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비(默祕)
황성진
봄비 그친 앞마당은 그냥 푸른 바다였다
해일처럼 밀려드는 달래 냉이 씀바귀 떼
망망한 하루를 건너 쪽빛으로 문장이 된다
바람의 성근 너울이 펼치는 페이지 따라
붕붕 춤추는 벌들 혀끝으로 꽃을 읽고
흰나비 호랑나비 떼 독후감을 풀어댄다
말씀과 말씀은 모두 꽃잎 속에 묻어두고
돌담 앞 그늘에 놓인 말로는 못다 할 사연
향기로 행간에 숨어 통점 한 줄 남겨야겠지
밀물 들듯 썰물 지듯 썼다 지운 그런 사연들
그 어느 구절인들 아픔이 없었겠는가
말없이 봄날을 키울 별책부록 없었겠는가
- 《가히》 2024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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