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신라의 국경선은 대동강 입구~원산만이었습니다.
이는 신라가 나·당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삼국 통일을 완성한 후의 국경선입니다. 고구려의 수도였던 평양을 비롯한
고구려 영토 대부분을 당에게 빼앗겼지만, 이후 발해가 신라 북쪽의 고구려 옛 영토를 차지하죠.
고려 태조 말년의 국경선은 청천강 입구~영흥만으로, 이는 고려 태조의 꾸준한 북진 정책 결과 확정된 것입니다.
태조는 고구려의 옛 땅을 되찾고자 강력한 북진 정책을 추진하여 평양을 서경으로 삼고, 북진 정책의 전진 기지로 적
극 개발하였습니다. 그 결과, 청천강에서 영흥에 이르는 국경선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거란의 3차 침입을 물리친 후 고려의 국경선은 압록강 입구~도련포입니다.
이는 거란의 1차 침입(성종11년, 991) 당시 서희가 거란 장수 소손녕과의 외교 담판으로 강동 6주를 회복한 후의 모습
입니다. 3차에 걸친 거란 침략 격퇴한 후 이 국경선을 따라 천리장성을 쌓았습니다.
반원 자주 정책을 추칮한 고려 말 공민왕 때의 국경선은 압록강의 초산~길주, 갑주입니다.
공민왕은 반원 자주 정책을 실시하면서 무력으로 쌍성총관부를 공격하여 철령 이북의 땅을 수복하였습니다(1356).
그리고 조선 시대 들어 세종 때 4군 6진을 개척하면서 압록강~두만강을 잇는 오늘날의 국경선이 형성됩니다.
고려 시대의 국경선 변화(미래엔 교과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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