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어(論語) - 19 - 자장(子張) - ⑱ | |
| 1 | 曾子曰 吾聞諸夫子하니 孟莊子之孝也는 其他可能也어니와 其不改父之臣與父之政은 是難能也니라 |
| 2 | 증자왈 오문제부자하니 맹장자지효야는 기타가능야어니와 기불개부지신여부지정은 시난능야니라 |
| 3 | 증자께서 말씀하시길 "내가 부자(공자)로부터 듣기로는, 맹장자의 효도에 있어 다른 것은 따라할 수 있으나, 아버지의 신하와 아버지의 정치를 고치지 않은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고 하셨다. |
| 4 | The philosopher Tsang said, “I have heard this from our Master:-- ‘The filial piety of Mang Chwang, in other matters, was what other men are competent to, but, as seen in his not changing the ministers of his father, nor his father's mode of government, it is difficult to be attained to.’” |
| 논어집주(論語集注) - 19 - 자장(子張) - ⑱ |
| 曾子曰 吾聞諸夫子 孟莊子之孝也 其他可能也 其不改父之臣與父之政 是難能也 증자께서 말씀하시길 "내가 부자(공자)로부터 듣기로는, 맹장자의 효도에 있어 다른 것은 따라할 수 있으나, 아버지의 신하와 아버지의 정치를 고치지 않은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고 하셨다. 孟莊子 魯大夫 名速 其父獻子 名蔑 獻子有賢德 而莊子能用其臣守其政 故其他孝行雖有可稱, 而皆不若此事之爲難. 맹장자는 노나라 대부로서 이름은 속이다. 그 아버지는 맹헌자로서 이름은 멸이다. 맹헌자는 어진 덕을 갖고 있었고, 맹장자도 그 신하를 기용하고 그 정치를 지킬 수 있었기 때문에, 기타 효행도 비록 칭찬할 만하지만, 모두 이 일만큼 실행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朱子曰 人固有用父之臣者 然稍拂他私意 便自容不得 亦有行父之政者 於私欲稍有不便處 自行不得 古今似此者甚多 如唐太宗爲高宗擇許多人 如長孫無忌楮遂良之徒 高宗因立武昭儀事 便不能用 又季文子相三君 無衣帛之妾 無食粟之馬 到季武子便不如此 便是不能行父之政 以此知孟莊子豈不爲難能 주자가 말하길, “사람들 중에는 본디 아버지의 신하를 기용한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그의 사사로운 뜻을 거스르면 곧 스스로 용납하지 못하였다. 또한 아버지의 정치를 행한 사람도 있었지만, 사욕에 조금이라도 불편한 곳이 있다면 스스로 행하지 못했던 것이다. 고금에 걸쳐 이와 비슷한 경우가 매우 많았는데, 예컨대 당태종은 고종을 위하여 수많은 사람들, 즉 장손무기나 저수량과 같은 무리를 선택해 놓았지만, 고종은 무소의(측천무후)를 세우는 일로 인하여 곧바로 기용할 수 없게 되었다. 또한 계문자는 세 임금에 걸쳐 재상노릇을 하였는데, 비단옷을 입은 첩이 없었고, 곡식을 먹는 말도 없었지만, 계무자 때에 이르자, 곧바로 이와 같이 하지 않게 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아버지의 정치를 행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로써 ‘맹장자가 어찌 어려운 일을 잘 해내는 것이 아니겠느냐?’하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獻子歷相君五十年 魯人謂之社稷之臣 則其臣必賢 其政必善矣 莊子年少嗣立 又與季孫宿同朝 宿父文子忠於公室 宿不能守而改之 莊子乃獨能不改父之臣與父之政 而終身焉 是孔子之所謂難也 맹헌자는 차례대로 임금 보좌하기를 50년이나 하였는데, 노나라 사람들은 그를 일컬어 社稷之臣이라 하였으니, 그의 가신들은 틀림없이 현명하였을 것이고, 그의 정치는 반드시 善하였을 것이다. 맹장자는 나이가 어려서 아버지의 뒤를 이어 그 자리에 섰는데, 또한 계손숙과 더불어서 함께 조정에 나갔다. 계손숙의 아버지 계문자는 公室에 충성하였지만, 계손숙은 이를 능히 지키지 못하고 고쳤다. 맹장자는 오히려 홀로 아버지의 신하와 아버지의 정사를 고치지 않고서 여기서 終身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공자께서 말씀하신 ‘어렵다’는 것이다. 南軒張氏曰 以爲難能 特曰爲之不易云耳 蓋父之臣與父之政 誠善矣 固當奉而篤之 若不幸而悖於理害於事 則當察而更之 是乃致其誠愛於親也 孟莊子之所以終不改者 意者其事雖未爲盡善 亦不至於悖理害事之甚 故有取其不忍於改也 남헌장씨가 말하길, “難能(어려운 일을 잘 함)이라는 것은 단지 ‘행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말한 것일 따름이라고 생각한다. 대체로 아버지의 신하와 아버지의 정사가 진실로 善하였을 것이다. 그러면 본래 마땅히 그것을 받들어서 독실하게 해야 할 것이다. 만약 불행하게도 이치에 어긋나고 일에 해가 된다면, 그것을 살펴서 고치는 것이 마땅하다. 이것은 도리어 그 정성을 지극히 하는 것이고 부모를 사랑하는 것이다. 맹장자가 끝내 고치지 않았던 것은, 그 의미가 그 일이 비록 모두 다 善한 것은 아닐지라도, 역시 이치에 어긋나고 일에 해가 될 정도로 심한 지경에 이르지 않았다는 뜻일 것이다. 그래서 차마 고치지 못함을 취함이 있었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夫子以莊子之不改父臣父政爲孝 見得三年無改於父之道 正是不改其父道之善處 쌍봉요씨가 말하길, “공자께서는 맹장자가 아버지의 신하와 아버지의 정사를 고치지 않은 것을 효도라고 여겼는데, 3년 동안 아버지의 도를 고치지 않았다는 것은 바로 그 아버지의 道 중에서 善한 부분을 고치지 않았다는 것임을 알 수 있다.”라고 하였다. 雲峯胡氏曰 二章皆曰 吾聞諸夫子 饒氏以爲曾子尊其所聞如此 尹和靖作論語解 所謂愚聞之師曰 亦如此 愚謂 朱子得於延平者亦然 운봉호씨가 말하길, “두 장에서 모두 ‘吾聞諸夫子(나는 그것을 선생님께 들었다)’고 말하였는데, 쌍봉요씨는 증자가 그가 들은 바를 높이는 것이 이와 같았다고 생각하였다. 윤화정이 논어해를 지어서 말했던 이른바 ‘愚聞之師(내가 스승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는 것도 역시 이와 같다. 나는 주자가 延平에게 얻은 것도 역시 그러하다고 생각한다.”라고 하였다. |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