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아이스/최양숙
네게로 돌린 순간
갑자기 미끄러진다
안전망 바깥으로 밀리지 않으려고
사방을 더듬거린다
누가 나를 통과한다.
살얼음 같은 시선
서늘한 감촉들이
공중에 흘린 말을 숨죽여 줍고 있다
녹아서 읽지 못한 것
만져보면 비리다.
지금 시조마학을 받아서 읽다가 눈에 들어온 작품이다.
현실적으로 손끝에 느끼는 감촉 같이 매우 뛰어난 감각을 갖고 있는 작가다. 바로 곁에 수록되어 있는 ‘비장소’ 역시 좋다.
오늘 32도 라고 합니다. 무더운 초여름 날 추천하는 시조 두 편으로 땀을 식혀도 좋을 것 같아요.
비장소/최양숙
혼자 머물기에는 구석이 적당하다
이내 떠날 것 같은 손톱만한 서글픔이
찻잔 속 표정을 바꾸며
사선으로 흐른다
가끔씩 끊어지는 재즈를 듣는 동안
카톡은 오지 않고 입술만 질근거린다
오후를 넘긴 문장은
삭제된다 나간다
의미 없이 걷다가 잠시 부딪힌 눈길
낮선 신호음처럼 “또 만나”하고 헤어진다
그 안에 감긴 이야기
저장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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