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구석기~청동기 시대의 생활 모습 답④
선사 시대에 대한 문제는 매회 1문제씩 출제되며, 문제 수준은 어렵지 않습니다.
따라서 꼭 맞춰야 하니 이 기회에 확실히 공부해 두세요.
이 문제는 구석기 시대~청동기 시대를 대표하는 유물을 제시하고 각 시기의 생활 모습을 파악하는 선사 시대 통합형 문제입니다.
각 시대 대표적 유물이 제시된 데다가 유물명도 나와 있으니, 시대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죠?
(가)는 구석기 시대의 주먹도끼,
(나)는 신석기 시대의 토기인 빗살무늬 토기,
(다)는 청동기 시대의 비파형 동검입니다.
(가)구석기 시대
구석기인들은 동물의 뼈나 뿔로 만든 뼈 도구와 뗀석기를 가지고 사냥과 채집을 하며 이동 생활을 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동굴이나 바위 그늘 또는 강가에 막집을 짓고 살았으며, 평등한 공동체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동물의 뼈나 뿔 등을 이용하여 사냥감의 번성을 비는 주술적 의미가 담긴 조각품을 만들기도 했어요.
(나) 신석기 시대
이 시기에는 강가나 바닷가에 살면서 사냥이나 물고기잡이, 농경과 목축(후기)으로 식량을 마련했어요.
움집을 짓고 정착 생활을 시작하였으며, 몇 개의 씨족이 모여 부족을 이루고 평등한 생활을 하였어요.
농경에는 간석기 농기구를 사용하였는데, 돌괭이로 땅을 일구고 조, 피 등을 재배하여 돌낫, 뼈낫 등으로 추수를 하였으며, 돌갈판에 곡식을 갈아서 음식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빗살무늬 토기 등을 제작해 음식의 저장, 조리하였으며, 가락바퀴로 실을 뽑고, 뼈바늘로 옷을 지어 입기도 하였어요.
농경과 정착 생활을 하게 되면서 농사에 큰 영향을 끼치는 자연 현상이나 자연물에도 정령이 있다고 믿는 애니미즘이 생겨났으며, 흙을 빚어 구운 얼굴 모습이나 동물의 모양을 새긴 조각품, 조개 껍데기 가면, 조가비 또는 짐승의 뼈나 이빨로 만든 치레걸이 등의 예술품을 만들었습니다.
(다) 청동기 시대
이 시기에는 농사에 유리한 강을 끼고 있는 야산이나 구릉 지대에 움집을 짓고 살았어요. 조, 보리, 콩, 벼 등을 재배하였으며, 나무 또는 돌로 만든 농기구를 이용해 농경지를 넓히고 생산량을 증가시켰어요.
도구로는 반달 돌칼, 바퀴날 도끼, 홈자귀 등의 석기와 비파형 동검, 거친무늬 거울 등의 청동기, 미송리식 토기, 민무늬 토기, 붉은 간토기 등의 토기가 있습니다. 이들 유물은 청동기 시대의 집터나 고인돌, 돌널무덤, 돌무지무덤 등 당시의 무덤에서 출토되죠.
인구가 증가하고 경제가 발전하면서 지배, 피지배의 계급 사회가 성립하였습니다. 부족을 통솔하는 족장(군장)은 농업 생산이 증대함에 따라 재산을 늘리는 한편, 청동제 무기를 이용하여 이웃 부족을 정복하는 등 세력을 확장하였는데, 고인돌은 이들의 사회, 경제적 지위를 잘 보여주는 유물이죠.
① 구석기인들은 이동 생활을 하였기에 동굴이나 바위 그늘에 살거나 강가에 막집을 짓고 살았어요.
② 신석기인들은 가락바퀴로 실을 뽑고, 뼈바늘로 옷을 지어 입었죠.
③ 청동기 시대에는 농경 생활의 비중이 높아져 농경에 유리한 강을 끼고 있는 야산이나 구릉 지대에 살았어요.
④ 계급 사회는 청동기 시대부터 나타났습니다.
⑤ 간석기는 신석기 시대부터 사용되었으며, 청동기 시대에도 농기구는 나무나 간석기로 만들어 사용하였어요.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④번입니다.
구석기 시대
1. 도구 : 뼈 도구, 뗀석기(사냥 도구 - 주먹도끼·찍개·팔매돌, 조리 도구 - 긁개 ·밀개)
2. 생활 : 사냥과 채집 → 이동 생활
3. 주거 : 동굴, 막집(바위 그늘, 강가 - 기둥 자리, 담 자리, 불 땐 자리)
4. 사회 : 무리 생활, 평등한 공동체 생활
5. 예술 : 고래와 물고기 등을 새긴 조각품 제작 → 주술적 의미(사냥감의 번성을 기원)
■ 신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
구분 | 신석기 시대 | 청동기 시대 |
시기 | 기원전 8000년경(지금부터 1만 년 전) | 기원전 2000~1500년경 |
유물 | • 간석기 : 돌괭이, 돌보습, 돌낫, 돌삽 • 가락바퀴와 뼈바늘 : 의복 제작 | • 농기구는 간석기 : 반달 돌칼, 바퀴날 도끼, 홈자귀 • 청동기는 무기나 의식용 : 비파형동검, 거친무늬 거울 |
토기 | 이른 민무늬 토기, 덧무늬 토기, 눌러찍기무늬 토기, 빗살무늬 토기 | 덧띠새김무늬 토기, 민무늬 토기, 미송리식 토기, 붉은 간토기, 가지무늬 토기 |
무덤 | 고인돌, 돌널무덤, 돌무지무덤 | |
주거 | 원형이나 모가 둥근 방형의 움집 : 중앙에 화덕 위치, 한쪽에 저장 구덩 설치 | • 직사각형 움집 : 점차 지상 가옥화, 화덕이 한쪽 벽면 에 배치, 저장 구덩 설치, 주춧돌 사용 • 집단 취락(구릉, 산간 배산임수 지역에 위치) |
경제 | 사냥과 어로(후기로 올수록 비중 감소) → 후기 농경 시작 (조, 피, 수수 등을 재배하는 밭농사) | • 밭농사 본격화 : 보리·콩 재배 • 벼농사 시작, 가축 사육 증가 |
사회 | 씨족 사회(혈연 중심) → 족외혼 → 부족 사회, 정착 생활, 평등 사회, 모계 중심 사회 | 생산력 증가와 잉여 농산물 발생, 사유 재산제 제도와 계급의 발생, 직업의 전문화와 분업화 |
신앙 | 애니미즘, 샤머니즘, 토테미즘, 조상신 숭배, 영혼불멸 | 선민 사상, 천신 사상 |
예술 | 조개 껍데기 가면, 흙으로 빚은 얼굴, 치레걸이 등 | 울주와 고령의 바위그림, 청동 제품, 토우 |
■ 청동기 시대와 철기 시대
구분 | 청동기 시대 | 철기 시대 |
시기 | 기원전 2000년경 ~ 기원전 1500년경 | 기원전 5세기경 |
사회 | 계급 사회(신분제 사회) | |
생산 경제 발달 ⇨ 사유 재산제, 계급 발생, 남녀 분업 | 철제 농기구 사용으로 농업 발달 ⇨ 경제 기반 확대 | |
청동기 | 비파형동검, 거친무늬거울 | 의식용 도구, 세형동검, 잔무늬거울, 거푸집 ⇨ 독자적 청동기 제작 |
토기 | 미송리식 토기, 민무늬 토기, 붉은 간토기 등 | 민무늬 토기, 덧띠 토기, 검은 간토기 등, |
도구 | 반달 돌칼, 바퀴날 도끼, 홈자귀 | 철제 농기구, 철제 무기, 철제 연모 등 |
무덤 | 고인돌, 돌널무덤, 돌무지무덤 | 독무덤, 널무덤 |
기타 | 명도전, 반량전, 오수전 출토, 창원 다호리 출토 붓 ⇨ 중국과의 교류 관계를 보여주는 유물 | |
토기의 등장 순서
(신석기 시대) 이른 민무늬 토기→덧무늬 토기→눌러찍기무늬 토기→빗살무늬 토기→(청동기 시대)덧띠새김무늬 토기, 민무늬 토기, 미송리식 토기, 붉은 간 토기→(철기 시대)덧띠 토기, 검은 간 토기
* 민무늬 토기는 청동기 시대~철기 시대에 공통으로 나타납니다.
붉은 간토기나 검은 간토기도 민무늬 토기의 일종입니다.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초기 철기 시대, 선사 시대 통합형 문제를 모두 제시합니다.
■ 유사 기출문제 더 풀기
구석기 시대
18회 고급 1번 문제
1. 구석기 시대의 유물 답②
그동안 신석기 시대 문제가 쭈욱 출제되다가 구석기 시대에 대한 문제는 13회 이후 오랜만에 출제되었네요.
제시된 자료의 설명 중 '유리질이 많은 암석'이 핵심 키워드네요.
이 내용만으로 주어진 유물 사진을 보고 바로 답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유리질 암석은 당연히 유리처럼 표면이 반짝거릴 것이니 답은 ②번이 확 보일겁니다.
한반도내에서는 후기 구석기 유적지에서 흑요석 유물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함북 웅기 동관진 유적, 평양 만달리 유적, 충남 공주 석장리 유적, 충남 단양 수양개 유적, 강원도 양구 상무룡리 유적 등에서 흑요석으로 만든 유물이 발굴되었습니다.
흑요석은 화산 활동 과정에서 생성되기 때문에 화산 활동이 있었던 곳에서만 존재합니다.
따라서 흑요석은 이들 유적지 주위에서 구할 수 없는 것이어서 백두산 등의 화산암 지대로부터 상당히 원거리를 운반하여 온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흑요석 유물은 강원도 양양 오산리, 부산 동삼동 유적지 등 신석기 시대 유적지에서도 발굴됩니다.
① 연천 전곡리 유적지에서 발굴된 주먹도끼입니다.
② 흑요석으로 만든 뗀석기입니다.
이것은 부산 동아대학교 박물관에 있는 흑요석 유물입니다.
큰 사진으로 확인해 보세요.
③ 청동기 시대의 유물인 비파형 동검입니다.
④ 신석기 시대 곡식을 가는데 사용한 갈돌과 갈판입니다.
⑤ 청동기 시대에 곡식의 이삭을 자르는 데 사용한 반달 돌칼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②번입니다.
13회 고급 1번 문제
1. 연천 전곡리 유적 유물 답②
문제의 자료에 <연천 전곡리 선사 문화 축제>라고 되어 있으니,
(가)에 들어갈 자료는 당연히 연천 전곡리 유적이나 그곳에서 출토된 유물이 들어가야겠지요?
주어진 답지에 ②번의 주먹도끼 이외에 구석기 유물은 물론, 신석기 유물도 제시되어 있지 않으니 그냥 주워먹으세요.
따라서 3점 배점은 지나친 오버이고, 이 수준이라면 1점을 줘야 할 문제였어요.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에서 구석기 유적지와 관련된 문제는 대부분 연천 전곡리 유적지와 연관된 문제입니다.
아래에 제시해드리는 유시 기출문제를 보시면 알겠지만 정말 중요하게 공부해두어야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어렵지 않아요.
연천 전곡리 유적지에 대한 주요 출제포인트는 크게 두 가지만 기억하세요.
미군이 우연히 아슐리안형 주먹도끼를 발견하면서 알려진 전기 구석기 유적지이다.
아슐리안형 주먹도끼가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발굴되었다.
더 알아둔다면 이 유적지에서 아슐리안형 주먹도끼가 발견되기 전까지 아시아는 찍개 문화권으로 구분되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주먹도끼는 한 가지 용도가 아니라 사냥, 가죽을 벗기기, 채집 등 다용도로 사용되었던 만능 도구였어요.
주먹도끼의 사용모습은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10회 문제에서 출제되었으니 아래 유사 기출문제에서 확인하세요.
① 독무덤은 후기 청동기~초기 철기 시대부터 나타나는 무덤양식으로, 철기 시대 무덤으로 봅니다.
철기 시대에는 독무덤과 함께 널무덤 등이 만들어졌습니다.
③ 팔주령 청동 방울입니다.
청동기~철기 시대의 청동 방울 중 하나로 제정일치 사회의 제사장들이 주술적인 의미로 사용했던 도구입니다.
④ 철기 시대의 유물인 청동 도끼 거푸집입니다.
거푸집의 제작은 우리나라에서 청동기를 직접 제작해 사용하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⑤ 철기 시대 유적지인 경남 창원 다호리 유적에서 출토된 붓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에서도 철기 시대에 이미 한자를 쓰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②번입니다.
11회 고급 1번 문제
1. 흥수아이가 살던 시기의 모습 답②
이 문제는 '흥수아이', '4만 년 전 인류화석'이라는 직접적인 힌트를 준, 그래서 1점 문제로 출제되었네요.
흥수아이를 모르더라도 4만 년이라는 시간을 제시하였기 때문에 구석기인이라는 것을 모를 수는 없겠네요.
그럼 구석기인들의 생활 모습을 찾으면 되겠지요?
<구석기 시대의 생활 모습> ------------------------------------------------------------
1. 도구 : 뼈 도구, 뗀석기(사냥 도구 - 주먹도끼·찍개·팔매돌, 조리 도구 - 긁개 ·밀개)
2. 생활 : 사냥과 채집 → 이동 생활
3. 주거 : 동굴, 막집(바위 그늘, 강가 - 기둥 자리, 담 자리, 불 땐 자리)
4. 사회 : 무리 생활, 평등한 공동체 생활
5. 예술 : 고래와 물고기 등을 새긴 조각품 제작 → 주술적 의미(사냥감의 번성을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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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⑤는 신석기 시대에 대한 설명입니다.
③의 반달 돌칼은 청동기 시대의 도구입니다.
④는 독무덤을 설명하고 있으니 철기 시대의 생활 모습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②번입니다.
10회 고급 5번 문제
5. 주먹도끼의 사용법 답①
제시된 자료에서 설명하고 있는 ‘이 석기’는 아슐리안형 주먹도끼로, 양면 핵석기(兩面核石器)라고도 하는 뗀석기입니다. 모양과 만드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몸돌의 한쪽을 여러 면에서 깨뜨려 끝을 곡괭이처럼 뾰족하게 만들거나 칼날처럼 날카롭게 만들고 다른 한쪽은 손으로 쥘 수 있게 살짝 다듬은 모습이 일반적입니다.
이러한 주먹도끼는 아프리카를 비롯해 유럽과 아시아 대륙에서 주로 발견됩니다. 연천 전곡리 유적에서 이러한 형태의 주먹도끼가 발견되기 전에는 유럽과 서아시아 지역은 주먹도끼를 주로 썼으며, 동아시아 지역은 자갈돌을 깨뜨려 만든 찍개를 주로 썼다고 구분하기도 했답니다(모비우스 학설). 그러나 근래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시아 지역에서도 아슐리안형의 주먹도끼가 다수 발견되면서 이러한 학설은 깨졌죠....
다만, 유럽쪽에 비해 양면 가공이 아닌 단면 가공이 주류를 이루며 석기의 전면에서 격지를 떼어내지 않고 일부는 자연면을 그대로 남겨두는 등 다소간 차이가 있다네요.
문제의 설명을 보고 이 주먹도끼가 무엇인지 응시자 대부분이 파악하였을 것 갑니다.
하지만 답지에 제시된 사용 모습을 보고 많은 분들이 ②번을 답으로 선택했어요.
이 사용 모습은 중학교 교과서 29쪽에 나와 있지만 무척 헛갈렸을 거라고 봅니다.
① 주먹도끼의 사용 모습입니다.
손에 쥐고 쓸 수 있는 도끼의 형태로, 동물의 가죽을 벗기거나 사냥 등에 다양하게 사용되었지요.
② 나무를 자르거나 사냥할 때 사용된 찍개의 사용 모습입니다.
③ 슴베찌르개인지, 잔석기인지 모르지만, 창 기능을 하는 슴베찌르개 같습니다.
④ 구멍을 뚫거나 옷감을 만들 때 사용하는 뚜르개의 사용 모습입니다.
⑤ 사냥한 짐승의 가죽을 벚겨 손질하는 데 이용된 긁개의 사용 모습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①번입니다.
4회 고급 1번 문제
1. 남한의 구석기 유적지 답②
첫째날에 나와 있는 유적지 특징에‘아슐리안형 주먹도끼’하면 무조건 연천 전곡리!!!
아싸~~ 실전이었다면 요 사실만 알아도 답지는 ①, ②번 두 개로 축약되었네요...^^
둘째날을 보면 ‘남한 최초로 발굴된 구석기 유적지’라고 하였으니 공주 석장리 네요.
두 개로 답이 나왔네요...ㅋㅋ
그래도 확실히 알기 위해 다른 것도 알아야 겠죠.
셋째날 유적지 설명의 키포인트는 ‘흥수아이’....
그러면 어디죠? 맞습니다. 남한 최초의 인골 화석이 출토된 유적은 청원 두루봉 동굴이죠.
넷째날....바위그늘 유적......모를 수도 있어요...
이번 기회에 공부하면 되죠.
호모 에렉투스와 호모 사피엔스의 특징을 가진 인골이 출토된 바위그늘 유적은 바로바로 단양 상시 바위그늘 유적입니다.
그렇다면 이를 지도 유적지와 연결해보면 (가) → (라) → (다) → (나),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②번입니다.
2회 2급 1번 문제
1. 연천 전곡리 유적지인들의 생활 모습 답⑤
문제에 제시된 설명 중에서 ‘한탄강 유역’, ‘주한 미군 병사의 신고로 발견’, ‘아슐리안형 석기가 발견’ 등을 힌트 삼아 이 유적지가 연천 전곡리 유적지임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연천 전곡리 유적은 (전기) 구석기 유적지임은 누구나 알고 있는 기본적인 사실!!!
그렇다면 구석기 시대의 생활상을 찾으면 되겠죠?
① 고인돌, 선돌 등의 거석 기념물은 청동기 시대부터 나타나지요.
② 씨족을 기본 구성 단위로 하는 씨족 사회는 신석기 시대부터 나타납니다.
구석기 시대는 무리 사회였죠.
③ 잉여 농산물로 사유 재산이 생겨 나고 이를 둘러 싼 부족 간 전쟁은 청동기 시대부터 나타납니다.
④ 그릇을 사용한 음식물 저장(토기 사용)은 신석기 시대부터 나타나죠.
⑤ 동굴이나 막집에 거주, 그리고 이동 생활은 구석기 시대에 해당하는 생활 모습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⑤번입니다.
2회 1급 7번 문제
7. 구석기 유적지의 특징 답③
이 문제는 공부 차원에서 그냥 외우세요.
(가)는 함북 종성 동관진 유적지는 한반도 최초로 발견된 구석기 유적지(1932)로, 동물 화석이 출토되었어요.
(나)의 평남 덕천 승리산 유적(1972)에서는 슬기 사람(호모 사피엔스) 계통의 덕천인, 그리고 슬기슬기 사람(호모 사피엔
스사피엔스) 계통의 승리산인이 발견되었어요.
이는 한반도에서 최초로 발견된 인골 화석이었어요. 잘 알아두세요.
(다)의 경기 연천 전곡리 유적(1978)은 미군에 의해서 처음 발견되었어요.
이 유적지에서는 모비우스 학설(4번 문제를 참고하자)을 깨트리는 주먹도끼가 발견되었습니다.
전곡리 유적지는 홍적세 후기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전기 구석기 유적이랍니다.
(라)는 충북 청원 두루봉 동굴 유적지(1976)로, 이 유적지에서 중요한 것은 남한에서 최초로 인골 화석이 발견되었다는
겁니다(덕천 승리산은 북한 지역 유적지였죠?).
이 인골 화석은 발견자의 이름(김흥수)을 따서 ‘흥수아이’라고 하죠.
남한 최초의 인골 출토 유적지는 단양 상시 바위그늘 유적으로 보기 때문에 이 답지는 맞는 것인지 헛갈립니다.
(마)는 남한 지역에서 최초로 발견된 대표적인 구석기 유적지인 충남 공주 석장리 유적지(1964)입니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이 유적지는 전형적인 후기 구석기 유적지로 보고 있답니다.
이 유적지에서는 12개의 문화층이 확인되었는데, 전기~후기 구석기까지의 유물들이 고루 출토됩니다.
에구 OTL ㅜ.ㅜ ....이런건 외워야지~~~~~뭐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③번입니다.
신석기 시대
17회 고급 1번 문제
1. 신석기 시대의 생활 모습 답④
이 문제는 아주 쉽게 출제되었습니다.
문제에 주어진 다량의 힌트를 통해 어느 시기인지를 너무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움집, 빗살무늬토기, 농사짓는 모습, 가축 사육, 갈돌과 갈판 등을 통해서 신석기 시대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신석기 시대의 모습을 찾아내면 내겠죠?
신석기 시대에도 사냥이나 채집, 물고기잡이 등을 식량 마련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신석기 후기부터 농경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때 재배한 곡식은 조, 피, 수수 등이었으며, 아직 벼농사는 시작하지 못했습니다(벼농사는 청동기 시대부터 시작).
농경에 필요한 농기구는 나무나 돌로 만들었으며, 돌낫, 돌삽, 돌보습, 돌괭이였으며, 수확한 곡식을 껍질을 벗기거나 갈기 위해 갈동과 갈판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들 곡식을 저장하거나 음식을 조리하기 위해 토기를 만들어 사용하였는데, 대표적인 토기가 빗살무늬 토기였습니다.
또한, 이 시기에는 뼈바늘, 가락바퀴 등을 사용해 옷을 만들거나 그물을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①, ②, ③, ⑤는 청동기 시대부터 나타난 생활 모습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④번입니다.
16회 고급 1번 문제
1. 신석기 시대의 생활 모습 답④
신석기 시대와 관련한 문제는 대부분 토기가 함께 제시됩니다.
따라서 신석기 시대의 대표적 토기인 빗살무늬 토기가 어떻게 생기고 어떤 용도로 만들어졌는지 꼭 알아두세요.
문제에 제시된 첫번째 자료는 곡식을 가는데 사용한 갈판과 갈돌입니다.
두번째 자료는 음식을 저장, 조리하는 용도로 사용된 빗살무늬 토기입니다.
따라서 두 유물 모두 신석기 시대의 유물입니다.
신석기 시대에는 농경이나 목축 생활을 하면서 정착 생활을 하였습니다.
주거는 대개 움집을 짓고 생활하였습니다.
이들이 생활한 움집은 바닥은 원형이나 모서리가 둥근 사각형이고, 움집의 중앙에는 불씨를 보관하거나 취사와 난방을 위한 화덕이 위치하였습니다. 햇빛을 많이 받는 남쪽으로 출입문을 내었으며, 화덕이나 출입문 옆에는 저장 구덩을 만들어 식량이나 도구를 저장하였죠. 집터의 규모는 4, 5명 정도의 한 가족이 살기에 알맞은 크기였습니다.
그리고 신석기 시대에는 돌괭이, 돌삽, 돌보습, 돌낫, 갈판과 갈돌 등의 농경 도구,
이른 민무늬 토기, 덧무늬 토기, 눌러찍기무늬 토기(압인문 토기), 빗살무늬 토기가 제작, 사용되었습니다.
한편, 가락바퀴나 뼈바늘이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원시적 형태지만, 옷이나 그물을 만들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① 독무덤은 청동기 시대 말~철기 시대의 유물입니다.
청동기 시대에는 고인돌과 돌널무덤 등이 만들어졌고, 철기 시대에는 널무덤과 독무덤 등이 만들어졌습니다.
② 청동 방울은 청동기 시대에 만들어졌겠죠?
청동기 시대에는 칼, 거울, 방울, 방패 등의 청동기가 만들어졌습니다.
③ 명도전은 춘추 전국 시대 중국에 사용된 화폐로, 우리나라에서는 철기 시대 유적지에서 출토됩니다.
철기와 함께 출토되는 명도전, 반량전, 오수전은 중국과 활발하게 교류했음을 알려주죠.
④ 움집과 가락바퀴는 모두 신석기 시대의 유물, 유적입니다.
움집은 주거지, 가락바퀴는 옷이나 그물을 만드는 데 사용된 유물입니다.
⑤ 쇠로 만든 낫(쇠낫)은 철기 시대부터 있었겠죠?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④번입니다.
12회 고급 1번 문제
1. 신석기 시대의 생활 모습 답①
1점짜리 매우 쉬운 문제입니다.
제시된 유물이 사용된 시기를 알고 그 시기의 생활상(생활 모습)을 찾아내는 문제입니다.
문제에 나온 유물은 학교 다닐 때부터 워낙 많이 봤던 유명한 유물이니 금방 알 수 있죠?
첫번째 유물은 음식물을 저장, 조리하는데 사용한 빗살무늬 토기,
두번째 유물은 실을 뽑는데 사용한 가락바퀴입니다.
모두 다 신석기 시대의 대표적인 유물이니 답지에서 신석기 시대의 생활 모습을 찾으면 되겠죠?
① 밭에서 조, 피, 수수 등을 재배한 시기는 신석기 시대입니다.
신석기 시대부터 사람들은 농사를 짓기 시작했지요.
그러나 농사는 식량의 일부분을 차지했을 뿐 대부분의 식량은 채집이나 사냥, 물고기잡이 등을 통해 해결했어요.
그러나 벼농사는? 청동기 시대부터 시작했다고 보죠.
② 천군이 제천 의례를 주관한 곳은 삼한입니다.
③ 독에 넣어 매장하는 방식은 독무덤이죠.
독무덤은 널무덤과 함께 철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 양식입니다.
④ 다른 부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목책과 환호(목책 주위에 웅덩이를 파거나 물을 끌어들인 호를 만들어 적의 침입을
어렵게 하기 위한 시설)를 설치하고 구릉 위에 취락이 위치한 시기는 청동기 시대부터입니다.
신석기 시대 주거지는 주로 강이나 바닷가에 위치하죠.
⑤ 호랑이 모양이나 말 모양의 띠고리 장식은 지배층의 무덤에서 발견되는 청동으로 만든 유물입니다.
따라서 이는 청동기 ~초기 철기 시대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①번입니다.
9회 고급 1번 문제
1. 암사동 신석기 유적지 답⑤
지도에 표시된 지역에 제시된 그림과 같은 집터 유적을 남긴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물어보는 문제입니다.
지도에 표시된대로 지역은 강동구, 집터는 땅을 어느정도 깊이 파고 원형으로 만든 것으로 보아 신석기 시대의 집터, 따라서 이 유적지는 암사동 유적지임을 추론할 수 있습니다.
풍납토성이라는 글자만 보고 백제 초기 유적지일 것이라고 섣불리 판단하면 답 찾기가 무척 까다로워지죠...
신석기 시대의 집터는 바닥은 원형이나 모서리가 둥근 사각형이었으며, 움집 중앙에는 취사와 난방을 위한 화덕을 설치한 특징이 있다는 것 꼭 알아두세요.
청동기인들도 움집에 살았지만 움집의 깊이가 얕아지는 등 조금더 지상화 되었고 화덕도 중앙이 아니라, 한쪽 구석에 위치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① 저습지, 벼를 재배하였던 것은 청동기 시대의 생활 모습에 해당하죠?
신석기 시대에는 처음으로 농경이 시작되었지만, 대개 조, 피, 수수 같은 잡곡류만을 재배하였으니까요.
②, ③, ④ 명도전을 사용하여 중국과 교역하고 검은 간토기를 사용하였으며, 옹기 안에 매장하는 독무덤이 만들어진
시기는 철기 시대의 모습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⑤번입니다.
3회 1급 1번 문제
1. 신석기 유적지의 특징 답④
우리나라 신석기 유적지는 대부분 강가나 해안가 근처에서, 그리고 전국 각지에서 발견됩니다.
대표적인 신석기 유적지는 서울 암사동, 제주도 한경 고산리, 강원 양양 오산리, 부산 동삼동이 있죠.
그럼 답지를 하나하나 살펴볼까요?
① 황해도 봉산 지탑리와 평양의 남경 유적에서는 탄화된 좁쌀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신석기 시대에 잡곡류를 경작하
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② 바닷가에서 발견된 양양 오산리 유적에서는 덧무늬 토기, 눌러찍기무늬 토기(압인문 토기) 등의 신석기 초기 토기와
사람 얼굴 조각이 발견되었어요.
③ 서울 암사동 유적에서는 신석기 시대의 집터와 바닥이 뾰족한 빗살무늬 토기가 많이 나왔으며, 강가에 위치하고 있어
물고기를 잡는데 사용한 그물추를 비롯한 다양한 석기들, 그리고 불에 탄 도토리 등이 출토되었습니다.
⑤ 제주 한경 고산리 유적지는 원시형 고토기인 식물성 섬유질 토기(고산리식 토기)를 사용한 한국 초기 신석기 문화의
실체를 보여 주는 유적지입니다.
④ 부산 동삼동 유적에서는 조개더미(패총)와 빗살무늬 토기, 그리고 치레걸이 등이 발견되었어요.
돌무지 시설과 여러 몸체분의 사람 뼈가 발견된 것은 통영 연대도 패총에 대한 설명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④번입니다.
2회 1급 1번 문제
1. 선사 시대의 시기 답⑤
제시된 탄소 연대 측정을 통해 이 시료의 시기가 4660 ± 100 B.P라고 하네요.
그럼 지금으로부터 4,560~4760년 전이니 기원전 2500~2700년 전(서기 2000년+기원전 2500~2700)의 유적지라는 것이 확인되죠?
이 시기는 우리나라에서 신석기 시대에 해당하는 시기입니다.
구석기 시대는 70만 년 전, 신석기 시대는 기원전 8000년경부터 시작되었다고 다들 배웠잖아요.
추가로 청동기 시대는 기원전 2000~1500년경, 철기 시대는 기원전 5세기.....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교재 중에도 이런 사소한 시기도 틀린 책이 있으니.....^^;
설명이 약간 다른 곳으로 흘렀지만 그럼 신석기 시대 유물을 찾으면 되겠네요.
① 세형 동검, ② 명도전은 철기 시대 유물이죠?
금속으로 만든 것이니 석기 시대 유물은 당근 아니니....뭐 이건 답지에서 열외!!!!
③은 뭐 워낙 많이 본 유물이니 다 아실겁니다. 청동기 시대에 사용된 반달 돌칼이죠.
이 도구를 신석기 시대 간석기로 오해한 분이 있다면 공부 다시하세요...시험은 다음에 보고....
④는 토우 장식 항아리입니다. 삼국 시대 신라에서 만들어진 것이죠.
국보 195호, 정식 명칭은 토우장식 장경호(土偶裝飾長頸壺)입니다.
신석기 시대 토기로 보고 조금 헛갈릴 수도 있을거 같지만...알아두세요. 신라 토기라는 것!!!
⑤도 많이 본 유물이죠? 신석기 시대에 실을 뽑는 데 사용한 가락바퀴!!!
④번이 조금 헛갈리셨더라도 ⑤번은 확실하게 알고 있으니...그래서 답은 ⑤번이네요.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⑤번입니다.
청동기 시대
16회 고급 3번 문제
3. 청동기 시대의 모습 답④
청동기 시대에 대한 내용은 유물을 주고 그 시대의 사회 모습을 파악하는 문제, 또는 고조선의 세력 범위와 관련된 청동기 유물(고인돌, 비파형 동검, 미송리식 토기)을 찾거나 묻는 문제가 출제됩니다.
따라서 자주 출제되는 유형이고 나오는 부분에서만 출제되어 난이도도 어렵지 않은 편이니 편안한 마음으로 문제를 풀어가시면 됩니다.
청동기 시대의 가장 중요한 두 가지는 꼭 기억하세요.
첫째, 잉여 농산물이 생겨 사유 재산 개념이 생겼다는 것,
둘째, 지배와 피지배 계급이 발생하고 군장이 출현하였다는 것이죠.
제시된 자료는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 유물인 고인돌과 비파형 동검입니다.
청동기 시대에는 경제 부분에서 생산력의 증가에 따라 잉여 생산물이 생기자, 힘이 강한 자가 이것을 개인적으로 소유하였습니다. 생산물의 분배와 사유화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고, 결국 이는 빈부의 격차와 계급의 분화를 촉진하게 되죠.
또한, 정치 부분에서는 청동이나 철로 된 금속제 무기를 가지고 주변의 약한 부족을 통합하거나 정복하는 활동이 활발해집니다. 이를 계기로 부족 내부뿐만 아니라 정복자와 피정복자의 사이에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분화가 더욱 촉진됩니다.
결국 청동기 시대에는 기존의 평등 사회가 계급 사회로 바뀌어 가고 권력과 경제력을 가진 지배자, 즉 족장(군장)이 등장하게 됩니다.
한편, 계급의 분화는 죽은 뒤에까지도 영향을 끼쳐 무덤의 크기와 껴묻거리의 내용에 반영됩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유물이 고인돌입니다. 고인돌은 무게가 수십 톤 이상인 덮개돌을 채석하여 운반하고 무덤에 설치하기까지에는 많은 인력이 필요하였기에 고인돌은 당시 지배층이 가진 정치 권력과 경제력을 잘 반영해 주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ㄱ - 불교가 수용된 것은 삼국 시대입니다.
불교는 삼국이 중앙 집권 국가로 발전하던 시기에 집단의 통합을 위한 목적에서 수용되었습니다.
ㄴ - 청동기 시대부터 지배와 피지배 계급이 발생하고 군장이 출현합니다.
ㄷ - 농경 생활이 시작된 것은 신석기 시대부터입니다.
청동기 시대부터는 벼농사가 처음 시작되었습니다.
ㄹ - 청동기 시대에는 잉여 농산물의 발생으로 재산의 사유화가 진행되기 시작합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ㄴ, ㄹ로 묶인 ④번입니다.
15회 고급 1번 문제
1. 신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의 사회 모습 답④
선사 시대와 관련하여 출제되는 가장 일반적인 유형의 문제입니다.
제시된 문제처럼 유물(석기, 토기 등) 또는 집터 유적지를 각각 주고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의 생활 모습을 파악하는 문제가 자주 출제됩니다.
이러한 유형은 각각의 유물, 유적이 어느 시대의 것인지 파악해야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으니, 구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의 유물, 집터 유적지 사진을 꼭 공부해 두세요.
이 문제는 자세하게 해설하겠습니다(간단한 설명을 보려면 답지 해설로 바로가세요).
(가)는 신석기 시대의 대표적인 빗살무늬 토기, (나)는 청동기 시대의 미송리식 토기입니다.
신석기 시대부터 진흙으로 그릇을 빚어 불에 구워서 만든 토기를 사용하여 음식물을 조리하거나 저장하였습니다.
신석기 시대의 대표적인 토기인 빗살무늬 토기는 도토리나 달걀 모양의 뾰족한 밑 또는 둥근 밑 모양을 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이들이 바닷가나 강가에 지리잡고 생활하였기 때문입니다.
(나)의 미송리식 토기는 밑이 납작한 항아리 양쪽 옆으로 손잡이가 하나씩 달리고 목이 넓게 올라가서 다시 안으로 오므라들고, 표면에 집선(集線)무늬가 있는 것이 특징으로, 주로 청천강 이북, 요령성과 길림성 일대에 분포합니다. 이 토기는 고인돌, 거친무늬 거울, 비파형 동검과 함께 고조선의 세력 분포를 짐작하게 해주는 특징적인 유물입니다.
그럼 두 시기의 특징을 살펴볼까요?
신석기 시대에는 돌을 갈아서 여러 가지 형태와 용도를 가진 간석기를 만들어 사용하였습니다.
조, 피, 수수 등을 재배하는 농경 생활을 시작하였으며, 주요 농기구로는 돌괭이, 돌삽, 돌보습, 돌낫 등이 있었어요.
음식물 조리나 저장을 위해 이른 민무늬 토기, 덧무늬 토기, 눌러찍기무늬 토기, 빗살무늬 토기를 만들어 사용하였으며, 가락바퀴나 뼈바늘을 이용해 옷이나 그물을 만들어 사용하였답니다.
농경을 시작하면서 움집을 만들어 거주하기 시작하였는데, 움집 바닥은 원형이나 모서리가 둥근 사각형이었어요. 그리고 중앙에는 취사와 난방을 위한 화덕이 있었고 화덕이나 출입문 옆에는 저장 구덩을 만들어 식량이나 도구를 저장하였습니다.
그리고 신석기 시대에는 부족 사회를 이루고 있었으며, 아직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발생하지 않고, 연장자나 경험이 많은 자가 자기 부족을 이끌어 나가는 평등 사회였습니다.
이 시기에는 농사에 큰 영향을 끼치는 자연 현상이나 자연물에도 정령이 있다고 믿는 애니미즘이 생겨났으며, 이 밖에도 영혼 숭배와 조상 숭배, 샤머니즘, 토테미즘이 나타났습니다.
청동기 시대에는 생산 경제가 발달하면서 사유 재산 제도와 계급이 나타나고 군장이 출현하였습니다.
이 시기의 전형적인 유물로는 반달 돌칼, 바퀴날 도끼, 홈자귀 등의 석기와 비파형 동검, 거친무늬 거울 등의 청동기, 그리고 미송리식 토기, 민무늬 토기, 붉은 간토기 등의 토기가 있었습니다.
청동기는 만들기가 어려웠고, 대량으로 만들 만큼 재료도 충분하지 않아서 지배 계급의 무기나 장식품으로 사용되었으며, 청동기 시대의 주요 생산 도구는 여전히 돌로 만든 간석기나 나무로 만든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무덤으로는 고인돌, 돌널무덤, 돌무지무덤 등이 있었으며, 계급 사회의 발생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무덤이 고인돌입니다.
집터는 대체로 배산 임수의 나지막한 야산이 있는 곳에 자리잡았습니다.
집터의 형태는 대체로 직사각형이며, 움집은 점차 지상 가옥으로 바뀌어 갔고 주춧돌을 이용하기도 하였습니다.
화덕은 한쪽 벽으로 옮겨지고, 저장 구덩도 따로 설치하거나 한쪽 벽면을 밖으로 돌출시켰으며 창고와 같은 독립된 저장 시설, 주춧돌을 이용하기도 하였습니다.
집터는 넓은 지역에 많은 수가 밀집되어 취락 형태를 이루고 있었으며, 같은 지역의 집터라 하더라도 그 넓이가 다양한 것으로 보아 주거용 외에 창고, 공동 작업장, 집회소, 공공 의식 장소 등도 만들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① 신석기 시대는 계급이 발생하지 않은 평등 사회였습니다.
②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 정치적 지배자인 군장의 무덤입니다.
고인돌은 무게가 수십 톤 이상인 덮개돌을 채석하여 운반하고 무덤에 설치하기까지 많은 인력이 필요하였기 때문에
당시 지배층이 가진 정치 권력과 경제력을 잘 반영해 주는 것입니다.
③ 정착 생활의 시작과 움집의 등장은 신석기 시대부터의 사실입니다.
④ 반달 돌칼은 청동기 시대의 농기구입니다.
청동기 시대의 농기구는 석기임을 잊지 마세요.
⑤ 금속제 무기를 사용한 정복 활동은 청동기 시대부터의 일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④번입니다.
■ 신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 비교
구분 | 신석기 시대 | 청동기 시대 |
시기 | 기원전 8000년경(지금부터 1만 년 전) | 기원전 2000~1500년경 |
유물 | • 간석기 : 돌괭이, 돌보습, 돌낫, 돌삽 • 가락바퀴와 뼈바늘 : 의복 제작 | • 농기구는 간석기 : 반달 돌칼, 바퀴날 도끼, 홈자귀 • 청동기는 무기나 의식용 : 비파형동검, 거친무늬 거울 |
토기 | 이른 민무늬 토기, 덧무늬 토기, 눌러찍기무늬 토기, 빗살무늬 토기 | 덧띠새김무늬 토기, 민무늬 토기, 미송리식 토기, 붉은 간토기, 가지무늬 토기 |
무덤 | 고인돌, 돌널무덤, 돌무지무덤 | |
주거 | 원형이나 모가 둥근 방형의 움집 : 중앙에 화덕 위치, 한쪽에 저장 구덩 설치 | • 직사각형 움집 : 점차 지상 가옥화, 화덕이 한쪽 벽면 에 배치, 저장 구덩 설치, 주춧돌 사용 • 집단 취락(구릉, 산간 배산임수 지역에 위치) |
경제 | 사냥과 어로(후기로 올수록 비중 감소) → 후기 농경 시작 (조, 피, 수수 등을 재배하는 밭농사) | • 밭농사 본격화 : 보리·콩 재배 • 벼농사 시작, 가축 사육 증가 |
사회 | 씨족 사회(혈연 중심) → 족외혼 → 부족 사회, 정착 생활, 평등 사회, 모계 중심 사회 | 생산력 증가와 잉여 농산물 발생, 사유 재산제 제도와 계급의 발생, 직업의 전문화와 분업화 |
신앙 | 애니미즘, 샤머니즘, 토테미즘, 조상신 숭배, 영혼불멸 | 선민 사상, 천신 사상 |
예술 | 조개 껍데기 가면, 흙으로 빚은 얼굴, 치레걸이 등 | 울주와 고령의 바위그림, 청동 제품, 토우 |
13회 고급 3번 문제
3. 움집과 농경무늬 청동기 답③
1점짜리 쉬운 문제입니다.
보통 신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의 집자리를 제시하고 그 시대의 생활 모습을 묻거나 유물을 찾는 문제 형태로 출제되는데, 이 문제는 움집과 청동기 유물을 제시하고 이를 각각 파악하는 문제로 출제되었네요.
(가)는 강원도 양양 지경리의 신석기 움집,
(나)는 대전 괴정동에서 출토된 농경무늬 청동기입니다.
두 유물, 유적 모두 교과서에서 자주 봤던 자료니 어렵지는 않을겁니다.
(가)는 신석기 시대의 움집입니다.
신석기인들은 정착 생활을 하면서 움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신석기 시대의 움집의 특징은 원형이나 모서리가 둥근 사각형 형태에 움집에 바닥을 깊이 판 형태입니다.
또한 움집의 중앙에는 불씨를 보관하거나 취사와 난방을 위한 화덕이 위치하였다는 게 가장 큰 특징입니다.
문제에 제시된 (가)움집에도 중앙에 화덕 자리가 보이죠?
큰 사진으로 보면 금방 알 수 있을 겁니다.

신석기 시대와 청동, 철기 시대의 주거지 특징을 비교해 알아두시죠.
신석기 시대 | ㆍ집터 유적 : 바닷가나 강가 ㆍ움집 구조 : 원형이나 모서리가 둥근 네모꼴, 중앙에 화덕, 남쪽 출입문, 화덕이나 출입문 옆에 위치한 저장 구덩, 한 가족 거주 크기(4~5명) |
청동기~ 철기 시대 | ㆍ집터 유적 : 전통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 지형에 위치 ㆍ가옥 구조 : 대체로 직사각형 형태, 움집에서 점차 지상 가옥으로 변화, 움집을 세우는 데 주춧돌 사용, 화덕이 가장자리로 이동, 저장 구덩을 따로 설치하거나 한쪽 벽면 밖으로 돌출, 창고와 같은 독립된 저장 시설 마련 ㆍ취락 구성 : 정착 생활의 규모 확대 → 넓은 지역에 많은 수의 집터가 밀집, 다양한 용도의 집터 발견 |
(나)의 농경무늬 청동기 앞면에는 따비로 농사 짓는 모습, 뒷면에는 솟대 모습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긴 설명보다는 직접 자료를 보는게 이해가 빠르겠네요.
농경무늬 청동기 앞면과 따비로 농사를 짓는 모습을 확대한 모습(오른쪽)
농경무늬 청동기 뒷면(왼쪽)과 솟대 모습을 확대한 모습(오른쪽)

ㄱ - 신석기 시대에는 화덕이 중앙에 위치하였습니다.
화덕이 구석에 위치한 것은 청동기 시대부터입니다.
ㄹ - (나)는 청동기 시대인들이 만든 것입니다.
빗살무늬 토기는 신석기 시대의 토기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ㄴ, ㄷ으로 묶인 ③번입니다.
8회 고급 1번 문제
1. 청동기 시대 사회상 답④
제시된 자료는 각각 돌널무덤(석관묘), 비파형 동검(요녕식 동검)과 곡옥(굽은옥)입니다.
이는 모두 청동기 시대의 유적과 유물입니다.
청동기 시대의 유물로는 반달 돌칼, 바퀴날 도끼, 홈자귀 등의 석기와 비파형 동검(요녕식동검), 거친무늬 거울 등의 청동기, 그리고 미송리식 토기, 민무늬 토기, 붉은 간토기 등의 토기가 있다. 이들 유물은 청동기 시대의 집터를 비롯하여 고인돌, 돌널무덤, 돌무지무덤 등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① 동굴에서 거주하거나 강가에 막집을 짓고 살았던 것은 구석기 시대입니다.
청동기 시대의 주거지는 대체로 직사각형의 움집이며 점차 지상 가옥으로 바뀌어 갔습니다.
움집 중앙에 있던 화덕은 한쪽 벽으로 옮겨지고, 저장 구덩도 따로 설치하거나 한쪽 벽면을 밖으로 돌출시켰습니다.
창고와 같은 독립된 저장 시설을 집밖에 만들기도 하였고, 움집을 세우는 데에 주춧돌을 이용하기도 하였습니다.
② 농사를 처음 짓기 시작한 시기는 신석기 시대로, 이 시기에 조, 피, 수수 등을 재배하였습니다.
청동기 시대에는 벼농사를 처음 시작하였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③ 철제 농기구는 당연히 철기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철기 시대에 들어서부터 사용되기 시작하였겠죠?
청동기 시대에는 주로 돌도끼나 홈자귀, 괭이 등의 간석기, 또는 나무로 만든 농기구로 땅을 개간하여 곡식을 심고,
가을에는 반달 돌칼로 이삭을 잘라 추수하는 등 농경을 더욱 발전시켰습니다.
④ 청동기 시대에는 앞쪽에는 시냇물이 흐르고, 뒤쪽에는 북서풍을 막아 주는 나지막한 야산이 있는 구릉 지대에서 주로
거주하였습니다.
⑤ 연맹 왕국이 나타나는 시기는 철기 시대 들어서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④번입니다.
3회 1급 3번 문제
3. 비파형 동검, 미송리식 토기, 고인돌이 만들어진 시기의 상황 답③
제시된 유물은 각각 비파형 동검, 미송리식 토기, 고인돌로, 이는 고조선의 세력 범위를 짐작케 해주는 유물입니다.
고조선은 요령 지방을 중심으로 성장하여, 점차 인접한 족장 사회들을 통합하면서 한반도까지 발전하였는데, 이와 같은 사실은 비파형 동검의 출토 분포로써 알 수 있습니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동검인 비파형 동검은 만주로부터 한반도 전역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서 출토되고 있습니다.
비파형 동검의 분포는 미송리식 토기 등과 함께 이 지역이 청동기 시대에 같은 문화권에 속하였음을 보여 주며, 고조선의 세력 범위를 알려줍니다.
① 한 군현 설치를 의미하는 것으로, 한군현은 고조선 멸망(기원전 108) 후 의 일입니다.
② 위만은 준왕을 몰아 내고 스스로 왕이 되었는데(기원전 194), 이 시기부터 철기 문화를 본격적으로 수용하였습니다.
④ 주몽(동명성왕)이 고구려를 건국한 것은 기원전 37년입니다.
⑤ 철기 시대의 일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③번입니다.
2회 1급 8번 문제
8. 미송리식 토기(청동기) 답⑤
청동기 시대의 토기로는 미송리식 토기, 민무늬 토기, 붉은 간토기 등이 있습니다.
그 중 문제에 제시된 설명은 미송리식 토기에 대한 것입니다.
이 토기는 평북 의주 미송리 동굴에서 처음 발굴되어 이름 붙여졌습니다.
밑이 납작한 항아리 양쪽 옆으로 손잡이가 하나씩 달리고 목이 넓게 올라가서 다시 안으로 오므라들고, 표면에 집선(集線)무늬가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주로 청천강 이북, 요령성과 길림성 일대에 분포합니다.
이 토기는 고인돌, 거친무늬 거울, 비파형 동검과 함께 고조선의 세력범위를 추측케 해주는 특징적인 유물입니다.
① 청동기 시대부터 만들어진 민무늬 토기입니다.
② 송국리식 토기입니다.
③ 신석기 시대의 덧무늬 토기입니다.
④ 민무늬 토기입니다.
⑤ 미송리식 토기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⑤번입니다.
토기와 관련하여 선사 시대 통합형 문제로 나온 것을 제시해 봅니다.
조금 어렵게 느껴지겠지만 공부하고 시험에 나오면 맞으면 되겠죠?
선사 시대 통합형
7회 고급 1번 문제
1. 선사 시대의 토기 답③
(가)는 신석기 시대의 대표적 토기인 빗살무늬 토기,
(나)는 신석기 시대 초기에 제작, 사용된 덧무늬 토기입니다.
(다)는 청동기 시대의 미송리식 토기로, 비파형 동검과 탁자식 고인돌과 함께
고조선의 세력 범위를 알려주는 특징적인 유물이죠.
(라)는 삼국 시대 토기입니다.
이를 시기 순으로 연결하면 (나) - (가) - (다) - (라)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③번입니다.
10회 고급 2번 문제
2. 선사 시대의 토기 답③
이 문제는 2회 1급 8번 문제와 비슷하지만 조금더 어렵게 느꼈을 응시자분들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보통 공부를 할 때 신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별로 각 시대의 토기를 공부하잖아요.
그런데 이 문제는 신석기 시대에 사용되거나 걸쳐 있는 토기만 3개가 제시되어
이것을 순서대로 나열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겁니다.
(가)는 신석기 중기 이후부터 사용된 빗살무늬 토기,
(나)는 신석기 시대 초기에 사용된 덧무늬 토기,
(다)는 청동기 미송리식 토기,
(라)는 신석기 말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덧띠새김무늬 토기,
(마)는 청동기 시대 후반에 사용된 붉은 간토기 계열의 가지무늬 토기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③번입니다.
철기 시대
14회 고급 1번 문제
1. 다호리 유적과 관련된 시기의 사회 모습 답①
이 문제는 이미 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2번 문제에 출제되었던 경험이 있는 전과 1범의 문제입니다.
이 문제에 주어진 자료의 유물 개관을 읽어보면 문제를 풀 수 있는 핵심개념들이 나와 있죠?
'경남 창원 다호리', '널무덤', '붓, 오수전' ..... 모두 철기 시대에 관련된 것입니다.
경남 창원 다호리 유적을 비롯한 몇몇 철기 시대 유적지에서는 철기와 함께 명도전, 반량전, 오수전 등 중국 화폐과 함께 발굴되어, 이 시기에 중국과 활발하게 교류했음을 알 수 있게 해줍니다.
그리고 경남 창원 다호리 유적에서는 특이하게 붓이 발굴되었는데, 이를 통해 중국과의 교류, 그리고 당시에 이미 한자를 쓰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① 한자를 쓸 때 사용하는 붓, 한나라의 화폐인 오수전이 발굴되는 것은 중국과의 교류 사실을 보여주는 유물입니다.
② 무리지어 이동 생활을 한 것은 구석기 시대이며, 신석기 시대 후반부터는 정착 생활을 하였습니다.
③ 구석기~신석기 시대는 평등 사회, 청동기 시대부터는 계급이 발생하여 신분제 사회가 성립되었어요.
④ 신석기인들은 가락바퀴나 뼈바늘로 옷이나 그물을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⑤ 애니미즘이 등장한 것은 신석기 시대입니다.
신석기 시대에는 농경과 정착 생활을 하게 되면서 농사에 큰 영향을 끼치는 자연 현상이나 자연계의 모든 사물에 생명
이 있는 것으로 보고, 그것의 영혼을 인정하여 인간처럼 의식, 욕구, 느낌 등이 존재한다고 믿는 애니미즘이 생겨났습
니다. 또, 사람이 죽어도 영혼은 없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영혼 숭배와 조상 숭배가 나타났고, 영혼이나 하늘을 인
간과 연결시켜 주는 존재인 무당과 그 주술을 믿는 샤머니즘, 그리고 자기 부족의 기원을 특정한 동, 식물과 연결시켜
그것을 숭배하는 토테미즘도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①번입니다.
6회 고급 2번 문제
2. 다호리 유적과 신창리 유적 출토 유물을 통해 알 수 있는 사회 모습 답⑤
이번에 출제된 14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와 아주 유사하죠?
위에서 설명했으니 이 문제는 간단하게 설명할게요.
경남 창원 다호리 유적과 광주 신창리 유적은 대표적인 철기 시대 유적지입니다.
경남 창원 다호리 널무덤 유적에서는 붓, 통나무 목관, 오수전, 옻칠 제사 용기 등이 발굴되었어요.
발굴된 붓을 통해 한자의 사용과 중국과의 교류, 한나라의 화폐인 오수전을 통해 당시에 중국과 교류가 있었음을 파악해 볼 수 있답니다.
그리고 전남 광주시 광산구 신창동 독무덤 유적에서는 악기가 발굴돼 당시에 현악기를 사용했음을 알려주고,
옷감을 짜는 베틀의 부속 도구인 바디가 발굴된 것으로 보아 옷감을 생산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⑤번입니다.
10회 고급 4번 문제
4. 독무덤과 널무덤 등장 시기의 사회 모습 답③
위에 풀어본 두 문제가 무덤에서 나온 유물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을 파악하는 것이었다면,
이 문제는 무덤 사진을 주고 이 무덤이 등장한 시기, 그러니까 만들어지기 시작한 시기에 나타난 사회 모습을 물어보는 형태로 출제되었네요.
제시된 유물을 보면 어떤 무덤인지 금방 알 수 있죠?
첫번째 무덤은 항아리 두개를 붙여놓은 것으로 이는 독무덤(옹관묘라고도 함)입니다.
두번째 무덤은 땅속에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시신을 넣은 널(관이라고 보면 될 듯)을 묻는 무덤 양식, 즉 널무덤입니다.
이는 철기 시대에 일반적으로 사용된 무덤 양식입니다(물론 청동기 후기에 일부 유적에서 독무덤이 발굴되기도 합니다).
청동기 시대에는 고인돌, 돌널무덤 등이 만들어졌지요.
그러니 답지에서 철기 시대의 사회 모습을 고르면 되겠지요?
① 애니미즘, 샤머니즘, 토테미즘 등은 신석기 시대 들어 정착 생활과 농경 생황을 하면서 나타난 종교 관념입니다.
② 돌괭이로 농경을 시작한 시기는 신석기 시대죠.
③ 철기 시대는 말 그대로 철기를 사용한 것이니 철제로 무기와 농기구를 만들어 사용했겠지요?
④ 빗살무늬 토기는 신석기의 대표적 토기입니다.
철기 시대는 덧띠 토기, 검은 간토기 등을 사용했답니다.
⑤ 동검(청동칼)과 동경(청동 거울)은 청동기 시대부터 사용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③번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