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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겨울소묘素描 / 다른 소원 또 없니? / 김부원

작성자김덕남|작성시간22.09.26|조회수104 목록 댓글 0

겨울소묘素描

 

김부원

 

 

사늘해진 햇볕 아래 바람까지 드맑은데

아직도 곱디고운 샘보 아래 여울 소리

가만히

냇둑에 올라

해를 안고 누워 본다

 

가직한* 둔치 위에 갓털 같은 갈대들

지난 여름 분주했던 개개비의 빈 둥지

비릿한

물이끼 냄새

벗어버린 기억들

 

가로눕는 갈대위로 내려앉는 햇살처럼

담배 냄새 은은하게 다가오는 환영幻影

아버지

아, 내 아버지

쏟아지는 그리움아

 

 

* 가직한 : 거리가 조금 가까운

 

 

 

다른 소원 또 없니?

- 보탑사 와불

 

김부원

 

 

보련산寶蓮山 연봉에서 내려온 재넘이*가

법당 안 수박들을 맛들이는* 가운데

노오란 소원지所願紙 하나 한 소녀가 걸어 놨다

 

그것을 읽고 지난 바람에게 물으니

남자친구 살 빠지게 해달라는 것이라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만만찮은 소원이다

 

열 가지 소원 중에 하나만 안 되어도

속 좁은 사람들은 발걸음도 안 하는데

딱 하나 적어 놓은 걸 모른 척 할 순 없고

 

이런 저런 고민에 잠까지 설치시다

반쯤 잠긴 눈으로 가로젓고 누우시며

아가야, 나도 그게 좀… 다른 소원 또 없니?

 

 

* 재넘이 : 밤에 산꼭대기에서 평지로 부는 바람

* 진천군 진천읍 연곡리에 있는 보탑사에는 대웅전에 하짓날에 바친 수박을 계속 진설해 놓으면 동지
때 까지도 수박이 보전되고, 그 수박을 먹으면 무병장수한다 하여 동짓날이면 수박 한 쪽 얻어 먹으려고 긴 줄이 선다.

 

 

- 김부원 시조집 『품개자리』 2022. 뒷목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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