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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집주 (孟子集註) - 02 - 양혜왕장구하(梁惠王章句下) - ⑤ - 齊宣王問曰 人皆謂我毁明堂 毁諸 已乎

작성자대태양 / 김현수|작성시간26.05.14|조회수28 목록 댓글 0
맹자 (孟子)  - 02 - 양혜왕장구하 (梁惠王章句下) - ⑤
11 齊宣王이 問曰 人皆謂我毁明堂이라하나니 毁諸아 已乎잇가

2 孟子對曰 夫明堂者는 王者之堂也니 王欲行王政則勿毁之矣소서

3 王曰 王政을 可得聞與잇가 對曰 昔者文王之治岐也에 耕者를九一하며 仕者를世祿하며 關市를譏而不征하며 澤梁을無禁하며 罪人을不孥하더시니 老而無妻曰鰥이오 老而無夫曰寡오 老而無子曰獨이오 幼而無父曰孤니 此四者는 天下之窮民而無告者어늘 文王이 發政施仁하사대 必先斯四者하시니 詩云 哿矣富人이어니와 哀此煢獨이라하니이다 

4 王曰 善哉라 言乎여 曰 王如善之則何爲不行이니잇고 王曰 寡人이 有疾하니 寡人은 好貨하노이다 對曰 昔者에 公劉好貨하더시니 詩云 乃積乃倉이어늘 乃裹餱糧을 于橐于囊이오아 思戢用光하야 弓矢斯張하며 干戈戚揚으로 爰方啓行이라하니 故로 居者有積倉하며 行者有裹糧也然後에야 可以爰方啓行이니 王如好貨어시든 與百姓同之하시면 於王에 何有리잇고 

5 王曰 寡人이 有疾호니 寡人은 好色하노이다 對曰 昔者에 大王이 好色하샤 愛厥妃하더시니 詩云 古公亶父 來朝走馬하샤 率西水滸하야 至於岐下하야 爰及姜女로 聿來胥宇라하니 當是時也하야 內無怨女하며 外無曠夫하니 王如好色이어시든 與百姓同之하시면 於王에 何有리잇고  
21 제선왕이 문왈 인개위아훼명당이라하나니 훼제아 이호잇가

2 맹자대왈 부명당자는 왕자지당야니 왕욕행왕정즉물훼지의소서 

3 왕왈 왕정을 가득문여잇가  대왈 석자문왕지치기야에 경자를구일하며 사자를세록하며 관시를기이불정하며 택량을무금하며 죄인을불노하더시니 노이무처왈환이오 노이무부왈과오 노이무자왈독이오 유이무부왈고니 차사자는 천하지궁민이무고자어늘 문왕이 발정시인하사대 필선사사자하시니 시운 가의부인이어니와 애차경독이라하니이다

4 왕왈 선재라 언호여 왈 왕여선지즉하위불행이니잇고 왕왈 과인이 유질하니 과인은 호화하노이다 대왈 석자에 공유호화하더시니 시운 내적내창이어늘 내과후량을 우탁우낭이오아 사집용광하야 궁시사장하며 간과척양으로 원방계행이라하니 고로 거자유적창하며 행자유과량야연후에야 가이원방계행이니 왕여호화어시든 여백성동지하시면 어왕에 하유리잇고

5 왕왈 과인이 유질호니 과인은 호색하노이다 대왈 석자에 대왕이 호색하샤 애궐비하더시니 시운 고공단보 내조주마하샤 솔서수호하야 지어기하하야 원급강녀로 율래서우라하니 당시시야하야 내무원녀하며 외무광부하니 왕여호색이어시든 여백성동지하시면 어왕에 하유리잇고   
31 제나라의 선왕이 물었다. "사람들이 나에게 명당을 헐어 버리라고 하는데, 헐어야 합니까, 두어야 합니까?" 

맹자께서 대답하셨다. “명당이란 천자의 집이니, 왕께서 왕도정치를 행하고자 하신다면 그것을 헐지 마십시오.” 

3 “왕도정치에 대하여 들을 수 있겠습니까?” “옛날 문왕(文王)께서 기주(岐周)를 다스리실 때에 경작하는 자들에게는 9분의 1의 세금을 받으셨으며, 벼슬하는 자들에게는 대대로 녹(祿)을 주셨으며, 관문(關門)과 시장(市場)을 순찰하기만 하시고 세금을 징수하지 않으셨으며, 못에서 고기 잡는 것을 금하지 않으셨으며, 죄인을 처벌하시되 처자식에게까지 미치지 않게 하셨습니다. 늙고 아내가 없는 것을 ‘홀아비[鰥]’라 하고, 늙고 남편이 없는 것을 ‘과부[寡]’라 하고, 늙고 자식이 없는 것을 ‘무의탁자[獨]’라 하고, 어리고 부모가 없는 것을 ‘고아[孤]’라 하니, 이 네 부류는 세상에서 가장 곤궁한 백성으로서 하소연할 곳이 없는 자들입니다. 문왕은 선정(善政)을 펴고 인정(仁政)을 베푸시되, 반드시 이 네 부류의 사람들을 가장 먼저 배려하셨습니다. 《시경》 〈정월(正月)〉에 이르기를 ‘부자(富者)들은 괜찮지만 이 외롭고 고독한 사람들이 가엾다.’ 하였습니다.”  


4 “선생의 말씀이 매우 좋습니다.” “왕께서 만일 좋게 여기신다면 어찌하여 행하시지 않습니까?” “과인은 병통이 있으니, 과인은 재물(財物)을 좋아합니다.” “옛적에 후직(后稷)의 증손(曾孫)인 공유(公劉)가 재물을 좋아하였는데, 《시경》 〈공유(公劉)〉에 이르기를 ‘집에 남아 있는 자들을 위해서는 양식을 노적가리에 쌓고 창고에 쌓으며, 길을 떠나는 자들을 위해서는 마른 양식을 싸되 전대에다 넣고 자루에다 넣고서 백성을 편안히 하여 이로써 나라를 빛낼 것을 생각하여, 활과 화살을 준비하며 창과 방패와 도끼를 갖추고서 이에 새 도읍을 개척하러 비로소 길을 떠났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집에 남아 있는 자들에게는 노적가리와 창고에 쌓아놓은 양식이 있으며, 길을 떠나는 자들에게는 전대와 자루에 싼 양식이 있은 뒤에야 이에 비로소 길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왕께서 만일 재물을 좋아하시면 백성과 함께하소서. 그렇게 하신다면 왕도정치를 하는 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5 “과인은 병통이 있으니, 여색(女色)을 좋아합니다.” “옛적에 공유의 9세손인 태왕(太王)께서 여색을 좋아하시어 왕비를 사랑하셨습니다. 《시경》 〈면(綿)〉에 이르기를 ‘고공단보(古公亶父)가 아침에 말을 달려 서쪽 물가를 따라 기산(岐山) 아래에 이르러서 이에 부인인 강녀(姜女)와 함께 와서 집터를 보았다.’ 하였는데, 이때를 당하여 안으로는 원망하는 여자가 없었으며 밖으로는 홀아비가 없었습니다. 왕께서 만일 여색을 좋아하시면 백성과 함께하소서. 그렇게 하신다면 왕도정치를 하는 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4 The king Hsüan of Ch'î said, 'People all tell me to pull down and remove the Hall of Distinction. Shall I pull it down, or stop the movement for that object?'

Mencius replied, 'The Hall of Distinction is a Hall appropriate to the sovereigns. If your Majesty wishes to practise the true royal government, then do not pull it down.'

The king said, 'May I hear from you what the true royal government is?' 'Formerly,' was the reply, 'king Wan's government of Ch'î was as follows:-- The husbandmen cultivated for the government one-ninth of the land; the descendants of officers were salaried; at the passes and in the markets, strangers were inspected, but goods were not taxed: there were no prohibitions respecting the ponds and weirs; the wives and children of criminals were not involved in their guilt. There were the old and wifeless, or widowers; the old and husbandless, or widows; the old and childless, or solitaries ; the young and fatherless, or orphans:-- these four classes are the most destitute of the people, and have none to whom they can tell their wants, and king Wan, in the institution of his government with its benevolent action, made them the first objects of his regard, as it is said in the Book of Poetry, 

"The rich may get through life well;
But alas! for the miserable and solitary!"'

The king said, 'O excellent words!' Mencius said, 'Since your Majesty deems them excellent, why do you not practise them?' 'I have an infirmity,' said the king; 'I am fond of wealth.' The reply was, 'Formerly, Kung-lîu was fond of wealth. It is said in the Book of Poetry,

"He reared his ricks, and filled his granaries,
He tied up dried provisions and grain,
In bottomless bags, and sacks,
That he might gather his people together, and glorify his State.
With bows and arrows all-displayed,
With shields, and spears, and battle-axes, large and small,
He commenced his march."

In this way those who remained in their old seat had their ricks and granaries, and those who marched had their bags of provisions. It was not till after this that he thought he could begin his march. If your Majesty loves wealth, give the people power to gratify the same feeling, and what difficulty will there be in your attaining the royal sway?'

The king said, 'I have an infirmity; I am fond of beauty.' The reply was, 'Formerly, king T'âi was fond of beauty, and loved his wife. It is said in the Book of Poetry,

"Kû-kung T'an-fû
Came in the morning, galloping his horse,
By the banks of the western waters,
As far as the foot of Ch'î hill,
Along with the lady of Chiang;
They came and together chose the site for their settlement."

At that time, in the seclusion of the house, there were no dissatisfied women, and abroad, there were no unmarried men. If your Majesty loves beauty, let the people be able to gratify the same feeling, and what difficulty will there be in your attaining the royal sway?'

 

맹자집주 (孟子集註) - 02 - 양혜왕장구하 (梁惠王章句下) - ⑤
1 齊宣王問曰 人皆謂我毁明堂 毁諸 已乎
제나라의 선왕이 물었다. "사람들이 나에게 명당을 헐어 버리라고 하는데, 헐어야 합니까, 두어야 합니까?" 

趙氏曰: “明堂, 太山明堂. 周天子東巡守朝諸侯之處, 漢時遺址尙在. 人欲毁之者, 蓋以天子不復巡守, 諸侯又不當居之也. 王問當毁之乎? 且止乎?”
조씨가 말하길, “明堂이란 태산의 명당이다. 주나라 천자가 동쪽으로 순행하여 제후들의 조배를 받던 곳인데, 한나라 시기에도 그 옛터가 아직 남아 있었다. 사람들이 허물고자 했던 것은 아마도 천자가 더 이상 순행을 하지 않았고, 또한 제후들이 그곳에 기거하는 것도 마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왕이 그것을 허물어야 마땅한가, 아니면 그만두어야 마땅한가 하고 물었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漢書郊祀志 武帝元封元年 封泰山 泰山東北址 古有明堂處 云欲毁明堂正與子貢欲去告朔餼羊之意同 以其無用 故欲去之也
경원보씨가 말하길, “한서 교사지에 따르면, 한무제 원봉 원년에, 태산에 제사를 지냈다. 태산의 동북쪽의 터에 옛날에 명당이던 곳이 있었다. 명당을 헐고 싶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자공이 곡삭례의 희양을 없애고자 한 것과 뜻이 같으니, 그것이 쓸모가 없기 때문에, 제거하고자 한 것이다.” 라고 하였다.

2 孟子對曰 夫明堂者 王者之堂也 王欲行王政 則勿毁之矣
맹자께서 대답하셨다. “명당이란 천자의 집이니, 왕께서 왕도정치를 행하고자 하신다면 그것을 헐지 마십시오.” 

○ 明堂, 王者所居, 以出政令之所也. 能行王政, 則亦可以王矣. 何必毁哉?
명당이란 왕 노릇 하는 사람이 기거하는 곳으로서 정령이 나오는 곳이다. 왕도정치를 능히 행할 수 있다면, 곧 왕 노릇을 할 수 있는데, 어찌 반드시 허물어야 한단 말인가?

朱子明堂說曰 論明堂制者非一 竊意當有九室 如井田之制 東之中爲靑陽太廟 東之南爲靑陽右箇 東之北爲靑陽左箇 南之中爲明堂太廟 南之東卽東之南爲明堂左箇 南之西卽西之南爲明堂 右箇 西之中爲緫章太廟 西之南卽南之西爲緫章左箇 西之北卽北之西爲緫章右箇 北之中爲玄堂太廟 北之東卽東之北爲玄堂 右箇 北之西卽西之北爲玄堂左箇 中爲太廟太室 凡四方之太廟 異方所 其左箇右箇 則靑陽之左箇 乃玄堂之右箇 明堂之右箇 乃緫章之左箇也 緫章之右箇 乃玄堂之左箇 明堂之左箇 乃靑陽之右箇也 但隨其時之方位 開門耳 太廟太室 則每季十八日 天子居焉 古人制事多用井田遺意 此恐然也 新安倪氏曰 此朱子按禮記月令爲說
주자가 명당설에서 말하길, “명당의 제도를 논한 것이 하나가 아니지만, 가만히 생각하건대, 마땅히 9室이 있어야 하니, 마치 정전제와 같은 것이다. 동쪽의 중간 室이 청양(봄)의 태묘가 되니, 동쪽의 남쪽은 청양 태묘의 오른쪽 室이 되고, 동쪽의 북쪽은 청양 태묘의 왼쪽 室이 된다. 남쪽의 중간은 명당(여름)의 태묘가 되니, 남쪽의 동쪽, 즉 동쪽의 남쪽은 명당 태묘의 좌측 室이 되고, 남쪽의 서쪽, 즉 서쪽의 남쪽은 명당 태묘의 오른쪽 室이 된다. 서쪽의 중간은 총장(가을)의 태묘가 되니, 서쪽의 남쪽, 즉 남쪽의 서쪽은 총장 태묘의 왼쪽 室이 되고, 서쪽의 북쪽, 즉 북쪽의 서쪽은 총장 태묘의 오른쪽 室이 된다. 북쪽의 가운데는 현당(겨울)의 태묘가 되니, 북쪽의 동쪽, 즉 동쪽의 북쪽은 현당 태묘의 오른쪽 室이 되고, 북쪽의 서쪽, 즉 서쪽의 북쪽은 현당 태묘의 왼쪽 室이 된다. 가운데는 태묘의 태실이 된다. 무릇 사방의 태묘는 서로 다른 方所다. 그 좌측 우측에 있어서, 청양 태묘의 좌측이 곧 현당 태묘의 오른쪽이고, 명당 태묘의 오른쪽이 총장 태묘의 왼쪽이며, 총장 태묘의 오른쪽이 곧 현당 태묘의 왼쪽이고, 명당태묘의 왼쪽이 곧 청양 태묘의 오른쪽인 것이다. 다만 그 계절의 방위에 따라서 문을 열 따름이다. 태묘의 태실의 경우, 매 季節의 18일에 천자가 이곳에서 거처하였다. 옛사람이 일을 통제함에 있어 대부분 정전제를 이용하여 뜻을 남겼다. 이것도 아마 그런 것 같다.”라고 하였다. 신안예씨가 말하길, “이것은 주자가 예기의 월령 편을 살펴보고서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봄은 동쪽, 여름은 남쪽, 가을은 서쪽, 겨울은 북쪽에 해당한다.>>


3 王曰 王政可得聞與 對曰 昔者文王之治岐也 耕者九一 仕者世祿 關市譏而不征 澤梁無禁 罪人不孥 老而無妻曰鰥 老而無夫曰寡 老而無子曰獨 幼而無父曰孤 此四者 天下之窮民而無告者 文王發政施仁 必先斯四者 詩云 哿矣富人 哀此煢獨
“왕도정치에 대하여 들을 수 있겠습니까?” “옛날 문왕께서 기주를 다스리실 때에 경작하는 자들에게는 9분의 1의 세금을 받으셨으며, 벼슬하는 자들에게는 대대로 녹(祿)을 주셨으며, 관문(關門)과 시장(市場)을 순찰하기만 하시고 세금을 징수하지 않으셨으며, 못에서 고기 잡는 것을 금하지 않으셨으며, 죄인을 처벌하시되 처자식에게까지 미치지 않게 하셨습니다. 늙고 아내가 없는 것을 ‘홀아비[鰥]’라 하고, 늙고 남편이 없는 것을 ‘과부[寡]’라 하고, 늙고 자식이 없는 것을 ‘무의탁자[獨]’라 하고, 어리고 부모가 없는 것을 ‘고아[孤]’라 하니, 이 네 부류는 세상에서 가장 곤궁한 백성으로서 하소연할 곳이 없는 자들입니다. 문왕은 선정(善政)을 펴고 인정(仁政)을 베푸시되, 반드시 이 네 부류의 사람들을 가장 먼저 배려하셨습니다. 《시경》 〈정월(正月)〉에 이르기를 ‘부자(富者)들은 괜찮지만 이 외롭고 고독한 사람들이 가엾다.’ 하였습니다.”
與, 平聲. 孥, 音奴. 鰥, 姑頑反. 哿, 工可反. 煢, 音瓊(경).

○ 岐, 周之舊國也. 九一者, 井田之制也. 方一里爲一井, 其田九百畝. 中畫井字, 界爲九區. 一區之中, 爲田百畝. 中百畝爲公田, 外八百畝爲私田. 八家各受私田百畝, 而同養公田, 是九分而稅其一也. 世祿者, 先王之世, 仕者之子孫皆敎之, 敎之而成材則官之. 如不足用, 亦使之不失其祿. 蓋其先世嘗有功德於民, 故報之如此, 忠厚之至也. 關, 謂道路之關. 市, 謂都邑之市. 譏, 察也. 征, 稅也. 關市之吏, 察異服異言之人, 而不征商賈之稅也. 澤, 謂瀦水. 梁, 謂魚梁. 與民同利, 不設禁也. 孥, 妻子也. 惡惡止其身, 不及妻子也.
岐란 주나라의 옛 도읍이다. 9/1이란 정전제를 말한다. 사방 1리를 1정으로 하는데, 그 밭은 900무다. 가운데에 井자를 그리면 9개 구역으로 나뉘고, 한 구역은 밭 100무가 된다. 한 가운데의 100무는 公田으로 하고, 밖의 800무는 私田으로 한다. 8집이 각각 사전 100무를 받고 공전을 함께 경작하는데, 이것이 9등분하여 그 하나를 세금으로 내는 것이다. 세록이라는 것은 선왕의 세대에 벼슬한 사람의 자손을 모두 가르치되, 재목이 되는 사람은 벼슬을 주고, 만약 쓰기에 충분하지 못하면 그 녹봉을 잃지 않도록 해준다는 말이다. 대개 그 선대가 일찍이 백성들에게 공덕이 있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보답이 이와 같은 것이니, 충성스러움과 후덕함이 지극한 것이다. 관이란 도로의 관문을 말하고, 시란 도읍의 시장을 말한다. 譏란 살핀다는 말이다. 征이란 세금을 걷는다는 말이다. 관문과 시장의 아전은 이상한 복장과 이상한 말을 하는 사람을 살필 뿐 상고에게 세금을 거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澤이란 고인 물이요, 梁이란 물고기 잡는 도구다. 백성과 더불어 이로움을 함께 하는 것이니 금령을 설정하지 않은 것이다. 孥란 처자식을 말한다. 악을 미워하는 것은 그 자신에 그칠 뿐 처자식에는 미치지 않는다는 말이다.

趙氏曰 按岐山在漢右扶風美陽縣西北 唐屬岐州岐山縣 山之南有周原 蓋周之舊國
조씨가 말하길, “살펴보건대, 기산은 한수의 오른쪽 부풍 미양현 서북쪽에 있다. 당나라 때에는 기주 기산현에 속했는데, 산의 남쪽에 周原이 있으니, 아마도 주나라의 옛 도읍이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問文王治岐 關市不征澤梁無禁 成周門關市廛 皆有限守 山林川澤 悉有厲禁 何也 潛室陳氏曰 文王因民所利而利之 乃王道之始 成周經制大備 乃王道之成
누군가 묻기를, “문왕이 기산을 다스릴 적에, 관문과 시장에서 세금을 징수하지 않았고, 연못과 냇물에는 금령이 없었지만, 전성기의 주나라에서는 관문과 시전에 모두 한도가 있어서 지켜야 했고, 산림과 천택에는 모두 엄한 금령이 있었으니, 어찌된 것입니까?”라고 하였다. 잠실진씨가 말하길, “문왕은 백성이 이롭게 생각하는 것으로 인해 그들을 이롭게 해주었으니, 이는 곧 왕도의 시작이고, 전성기의 주나라는 법과 제도가 크게 갖추어졌으니, 이는 곧 왕도의 완성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世祿善善長也 不孥惡惡短也
신안진씨가 말하길, “세록은 善을 훌륭하게 여김이 긴 것이고, 不孥는 惡을 미워함이 짧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 先王養民之政: 導其妻子, 使之養其老而恤其幼. 不幸而有鰥寡孤獨之人, 無父母妻子之養, 則尤宜憐恤, 故必以爲先也. 詩小雅「正月」之篇. 哿, 可也. 煢, 困悴貌.
선왕이 백성을 기르는 정치는 이렇다. 그 처자식을 이끌되, 그로 하여금 제 노인을 봉양하고 제 아이를 구휼하도록 하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환과고독인 사람이 있어 부보와 처자식의 부양이 없다면 더욱 마땅히 불쌍히 여겨 구휼해야 하기에, 반드시 우선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시경 소아 정월 편이다. 哿(가)는 좋다는 말이다. 煢(경)은 곤궁하고 초췌한 모습니다.

新安陳氏曰 正月末章之意云 亂至於此 富人猶或可勝 煢獨甚矣 其可哀也
신안진씨가 말하길, “시경 소아 정월 편의 마지막 장의 뜻은 혼란이 이런 지경에 이르렀어도, 부유한 사람은 그래도 혹 이겨낼 수 있지만, 곤궁하고 외로운 사람은 극심할 것이니, 참으로 애달파할 만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都鄙用助法 鄕遂用貢法 此周所以兼二代之法 井田之法 坦平處可行 江南想從古行貢法 關是道路撙節處 市是市井 澤是水所都處 梁是水所通處 耕者九一 仕者世祿 是士農工商 皆有所養 惟鰥寡孤獨無所告 故發政施仁 必先斯四者
쌍봉요씨가 말하길, “都鄙(도성 부근 직할지의 성읍과 시골)에서는 助法(정전법)을 사용하였고, 鄕遂(도성으로부터 100리 이내는 鄕, 200리 이내는 遂라고 함)에서는 貢法을 사용하였는데, 이것은 주나라가 2대의 법을 겸용했기 때문이다. 정전법은 평탄한 곳에서 시행할 수 있으니, 강남은 생각하건대, 예로부터 공법을 시행했던 것 같다. 關이란 도로를 조절하는 곳이고, 市란 시정이며, 澤이란 물이 모여 쌓이는(都) 곳이고, 梁이란 물이 소통하는 곳이다. 경작하는 사람은 九一制로 하고, 벼슬하는 사람은 세록을 받으니, 이는 士農工商이 모두 부양하는 바를 갖고 있는 것이다. 오직 홀아비, 과부, 자식 없는 늙은이, 고아만이 하소연할 곳이 없으므로, 선정을 펼치고 仁을 베풀 적에, 반드시 이 4부류의 사람을 앞세우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4 王曰 善哉言乎 曰 王如善之 則何爲不行 王曰 寡人有疾 寡人好貨 對曰 昔者公劉好貨 詩云 乃積乃倉 乃裹餱糧 于橐于囊 思戢用光 弓矢斯張 干戈戚揚 爰方啓行 故居者有積倉 行者有裹糧也 然後可以爰方啓行 王如好貨 與百姓同之 於王何有
“선생의 말씀이 매우 좋습니다.” “왕께서 만일 좋게 여기신다면 어찌하여 행하시지 않습니까?” “과인은 병통이 있으니, 과인은 재물(財物)을 좋아합니다.” “옛적에 후직(后稷)의 증손(曾孫)인 공유(公劉)가 재물을 좋아하였는데, 《시경》 〈공유(公劉)〉에 이르기를 ‘집에 남아 있는 자들을 위해서는 양식을 노적가리에 쌓고 창고에 쌓으며, 길을 떠나는 자들을 위해서는 마른 양식을 싸되 전대에다 넣고 자루에다 넣고서 백성을 편안히 하여 이로써 나라를 빛낼 것을 생각하여, 활과 화살을 준비하며 창과 방패와 도끼를 갖추고서 이에 새 도읍을 개척하러 비로소 길을 떠났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집에 남아 있는 자들에게는 노적가리와 창고에 쌓아놓은 양식이 있으며, 길을 떠나는 자들에게는 전대와 자루에 싼 양식이 있은 뒤에야 이에 비로소 길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왕께서 만일 재물을 좋아하시면 백성과 함께하소서. 그렇게 하신다면 왕도정치를 하는 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餱, 音侯. 橐, 音托. 戢, 詩作輯, 音集.

○ 王自以爲好貨, 故取民無制, 而不能行此王政. 公劉, 后稷之曾孫也. 詩大雅「公劉」之篇. 積, 露積也. 餱, 乾糧也. 無底曰橐, 有底曰囊. 皆所以盛餱糧也. 戢, 安集也. 言思安集其民人, 以光大其國家也. 戚, 斧也. 揚, 鉞也. 爰, 於也. 啓行, 言往遷於豳也. 何有, 言不難也. 孟子言公劉之民富足如此, 是公劉好貨, 而能推己之心以及民也. 今王好貨, 亦能如此, 則其於王天下也, 何難之有?
왕은 재물을 좋아하기에 백성에게 취할 적에 절제함이 없어서 이러한 왕도정치를 행할 수 없다고 스스로 여겼던 것이다. 공류는 후직의 증손자다. 시경의 대아 공류 편이다. 적은 노적가리를 말한다. 후란 마른 양식이다. 밑이 없는 것을 槖(탁), 즉 전대라고 하고, 밑이 있는 것을 낭(囊), 즉 자루라고 한다. 이것들 모두 마른 양식을 담는 물건이다. 戢은 편안하고 화목하게 한다는 말이다. 그 백성을 편안하고 화목하게 하여, 이로써(用=以) 그 나라를 크게 빛내고자 생각한다는 말이다. 戚과 揚은 크고 작은 도끼를 말한다. 爰은 於다. 啓行이란 豳(빈) 땅으로 천도하러 가는 것을 말한다. 何有란 어렵지 않음을 말하는 것이다. 맹자는 공류의 백성들이 부유하고 풍족함이 이와 같은 것은 공류가 재물을 좋아하되, 그러한 자기의 마음을 미루어 백성에게 미치게 하였기 때문이고, 지금 왕께서 재물을 좋아할지라도, 또한 능히 이와 같이 할 수 있다면, 곧 천하에 왕 노릇 하는 것에 무슨 어려움이 있겠느냐고 말한 것이다.

西山眞氏曰 人君豈不事儲峙之富 惟能推此心 使斯民亦有糇粮之積 可也
서산진씨가 말하길, “임금이라고 어찌 산처럼 부를 쌓는 것을 일삼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다만 오직 이러한 마음을 능히 미루어서, 이 백성들로 하여금 또한 양식을 쌓아놓음이 있도록 만들 수 있어야만, 옳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5 王曰 寡人有疾 寡人好色 對曰 昔者大王好色 愛厥妃 詩云 古公亶甫 來朝走馬 率西水滸 至于岐下 爰及姜女 聿來胥宇 當是時也 內無怨女 外無曠夫 王如好色 與百姓同之 於王何有
“과인은 병통이 있으니, 여색(女色)을 좋아합니다.” “옛적에 공유의 9세손인 태왕(太王)께서 여색을 좋아하시어 왕비를 사랑하셨습니다. 《시경》 〈면(綿)〉에 이르기를 ‘고공단보(古公亶父)가 아침에 말을 달려 서쪽 물가를 따라 기산(岐山) 아래에 이르러서 이에 부인인 강녀(姜女)와 함께 와서 집터를 보았다.’ 하였는데, 이때를 당하여 안으로는 원망하는 여자가 없었으며 밖으로는 홀아비가 없었습니다. 왕께서 만일 여색을 좋아하시면 백성과 함께하소서. 그렇게 하신다면 왕도정치를 하는 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大, 音泰.

○ 王又言此者, 好色則心志蠱惑, 用度奢侈, 而不能行王政也. 大王, 公劉九世孫. 『詩』大雅「緜」之篇也. 古公, 大王之本號, 後乃追尊爲大王也. 亶甫, 大王名也. 來朝走馬, 避狄人之難也. 率, 循也. 滸, 水涯也. 岐下, 岐山之下也. 姜女, 大王之妃也. 胥, 相也. 宇, 居也. 曠, 空也. 無怨曠者, 是大王好色, 而能推己之心以及民也.
왕이 또 이렇게 말한 것은 색을 좋아하면 곧 심지(마음과 뜻)가 좀 슬고 미혹되어 (재물의) 사용정도가 사치해져 왕도정치를 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태왕은 공류의 9세손이다. 시경의 대아 면 편이다. 고공은 태왕의 본래 칭호인데, 나중에 태왕으로 추존되었다. 단보는 태왕의 이름이다. 와서 아침에 말을 달렸다는 것은 적인의 난을 피했다는 말이다. 솔이란 따른다는 것이다. 滸는 물가란 말이다. 기하란 기산의 아래란 말이다. 강녀는 태왕의 왕비다. 胥란 相(살펴보다, 관상을 보다)는 말이다. 宇는 집터(거처)라는 말이다. 曠은 비어있다는 말이다. 원망하는 여자와 홀아비가 없었던 것은 태왕이 여색을 좋아하였지만, 자신의 이러한 마음을 미루어서 백성에게 미치게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新安陳氏曰 來朝其來以朝也 古人記事 蓋有此例 如書曰 王朝步自周 周公朝至于洛
신안진씨가 말하길, “來朝는 그 오는 것을 아침에 하였다는 것이다. 옛사람이 일을 기술할 적에, 대체로 이러한 사례가 있었다. 예컨대 서경에 이르길, 왕께서 아침에 걸어오시기를 주나라로부터 하셨다거나, 주공이 아침에 이르기를 낙양에 하였다고 하였다.”라고 하였다.

南軒張氏曰 齊王好貨好色 孟子以公劉大王對 但謂公劉好貨大王好色而不知實未嘗好也 二君處心平和 無一毫物我之私 如曰居者有積倉 行者有裹糧 豈惟欲其國富 而亦欲其民富也 如曰內無怨女外無曠夫 不惟君有室家 而民亦欲其有室家也 好字雖同而所以爲好則異 故孟子曰 王如好貨好色與百姓同之 於王何有 二君之好 天理也 齊王之好 人欲也
남헌장씨가 말하길, “제선왕이 재물을 좋아하고 여색을 좋아한다고 하자, 맹자는 공류와 태왕의 사례를 가지고 대답하였는데, 다만 공류가 재물을 좋아하고 태왕이 여색을 좋아했다고만 말했지만, 실제로는 일찍이 좋아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알지 못한 것이다. 두 임금은 마음을 처리하심이 평화로워서, 터럭 하나만큼이라도 남과 나를 구분하는 사사로움이 없었다. 예컨대 거주하는 자는 양식을 쌓아둔 창고가 있고, 여행하는 사람은 싸서 가지고 다니는 양식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어찌 단지 자기 나라만 부유하기를 바라는 것이겠는가? 이 또한 자기 백성들도 부유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예컨대 안으로는 怨女가 없고, 밖으로는 홀아비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단지 임금만 室家(가정)가 있을 뿐 아니라, 백성들도 또한 자기 가정이 있기를 바란 것이다. 좋아한다는 好자는 비록 같을지라도, 좋아하는 까닭은 달랐기 때문에, 맹자가 말하길, ‘왕께서 만약 재물을 좋아하고 여색을 좋아하되, 백성과 더불어 그것을 같이 한다면, 왕 노릇 하는 데에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라고 했던 것이다. 두 임금이 좋아한 것은 천리였고, 제선왕이 좋아한 것은 인욕이었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孟子之言有因其近似 而發揮之以足己意者 如公劉好貨 本無事實 只乃積乃倉一句 大王好色亦無事實 只爰及姜女一句而已 然欲開導時君 意正辭辯
신안진씨가 말하길, “맹자의 말에는 그에 근사하지만 그것을 발휘하여 자신의 뜻을 충족시키는 것이 있었다. 예컨대 공류는 재물을 좋아한다고 하였지만, 본래 그러한 사실이 없었고, 그저 乃積乃倉이란 한 구절만 있었다. 태왕이 여색을 좋아한다고 하였지만, 또한 그러한 사실이 없었고, 그저 爰及姜女라는 한 구절만 있었을 따름이다. 그러나 당시의 임금을 열어서 인도하고자 한 것이니, 뜻이 올바르고 말이 훌륭하였다.”라고 하였다.

○ 楊氏曰: “孟子與人君言, 皆所以擴充其善心而格其非心, 不止就事論事. 若使爲人臣者, 論事每如此, 豈不能堯舜其君乎?”
양씨가 말하길, “맹자가 임금과 더불어 말한 것은 모두 그 선한 마음을 확충하여 그(임금)의 그른 마음을 바로잡기 위한 것들로서, 어떤 일에 나아가 그 일을 논하는 정도에 그치지 않았다. 만약 신하 된 사람이 일을 논할 적에 매번 이와 같이 한다면, 어찌 제 임금을 요순처럼 만들 수 없겠는가?”라고 하였다.

愚謂此篇自首章至此, 大意皆同. 蓋鐘鼓, 苑囿, 遊觀之樂, 與夫好勇, 好貨, 好色之心, 皆天理之所有, 而人情之所不能無者. 然天理人欲, 同行異情. 循理而公於天下者, 聖賢之所以盡其性也; 縱欲而私於一己者, 衆人之所以滅其天也. 二者之間, 不能以髮, 而其是非得失之歸, 相去遠矣. 故孟子因時君之問, 而剖析於幾微之際, 皆所以遏人欲而存天理. 其法似疏而實密, 其事似易而實難. 學者以身體之, 則有以識其非曲學阿世之言, 而知所以克己復禮之端矣.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 편은 첫 장부터 여기에 이르기까지 큰 뜻이 모두 같다. 대개 음악을 연주하고 동산을 만들며 유람하는 즐거움과 용맹함을 좋아하고 재물을 좋아하며 여색을 좋아하는 마음은 모두 천리 중에 들어 있는 것이며, 또한 인정 안에 없을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러나 천리와 인정은 행태는 같지만 그 사정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이치에 따라서 천하에 공정하게 처신하는 것은 성현이 그 본성을 다하는 것이고, 욕망대로 방종하여 자기 한 몸에 사사롭게 처신하는 것은 보통사람이 그 천성을 없애버리는 것이다. 이 둘 차이는 터럭 하나로도 구분할 없지만, 그 시비와 득실의 귀결점(결과)은 서로 차이가 크다. 그래서 맹자는 당시 임금의 질문에 따라, 기미가 보이는 즈음에 그 차이를 찾아냈는데, 모두 인욕을 막고 천리를 보존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 방법은 성긴 듯싶으나 실제로는 치밀하고, 그 일은 쉬운 것 같으나 사실은 어렵다. 배우는 사람이 그것을 제 몸으로 직접 체득하면, 곧 그것이 곡학아세하는 말이 아님을 알 수 있고, 극기복례하는 단서임을 알게 될 것이다.

慶源輔氏曰 法似踈而實密 事似易而實難 蓋不直禁其好勇好色 則似若踈且易矣 然必使爲公劉大王之事 推己之心以及民 循理而不縱欲 公天下而不私一己 則其實又甚密而且難矣 法指孟子之說 事指公劉大王之事 非孟子據理之極知言之要 何能辨析其精微如此哉
경원보씨가 말하길, “‘법은 성긴 것 같지만 실제로는 치밀하고, 일은 쉬운 것 같지만 실제로는 어렵다.’ 이 말은 대체로 그에게 용감함을 좋아하고 여색을 좋아하는 것을 곧이곧대로 금지하지 않았으니, 마치 성긴 것 같고 또한 쉬운 것 같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공류와 태왕의 일을 행하고, 자기의 마음을 미루어서 백성에게 미치며, 이치에 따라서 욕심대로 방종하지 않고, 천하에 공정하게 처신하여 자기 하나만을 사사롭게 대하지 않도록 한다면, 그것은 사실 또한 대단히 치밀하면서도 대단히 어려운 것이다. 법은 맹자의 말을 가리킨 것이고, 일은 공류와 태왕의 일을 가리킨 것이다. 맹자가 이치의 지극함에 근거하고 말의 요체를 아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변별하고 분석함에 있어 그 정미함이 능히 이와 같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克己復禮之端 卽謂天理人欲 二者之間 幾微之際也
신안진씨가 말하길, “극기복례의 단서란 곧바로 天理와 人欲, 이 두 가지 사이에서의 기미의 즈음을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問孟子答梁惠王問利直掃除之 此處却如此引導之 何也 朱子曰 此處亦自分義利 特人自不察耳
누군가 묻기를, “맹자가 양혜왕의 利를 물음에 대답한 것은 곧장 그것을 쓸어 없앤 것인데, 이곳에서는 도리어 이와 같이 인도하여 주었으니, 무엇 때문입니까?”라고 하였다. 주자가 말하길, “이곳에서도 역시 당연히 義와 利를 구분하였지만, 단지 사람들이 스스로 살피지 못할 뿐이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鍾鼓苑囿游觀之樂 與夫好勇好貨好色之心 固天理人情之所不能無者 但有理與欲公與私之異耳 故集註擧胡氏天理人欲同行異情之說而辨析之 夫聖賢之與衆人 其於好貨好色 其行雖同 而其情則異 循理而公天下者 聖賢之所以盡其性 此卽公劉大王與民共欲之事也 縱欲而私於一己者 衆人之所以滅其天理 此卽齊王自以爲疾之事也 二者同異不過毫髮之間 而其終之是非得失 則其相去遂有盡性滅天興王絶世之相反 集註言此 不但賛其理之密 正欲使學者因其言而反諸身 至誠體察於所謂毫髮之際 然後力求所以循天理而克其欲耳
경원보씨가 말하길, “종과 북, 정원과 동산, 놀이와 관람의 즐거움은 저 용감함을 좋아하고 재물을 좋아하고 여색을 좋아하는 마음과 더불어 본래부터 天理와 人情에서 없을 수 없는 것이지만, 단지 天理와 人欲, 公과 私의 차이만 있을 따름이다. 그래서 집주에서는 천리와 인욕은 그 행태가 같지만 그 사정은 다르다는 호씨의 말을 거론해서, 그것을 변별하고 분석하였던 것이다. 무릇 성현이 뭇사람과 더불어서, 재물을 좋아하고 여색을 좋아함에 있어, 그 행태는 비록 같을지라도 그 사정은 다른 것이니, 이치에 따라서 천하를 공정하게 대하는 것은 성현께서 그 천성을 다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공류와 태왕이 백성과 더불어 같이하고자 했던 일이다. 욕심대로 방종하여 제 한 몸만 사사롭게 하는 것은 뭇사람이 그 天理를 滅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제선왕이 스스로 병통으로 여겼던 일이다. 2가지의 같고 다름은 터럭같은 차이에 불과하지만, 그 끝의 是非得失의 경우, 그 서로 멀리 떨어짐이 마침내 천성을 다하거나 천명을 멸하며 왕도를 흥기하게 하거나 대를 끊어버리는 상반됨이 있는 것이다. 집주에서 이것을 말하면서, 단지 그 이치의 정밀함을 찬탄하였을 뿐 아니라, 바로 배우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말로 인하여 자기 몸에 돌이킴으로써, 지극한 정성으로 소위 毫髮之際에 대하여 體察한 연후에 天理를 따르고 그 욕심을 극복하는 것을 힘써 추구하도록 만들고자 하였을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雲峯胡氏曰 天理人欲同行異情 出五峯胡氏之言 朱子平日深取之 今引以釋此章者 如齊王好色大王亦好色 是同行也 齊王是行從人欲上去 大王是行歸天理上來 是異情也 同行 則天理人欲之幾 若不能以髮 異情 則天理人欲之判 不啻霄壤矣 凡曲學阿世者 非逢君之惡 則長君之惡 孟子之言 無非止君之惡而誘君於善 無非遏人欲而存天理也
운봉호씨가 말하길, “천리와 인욕은 그 행태가 같지만 그 사정은 다르다는 말은 오봉호씨의 말에서 나온 것이다. 주자가 평소에 이를 깊이 취했다가, 지금은 이것을 인용하여 이 장을 풀이한 것이다. 예컨대 제선왕이 여색을 좋아하였고, 태왕 역시 여색을 좋아하였다는 것은 그 행태가 같은 것이요, 제선왕은 행함에 있어, 인욕의 위를 따라서 갔고, 태왕은 행함에 있어, 천리 위로 돌아왔다는 것은 그 사정이 다른 것이다. 행태가 같은 것이라면, 천리와 인욕의 기미가 마치 터럭으로도 구분할 수 없는 것과 같고, 사정이 다른 것이라면, 천리와 인욕의 판이함이 단지 하늘과 땅의 차이뿐만이 아닐 것이다. 무릇 曲學阿世하는 사람은 임금의 악에 영합하는 것이 아니면, 임금의 악을 자라나게 한다. 맹자의 말은 임금의 악을 제지하여 임금을 善으로 유도하는 것이 아님이 없고, 인욕을 억제하여 천리를 보존하는 것이 아님이 없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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