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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어(論語) - 6 - 옹야(雍也) - ⑫ | |
| 1 | 子游 爲武城宰러니 子曰 女 得人焉爾乎아 曰 有澹臺滅明者하니 行不由徑하며 非公事어든 未嘗至於偃之室也하나니이다 |
| 2 | 자유 위무성재러니 자왈 여 득인언이호아 왈 유담대멸명자하니 행불유경하며 비공사어든 미상지어언지실야하나니이다 |
| 3 | 자유가 무성의 읍재가 되었는데,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너는 거기에서 사람을 얻었느냐?”라고 하시자, 대답하길, “담대멸명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길을 갈 때 지름길로 다니지 않고, 공사(公事)가 아니면 일찍이 제 집무실에 온 적이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
| 4 | 子游、武城の宰と為る。子曰く、女、人を得たるか。曰く、澹台滅明なる者有り。行くに径に由らず。公事に非ざれば、未だ嘗て偃の室に至らざるなり。 |
| 5 | Tsze-yû being governor of Wû-ch'ang, the Master said to him, “Have you got good men there?” He answered, “There is Tan-t'âi Mieh-ming, who never in walking takes a short cut, and never comes to my office, excepting on public business.” |
| 논어집주(論語集注) - 6 - 옹야(雍也) - ⑫ | |
| 1 | 子游爲武城宰 子曰 女得人焉爾乎 曰 有澹臺滅明者 行不由徑 非公事未嘗至於偃之室也 자유가 무성의 읍재가 되었는데,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너는 거기에서 사람을 얻었느냐?”라고 하시자, 대답하길, “담대멸명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길을 갈 때 지름길로 다니지 않고, 공사(公事)가 아니면 일찍이 제 집무실에 온 적이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武城魯下邑 澹臺姓 滅明名 字子羽 徑路之小而捷者 公事如飮射讀法之類 不由徑 則動必以正 而無見小欲速之意 可知 非公事 不見邑宰 則其有以自守 而無枉己徇人之私 可見矣 무성은 노나라의 아래 등급의 읍이다. 담대는 성이고 멸명이 이름이며, 자는 자우다. 徑이란 길 중에서 작고 빠른 것이다. 공사란 예컨대 飮射와 讀法과 같은 것들 따위다. 샛길과 지름길로 다니지 않으면 행동이 반드시 올바르게 되고, 작은 이로움을 보고 빨리 가고자 하는 뜻이 없음을 알 수 있다. 공사가 아니라면 읍재를 보지 않는 것은 곧 그가 스스로를 지킬 수 있어 자신을 구부려 남을 따르는 사사로움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朱子曰 焉爾乎三字 是語助 聖人之言 寬緩不急迫 주자가 말하길, “焉爾乎는 어조사다. 성인의 말씀은 관대하고 느슨하여 조급하거나 박절하지 않다.”라고 하였다. 胡氏曰 言魯下邑 非大夫之采邑也 飮謂鄕飮酒 周禮鄕大夫賓賢能飮國中 賢者能者州長習射 黨正蜡祭 皆行鄕飮酒禮 射謂鄕射 周禮鄕大夫以五物詢衆庶 一曰和 二曰容 三曰主皮 四曰和容 五曰興舞 州長春秋以禮會民 皆行鄕射禮 讀法則州長於正月之吉 黨正於四時孟月吉日 族師於月吉 閭胥於旣比 皆行讀法禮 以是知爲邑宰者 亦然也 其他則凡涉乎公家者 皆是也 호씨가 말하길, “노나라의 하급 읍이라고 말하였으니, 대부의 채읍이 아닌 것이다. 飮은 향음주를 일컬어 말한 것이다. 周禮에 따르면, 향대부는 賢者와 能者를 손님으로 맞아서 國中에서 술을 마시는데, 현자와 능자와 州長(州의 수장)이 習射를 하고 黨正이 臘祭를 지낼 적에 모두 향음주례를 행한다고 하였다. 射는 鄕射를 말한 것인데, 周禮에 따르면, 향대부는 다섯 가지 사물로써 대중에게 자문을 구하는데, 하나는 和라고 하고, 둘은 容이라고 하며, 셋은 主皮라고 하고, 넷은 和容이라고 하며, 다섯은 興舞라고 한다. 州長은 봄과 가을에 예로써 백성을 모아서 모두 鄕射禮를 행한다고 하였다. 讀法의 경우, 州長은 정월의 길일에 하고, 黨正은 네 계절의 첫달의 길일에 행하며, 族師는 매월 길일에, 閭胥는 일이 끝난 뒤에 행하니, 모두 讀法禮를 행한다고 하였다. 이로써 읍재가 된 사람도 역시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기타 다른 것은 무릇 공가에 관련된 것이라면 모두 이러하였다.”라고 하였다. 胡氏曰 動必以正 則非但於行路而已 有以自守 則非但不私謁而已 故又以可知可見 總言之 因小以明大 因兩端以見全體 호씨가 말하길, “움직일 적에 반드시 正道로써 한다면, 단지 길을 가는 것에만 그치지 않을 것이고,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면, 단지 사사로이 찾아뵙지 않는 것에만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다시 이로써 알 수 있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총체적으로 말하자면, 작은 것으로 인해 큰 것을 밝힐 수 있고, 양끝으로 인해 전체를 볼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
| 2 | ○ 楊氏曰 爲政以人才爲先 故孔子以得人爲問 如滅明者 觀其二事之小 而其正大之情可見矣 後世有不由徑者 人必以爲迂 不至其室 人必以爲簡 非孔氏之徒 其孰能知而取之 愚謂 持身以滅明爲法 則無苟賤之羞 取人以子游爲法 則無邪媚之惑. 양씨가 말하길, “정치를 하는 것은 인재를 우선으로 한다. 그래서 공자가 사람을 얻었는지를 질문으로 삼은 것이다. 담대멸명 같은 사람은 그 두 가지 작은 일을 관찰하고도 그가 공명정대하다는 사정을 알 수 있는 것이다. 후세에 샛길이나 지름길로 다니지 않는 사람들을 남들은 반드시 우활하다고 여길 것이고, 그 집에 찾아오지 않으면, 사람들은 반드시 소홀히 대한다고 여길 것이다. 공자의 문도가 아니라면 그 누가 능히 그 사람을 알아보고 취할 수 있었을 것인가?”라고 하였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몸가짐에 있어 담대멸명을 법(본보기)으로 삼는다면, 구차하고 천박함으로 인한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고, 인재를 취함에 있어 자유를 본보기(法)로 삼는다면, 사특함과 아첨으로 인해 미혹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 問楊氏謂 爲政以人才爲先 如子游爲武城宰 縱得人 將焉用之 似說不通 朱子曰 古者士人爲吏 恁地說 也說得通 更爲政而得人講論 此亦爲政之助 恁地說 也說得通 누군가 묻기를, “양씨는 정치를 함에 있어 인재를 우선으로 삼는다고 말하였는데, 예컨대 子游가 무성의 읍재가 되어 설령 사람을 얻었다고 할지라도, 장차 어떻게 그를 쓸 것입니까? 다소 말이 통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라고 하였다. 주자가 말하길, “옛날에 선비인 사람을 吏로 삼았으니, 이렇게 말해도, 역시 말이 통하였다. 더욱이 정치를 하면서, 사람을 얻어 강론하는 것, 이 역시 정치하는 것을 도와주는 것이니, 이렇게 말할지라도, 역시 말이 통한다.”라고 하였다. 問觀其二事之小而正大之情 可見矣 非獨見滅明如此 亦見得子游胸懷也恁地開廣 故取得這般人 曰 子游意思高遠 識得大體 누군가 묻기를, “그 두 가지 일의 작은 부분을 살펴보고서, 正大한 사정을 알아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단지 담대멸명이 이와 같음을 알았을 뿐 아니라, 또한 자유가 가슴에 품은 것이 이렇게 넓었기 때문에, 이러한 사람을 취하여 얻었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말하길, “자유는 그 뜻이 고원하였기에, 大體를 터득하여 알 수 있었다.”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持身者不以苟賤爲羞 則枉己徇人 無所不至 取人者 苟爲邪媚所惑 則賢否邪正 皆不復能辨矣 운봉호씨가 말하길, “몸가짐이라는 것은 구차하고 천박함을 부끄러움으로 여기지 않는다면, 자기를 구부려 남을 따르게 되니, 이르지 않는 곳이 없을 것이고, 사람을 취한다는 것은 만일 사악함과 아첨에 의해 미혹된다면, 현명한지 그렇지 않은지, 사악한지 바른지는 모두 더이상 분별할 수 없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雲峯胡氏曰 苟賤之羞邪媚之惑八字 與正大之情四字相反 然非子游自持身正大者 未必取人如滅明之正大也 운봉호씨가 말하길, “구차하고 천박함을 부끄러워함과 사특하고 아첨함에 미혹됨이라는 8글자는 광명정대한 사정이라는 4글자와 서로 반대가 된다. 그러나 자유처럼 스스로 몸가짐을 광명정대하게 한 사람이 아니었다면, 반드시 담대멸명처럼 광명정대한 사람을 얻지는 못하였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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