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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집주 (孟子集註) - 02 - 양혜왕장구하(梁惠王章句下) - ⑮ - 滕文公問曰 滕 小國也

작성자대태양 / 김현수|작성시간26.06.19|조회수16 목록 댓글 0
맹자 (孟子)  - 02 - 양혜왕장구하 (梁惠王章句下) - ⑮
11 滕文公이 問曰 滕은 小國也라 竭力하야以事大國이라도 則不得免焉이로소니 如之何則可잇고 孟子對曰 昔者에 大王이居邠하실새 狄人이 侵之어늘 事之以皮幣라도 不得免焉하며 事之以犬馬라도 不得免焉하며 事之以珠玉이라도 不得免焉하야

2 乃屬其耆老而告之曰 狄人之所欲者는 吾土地也니 吾는聞之也호니 君子는不以其所以養人者로害人이라호니 二三子는 何患乎無君이리오 我將去之호리라하시고 去邠하시고 踰梁山하사 邑于岐山之下하사 居焉하신대 邠人이 曰 仁人也라 不可失也라하고 從之者 如歸市하더라 

3 或曰 世守也라 非身之所能爲也니 效死勿去라하나니


4 君請於斯二者하소서
21 등문공이 문왈 등은 소국야라 갈력하야이사대국이라도 즉불득면언이로소니 여지하즉가잇고 맹자대왈 석자에 대왕이거빈하실새 적인이 침지어늘 사지이피폐라도 불득면언하며 사지이견마라도 불득면언하며 사지이주옥이라도 불득면언하야

2 내속기기노이고지왈 적인지소욕자는 오토지야니 오는문지야호니 군자는불이기소이양인자로해인이라호니 이삼자는 하환호무군이리오 아장거지호리라하시고 거빈하시고 유양산하사 읍우기산지하하사 거언하신대 빈인이 왈 인인야라 불가실야라하고 종지자 여귀시하더라 

3 혹왈 세수야라 비신지소능위야니 효사물거라하나니


4 군청어사이자하소서 
31 등문공이 묻기를, “등은 작은 나라라. 힘을 다하여 큰 나라를 섬기더라도 (화를) 면할 수 없는데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하니, 맹자가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옛적에 태왕이 빈에 거주하실 때 북쪽 오랑캐가 침입하거늘 그들을 가죽과 폐백으로 섬겨도 (화를) 면하지 못하고 개와 말로 섬겨도 (화를) 면치 못하고 주옥으로 섬겨도 (화를) 면하지 못하였습니다.

2 이에 태왕께서 노인들을 모아 놓고 일러 말하기를, ‘북쪽 오랑캐들이 원하는 것은 우리의 토지이다. 내가 들으니 군자는 사람을 기르는 것(토지)을 가지고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고 하니, 여러분들은 어찌 군주가 없음을 걱정하겠는가. 나는 장차 이곳을 떠나겠소.’ 하고는 빈 땅을 버리고 양산을 넘어서 기산 아래에 도읍을 정하고 거주하니 빈 땅의 사람들이 말하기를, ‘어진 사람이다. 놓치지 말아야 한다.’ 하고 그를 따르는 자가 시장에 가는 사람들 같았습니다.

3 어떤 이는 말하기를, ‘대대로 지켜오는 것이라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목숨을 바치고 떠나지 말라.’고 하니,

4 임금께서는 이 두 가지 중에서 선택하소서.”라고 하셨다.
4 The duke Wan of T'ang asked Mencius, saying, 'T'ang is a small State. Though I do my utmost to serve those large kingdoms on either side of it, we cannot escape suffering from them. What course shall I take that we may do so?' Mencius replied, 'Formerly, when king T'âi dwelt in Pin, the barbarians of the north were constantly making incursions upon it. He served them with skins and silks, and still he suffered from them. He served them with dogs and horses, and still he suffered from them. He served them with pearls and gems, and still he suffered from them.

Seeing this, he assembled the old men, and announced to them, saying, "What the barbarians want is my territory. I have heard this,-- that a ruler does not injure his people with that wherewith he nourishes them. My children, why should you be troubled about having no prince? I will leave this." Accordingly, he left Pin, crossed the mountain Liang, built a town at the foot of mount Ch'î, and dwelt there. The people of Pin said, "He is a benevolent man. We must not lose him." Those who followed him looked like crowds hastening to market.

'On the other hand, some say, "The kingdom is a thing to be kept from generation to generation. One individual cannot undertake to dispose of it in his own person. Let him be prepared to die for it. Let him not quit it."


'I ask you, prince, to make your election between these two courses.'

 

맹자집주 (孟子集註) - 02 - 양혜왕장구하 (梁惠王章句下) - ⑮
1 滕文公問曰 滕 小國也 竭力以事大國 則不得免焉 如之何則可 孟子對曰 昔者大王居邠 狄人侵之 事之以皮幣 不得免焉 事之以犬馬 不得免焉 事之以珠玉 不得免焉
등문공이 묻기를, “등은 작은 나라라. 힘을 다하여 큰 나라를 섬기더라도 (화를) 면할 수 없는데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하니, 맹자가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옛적에 태왕이 빈에 거주하실 때 북쪽 오랑캐가 침입하거늘 그들을 가죽과 폐백으로 섬겨도 (화를) 면하지 못하고 개와 말로 섬겨도 (화를) 면치 못하고 주옥으로 섬겨도 (화를) 면하지 못하였습니다.

皮, 謂虎ㆍ豹ㆍ麋ㆍ鹿之皮也. 幣, 帛也.
가죽은 호랑이, 표범, 암사슴, 사슴의 가죽이다. 폐란 비단이다.

2 乃屬其耆老而告之曰 狄人之所欲者 吾土地也 吾聞之也 君子不以其所以養人者害人 二三子何患乎無君 我將去之 去邠踰梁山 邑于岐山之下居焉 邠人曰 仁人也 不可失也 從之者如歸市
이에 태왕께서 노인들을 모아 놓고 일러 말하기를, ‘북쪽 오랑캐들이 원하는 것은 우리의 토지이다. 내가 들으니 군자는 사람을 기르는 것(토지)을 가지고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고 하니, 여러분들은 어찌 군주가 없음을 걱정하겠는가. 나는 장차 이곳을 떠나겠소.’ 하고는 빈 땅을 버리고 양산을 넘어서 기산 아래에 도읍을 정하고 거주하니 빈 땅의 사람들이 말하기를, ‘어진 사람이다. 놓치지 말아야 한다.’ 하고 그를 따르는 자가 시장에 가는 사람들 같았습니다.
屬, 音燭.

○ 屬, 會集也. 土地本生物以養人, 今爭地而殺人, 是以其所以養人者害人也. 邑, 作邑也. 歸市, 人衆而爭先也.
屬은 모은다는 말이다. 토지는 본래 사물을 내어 사람을 기르는데, 지금 땅을 다투면서 사람을 죽인다면, 이것은 사람을 기르는 것으로써 사람을 해치는 것이 된다는 말이다. 邑이란 도읍을 삼는다는 말이다. 시장에 돌아간다는 것은 사람들이 많아서 앞을 다툰다는 말이다.

南軒張氏曰 大王之言忠厚不迫 其遷本以全民 不敢必民之歸 而强之徙也 曰二三子何患乎無君 此天地之心 眞保民之主也 民心自不容釋乎大王 戴其仁有素矣 然大王之事 非德盛而達權 不足以與此
남헌장씨가 말하길, “태왕의 말은 충후하고 급박하지 않았으니, 그가 나라를 옮기는 것은 본래 백성을 온전하게 하는 것으로서, 감히 백성들의 귀부를 기필하지는 못하지만, 억지로 하는 이사였다. ‘당신들은 어찌 임금 없음을 걱정하는가?’라고 말하였는데, 이것은 天地의 마음이니, 진짜로 백성을 보호하는 군주였던 것이다. 백성들은 마음으로 태왕과 풀어짐을 스스로 용납하지 못하였으니, 그 어짊을 떠받드는 것이 평소에도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태왕의 일은 덕이 성대하고 권도에 통달한 사람이 아니라면, 이에 관여하기에 부족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東陽許氏曰 大王自邠遷岐 民從之如歸市 史所謂居三月成城廓一年成邑三年成都 而民五倍其初 蓋非獨邠民近於岐 周之民皆歸之也 當時西方地近戎狄 皆閒隙之地 非封國之疆界 故大王得優游遷徙 若滕在中國又介大國之間 無可遷之地 民雖或從之 亦無所往 孟子特擧大王之得民以警文公爾 故下文言效死乃其正也
동양허씨가 말하길, “태왕이 빈 땅에서 기 땅으로 옮기자, 백성들이 따르기를 마치 시장에 몰려가듯이 하였다고 하였는데, 사기에서 말한 이른바 ‘거처한 지 3개월만에 성곽이 이루어졌고, 1년에 읍을 이루었으며, 3년에 도시를 이루어서, 백성이 처음보다 5배가 되었다’는 것이니, 대체로 단지 빈 땅의 백성들만 기 땅으로 가끼이 왔을 뿐 아니라, 주나라의 백성들이 모두 그곳으로 몰려왔던 것이다. 당시에 서쪽 지방은 땅이 戎狄에 가까워서 모두 한가하고 텅 빈 땅으로서, 封國의 강계가 아니었다. 그래서 태왕은 여유있게 나라를 옮겨서 이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등나라의 경우라면, 중원에 있었고, 또한 강대국의 사이에 끼여 있었기 때문에, 옮겨갈 만한 땅이 없었다. 백성들이 비록 혹시라도 따라온다고 할지라도, 또한 갈 곳이 없었다. 맹자는 그저 태왕이 백성을 얻은 일을 거론함으로써 등문공에게 경계해주었을 따름이다. 그러므로 아랫글에서 목숨을 바치는 것이야말로 그 올바른 것이라고 말했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3 或曰 世守也 非身之所能爲也 效死勿去
어떤 이는 말하기를, ‘대대로 지켜오는 것이라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목숨을 바치고 떠나지 말라.’고 하니,

又言或謂土地乃先人所受而世守之者, 非己所能專. 但當致死守之, 不可舍去. 此國君死社稷之常法. 傳所謂‘國滅君死之, 正也’, 正謂此也.
또 어떤 사람이 땅이란 것은 선조들이 받아서 대대로 지켜온 것이니,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그저 마땅히 죽음을 바쳐서 그것을 지켜야 할 뿐이지, 버리고 떠나서는 안 된다고 말한 것을 말한 것이다. 이는 나라의 임금이 사직을 위해 죽는 정상적인 방법이다. 경전에서 말하는 소위 ‘나라가 멸망하면 임금이 그것을 위해 죽는 것이 옳다’는 말이 바로 이것을 말한 것이다.

公羊傳 襄公六年 十有二月 齊侯滅萊 曷爲不言萊君出奔 國滅君死之正也 不書殺萊君者 擧滅國爲重
춘추 공양전에 따르면, 노나라 양공 6년 10하고도 2월에 제나라 제후가 래국을 멸하였다. 그런데 어찌 래국의 임금이 출국하여 도망친 것을 말하지 않은 것일까? 나라가 멸망하면 그 임금이 죽은 것이 올바른 것이기 때문이다. 래국의 임금을 죽인 것을 쓰지 않은 것은 나라를 멸망시킨 것을 들어 중요하게 여긴 것이다.

4 君請擇於斯二者
임금께서는 이 두 가지 중에서 선택하소서.”라고 하셨다.

能如大王則避之, 不能則謹守常法. 蓋遷國以圖存者, 權也; 守正而俟死者, 義也. 審己量力, 擇而處之可也.
태왕처럼 할 수 있다면 그곳을 피하고, 할 수 없다면 삼가 정상적 방법을 삼가 지켜야 한다. 대개 나라를 옮겨서 보존을 도모하는 것은 권도요, 올바른 것을 지켜 죽음을 기다리는 것은 의로움이다. 자기의 힘을 살피고 헤아려서 선택하여 대처하면 되는 것이다.

記禮運 故國有患 君死社稷 謂之義 大夫死宗廟 謂之變
예기 예운 편에 따르면, 고국에 환난이 있어서, 임금이 사직을 위해 죽는 것을 일컬어 의로움이라 말하고, 대부가 종묘를 위해 죽는 것을 일컬어 응변이라고 말한다.

問集註義字當改作經字 朱子曰 思之誠是 蓋義便近權 或可如此 或可如彼 皆義也 經則一定而不易 旣對權字須著用經字
누군가 묻기를, “집주의 義자는 마땅히 經자로 바꿔 써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주자가 말하길, “생각해보면, 진실로 옳다. 대체로 義는 곧 權에 가까우니, 혹은 이와 같을 수도 있고, 혹은 저와 같을 수도 있으므로, 모두 義인 것이다. 經이라면, 한 번 정해지면 바뀌지 않는 것이니, 기왕에 權자에 대응시켰다면, 반드시 經자를 써야만 한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遷國以圖存者 大王 是也 守正而俟死者 國君死社稷 是也 在文公唯有此二法 故倂擧以告之 然權非大賢以上不能爲 經則人皆當勉也 故使文公審己量力 擇而取其一焉 夫大王之事 非文公所能爲 然則孟子之意 固欲文公勉守其常法耳
경원보씨가 말하길, “나라를 옮겨서 생존을 도모하는 것은 태왕이 바로 이러한 예다. 올바름을 지켜서 죽음을 기다리는 것은 나라의 임금이 사직을 위해 죽는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등문공에게 있어서는 오직 이 두 가지 방법만 있었기에, 나란히 들어서 알려준 것이다. 그러나 權은 대현 이상이 아니라면, 행할 수 없지만, 經이라면 사람들이 모두 마땅히 힘써야 할 것이다. 그래서 등문공으로 하여금 자기의 힘을 살피고 헤아려서 그중의 하나를 선택하여 취하도록 한 것이다. 저 태왕의 일은 등문공이 능히 행할 수 없는 바였다. 그러한즉 맹자의 뜻은 본래부터 등문공이 그 정상적인 방법을 힘써 지키기를 바랐을 뿐이다.”라고 하였다.

○ 楊氏曰: “孟子之於文公, 始告之以效死而已, 禮之正也. 至其甚恐, 則以大王之事告之, 非得已也. 然無大王之德而去, 則民或不從. 而遂至於亡, 則又不若效死之爲愈. 故又請擇於斯二者.”
양씨가 말하길, “맹자가 등문공에 대하여 처음에는 죽음을 바쳐 지킬 따름이라는 것으로 알려주었으니, 이는 예의 올바름이다. 그러나 등문공이 너무 두려워하는 지경에 이르자, 태왕의 일로 알려주었는데, 이는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태왕의 덕이 없음에도 떠나간다면, 백성들은 혹여 따르지 않을 것이다. 또한 결국 나라가 망함에 이른다면, 죽음을 바치는 것이 나음만 못하다. 그러므로 이 둘 중에서 선택하라고 요청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又曰: “孟子所論, 自世俗觀之, 則可謂無謀矣. 然理之可爲者, 不過如此. 舍此則必爲儀秦之爲矣. 凡事求可, 功求成. 取必於智謀之末而不循天理之正者, 非聖賢之道也.
또 말하였다. “맹자가 논한 바는 세속의 관점으로 본다면, 무모하다고 말할 만한 것이다. 그러나 이치상 할 만한 것은 이와 같은 것에 불과하다. 이것을 버린다면, 반드시 장의나 소진이 주장한 것을 해야 할 것이다. 무릇 일은 가능한 것을 추구하고, 공은 이룸을 추구하여, 지모의 말단에서 ‘반드시 그러한 것’만을 취하면서, 天理의 올바름을 따르지 않는 것은 성현의 도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問孟子對滕文公 二段皆是無可奈何 只得勉之爲善之辭 想見滕國至弱都主張不起 故如此 朱子曰 滕是必亡 無可疑者 況王政不是一日行得底事 他又界在齊楚之間 二國視之如太山之壓鷄卵耳 若敎他粗成次第 此二國亦必不見容也 若湯文之興 皆在空閒之地 無人來覰他 故日漸盛大 若滕則實是難保也
누군가 묻기를, “맹자가 등문공에 대답한 2단락은 모두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 그저 힘써서 선을 행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생각하건대, 등나라가 지극히 약한 것을 보면, 어떤 것도 주장할 수가 없기 때문에, 이렇게 한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주자가 말하길, “등나라가 반드시 망한다는 것에는 의심할 만한 것이 없다. 하물며 왕정이라는 것도 하루아침에 행할 수 있는 일이 아님에랴! 등나라는 또한 제나라와 초나라 사이에 경계를 두고 있어서, 이 두 나라가 등나라를 보기를 마치 태산이 계란을 누르듯이 할 뿐이다. 만약 등나라로 하여금 그 다음 단계를 성급하게 이루도록 시킨다면, 이것을 두 나라가 또한 반드시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탕왕과 문왕의 흥성과 같은 경우라면, 모두 텅 빈 땅에 있었기 때문에, 찾아와서 그들을 엿보는 사람들이 없었다. 그래서 날로 점점 성대해졌던 것이다. 등나라 같은 경우라면, 사실 보전하기 어려웠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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