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어(論語) - 15 - 위령공(衛靈公) - ⑩ | |
| 1 | 顔淵이 問爲邦한대 子曰 行夏之時하며 乘殷之輅하며 服周之冕하며 樂則韶舞오 放鄭聲하며 遠佞人이니 鄭聲은 淫하고 佞人은 殆니라. |
| 2 | 안연이 문위방한대 자왈 행하지시하며 승은지로하며 복주지면하며 악즉소무오 방정성하며 원녕인이니 정성은 음하고 영인은 태니라. |
| 3 | 안연이 나라를 다스리는 것을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하(夏)나라의 책력(冊曆)을 행하며, 은(殷)나라의 수레를 타며, 주(周)나라의 면류관(冕旒冠)을 쓰며, 음악은 순(舜)임금의 소무(韶舞)를 취할 것이요, 정(鄭)나라의 음악은 추방하며 말만 잘하는 사람을 멀리해야 하니, 정(鄭)나라 음악은 음탕하고 말재주 있는 사람은 위태롭다.”라고 하셨다. |
| 4 | Yen Yüan asked how the government of a country should be administered. The Master said, “Follow the seasons of Hsiâ. Ride in the state carriage of Yin. Wear the ceremonial cap of Châu. Let the music be the Shâo with its pantomimes. Banish the songs of Chang, and keep far from specious talkers. The songs of Chang are licentious; specious talkers are dangerous.” |
| 논어집주(論語集注) - 15 - 위령공(衛靈公) - ⑩ |
| 顔淵問爲邦 안연이 나라를 다스리는 것을 묻자, 顔子王佐之才 故問治天下之道 曰爲邦者 謙辭. 안자는 천자를 보좌하는 재목이었기 때문에, 천하를 다스리는 도를 물었던 것이다. 그런데 겨우 ‘爲邦’이라고 말한 것은 겸사다. 朱子曰 顔子之問有二 一問仁 一問爲邦 須從克己復禮上來 方可及爲邦之事 주자가 말하길, “안자의 질문은 두 개가 있었는데, 하나는 仁을 물었고, 또 하나는 나라를 다스림을 물은 것인데, 반드시 극기복례를 따라서 와야만 비로소 爲邦의 일에 이를 수 있다.”고 하였다. 子曰 行夏之時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하(夏)나라의 책력(冊曆)을 행하며 夏時 謂以斗柄初昏建寅之月爲歲首也 天開於子 地闢於丑 人生於寅 故斗柄建此三辰之月 皆可以爲歲首 而三代迭用之 夏以寅爲人正 商以丑爲地正 周以子爲天正也 然時以作事 則歲月自當以人爲紀 故孔子嘗曰 吾得夏時焉 而說者以爲夏小正之屬 蓋取其時之正與其令之善 而於此又以告顔子也 하시는 말한다. 북두칠성의 자루가 처음 어두워질 때 인의 방향을 가리키는 달을 가지고 정월(매해의 첫 달)을 삼았다. 하늘이 子에서 열리고, 땅은 丑에서 열리며, 사람은 寅에서 태어나기 때문에, 북두칠성 자루가 이 3방위을 향하는 달이라면, 모두 정월로 삼을 수 있다. 그러나 3대는 이를 번갈아 사용하였는데, 하나라는 寅을 人正으로 삼았고, 상나라는 丑을 地正으로 삼았으며, 주나라는 子를 天正으로 삼았다. 그러나 때에 따라 일을 해야 하니, 세월은 스스로 마땅히 사람을 벼리로 삼아야 한다. 이런 까닭에 공자는 일찍이 ‘나는 하나라 時를 얻었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것을 설명하는 것은 하소정의 부류라고 여겼다. 대개 그 때의 바름과 그 令의 좋음을 취한 것이니 여기에서 다시 안자에게 알려주신 것이다. 朱子曰 邵子皇極經世書 以元統會 十二會爲一元 一萬八百年爲一會 以會統運 以運統世 三十年爲一世 十二世爲一運 三十運爲一會 初間一萬八百年而天始開 又一萬八百年而地始成 又一萬八百年而人始生 邵子於寅上方註一開物字 蓋初間未有物 只是氣塞 及天開些子後 便有一塊査滓在其中 漸漸凝結而成地 初則溶軟後點堅實 今山形自高而下 便如水瀁沙之勢 以此知必是先有天 方有地 有天地交感 方始生人物出來 邵子言到子上方有天 未有地 到丑上方有地 未有人 到寅上 方有人 子丑寅 皆天地人之始 故三代建以爲正 夫子以寅月人可施功 故從其時 주자가 말하길, “소자황극경세서에 이르길, 元으로 會를 통할하는데, 12會가 1元이고, 1만 8백년이 1會다. 會로 運을 통할하고, 運으로 世를 통할하는데, 30년이 1世고, 12世가 1運이며, 30運이 1會가 된다. 첫 기간인 1만 8백년에 하늘이 비로소 열리고, 다시 1만 8백년에 땅이 비로소 이루어지며, 다시 1만 8백년에 사람이 비로소 생겨난다고 하였다.”고 하였다. 소자는 寅 위에 바야흐로 開物이라는 글자로 주석하였으니, 대체로 처음에는 아직 사물이 있지 않았고, 그저 기운이 가득차 있었다. 하늘이 조금 열린 후에 이르자, 곧 한 덩어리의 찌꺼기가 그 안에 생겼다. 점점 응결되어 땅이 되었는데, 처음에는 녹아서 물렁거렸다가 나중에 점차 굳고 단단해졌다. 지금 산의 형체가 높은 곳으로부터 아래로 내려오는데, 마치 물이 모래를 흘러넘치게 하는 형세와 같다. 이로써 반드시 먼저 하늘이 있어야만 비로소 땅이 있고, 천지가 교감함이 있어야만 비로소 사람과 만물이 생겨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소자가 말하길, 子 방향 위에 이르면 비로소 하늘이 있지만 아직 땅은 없고, 丑 위에 이르면 비로소 땅은 있지만 아직 사람은 없으며, 寅 위에 이르면 비로소 사람이 생긴다고 하였다. 子丑寅은 모두 하늘과 땅과 사람의 시작이기 때문에, 삼대에서 이로써 세워서 정월을 삼았던 것이다. 공자께서는 寅月에 사람이 공을 베풀 수 있기 때문에 그 時(역법)를 따랐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記禮運 子曰 我欲觀夏道 是故之杞而不足證也 吾得夏時焉 예기 예운에 이르길, 공자가 말하길, “나는 하나라의 도를 살펴보고자 하였기에, 이런 까닭으로 기나라에 갔으나 증거가 부족하였다. 나는 여기서 하나라의 역법를 얻었을 뿐이다.”라고 하였다. 夏小正 夏時書名 今存戴德註 하소정이란 하나라 역법에 관한 책의 이름인데, 지금은 대덕의 주석에만 남아있다. 朱子曰 陽氣 雖始於黃鍾 而其月爲建子 然猶潛於地中而未有以見其生物之功也 歷丑轉寅而三陽始備於是 恊風乃至盛德在木而春氣應焉 古之聖人以是爲生物之始 改歲之端 蓋以人之所共見者言之 至商周始以征伐有天下 於是更其正朔 定爲一代之制 以新天下之耳目 而有三統之說 然以言乎天 則生物之功未著 以言乎地 則改歲之義不明 而凡四時五行之序 皆不得其中正 此孔子所以考論三王之制 而必行夏之時也 주자가 말하길, “양기가 비록 黃鍾에서 시작되어 그 달을 子를 세우는 것으로 삼지만, 그러나 양기는 여전히 땅속에 잠겨 있어서 만물을 낳는 공을 드러낼 수 없는 것이다. 丑을 거쳐 寅이 되면, 三陽이 비로소 여기에 다 갖추어지는 것이다. 조화로운 바람이 이에 이르고 성대한 덕이 나무에 있어서, 봄기운이 이에 호응하게 된다. 옛날 성인들은 이것으로써 만물을 낳는 시작으로 삼고 해를 바꾸는 단서로 삼았으니, 대체로 사람이 함께 알아볼 수 있는 것으로써 말한 것이다. 상나라와 주나라에 이르러, 비로소 정벌하여 천하를 소유하게 되었는데, 이에 그 정월 초하루을 고쳐서 一代의 제도로 정함으로써 천하의 눈과 귀를 새롭게 하여 삼통의 설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하늘에 관해 말하자면, 만물을 낳는 공이 아직 현저하지 않고, 땅에 관해 말하자면 해를 바꾸는 의미가 밝지 않아서, 무릇 사계절과 오행의 차례가 모두 그 중정을 얻지 못하였다. 이것이 바로 공자께서 삼왕의 제도를 상고하고 논하시어 반드시 하나라의 역법을 행하고자 하셨던 까닭이다.”라고 하였다. 所謂行夏時者 蓋由歷數以來 授時之法 如堯典敎民事者 至夏而悉備也 諸家之歷久而皆差 惟夏小正之書 授時爲無差 故曰 行夏時也 이른바 하나라의 역법를 시행한다는 것은 대체로 대체로 달력으로 말미암아 날짜를 센 이래로 때를 정해주는 법은 서경 堯典에서 백성에게 일을 가르친 것처럼 하나라에 이르러 모두 제대로 갖추어졌기 때문이다. 여러 전문가의 달력들은 오래되었으면서 모두 틀린 곳이 있었지만, 오직 하소정의 책만이 때를 지정해줌에 있어 틀림이 없었다. 그래서 말하길, 하나라의 역법을 시행하라고 하신 것이다. 問集註斗柄初昏建寅之月 何獨取初昏爲定 雙峯饒氏曰 天象難捉摸 只有初昏可見 日已落星初明於是時 推測方有定 若其他時候 周流四方 無可捉摸 凡測星辰都用初昏 測日景 却用日中 누군가 묻기를, “집주에서 북두칠성 자루가 처음 어두워질 때에 寅方에 위치한 달을 정월로 한다고 하였는데, 어째서 유독 初昏 때를 취하여 정하는 것입니까?”라고 하였다. 쌍봉요씨가 말하길, “천문현상은 포착하여 헤아리기가 어려운 법이니, 그저 初昏 때에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다. 해가 이미 떨어지면 별이 처음으로 이 때에 밝아지니, 미루어 관측하면 바야흐로 정함이 있게 되는 것이다. 만약 그 밖의 때라면, 사방으로 두루 흘러서 포착하여 헤아릴만한 것이 없다. 무릇 별을 관측할 적에는 항상 초혼 때를 사용하고, 해의 모습을 관측할 적에는 도리어 日中(한낮)을 쓴다.”라고 하였다. 行字兼令說了 古人每月有政令 觀夏小正可見 行夏之時 不特改正朔 乃是兼每月政令行了 所以集註說時之正與其令之善 以堯歷日中星鳥以殷仲春推之 亦是夏時 想夏之前 皆用建寅之月 至湯始改以新天下之觀聽 行자는 政令을 겸해서 말한 것이다. 옛사람들은 매월 정령이 있었는데, 하소정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하나라의 역법을 시행하는 것은 정월 초하루을 바꿀 뿐 아니라, 곧 매월의 政令도 겸하여 시행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집주에서 때의 올바름과 그 정령의 훌륭함도 더불어 말한 것이다. 서경 요력의 ‘日中星鳥 以殷仲春’이라는 글귀로 미루어 보건대, 이 역시 하나라의 역법이다. 생각하건대, 하나라 이전에는 모두 建寅之月을 정월로 사용하였지만, 탕임금 때에 이르러 비로소 천하를 살펴보고 듣는 것을 새롭게 함으로써 바꾼 것 같다. 問春秋書王正月 是以十一月爲春 如何 曰 然 天時參差 自是周制 夫子不敢擅改王制 但如此書而於對顔子發此言 則人見得合用夏時 方與天時當對 此是夫子微意 누군가 묻기를, “춘추에 王正月이라 쓴 것은 11월을 봄으로 삼은 것입니다. 어떻습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그렇다. 하늘의 때가 들쭉날쭉한 것은 주나라 제도부터였다. 공자께서는 감히 함부로 천자의 제도를 고치지 못하셨지만, 다만 이와 같이 쓰고 안자에게 대답함에 있어 이러한 발언을 하셨으니, 사람들은 마땅히 하나라 달력을 써야만 비로소 하늘의 때와 더불어 합당하게 대응하는 것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공자님의 은미한 뜻이다.”라고 하였다. 乘殷之輅 은(殷)나라의 수레를 타며, 輅, 音路, 亦作路. ○ 商輅 木輅也 輅者 大車之名 古者以木爲車而已 至商而有輅之名 蓋始異其制也 周人飾以金玉 則過侈而易敗 不若商輅之樸素渾堅而等威已辨 爲質而得其中也 상나라의 수레는 나무 수레다. 輅라는 것은 큰 수레의 이름이다. 옛날에는 나무로 수레를 만들었을 뿐이나, 상나라에 이르러 輅의 이름이 생겨났다. 아마도 처음으로 그 제도가 달라졌던 것 같다. 주나라 사람들은 금과 옥으로 장식을 하였는데 지나치게 사치스러웠고 쉽게 부서졌다. 상나라의 수레가 질박하고 장식이 없으며 견고하면서도 등급과 위엄이 확실히 구분되므로, 질박하되 그 중용을 얻은 것만 못하였다. 或問周輅爲過侈 何也 朱子曰 輅者身之所乘 足之所履 其爲用也 賤矣 運用震動任重致遠 其爲物也 勞矣 且一器而工聚焉 其爲費也 廣矣 賤用而貴飾之 則不稱 物勞而華飾之 則易壞 費廣而又增費之 則傷財 此周輅之所以爲過侈歟 혹자가 묻기를, “주나라의 수레가 지나치게 사치스럽다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라고 하였다. 주자가 말하길, “수레라는 것은 사람의 몸이 타는 것이고, 발로 밟는 것이니, 그 쓰임새는 천한 것이다. 운용하면 진동하고 무거운 물건을 싣고 멀리까지 이르니, 그 물건 됨은 수고로운 것이다. 또한 하나의 기물임에도 많은 장인들이 모여들어 만드니, 그 소비함이 광대한 것이다. 천하게 쓰이는데도 귀하게 장식한다면, 걸맞지 않고, 물건 됨이 수고로우나 화려하게 장식한다면, 부서지기 쉬우며, 소비함이 광대하나 또 재화 소모하기를 더한다면, 이는 곧 재물을 상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주나라 수레가 지나치게 사치스러운 까닭이 아닐까?”라고 하였다. 正義曰 路 大也 君之所在 以大爲號 門曰路門 寢曰路寢 車曰路車 左氏傳曰 大路越席 昭其儉也 논어정의에 이르길, ‘路는 크다는 뜻이다. 임금이 계신 곳은 大로써 호칭하였는데, 문은 로문이라 말했고, 침전은 로침이라 말했으며, 수레는 路車라고 말했다.’고 하였다. 좌씨전에 이르길, ‘大路(大輅)는 越席으로 장식하니, 그 검소함을 밝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勿軒熊氏曰 按記明堂位 鸞車有虞氏之輅也 鉤車夏后氏之輅也 大輅殷輅也 乘輅周輅也 註曰 漢祭天乘殷之輅 今謂之桑根車 周禮春官 巾車掌王之五輅 曰玉輅金輅象輅革輅木輅 註曰 金玉象以飾諸末 革輅鞔之以革而漆之 木輅漆之而已 물헌웅씨가 말하길, “예기 명당위 편을 살펴보건대, 鸞車는 유우씨의 수레이고, 鉤車는 하후씨의 수레이며, 大輅는 은나라 수레이고, 乘輅는 주나라 수레다. 주석에 이르길, 한나라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낼 적에 은나라의 수례를 탔으니, 오늘 그것을 일컬어 桑根車라고 한다고 하였다. 주례 춘관 편에 이르길, 巾車가 천자의 5가지 수레를 관장하니, 옥로, 금로, 상로, 혁로, 목로라고 말했다. 주석에 이르길, 금과 옥과 상아로 그 끝에 장식한다고 하였고, 혁로는 가죽으로 수레 옆을 감싼 다음 옻칠을 하고, 목로는 옻칠만 할 따름이라고 하였다.”라고 하였다. 雲峯胡氏曰 商尙質 亦有過於質者 商之輅則得乎質之中者也 운봉호씨가 말하길, “상나라는 질박함을 숭상하였는데, 역시 너무 질박함에 지나친 것도 있었다. 그러나 상나라의 수레는 질박함의 중도를 터득한 것이었다.”라고 하였다. 服周之冕 주(周)나라의 면류관(冕旒冠)을 쓰며 周冕有五 祭服之冠也 冠上有覆 前後有旒 黃帝以來 蓋已有之 而制度儀等 至周始備 然其爲物小 而加於衆體之上 故雖華而不爲靡 雖費而不及奢 夫子取之 蓋亦以爲文而得其中也 주나라의 면류관에는 다섯이 있는데, 제사 때 쓰는 관이다. 관의 위에는 덮개가 있고, 앞뒤로는 류(旒)가 있다. 황제 이래로 대개 이미 존재하였는데, 제도와 의례 및 등급은 주나라에 이르러 처음으로 갖추어졌다. 그러나 그것이 작은 물건이지만 여러 지체 위에 덮어쓰는 것이기 때문에, 비록 화려하지만 호사가 되지 않고, 비록 비용이 들어도 사치함에 이르지 않는다. 공부자께서도 이를 취한 것은 아마도 역시 문채가 나지만 그 중용을 얻었다고 여기셨던 것 같다. 何晏曰 世本云 黃帝作冕 周禮弁師掌王五冕 其制蓋以木爲幹 以布衣之 上玄下朱 取天地之色 阮諶三禮圖云 長尺六寸 廣六寸 天子以下皆同 前圓後方 前垂四寸後垂三寸 鄭云 天子之衮冕 十二旒 鷩冕九旒 毳冕七旒 絺冕五旒 玄冕三旒 旒各十二玉 公之衮冕九旒九玉 侯伯七旒七玉 子男五旒五玉 孤三旒三玉 大夫二旒二玉 士以弁 庶人以冠 하안이 말하길, “世本에 이르길, 황제가 면류관을 만들었다고 한다. 주례에는 변사가 천자의 5가지 면류관을 관장하였다고 하는데, 그 제도는 대체로 나무로 뼈대를 만들고 베로 옷을 입히는데, 위는 검고 아래는 붉으니, 하늘과 땅의 색을 취한 것이다. 완심삼례도에 이르길, 길이는 1자 6촌이고, 넓이는 6촌이며, 천자 이하로 모두 동일하다고 하였다. 앞은 둥글고 뒤는 네모지며, 앞은 4촌을 늘어뜨리고 뒤는 3촌을 늘어뜨린다고 하였다. 정현이 이르길, 천자의 곤면은 술이 12줄이고, 별면은 9줄이며, 취면은 7줄이고, 치면은 5줄이며, 현면은 3줄이고, 술마다 각자 12개의 옥이 있다고 하였다. 公의 곤면은 술이 9줄이고 옥은 9개이며, 侯와 伯은 7줄이고 옥도 7개이며, 子와 男은 5줄이고 옥도 5개이며, 孤는 3줄과 옥 3개이고, 대부는 2줄과 옥 2개이며, 선비는 弁으로 하고, 서인은 冠으로 하였다.”라고 하였다. 周禮春官司服 王之吉服 祀乎天上帝 則服大裘而冕 祀五帝亦如之 享先王 則袞服 享先公鄕射 則鷩冕 祀四望山川 則毳冕 祭社稷五祀 則絺冕 祭群小祀 則玄冕 六服同冕者 首飾尊也 大裘羔裘也 袞冕 卷龍衣也 九章 初一曰龍 次二曰山 次三曰華蟲 次四曰火 次五曰宗彛 皆畵以爲繢 次六曰藻 次七曰粉米 次八曰黼 次九曰黻 皆絺以爲綉 則袞之衣 五章裳四章 凡九章也 鷩畵以雉 謂華蟲也 其衣三章 裳四章 凡七章也 毳畵虎蜼 謂宗彛也 其衣三章裳二章 凡五章也 絺刺粉米 無畵也 其衣一章裳二章 凡三章也 玄者衣無文裳刺黻而已 是以謂之玄焉 凡冕服皆玄衣纁裳 주례 춘관 사복에 따르면, 천자의 길복으로는 하늘의 상제에게 제사를 드린다면, 大裘를 입고 면류관을 쓴다. 五帝에게 제사를 드릴 때에도 역시 이와 같이 한다. 선왕에게 향사한다면 곤룡포를 입고, 선공에게 향사하거나 향사례를 할 적에는 별면을 쓰고, 四望과 산천에 제사를 지낸다면 취면을 쓰고, 사직과 五祀에게 제사를 지낸다면 치면을 쓰고, 여러 작은 제사를 지낸다면 현면을 쓴다. 6가지 복장에 동일한 면류관을 쓰는 것은 머리장식을 높이는 것이다. 大裘란 양가죽 옷이다. 곤룡포와 면류관은 감긴 용으로 장식한 옷이다. 9가지 장식 중에서, 첫 번째를 용이라고 부르고, 두 번째를 산이라 말하며, 세 번째를 화충이라 말하고, 네 번째를 불이라 말하며, 다섯 번째를 宗彛라고 말하는데, 모두 그림을 그려서 수를 놓는다. 여섯 번째를 조라고 말하고, 일곱 번째를 분미라고 말하며, 여덟 번째를 보라고 말하고, 아홉 번째를 불이라고 말하니, 모두 갈포에 자수를 놓는다. 곤룡포의 상의는 장식이 다섯이고 하의에는 장식이 4개로서 모두 9개의 장식이다. 별의 경우에 꿩으로 그림을 그리는데, 화충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 상의에 3개의 장식이 있고, 하의에는 4개의 장식이 있어서, 모두 7개의 장식이다. 취의 경우에 호랑이와 원숭이를 그리는데, 종이라고 부르고, 그 상의는 3개의 장식이 있고, 하의에는 2개의 장식이 있으니, 모두 5개의 장식이다. 치의 경우 분미를 수놓는데, 그림은 없다. 그 상의는 장식이 하나이고 하의에는 장식이 2개가 있어서, 모두 3개의 장식이 있다. 현의 경우에는 상의에 무늬가 없고, 하의에는 黻만 자수할 뿐이다. 이런 까닭으로 이것을 일컬어 玄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무릇 면류관과 복장 모두 검은색 상의와 분홍색 하의다. 或問周冕之不爲侈 何也 朱子曰 加之首 則體嚴而用約 詳其制 則等辨而分明 此周冕所以雖文而不爲過也 夏商之制 雖不可考 然意其必有未備者矣 혹자가 주나라의 면류관이 사치스럽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인지 물었다. 주자가 말하길, “그것을 머리에 쓰면 體가 엄숙해지면서도 비용이 절약되고, 그 제도를 상세히 하면, 등급이 구별되면서도 분수가 명확해진다. 이것이 바로 주나라의 면류관이 비록 문채가 뛰어나지만 지나치지 않게 된 까닭이다. 하나라와 상나라의 제도는 비록 상고할 수 없지만, 그러나 생각하건대, 반드시 미비된 것이 있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雲峯胡氏曰 周尙文則有過於文者 周之冕則得乎文之中者也 운봉호씨가 말하길, “주나라는 文飾을 숭상하였으므로 文에 지나친 것이 있었다. 그러나 주나라의 면류관은 문식의 중도를 얻은 것이었다.”라고 하였다. 樂則韶舞 음악은 순(舜)임금의 소무(韶舞)를 취할 것이요, 取其盡善盡美 그것의 전부 다 선하고 전부 다 아름다운 점을 취하신 것이다. 問顔子問爲邦 孔子止告之以四代之禮樂 却不及治國平天下之道 莫是此事顔子平日講究有素不待夫子再言否 朱子曰 固是如此 顔子事事了得了 只欠這些子 故聖人斟酌禮樂而告之 혹자가 묻기를, “안자가 나라를 다스리는 것을 물었는데, 공자는 단지 4대의 예악만을 알려주었을 뿐 치국평천하의 도에 미치지 않았는데, 이 일은 혹시 안자가 평소 강구하여 소양이 있기 때문에, 공자께서 다시 말하는 것을 기다리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까?”라고 하였다. 주자가 말하길, “본래 이와 같은 것이다. 안자는 일마다 모두 이해하고 있었으나, 단지 이것들만 조금 부족했을 뿐이다. 그래서 성인께서는 부족한 것이 예악이라고 짐작하여 알려주신 것이다.”라고 하였다. 顔子資稟極聰明 凡是涵養得來都易 如聞一知十 如於吾言無所不說 如亦足以發 如問爲邦 一時將許多大事分付與他 是他大段了得 看問爲邦而孔子便以四代禮樂告之 想是所謂夏時商輅周冕韶舞 當博我以文之時 都理會得了 唯是顔子有這本領 方做得 若無這本領 禮樂安所用哉 안자는 품부 받은 자질이 지극히 총명했기에, 무릇 함양해 내기가 다 쉬웠다. 예컨대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안다거나, 내 말에 기뻐하지 않는 바가 없었다거나, 또한 내 뜻을 드러내기에 충분하다거나, 나라를 다스리는 것을 묻는 것처럼, 일시에 장차 수많은 대사를 그에게 나누어 맡기더라도, 그는 대단히 잘 이해하였던 것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일을 묻자 공자께서 곧 四代의 예악으로 알려준 것을 살펴보면, 생각하건대, 이것은 또한 이른바 하나라의 역법, 상나라의 수레, 주나라의 면류관, 소왕의 춤이라는 것이니, 文으로써 나를 넓혀주는 때를 당하여, 모두 다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직 안자의 이러한 본령을 갖고 있어야만 비로소 해낼 수 있는 것이지, 만약 이러한 본령을 갖고 있지 못하다면, 예악을 쓸 만한 곳이 어디 있겠는가? 新安陳氏曰 韶舞以樂聲兼樂容而言也 신안진씨가 말하길, “소무는 음악의 소리로 음악의 용모(모양)를 겸해서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放鄭聲 遠佞人 鄭聲淫 佞人殆 정(鄭)나라의 음악은 추방하며 말만 잘하는 사람을 멀리해야 하니, 정(鄭)나라 음악은 음탕하고 말재주 있는 사람은 위태롭다.”라고 하셨다. ○ 放 謂禁絶之 鄭聲 鄭國之音 佞人 卑諂辨給之人 殆 危也 放은 금지하고 끊어버린다는 말이다. 정성이란 정나라의 음악이다. 佞人이란 저속하게 아첨하고 말재주가 좋은 사람이다. 殆란 위태롭다는 말이다. 雲峯胡氏曰 集註前訓佞字但謂其辨給 此則先之以卑諂 蓋辨給在口 卑諂在心 此所謂巧言令色孔壬者也 운봉호씨가 말하길, “집주에서 이전의 訓은 佞자에 대하여 그저 말재주가 좋은 것이라고만 말했었는데, 여기에서는 비루하게 아첨함을 앞세웠으니, 이는 아마도 辨給은 입에 달려 있고, 卑諂은 마음에 달려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이것이 이른바 교언영색을 하여 대단히 간악한 것이란 말이다. ○ 程子曰 問政多矣 惟顔淵告之以此 蓋三代之制 皆因時損益 及其久也 不能無弊 周衰 聖人不作 故孔子斟酌先王之禮 立萬世常行之道 發此以爲之兆耳 由是求之 則餘皆可考也 정자왈, “정치를 묻는 사람은 많았지만, 오직 안연에게만 이렇게 알려주었다. 아마도 3대의 제도는 모두 때에 따라 줄이거나 보탬이 있었고, 오랜 세월이 흐름에 따라 폐단이 없을 수가 없었다. 주나라가 쇠하고 성인이 나타나지 않았으니, 이런 까닭에 공자께서 선왕의 예를 짐작하여 만세에 항상 행해질 도를 세운 다음, 이것을 드러냄으로써 그 조짐(징조, 단서)으로 삼았을 따름이다. 이것을 말미암아 그것을 구한다면, 곧 나머지는 모두 충분히 고찰하여 얻을 수 있다.”라고 하였다. 朱子曰 發此以爲之兆 兆猶準則也 非謂爲邦之道盡於此四者 略說四件作一箇準則 則餘事皆可依倣此而推行之耳 주자가 말하길, “이것을 드러냄으로써 그 징조로 삼았다고 하였는데, 여기서 兆는 준칙과 같은 말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도가 이 네 가지에서 끝나는 것이라고 말한 것은 아니다. 네 가지 것을 줄여 하나의 준칙이라고 말한다면, 곧 나머지 일은 모두 이것을 의지하고 모방하여 미루어서 행할 수 있을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雲峯胡氏曰 須看斟酌二字 以三代正朔斟酌之 不如夏之時得其正 輅至周而過侈 斟酌之 不如從殷之爲得其中 冕自黃帝而有之 至周而其制始備 斟酌之 不如從周爲得其中 自堯舜湯武皆有樂 斟酌之 不如韶樂之盡善盡美 夫子姑擧此四者以例 其餘皆當如此斟酌而行之也 운봉호씨가 말하길, “반드시 斟酌이라는 두 글자를 살펴보아야 한다. 三代의 바른 달력으로 짐작함에 있어 하나라의 달력이 그 올바름을 얻은 것만 못하고, 수레가 주나라에 이르러 지나치게 사치해졌기에 그것을 짐작함에 있어서는 은나라의 수레가 그 중도를 얻었던 것만 못하며, 면류관은 황제 때부터 줄곧 있어왔지만 주나라에 이르러 그 법제가 비로소 갖추어졌으니, 그것을 짐작함에 있어서는 주나라의 관이 그 중도를 얻었던 것만 못하고, 요임금, 순임금, 그리고 탕왕이나 무왕 때부터 모두 음악이 있었지만 그것을 짐작함에 있어서 소악이 전부 선하고 전부 아름다운 것만 못하다. 공자께서는 우선 이 네 가지를 예로 들었는데, 그 나머지는 모두 마땅히 이와 같이 짐작하여 행해야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張子曰 禮樂 治之法也 放鄭聲 遠佞人 法外意也 一日不謹 則法壞矣 虞夏君臣更相戒飭 意蓋如此 又曰 法立而能守 則德可久 業可大 鄭聲佞人 能使人喪其所守 故放遠之 장자가 말하길, “예악은 다스리는 법도다. 정나라 음악을 추방하고, 말재주만 좋은 사람을 멀리하는 것은 법 이외의 뜻이다. 하루라도 삼가지 않으면 법이 무너지는 법이다. 순임금(虞)과 우왕(夏)의 군신이 다시 서로 경계하고 신칙한 것은 그 뜻이 대체로 이와 같았다.”라고 하였다. 또 말하길, “법을 세워서 능히 지킬 수 있다면, 덕이 오래 갈 수 있고, 업적도 커질 수 있다. 鄭聲과 佞人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 지키는 바를 상실하도록 만들 수 있으므로 그것을 추방하고 멀리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或問鄭衛之音皆爲淫奔 夫子獨欲放鄭 何也 朱子曰 衛詩三十九淫奔之詩 纔四之一 鄭詩四十一 淫奔之詩 已不啻七之五 衛猶男悅女之事 鄭皆女惑男之語 衛猶多譏刺懲創之意 鄭幾蕩然無復羞愧悔悟之萌 鄭聲之淫甚於衛矣 夫子獨以鄭聲爲戒而不及衛 擧重而言也 혹자가 묻기를, “정나라와 위나라의 음악이 모두 음탕하고 분방한데, 공자께서는 유독 정나라 음악만 추방하고자 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라고 하였다. 주자가 말하길, “위나라 시는 39편인데 음탕하고 분방한 시가 겨우 4분의 1이고, 정나라 시는 41편인데 음탕하고 분방한 시가 이미 7분의 5뿐만이 아니다. 위나라 시는 그래도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일인데, 정나라 시는 모두 여자가 남자를 유혹하는 말이다. 또한 위나라 시는 그래도 경계하고 나무라며 혼을 내는 뜻이 많은 반면, 정나라 시는 다시 부끄러워하고 후회하는 싹이 거의 전혀 없다. 그래서 정나라 음악이 음탕한 것이 위나라보다 심한 것이다. 공자께서 유독 정나라 음악을 경계할 뿐 위나라 음악에까지 미치지 않았던 것은 더 무거운 것을 들어 말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張氏好古曰 小人之禍國家 柔惡尤可畏於剛惡 剛惡桀黠强暴 中才之主猶畏而遠之 爲害猶淺 惟柔佞者諂諛側媚 使人喜愛親暱 聰明之君猶爲所惑 有覆亡而終不悟者 夫子擧佞人亦以小人之尤者言也 是知有百王之大法 有萬世之大戒 四代禮樂爲百王立此法也 戒以鄭聲佞人爲萬世保此法也 장씨 호고가 말하길, “소인이 나라에 화를 끼침에 있어, 부드러운 악이 굳센 악보다 더욱 두려워할 만한 것이다. 굳센 악은 사납고 교활하며 강포하므로, 중간 정도의 재능을 가진 군주는 오히려 두려워하며 멀리하여 그 해악은 오히려 얕을 것이다. 오직 부드럽고 말재주가 좋은 자만이 아첨하고 곁에서 아양을 떨어 사람으로 하여금 좋아하고 사랑하여 친밀하게 하도록 할 것이니, 총명한 임금이라도 오히려 그에 미혹되어서 엎어져 망하면서도, 끝내 깨닫지 못하는 자가 있는 것이다. 공자께서 말재주 좋은 사람을 거론한 것 역시 소인의 허물로써 말한 것이다. 이는 모든 왕들이 지켜야 할 큰 법이 있고, 만세에 이르도록 크게 경계할 바가 있음을 아는 것이다. 四代의 예악은 모든 왕들을 위하여 이 법을 세워준 것이고, 정나라 음악과 말재주 좋은 사람을 경계한 것은 만세를 위하여 이 법을 보장해준 것이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治道成於樂 鄭聲樂之淫者 能搖蕩人之性情以壞其成 故放絶之 治道係於人才 佞人人才之賊也 利口辨給能變亂是非 以移奪人之心志而喪其所守 故屛絶之 경원보씨가 말하길, “다스리는 도는 樂에서 이루어진다. 정나라 음악은 樂 중에서 음탕한 것으로서 사람의 성정을 흔들어 놓음으로써 그 이룸을 파괴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것을 추방하고 끊어버리는 것이다. 다스리는 도는 인재에 매여 있다. 말재주 좋은 사람은 인재를 해치는 도적이다. 유려한 말재주는 능히 시비를 바꾸어 어지럽힘으로써 사람의 마음과 뜻을 옮기거나 빼앗아 그 지키는 바를 잃도록 만들 수 있다. 그러므로 그것을 막아서 끊어버리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法外意者 意在法之表 意所以立此法 所以用此法 亦所以守此法 先王有不忍人之心 斯有不忍人之政 有關雎麟趾之意然後 可以行周官之法度 卽此意也 쌍봉요씨가 말하길, “법 밖의 뜻이란 것은 뜻이 법의 표면에 있다는 것이다. 그 뜻은 이러한 법을 세운 까닭이고, 이 법을 적용하는 까닭이며, 역시 이 법을 지키는 까닭이다. 선왕께서 사람을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자, 사람을 차마 하지 못하는 정사가 있게 되고, 관저와 인지의 뜻이 있은 연후에 비로소 周官의 법도를 시행할 수 있었다는 것이 바로 이 뜻이다.”라고 하였다. 尹氏曰 此所謂百王不易之大法 孔子之作春秋 蓋此意也 孔顔雖不得行之於時 然其爲治之法 可得而見矣 윤씨가 말하길, “이것이 이른바 모든 왕들의 변함 없는 큰 법이다. 공자님이 지으신 춘추 역시 대개 이러한 뜻이다. 공자와 안연은 비록 그 당시에 그것을 시행할 수 없었지만, 그들의 다스리는 법은 충분히 알아볼 수 있다.”고 하였다. 程子曰 擧前代之善者 準此以損益之 此成法也 鄭聲使人搖溺 佞人使人危殆 放遠之然後 可守成法 정자가 말하길, “전대의 훌륭한 것을 들어서 이를 본받아 덜어내거나 보태는데, 이것이 법을 이루는 것이다. 정나라 음악은 사람을 흔들어서 빠지게 만들고, 말재주가 좋은 사람은 사람을 위태롭게 만들기에, 그것들을 추방하여 멀리한 연후에 비로소 이룬 법을 지킬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三王之法各是一王之法 故三代損益文質隨時之宜 若孔子所立之法 乃通萬世不易之法 孔子於他處亦不見說 獨答顔回云行夏之時乘殷之輅服周之冕樂則韶舞 此是於四代中擧這一箇法式 其詳細雖不可見而孔子但示其大法 使後人就上修之 又曰鄭聲佞人最爲治之害 放遠亦人之所難 삼왕의 법은 각자 왕 한 명의 법이다. 그러므로 3대가 문식함과 질박함을 덜고 더한 것은 각 시대의 합당함에 따른 것이다. 공자가 세운 법의 경우는 만세에 통하는 변함없는 법이다. 공자가 다른 부분에 대하여 말하는 것은 또한 보이지 않다가, 유독 안회에 대답하여 ‘하나라의 역법을 시행하고, 은나라의 수레를 타며, 주나라의 면류관을 쓰고, 음악은 소무를 행하라’고 말하였는데, 이것은 4대 안에서 이 하나의 법식을 거론한 것으로서, 그 상세한 것은 비록 알아볼 수 없지만, 공자는 단지 그 큰 법만 보여주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그 위에 나아가 그것을 닦도록 한 것이다. 또 말하길, “정나라 음악과 말재주가 뛰어난 사람이 다스리는 데에 제일 큰 해로움이 된다.”라고 하였는데, 이것들을 추방하여 멀리하는 것 역시 사람들이 어려워하는 바이다. 和靖尹氏曰 孔子告顔子以四代禮樂而繼以放鄭聲遠佞人 蓋此事易惑人也 화정윤씨가 말하길, “공자께서 안자에게 4대의 예악을 알려주고 이어서 정나라 음악을 추방하고 말재주 좋은 사람을 멀리하라고 하신 것은 대체로 이런 일들이 사람을 미혹하기가 쉽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問伊川春秋傳序引夫子答爲邦之語 惟顔子嘗聞春秋大法 何也 朱子曰 此不是孔子將春秋大法向顔子說 蓋三代制作極備矣 孔子更不復作 故告以四代禮樂 只是集百王不易之大法 其作春秋 善者則取之 惡者則誅之 要亦明聖王之大法 意亦只是如此 故伊川引之爲樣耳 누군가 묻기를, “정이천이 춘추전 서문에서 나라를 다스리는 것에 대답한 공자님의 말씀을 인용하여 오직 안자만이 일찍이 춘추대법을 들었다고 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라고 하였다. 주자가 말하길, “이것은 공자가 춘추대법을 안자에게 말했다는 것이 아니다. 대체로 3대에 제작된 것이 지극하게 잘 갖추어져 있었던 것이다. 공자가 다시 새로 지을 수 없었으므로, 4대의 예악을 알려주었던 것이다. 단지 많은 왕들의 변함없는 大法을 모아서 춘추를 지을 적에, 선한 것은 칭찬하고 악한 것은 주벌하였는데, 핵심은 또한 성스런 왕들의 대법을 밝히는 것이었고, 뜻 또한 그저 이와 같을 따름이었다. 그러므로 정이천이 그것을 인용하여 본보기로 삼았을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南軒張氏曰 聖人監四代之事而損益之以爲百王不易之典 此其大綱也 其綱見於此而其目則著於春秋 以此答顔淵 惟顔子可以與於斯也 放鄭聲遠佞人 以爲邦之大法也 以其易溺而難防 故重言之 鄭聲淫佞人殆 聖人每致戒於斯者 非聖人必待戒乎此也 於此設戒是乃聖人之道也 放鄭聲遠佞人而後 四代之法度可以興行而無斁矣 남헌장씨가 말하길, “성인께서는 4대의 일을 감안하여 덜어내고 보태어서 백왕의 변함없는 전범을 만드셨는데, 이것이 그 큰 벼리다. 그 벼리는 여기에서 보이지만 그 상세한 항목은 춘추에 드러나 있다. 이것을 가지고 안연에게 대답하자, 오직 안자만이 이것을 함께 할 수 있었다. 정나라 음악을 추방하고 말재주 뛰어난 자를 멀리하는 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큰 법이기 때문에, 또한 그것에 빠지기는 쉽고 막기는 어렵기 때문에, 그것을 거듭하여 말한 것이다. 정나라 음악은 음탕하고 말재주 뛰어난 사람은 위태롭다고 하셨는데, 성인께서 매번 이것들을 경계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성인께서 반드시 이것들에 대하여 실제로 경계하는 것을 기다렸다가 하신 것은 아니다. 이에 대하여 가설하여 경계하도록 하는 것이 바로 성인의 도다. 정나라 음악을 추방하고 말재주 뛰어난 자를 멀리한 후에야 4대의 법도가 왕성하게 시행되어 싫어하는 자가 없도록 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或問孔子言王道只言禮樂 如夏時商輅周冕 是也 孟子言王道只言政事 如衣帛食肉經界井地 是也 意者孔子言王道之本 孟子言王道之務 潛室陳氏曰 孔子爲學者言 止言經世之大綱 孟子爲時君言 當論濟時之急務 혹자가 묻기를, “공자께서는 왕도를 말씀하실 적에 단지 예악만을 말씀하셨는데, 예컨대 하나라의 달력, 상나라의 수레, 주나라의 면류관이 바로 그것이다. 맹자는 왕도를 말하면서 그저 정사만을 말했는데, 예컨대 비단옷을 입고 고기를 먹으며 경계를 바르게 하고 땅을 바르게 구획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 뜻이 공자께서는 왕도의 근본을 말씀하시고, 맹자는 왕도의 급선무를 말한 것입니까?”라고 하였다. 잠실진씨가 말하길, “공자는 배우는 사람을 위하여 말한 것인데, 그저 경세의 큰 벼리를 말한 것에 그쳤을 뿐이고, 맹자는 당시의 임금을 위하여 말한 것인데, 당시 세상을 구제하기 위하여 급히 힘써야 할 일을 논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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