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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월 시 '왕십리'의 의미구조

작성자한승희|작성시간06.04.17|조회수1,008 목록 댓글 0
김소월 시 「왕십리」의 의미 구조----------- 김 점 용(서울시립대 강의전담교수)


1. 머리말

김소월의 「왕십리」는 그의 대표작인데도 불구하고 여타의 작품과는 얼마간 다른 자리에 놓인다. 우선 「진달내」이나 「산유화」, 「금잔듸」, 「초혼」, 「먼후일」 등과 비교해볼 때 표층 의미 자체가 매우 모호하고 난해할 뿐 아니라, 그런 이유로 의미론적 차원의 논의 역시 그 의견이 제각각이다. 더욱이 이 작품은 󰡔新天地󰡕(1923. 8)에 처음 발표될 때 괄호 안에 ‘民謠詩’라고 굳이 밝혔던 만큼 소월의 다른 시편처럼 쉽게 읽히긴 하지만, 민요조의 운율이 의미를 압도하고 있는 형국이어서 음악적 효과 외에 그 정서적 울림의 근저를 세세히 짚어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와 같은 모호성과 난해성 때문에 「왕십리」를 소월의 절창이라고 높이 평가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앞뒤가 맞지 않는 덜 여문 시라고 폄하하는 이도 있다. 게다가 이 작품에 대한 해석 방법을 두고 한 차례 쟁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동일성의 원리를 속성으로 하는 시적 언어는 본질적으로 대상과의 원초적 통일성을 지향하므로 추론의 방법보다는 직관과 통찰, 이성보다는 감성의 언어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런 이유로 시적 언어는 수학적 언어 혹은 과학적 언어와 달리 비틀릴 수밖에 없고, 종종 자기모순의 역설적 언어나 상징적 언어로 낯설게 표현되기도 한다. 주지하다시피 그것은 기존의 언어와 상징체계로는 인간의 내면세계를 온전히 보여줄 수 없고, 이 세계의 숨은 질서나 미적 진리를 제대로 전달할 수 없기 때문인데, 시적 언어의 모호성과 난해성은 바로 거기서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하여 한 편의 시에서 표층 의미의 논리적 정합성을 따져 묻는 일은 썩 필요한 일도 아니거니와 그다지 의미 있는 일도 못 된다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다. 이를 좀더 앞질러 말하자면 합리적인 신화(시, 예술)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학 연구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대 학문의 방법론에 기초를 두고 있는 까닭에, 그 속성상 작품의 내적 질서에 대한 논리적 정합성을 따지지 않을 수 없다. 또 그래야만 신화와 과학의 접점을 찾을 수 있고 감성과 이성, 직관과 추론을 상호 소통시킬 수 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인간과 세계에 대해 보다 폭넓은 이해의 지평을 마련할 수 있다.
이렇게 상식적인 얘기를 반복하는 까닭은 「왕십리」 역시 여기에서 결코 예외일 수 없다는 것이다. 한 편의 시가 이성의 추론을 넘어 ‘원초적 통일성’을 지니고 있다면, 그 심층에는 반드시 어떤 통일된 의미나 질서가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왕십리」가 지닌 가장 큰 난점은, 상징적 언어가 갖는 다의성과 모호성을 십분 인정한다 하더라도 의미의 심층에서 유기적인 통일성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때문에, 이 작품에 대한 기존의 논의들 역시 일정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논리적 정합성을 획득했다고 보기에는 여러 가지 문제를 노정하고 있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이 글은 바로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해서 기존 논의의 문제점을 적시하고, 이 작품이 지닌 심층 의미의 통일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2. 표층 의미의 모호성

「왕십리」에 대한 기존의 이해는 제각각이다. 이별의 정황을 그리고 있다는 시각이 있는가 하면, 지리한 장마철 정경이나 ‘님’―‘집’―‘조국’ 상실에 따른 유랑의 비애로, 혹은 불교적 상상력에 기반한 구도(求道)의 지난함으로, 그리고 남녀간의 성적 교합의 상징으로 보기도 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의미를 끌어내는 데 필연적으로 따르게 마련인 선택과 배제의 전략을 감안하더라도 기존의 논의에는 상식적으로 보아 선뜻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곳곳에서 산견된다. 작품 전문을 먼저 인용한 다음 자세한 검토에 들어가기로 한다.

비가 온다
오누나
오는비는
올지라도 한닷새 왓스면 죠치.

여드래 스무날엔
온다고 하고
초하로 朔望이면 간다고햇지.
가도가도 往十里 비가오네.

웬걸, 저새야
울냐거든
往十里건너가서 울어나다고,
비마자 나른해서 벌새가 운다.

天安에삼거리 실버들도
촉촉히저젓서 늘어젓다데.
비가와도 한닷새 왓스면죠치.
구름도 山마루에 걸녀서 운다.
― 「왕십리」 전문

논자마다 해석이 엇갈리고 있는 부분을 시 전개의 순서대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① “한닷새 왓스면죠치” ② “여드래 스무날엔/ 온다고하고/ 초하로 朔望이면 간다고햇지” ③ “가도가도 往十里” ④ “天安에삼거리 실버들”.
먼저 ①의 경우 1연과 4연에서 두 번 반복되고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한 해석은 ‘왕십리’에 오는 비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와 결부되고, 그것이 다시 2연의 내용과 연결되므로 중요한 지표 중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정끝별은 하루든 닷새든 님의 부재와 기다림을 의미하는 비 자체가 싫기 때문에 그만 그쳤으면 좋겠다는 뜻의 역설적인 표현으로 이해한 반면, 홍정선은 지리한 장마철이므로 닷새쯤만 내리고 그만 그치면 좋겠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박건용은 비가 아무리 오더라도 닷새 후면 그치리라는 우주적 질서에 대한 믿음을 드러냈다고 정리했으며, 박호영은, “비가 올지라도 하루 이틀 내리지 말고 한 닷새쯤 퍼부으라는 진술”로 보았다.
둘째, 작품의 2연 전체가 문제시되는 ②의 부분은 이 시에서 가장 난해한 부분이다. 특히 이 구절은 간접 화법으로 처리되어 화자의 심경이 직접적으로 드러난 구절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 정서적 울림이 범상치 않은데, 이에 대한 적절한 해명이야말로 이 시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왜냐하면 이 부분의 해명이 곧 이 시의 핵심적인 대립 구조인 ‘오다’-‘가다’의 주체 문제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기존의 견해는 ㉮님과 만나는 짧은 시간으로 이해하는 입장 ㉯장마철의 시기로 바라보는 입장 ㉰달이 차고 기우는 것으로 정리하는 입장 ㉱바닷물의 조수간만과 비의 관계로 보는 입장이 있다.
이러한 입장 차이는 “여드래 스무날”과 “초하로 朔望”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달려 있다. 이승훈은 이들 관계가 순차적인 관계가 아니라고 지적했는데, 그 후 오하근이 “여드래 스무날”은 ‘스무여드레’의 도치이며, “초하로 삭망”은 ‘보름 삭망’에 대비되는 ‘초하루’라고 규정하였고, 정끝별이 이 견해를 그대로 이어받았다. 송희복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를 5월 28일부터 6월 1일까지의 장마 기간으로 한결 구체화했으며, 홍정선 역시 장마 기간으로 이해하면서 이들 견해를 그대로 좇았다. ㉮와 ㉯의 입장 차이는 이 기간을 님과의 짧은 만남의 시간으로 보느냐, 아니면 장마 기간으로 보느냐에 따라 갈라졌다.
셋째, ③에서 논란이 되었던 것은 지명 ‘왕십리’에 대한 해석과 무학대사 설화와의 상호텍스트성 문제였다. 이 작품을 두고 한 차례 논쟁이 벌어졌던 것도 이 부분에 대한 해석의 문제였다. 정끝별이 ‘왕십리’를 이별한 님을 기다리는 심리적인 상징 공간으로 이해한 데 비해, 홍정선은 “십리만 더 가면 궁궐터가 있다”는 무학대사 설화와 연관지어 상식적으로 읽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이 시의 ‘왕십리’는 지리한 장마가 계속되는 것처럼 “가도 가도” 도달할 수 없는 절망적인 공간이라고 이해했다. 홍정선의 견해와 마찬가지로 불교적인 상상력에 기반을 두어 무학대사 설화와 상호텍스트성의 관계에서 읽고자 한 박건용은 ‘왕십리’를 종교적인 구도자가 찾아가는 형이상학적 공간이자 구원의 장소(서방 정토)로 보았다.
넷째, 문제의 작품에서 느닷없는 도입으로 여겨지는 ④ “天安에 삼거리 실버들” 역시 쟁점의 여지가 있다. ‘천안 삼거리’를 만남의 장소로 보느냐, ‘왕십리’와 동일한 기다림의 공간으로 보느냐, 민족의 애환과 민중성을 드러내는 ‘왕십리’의 공간적 확장으로 보느냐에 따라 의견이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 편의 시가 이처럼 다양한 의미로 이해된다는 것은 「왕십리」가 그만큼 모호하고 난해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동시에 이 시가 함의하고 있는 전체와 부분의 관계가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해석의 다양성과 그 해석이 딛고 있는 논리의 정합성은 분명 별개의 문제이다. 해석이 다양하다는 것은 작품이 갖는 폭과 깊이의 측면에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지만, 그것이 보편타당한 논리적 정합성을 확보하고 있지 못하거나 일종의 선택적 오류에 빠져 있다면 작품이 지닌 실제적 의미(actual meaning)뿐 아니라 독자의 해석적 의미(signifi- cance) 지평 역시 왜곡되어 있다는 점에서 부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필자는 위에서 제기된 ①~④ 부분의 문제를 크게 두 가지로 압축시켜 정리하고자 한다. 하나는 ‘가다’-‘오다’의 주체 문제이며, 다른 하나는 상호텍스트성의 문제이다. 이 둘을 순차적으로 살펴보는 과정에서 위 논의들이 갖는 문제점이 자연스럽게 드러날 것이며, 작품 전체의 의미도 새롭게 밝혀지리라 믿는다.




3. ‘가다’-‘오다’의 주체

이 시에서 가장 핵심적인 대립 구조는 ‘오다’-‘가다’이다. 따라서 오고 가는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이 시의 의미는 달라질 수 있다. 이 문제는 특히, 앞에서 주요 쟁점이 되었던 ①~③ 부분과도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어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정끝별의 지적대로 오고 가는 주체 문제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논의가 없었지만, 대부분의 경우 작품에 드러난 문면대로 ‘오다’의 주체는 ‘비’로, ‘가다’의 주체는 시적 화자로서의 ‘나’로 정리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정리할 경우 2연의 오고 가는 주체가 누구인지 모호해진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왕십리」에서 가장 모호하고 난해한 부분이 2연인데, 이 부분을 어떻게 해명하느냐에 따라 오고 가는 주체가 달라지며, 해석 결과 또한 엇갈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의 부분을 다시 한번 인용하기로 한다.

여드래 스무날엔
온다고 하고
초하로 朔望이면 간다고햇지.
가도가도 往十里 비가오네.

이미 검토한 대로 기존의 견해는 ㉮님과 만나는 짧은 시간으로 이해하는 입장(오하근, 정끝별), ㉯장마철의 시기로 바라보는 입장(송희복, 홍정선), ㉰달이 차고 기우는 것으로 정리하는 입장(박건용), ㉱바닷물의 조수간만과 비의 관계로 보는 입장(황현산, 손진은)이 있었다.
㉮의 입장에서 오고 가는 주체는 ‘사람(님)’으로, ㉯의 입장에서는 ‘장맛비’로 각각 해석하고 있다. 하지만 ㉮, ㉯의 입장은 모두 “여드래 스무날”을 ‘스무여드렛날’(28일)의 도치로, “초하로 삭망”을 ‘초하루’(1일)의 의미로 한정해야만 그 논지가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그렇게 한정하는 이유는 2연의 내용을, 1연과 4연에서 반복되고 있는 “한닷새 왓스면 죠치”(①)의 ‘한닷새’와 관련시켜 이해하기 위한 전략이다.
그런데 위 논지대로 ‘스무여드렛날엔 온다고 하고’가 부자연스러우니까 리듬에 맞추기 위해 “여드래 스무날엔”으로 도치시켰다는 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설득력이 약하다. 우선 ‘스무여드렛날’을 ‘스무 여드렛날엔’이 아니라 ‘스무날 여드레엔’으로 바꾸어도 리듬엔 큰 문제가 없다는 점과, 이 진술이 화자의 직접 진술이 아니고 항간에 떠도는 말을 간접적으로 인용했다는 점이 도치의 근거를 약화시킨다. ‘-라고 했지’의 간접 화법을 쓰면서 굳이 떠도는 내용을 변형시킬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초하로 朔望”에서 ‘삭망’엔 초하루(朔)와 보름(望)의 의미가 동시에 들어 있는데 ‘초하루’로 국한시킴으로써 ‘보름’의 의미를 애써 배제시킨 것도 문제가 있다. 알다시피 시적 언어란 가장 경제적인 언어이다. 소월은 반복의 기법을 애용했지만 시의 형식에 매우 민감하였으며, 언어를 비경제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초하루’의 의미를 두 번이나 중첩시켜 나열할 리 없고, “삭망”에서 ‘보름’의 의미를 애써 탈각시킬 만한 적절한 이유도 보이지 않는다.
이 기간을 장마철로 이해한 ㉯의 입장은 더 큰 무리가 따른다. ‘스무여드레’와 ‘초하루’를 1, 4연의 “한닷새”와 연관시키기 위해, 31일이 들어 있는 달을 가정하여 “5월 28일부터 다음달 6월 1일까지를 장마철로 보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실제 장마철은 대개 6월부터 7월에 걸쳐 있으므로 설득력이 약하다고 하겠다.
반면 이 구절을 달의 움직임과 연동시켜 이해한 ㉰, ㉱의 입장은 “여드래 스무날”을 상현(8일)과 하현(22일 또는 23일)으로 각각 이해하고, “초하로 삭망”은 말 그대로 초하루의 그믐(朔)과 보름(望)으로 정리한다. 나름대로 타당한 견해처럼 보인다. 그러나 오고 가는 주체 문제에서는 난점이 없지 않다. ㉰의 입장에서 상현을 “온다”에, 그믐을 “간다”에 연결시키는 것은 충분히 수긍할 수 있지만, 그렇게 볼 경우 달이 스러져가는 하현을 “온다”에, 완전히 차오른 만월의 보름을 “간다”에 연결시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들다. ㉰의 주장대로라면 오고 가는 주체가 ‘달’이 되는데, 이는 1연에서 내리는 비와 연동시켜 볼 때, 기상 현상을 고려하든 시 전체의 정경에 비추어보든 비와 달의 거리가 너무 멀고 자연스럽지 못하다.
이들 견해에 비해 ㉱의 입장은 우리에게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황현산이 문제의 구절을 달과 조수간만에 따른 비의 오고 감으로 이해한 데 이어, 손진은은, “ ‘조금 때인 음력 여드레와 스무날(23일)에는 오지 않아도 될 비가 오고, 사리 때인 초하루와 보름에는 와도 좋은 비가 내리지 않고 간다’는 바닷가 주민들의 생활사와 연관된 소재”라고 구체화했다. 그는 여기에다 더 이상의 설명은 보태지 않고 있는데, 필자가 만나본 바닷가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반달인 조금 때에는 비가 자주 내리지만, 반대로 그믐과 보름인 사리 때에는 비가 잘 오지 않는다고 한다. 위 주장의 신빙성을 더해주는 진술인 셈이다. 이를 그대로 따른다면 문제의 구절에서 오고 가는 주체는 ‘비’가 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바닷가 사람들은 “오지 않아도 될 비”와 “와도 좋은 비”에 대해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조금 때에는 조수간만의 차가 가장 적어서 고기가 거의 잡히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비가 와도 좋지만, 조수간만의 차가 커서 고기가 많이 잡히는 사리 때에는 비가 오면 안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사리 때에는 썰물도 멀리 나가지만 밀물도 가장 크게 들기 때문에 비가 오면 제방 밖으로 빗물이 빠져나가지 못해 홍수가 들 위험이 있어서 이 때에 비가 와도 좋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고 진술했다.
이러한 문제를 넘어서려면 위 주장을 좀더 단순화시켜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조금 때인 여드레 스무날엔 비가 오고, 사리 때인 초하루 보름에는 비가 오지 않는다’가 그것이다. 이렇게 보면 손진은이 제시한 속설의 매력은 다소 떨어지지만 문제의 구절과는 적절히 부합된다 하겠다. 그런데 이 경우 문제가 되는 것은 비가 ‘내리지 않는다’, ‘그친다’ 혹은 ‘오지 않는다’를 ‘간다’고 말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점이다. 정끝별이 오고 가는 주체를 ‘비’가 아닌 ‘사람’으로 보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를 들어서이다. 그렇다고 정끝별의 견해를 그대로 좇아, 오고 가는 주체를 ‘온다고 하고 간 사람’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 견해는 어디까지나 “여드래 스무날”을 ‘스무여드렛날’로, “초하로 삭망”을 ‘초하루’로 한정시켜 이해해야만 가능한데, 이는 이치상 옳지 않다는 게 앞에서 이미 판명 났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여기서 오고 가는 주체는 과연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바닷가 사람들의 생활상을 좀더 들여다보면 그 이해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 듯하다. 조금 때인 ‘여드레 스무날’엔 비도 곧잘 내리지만, 해류의 이동이 적어 고기가 잡히지 않는 까닭에 고기잡이를 떠났던 뱃사람들이 마을로 돌아‘오는’ 데 비해, 사리 때인 ‘초하루 보름(朔望)’에는 길게 흐르는 바닷물길을 따라 이동하는 고기가 많이 잡히기 때문에 뱃사람들이 일제히 바다로 나‘가는’ 어촌의 생활상이 바로 그 이해의 실마리이다. 그러니까 ②의 “여드래 스무날엔/ 온다고 하고/ 초하로 朔望이면 간다고 햇지”에는, ‘여드레(8일) 스무날(22․23일)’의 조금 무렵에는 비가 ‘오는’ 동시에 고기잡이 떠났던 뱃사람들도 ‘돌아오고’, ‘초하루 삭망’의 사리 때에는 비도 ‘그칠’ 뿐 아니라 마을 뱃사람들도 바다로 ‘떠나간다’는 이중의 의미가 들어 있는 셈이다. 이것이 속설로 굳어져 유포될 수 있었던 것도 단지 자연의 기상 현상뿐 아니라, 비가 오고 그치는 것이 뱃사람들의 귀항(오다/ 만남)과 출항(가다/ 이별)에 맞물리면서 어촌 사람들 사이에 깊은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했기 때문이라고 유추할 수 있다. 이 작품이 최초 발표 당시 ‘민요시’라는 부제를 달고 있었다는 점과, 소월의 고향인 평북 정주가 바다를 끼고 있다는 사실 역시 이 시가 바닷가 사람들의 생활상과 깊이 연관돼 있음을 어렵지 않게 추정케 한다. 2연의 의미를 이렇게 정리하면 오고 가는 주체를 ‘비’와 ‘사람’으로 중첩시켜 바라볼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다.
한편, 2연의 “여드래 스무날”과 “초하로 삭망”의 의미가 이상과 같이 밝혀졌다면, 앞에서 논의되었던 ①번의 “한닷새 왓스면죠치”에 대한 해명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다. 이 구절에 대해, 닷새만 오고 그쳤으면 좋겠다는 역설적인 표현이라든가, 지리한 장마철이므로 닷새쯤만 내리고 말았으면 좋겠다는 의미라는 주장은, 2연의 의미가 28일과 1일, 또는 장마철 기간이라는 논거 위에서 성립되었으므로 재고를 요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구절에 대한 보다 설득력 있는 이해는 무엇일까. 필자는 먼저 제시되어 있는 네 가지 견해 중 “비가 올지라도 하루 이틀 내리지 말고 한 닷새쯤 퍼부으라는 진술”이 가장 타당하다고 여긴다. 1연의 “올지라도”와 4연의 “비가와도”는 내리는 비에 대해 어느 정도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긴 하지만, 바로 뒤의 “한닷새 왓스면죠치”와 연결시켜 보면 비록 비가 오더라도 이왕 내릴 비라면 한 닷새쯤 충분히 내리라는 뜻으로 읽는 게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특히 ‘비록 그러하더라도’라는 뜻을 의미하는 양보의 연결어미 ‘-ㄹ지라도’는 뒷말이 앞말에 매이지 않음을 나타내므로 그렇게 읽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 또한 이 구절이 들어 있는 1연에서 ‘오다’의 지속적 반복 활용은 비가 계속해서 내리는 모습을 연상케 하며, 4연의 “실버들도”와 “구름도”에서 ‘도’의 조사 활용이 보여주듯 ‘비’-‘실버들’-‘구름’이 하나의 의미망에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촉촉이 젖어 늘어진 ‘실버들’과 산마루에 걸려 우는 ‘구름’은 내리는 비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거나 내리고 있는 비의 직접적인 묘사로서, 이러한 정경 속에서 화자가 “비가와도 한닷새 왓스면죠치”라고 진술한 것은 그와 같은 통일된 일체감이 지속되어 주기를 희망하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실버들이 ‘늘어져’ 있는 것이나, 구름이 ‘걸려’ 있다는 것은 시간의 지속을 강하게 환기시키기에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비에 대한 화자의 심리적 기울기는 부정적이라기보다 오히려 긍정적인 쪽으로 향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문제의 구절은 비가 그치기를 바라는 것으로 이해되기보다는 ‘오는 비는 올지라도 이왕 내릴 거라면 한 닷새쯤 충분히 내려주었으면 좋겠다’로 읽는 게 보다 자연스런 독법일 것이다.
가고 오는 주체 문제와 관련해 마지막으로 풀어야 할 과제는 ③“가도가도 왕십리”에 대한 해명으로서, 문제의 구절에서 “가도 가도”의 주체가 과연 누구냐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왕십리’라는 특수한 공간에 대한 규명과 맞물려 있으므로 이에 대한 논의는 다음 장에서 함께 진행하기로 한다.


4. ‘왕십리’의 공간적 의미

2연의 가고 오는 주체가 ‘비’와 ‘사람’을 동시에 껴안고 있다는 사실은 「왕십리」의 이해에 복잡성을 더한다. 시 전체의 유기적 흐름을 고려할 때 2연의 속설 “온다고 하고”는 1연의 “비가 온다”에서 촉발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문제의 구절인 2연의 마지막 행 “가도 가도 왕십리 비가 오네”는 바로 앞에 제시된 속설의 “간다고 햇지”를 이어받았을 것이다. 그리하여 2연에서 오고 가는 주체와 그 행위는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구절주 체행위“온다고 하고”비 + 사람오다“간다고햇지”비 + 사람가다“가도”사람가다“가도”사람 가다“오네” 비오다


이를 1연의 내용과 연이어 읽으면 오는 주체는 ‘비’로 가는 주체는 ‘사람’으로 단순화할 수 있다. 그런데 정작 어려운 문제는 가고 있는 주체를 누구로 규정하느냐는 것이다. 시적 화자인 ‘나’가 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님’이 떠나가는 것인지 모호하기 때문이다. 이 구절만 따로 떼어서 드러난 문면 그대로 보면, ‘내가 지금 왕십리를 계속 걷고 있는데 비가 오는구나’의 진술로 읽힌다. 대부분의 논자들도 그렇게 읽었다. 3연의 “저새”나 4연의 산마루에 걸린 “구름”을 보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화자는 분명 비 내리는 왕십리 거리를 걷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2연 전체를 연달아 암송해보면 꼭 그렇게만도 볼 수 없다. “여드래 스무날엔/온다고 하고/초하로 삭망이면 간다고 햇지/ 가도가도 왕십리 비가 오네”(밑줄 ― 인용자)에서 4행의 “가도 가도”는 바로 앞 3행의 “간다고 햇지”를 연이어 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렇게 보면 ‘가도 가도’의 주체는 1-3행에서 오고 가는 주체를 포함하게 되므로 ‘떠나가는 사람(님)’으로 볼 수도 있다. 이에 대한 또 다른 근거로 먼저 살펴본 “한닷새 왓스면 죠치”의 의미를 들 수 있다. 만일 화자 혼자 가고 있는 상황이라면 비가 한 닷새쯤 계속해서 충분히 내리기를 희망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사랑하는 님이 떠나가고 있는 상황이라면 위 구절은 비가 계속해서 내려서 님이 가지 말았으면 하는 원망으로 읽을 수 있다. 그렇다면 “가도 가도”의 주체는 ‘님’일까? 그렇게 단정하기에도 무리가 있다. 비가 온다는 진술이나 ‘저새’, ‘구름’의 정황으로 보아 분명 화자는 왕십리를 걷고 있다고 추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3의 가정이 필요하다. 2연 1-3행의 오고 가는 주체를 ‘비’와 ‘사람’으로 중첩시켜 보았듯이, “가도 가도”의 주체 역시 ‘나’와 ‘님’ 모두로 보는 것이다. 이러한 가정은 소월의 대표작을 비롯해 많은 시들이 바로 ‘님’과의 문제를 노래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일정한 근거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이 가정은 ‘왕십리’의 의미와 함께 논구될 때 더욱 분명한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왕십리’에 대한 기존의 이해는 “여기서 십리를 더 가면 궁궐터가 있다”는 무학대사 설화와 연관지어 바라보는 시각과 그렇지 않은 시각으로 크게 나뉜다. 전자는 “가도 가도” 도달할 수 없는 절망적인 공간(홍정선)이거나 구도자가 찾아가는 구원의 공간(박건용)으로, 후자는 떠나간 님을 기다리는 기다림의 공간(정끝별)으로 각각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전자의 경우는 반드시 무학대사 설화와 관련지어야만 이해가 가능하다. 필자는 이와 같은 견해에 다소 회의적이다.
왕십리의 지명 유래를 말해주고 있는 이 설화는, 무학대사가 이성계의 부탁을 받아 도읍지를 정하려고 왕십리 일대에서 지형을 살펴보고 있을 때, 마침 소를 타고 지나가던 노인(도선대사)이 “십리를 더 가서 정하라”고 한 것이 주요 내용이다. 그러나 실제로 왕십리는 조선 초기부터 한성부 성저‘십리’(漢城府 城底十里)에 속해 있었으며, 부근의 ‘답십리(踏十里)’와 같이 도성(都城)에서 십리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추정된다.
‘왕십리’란 명칭이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조선왕조실록󰡕에는 선조 34년인 1601년부터 이 지명이 등장하고 있다. ‘답십리’ 역시 무학대사가 도읍지를 정하기 위해 그 땅을 밟았다는 비슷한 유래를 지니고 있는데, 실록에는 1752년(영조 28년)에야 찾아볼 수 있다. 만일 동일인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가공의 설화가 비슷한 시기에 회자되기 시작했다면 이렇게 큰 시간적 차이를 보이기는 힘들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왕십리의 지명 유래를 둘러싼 무학대사 설화는 언제쯤 만들어지고 세상에 떠돌기 시작했을까. 무학대사 설화가 실려 있는 자료는 󰡔芝峰類說󰡕(1614), 󰡔旬五誌󰡕(1678), 󰡔燃藜室記述󰡕(1776 추정) 등인데, 그 어느 것에도 왕십리 지명과 관련된 이야기는 없다. 다만 해방 이후 최상수가 펴낸 󰡔한국민간전설집󰡕(통문관, 1958)에 가서야 그 내용을 접할 수 있다. 그러니까 왕십리 관련 설화는 1776년부터 1958년 사이에 퍼지기 시작했다고 일단 추측할 수 있다.
그런데 구한말 갑오개혁의 주요 인물 중 하나였던 김윤식의 󰡔陰晴史󰡕(1881-1883)에는 왕십리를 ‘枉尋里’로 표기하고 있어 주목을 끈다. 이 때의 ‘枉尋’은 ‘굽어 살핀다’는 뜻으로, 구전에는 무학대사가 도읍지를 정하기 위해 왕십리 땅을 굽어 살폈다는 데서 유래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하나의 사실이 더 있다. 황현의 󰡔梅泉野錄󰡕(1864-1910)에도 왕십리가 등장하는데, 표기는 ‘王十里’이다. 임오군란(1882) 이후의 기록이 그러하다. 이 같은 표기는 다음의 추측을 가능케 한다. 적어도 당시에는 ‘십리를 더 가라’는 왕십리 지명 유래 설화가 아예 없었을 가능성과, 설령 있었더라도 ‘십리를 더 가라’는 내용이 아니라 무학대사가 도읍지를 정하기 위해 왕십리를 굽어보았다는 내용일 가능성이 그것이다. 만일 구한말에 ‘십리를 더 가라’는 내용의 설화가 널리 퍼져 있었다면 매천이나 김윤식이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더 나아가 이는, 당시 ‘往十里’라는 공식적인 지명조차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았음을 방증한다. 이들이 지명과 거기에 얽힌 내용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면, 왕십리의 음가를 따서 ‘枉尋里’ 또는 ‘王十里’로 쓰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왕십리는 논이나 질펀한 들이 많아서 일명 진퍼리(진펄)로 불렸는데, 이는 합방 후 세대인 서울토박이들도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널리 알려졌던 것으로 보인다.
이상의 검토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소월이 「왕십리」를 쓸 당시 그 설화를 전혀 모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현재로선 이를 확인해볼 방법이 없지만 그럴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설령, 설화의 내용을 알고 있었다 하더라도 지금까지 살펴본 작품 전체의 흐름과 맥락으로 볼 때 무학대사 설화와 소월의 「왕십리」는 큰 관련이 없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부분의 해석은 전체의 맥락 속에서 고려되어야 보다 적절한 의미망을 형성할 수 있다. 따라서 ‘왕십리’라는 지명이 갖는 의미는 연구자 또는 독자의 의식 지평인 무학대사 설화와의 상호텍스트성이 아니라 작품의 전체 맥락, 그리고 소월의 여타 작품과의 관련성 속에서 살펴보아야 타당하리라 본다.
비슷한 소재를 다룬 소월의 또 다른 작품으로 「將別里」가 있다.

軟粉紅 저고리, 안불부튼
平壤에도 이름놉 흔將別里
金실銀실의 가는 비는
비스틈이도 내리네 리네.

털털한 배암 紋徽돗은 洋傘에
나리는 가는 비는
우에나 아레나 나리네, 리네.

흐르는 大洞江, 한복판에
울며 돌든 벌새의 무리,
당신과 離別하든 한복판에
비는 쉴틈도 업시 나리네, 리네.
― 󰡔개벽󰡕(1922년 7월)

「왕십리」와 관련해 눈여겨볼 대목은 맨 마지막 연이다. 벌새가 운다는 것, 당신과 이별했던 장소, 그리고 거기에 비가 쉴 새 없이 내리는 시적 정황은 「왕십리」와 매우 흡사하다. 게다가 ‘將別里’의 자의(字意)는 장차 이별할 마을이라는 뜻으로, 작품의 내용 역시 님과의 이별을 다루고 있다. 그렇다면 「왕십리」의 ‘왕십리’ 역시 과도한 의미부여 없이 글자 그대로 ‘십리를 간다’는 뜻으로 보는 게 옳을지 모른다. 이 점에 대해 김인환은 이 시의 사건이 ‘장별리’라는 마을 이름에서 자연스럽게 연상되어 나온 것처럼, 「왕십리」의 사건도 지명과 관련되어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시적 정황과 분위기가 매우 흡사하고, 자의에 의해 촉발된 모티프가 동일하다는 점, 또 「장별리」가 1922년 7월에 발표되고 「왕십리」가 그 이듬해인 1923년 8월에 발표되었다는 점은, 「왕십리」가 「장별리」를 모태로 제작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가정을 세우게 한다. 1925년에 간행된 시집 󰡔진달내󰡕에 「왕십리」는 들어가 있으나 「장별리」는 빠져 있다는 점도 위와 같은 가정에 신뢰를 더한다.
이처럼 두 작품이 밀접한 관계에 놓여 있다는 것은, ‘장별리’가 님과 이별했던 장소인 만큼, ‘왕십리’ 역시 님과 이별하는 장소로 바라볼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소월의 시에서 ‘비’가 눈물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도 이를 뒷받침한다. 「장별리」에서 “洋傘” 위에 내리는 것은 ‘가는 비’지만 “아레”에 내리는 비는 눈물의 메타포이다. 또 “비는 이소래가 굵은 눈물과 달지안어”(「비소리」), “노던 벌에/ 오는 비는/ 숙낭자의/ 눈물이다”(「巷傳哀唱명쥬기」), “비 오는 날, 젼에는 베르렌의/ 내 가슴에 눈물의 비가 온다고/ 그 노래를 불럿더니만”(유고시) 등도 모두 비와 눈물이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작품 전체의 맥락을 보더라도 비 내리는 왕십리는 이별의 공간으로 정리될 수 있다. 벌새가 우는 것, 실버들이 비에 젖어 늘어져 있는 것, 구름이 산마루에 걸려서 우는 것 모두 이별의 공간과 결합되면서 이별의 슬픔을 고조시키고 있다. 화자가 벌새더러 “往十里건너가서 울어나다고”라고 부탁하는 것도, 벌새의 울음이 님과 이별하는 화자의 슬픔을 자극하기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 논의가 남았다. ④ “天安에 삼거리 실버들”을 어떻게 보느냐는 것이다. 이 시의 흐름에서 가장 돌연하게 튀어나온 부분이 바로 이 구절이다. 앞에서 제시된 견해 중 필자는 정끝별의 견해를 그대로 좇아 ‘천안’을 ‘왕십리’와 동일한 공간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비가 내리는 왕십리와 마찬가지로 천안의 실버들‘도’ 비에 젖어 늘어져 있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게 별 무리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천안’과 ‘왕십리’가 지닌 지리적 성격의 유사성이다. 이 시가 씌어졌던 1920년대 당시의 왕십리는 지금처럼 동서남북으로 뚫린 네거리가 아니라 남쪽이 막혀 있는 ‘삼거리’였다. 그러니까 천안 ‘삼거리’가 삼남대로의 분기점으로서 만남과 이별의 장소였던 것처럼, 왕십리의 ‘삼거리’ 역시 도성에서 삼남 지방으로 통하는 교통의 요지로서 만남과 이별의 공간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촉촉히 저젓서 늘어”진 실버들은 이별의 정서를 환기하는 객관적 상관물로 이해될 수 있다. 예로부터 실버들은 이별의 소재로 자주 등장했다.

綠楊이 千萬絲들 가 春風 잡아며
探花蜂蝶인들 지 곳을 어이하리
아모리 思郞이 重들 가님을 쟙으랴

흥미로운 것은 “촉촉히 저젓서 늘어”진 실버들이 슬픔의 정조를 환기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위 시조에서 실버들이 춘풍을 잡아매는 것처럼, 「왕십리」에서 비에 젖어 늘어진 실버들은 떠나가는 님을 가로막는 대상으로도 그려지고 있다. 그래서 이 구절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비가와도 한닷새 왓스면죠치”의 의미도 비가 계속해서 내려서 님이 떠나지 못하기를 바라는 원망(願望)의 뜻으로 이해하는 게 자연스럽다. 같은 맥락에서 마지막 결구의 “구름도 山마루에 걸녀서 운다”는 진술 역시 이별의 슬픔을 한층 강조하는 동시에, 구름이 산마루에 ‘걸려’ 있는 것처럼 님도 계속 머물러 주기를 바라는 심정이 드러난 대목으로 읽힌다. 또한 ‘벌새’에게 왕십리 건너가서 울라고 한 것도, 일차적으로는 벌새의 울음이 화자의 슬픔을 자극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벌새가 울면 비가 그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더 크게 작동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벌새의 울음에는, 비를 맞아 나른하니 이제 그만 그쳐 주었으면 좋겠다는 뜻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벌새의 요구대로 비가 그치면 님은 곧 떠날 것이므로 화자는 벌새에게 다른 데 가서 울라고 당부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화자가 님을 이별하는 상황에서, 비가 한 닷새쯤 푹 왔으면 좋겠다는 것, 벌새가 다른 데 가서 울기를 바라는 것, 실버들이 촉촉이 젖어 늘어져 있는 것, 구름이 산마루에 걸려서 우는 것 모두는 님이 떠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화자의 원망을 담은 시적 상관물인 동시에, 님과의 이별을 슬퍼하는 대상으로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시행의 배열 또한 이런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앞에서 먼저 살펴본 2연의 경우에도, ‘온다-간다-간다-온다’의 구조로 되어 있었지만, 작품 전체의 배열도 계속해서 내리는 비에 이별의 장소인 왕십리가 둘러싸여 있는 모습으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왕십리」는 소월의 여타 시편들처럼 님과의 이별을 노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십리」가 주는 아득하고 절망적인 느낌은 어디서 연유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실버들을 천만사 늘여놓고도 가는 봄을 잡지도, 또 떠나가는 님을 붙들지도 못한다는 탄식처럼, 내가 아무리 그렇게 해도 님은 떠나가고 말 것이라는 비극적 인식에 있다. 그래서 새도 울고 구름도 운다. “가도 가도 왕십리”는 곧 이런 비극적 인식의 표현으로서, 아무리 가도 이 이별의 공간을 벗어날 수 없다는 절망적 상황을 매우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별의 공간인 ‘왕십리’는 지리적, 물리적, 실제적 공간이라기보다 이별의 슬픔에서 벗어날 수 없는 소월의 심리적 공간으로 이해하는 게 좋을 것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을 수 있다. 여기서 떠나가고 있는 주체가 ‘님’이라면 어째서 님의 존재가 뚜렷이 부각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특히 대부분의 소월 시에서 님은 이미 이별한 님이거나 죽은 님으로 드러난다. 또 소월의 님이 “과거에는 있었으나 현재에는 없고, 미래에는 더욱 없을 님”이라는 견해를 떠올리면 더욱 그러하다. 비슷한 소재를 다룬 「장별리」에서도 과거에 “당신과離別하던” 곳이지 지금 ‘이별하는’ 상황이 아니다. 이 시가 소월이 서울에 머물 때가 아니라 일본 체류 당시 씌어졌다는 주장도 있는 만큼 그 점은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다.
필자는, 「왕십리」가 갖는 시의 묘미와 깊이가 바로 그 점에 있다고 본다. 비밀의 일단은 역시 이 시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가도 가도 왕십리 비가 오네”에서 찾을 수 있다. 앞에서 우리는 “가도 가도”의 주체가 화자인 ‘나’와 ‘님’ 모두라고 정리한 바 있다. 그런데 위 질문의 주장대로라면 ‘나’는 있지만 ‘님’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까지의 논의대로 「왕십리」가 이별의 노래라면, 이미 떠나간 님과의 이별을 내리는 비를 통해 재구성하고 있다고 가정할 수 있다. 그때 ‘나’는 ‘님’과 완전히 동일시된 상태이다. 소월의 많은 시가 주체와 대상이 자리를 바꾼, 즉 시적 화자가 ‘님’으로 트랜스(trans; 忘我)된 상태의 진술을 보여준다. 「먼후일」의 “니젓노라”가 대표적이다. 이는 님이 해야 할 말이지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결코 아니다. 나는 오매불망 님을 잊지 못하는데 님은 나를 잊었기 때문에 아직도 찾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니젓노라”는 님이 나를 잊은 데 대한 원망(怨望)의 역설이다. 「산」의 ‘불귀’ 역시 돌아갈 수 없는 것은 내가 아니라 님이 살아서 돌아올 수 없다는 역설적 진술이다. 삼수갑산(무덤)에 갇혀 있는 것도 사실은 내가 아니고 님이다. 「무덤」 또한 그러하다. “나를 헤내는 부르는 소리”는 「초혼」에서처럼 내가 님을 부르는 것이지 결코 님이 나를 부르는 것이 아니다. 이는 주체와 대상을 뒤바꾸는 투사적 역설이다. 그런 측면에서 「왕십리」의 “가도 가도” 역시 나와 님이 트랜스된 상태, 완전히 동일시된 상태의 진술로 이해해야 온전한 의미를 얻을 수 있다. 님은 떠나가지만 비는 계속 내려서 이별의 공간인 왕십리를 영원히 지연시켜주기를 바라는 화자의 심정이 이 시의 심층에 깔려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시적 화자인 내가 아무리 걸어가도 왕십리를 벗어날 수 없다는 표층적 의미는, 님이 아무리 나를 떠나고자 해도 계속해서 내리는 비 때문에 왕십리를 결코 떠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심층적 의미로 치환됨으로써, 왕십리는 영원히 지연된 이별의 장소가 되는 것이다. ‘왕십리’가 물리적 공간이라기보다 심리적 공간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와 같은 심리적 공간이야말로 ‘무덤’, ‘삼수갑산’, ‘삭주구성’ 등과 같이 소월이 ‘님’과의 이별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유폐의 공간과 맞닿게 된다.


5. 맺음말

시의 해석에서 연구자들이 자주 범하는 오류는 선택적 오류(selective fallacy)이다. 이는 미리 정해진 연구 기준 또는 방법에 의해 작품의 특정 부분만을 취사선택함으로써 생기는 오류라 할 수 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하나는 선택과 배제의 논리를 축으로 하는 근대 학문의 방법론에서 기인된 것이며, 다른 하나는 원래의 시 작품이 지닌 모호성과 난해성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소월의 대표작 「왕십리」는 후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그동안 작품의 의미 규정을 놓고 논의가 분분했다. 이 글은 「왕십리」의 의미 구조를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소월의 여타 작품과의 상호텍스트성을 통해 규명해보고자 씌어졌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왕십리」에서 가장 난해한 부분은 2연의 1-3행이다. 간접화법으로 되어 있는 이 부분을 제대로 해명해야만 이 시가 지닌 모호성과 난해성을 뚫고 나갈 수 있다. 이에 대한 기존의 견해는 님과 만나는 짧은 기간으로 보는 입장, 장마철로 보는 입장, 달이 차고 기우는 것으로 보는 입장, 바닷물의 조수간만과 비의 관계로 보는 입장이 있다. 필자는 맨 마지막 견해가 타당하다고 본다. 그런데 여기서 오고 가는 주체는 ‘비’뿐만 아니라 ‘사람’의 의미도 함께 들어 있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그래야만 이 시가 제대로 이해될 수 있다. 그렇게 볼 때 “가도 가도”의 주체 역시 ‘나’와 ‘님’ 모두를 아우를 수 있다.
또 3연에 느닷없이 등장하는 ‘천안삼거리’도 새로운 해명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지금까지는 주로 왕십리의 확장된 공간이나 식민지 상황의 조국강토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당시의 왕십리 역시 천안삼거리처럼 도성에서 삼남으로 통하는 교통의 요지로서 만남과 이별의 장소였다. 게다가 지금처럼 네거리가 아니라 삼거리였다. 따라서 작품에서 ‘왕십리’의 공간적 의미는 님과의 이별을 슬퍼하는 심리적 공간이 된다. 그때 “가도 가도 왕십리”는 이별의 공간을 벗어날 수 없다는 절망적 인식의 표출로 볼 수 있으며, 심리적 공간인 ‘왕십리’는 소월의 다른 시들에 나온 유폐의 공간으로 이해될 수 있다.
결국 「왕십리」는 님을 이별하는 데서 오는 슬픔을 노래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계속해서 내리는 비로 하여금 촉촉이 젖어 늘어진 실버들이나 산마루에 걸려 우는 구름과 같이, 님이 떠나지 못하게 막아달라고 간절하게 당부하는 작품으로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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