서 공자는 마구에 불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사람이 다쳤는가 물었지 말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김시습은 이것이 곧 군자가 만물을 사랑하는 의리라고 말했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한자 이야기]<622>多聞하여 擇其善者而從之하고…
‘논어’ 述而편의 이 章에서 공자는 “알지 못하면서 함부로 창작하는 짓을 나는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穿鑿(천착)해서 글 짓는 행태를 비판한 것이다. 그리고서 위와 같이 見聞을 많이 쌓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공자의 공부법은 경험론적, 점진적이다.
多聞(다문)은 많이 듣는다는 말이니, 여러 사실을 두루 듣고 공부한다는 말이다. 擇其善者(택기선자)는 좋은 것을 가려내는 일로, 저술로 말하면 刪定(산정)을 가리킨다. 多見(다견)은 많이 본다는 말이니, 여러 사실을 두루 보고 공부한다는 말이다. 識는 기억할 지와 알 식의 두 음과 훈이 있는데, 여기서는 기억할 지이다. 정약용은 기록 지로 읽고, 경전에 대해 자기 견해를 기록하는 일이라고 보았다. 知는 원래부터의 완전한 지식을 말한다. 次(차)는 다음, 버금이란 뜻이다.
‘논어’ 爲政편에서 공자는 많이 듣고 의심나는 것은 빼놓는 多聞闕疑(다문궐의), 그리고 많이 보고 위태로운 것은 빼놓는 多見闕殆(다견궐태)를 강조했다. 述而편에서는 선왕의 도를 서술해서 전할 뿐이지 새로 만들어내지는 않는 述而不作(술이부작)과 선왕의 도가 옳음을 믿고 옛것을 애호하는 信而好古(신이호고)를 학문 태도로서 제시했다. 모두 이 章의 뜻과 통한다.
少見多怪(소견다괴)라는 말이 있다. 본 것이 적으면 진리에 대해 의심을 많이 한다는 말이다. 또 우물 안 개구리는 바다를 의심하고 여름 벌레는 얼음을 의심한다고 한다. 조선 인조 때 張維(장유)는 당시의 옹졸한 지식인들이 자기 견해로 이해되지 않는다고 해서 일체를 거짓으로 여겨 무시한다고 비판했다. 多聞多見을 통해 지식의 협소화와 권력화를 극복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