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유향소 답①
유향소에 대한 내용은 답지로 제시된 적은 몇번 있으나, 단독 문제로는 이번에 처음 출제되었네요.
대화 내용에 있는 '좌수와 별감'이라는 핵심 개념어를 통해 (가)에 들어갈 기구가 유향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번 기회에 유향소 확실히 알아두세요.
조선 시대 지방의 각 군현에서는 그 곳의 양반들이 중심이 되어 향촌 자치를 위한 기구로 유향소(뒤에 향청)를 조직, 운영하였습니다.
유향소는 수령을 보좌하고 향리를 감찰하는 기능을 하였어요. 또한, 향촌 사회의 풍속을 교정하고 백성들을 교화하였으며, 수령에 대한 자문과 함께 수령의 비행을 고발하는 등 오늘날의 지방 의회와 비슷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유향소는 향안(지방 사족(유향품관)의 명단)에 등록된 향촌의 덕망 있는 인사 중에서 선출된 장(長)인 좌수 1명, 별감 2명이 주도하였어요. 이들의 임기는 2년이었으며, 초기에는 선거로 추대되었으나 후기에는 수령이 임명하였습니다.
정부에서는 유향소를 통제하기 위해 중앙에 경재소를 두었어요. 그리고 정부의 현직 고관으로 하여금 자기 출신 지역의 경재소를 관장하게 하여, 그 지역의 유향소 품관을 임명, 감독하며, 출신 지역과 정부와의 중간에서 연락 업무 등 여러 가지 일을 주선하도록 하였습니였다. 이는 고려 시대 사심관(事審官)과 비슷한 역할이었어요.
(이 부분은 참고) 한편, 유향소는 설치와 폐지를 반복하였어요.
처음 유향소를 조직한 유향품관들은 품계상 수령보다 높은 경우가 많아 수령을 능멸하는 일들이 있자, 태종 6년(1406)에는 중앙 집권을 강화하고자 수령권을 강조하면서 유향소를 폐지하였어요. 이후 세종 10년(1428)에 부활되었다가 세조 말년(1468) 이시애의 난 이후 유향소와 수령이 결탁하여 백성을 괴롭힌다는 이유로 다시 폐지되었어요.
이후 성종 19년(1488)에 김종직 등의 사림이 유향소 복립 운동을 전개하여 다시 부활되었습니다.
한편, 훈구파가 경재소를 통해 유향소를 장악하자, 사림은 사마소(司馬所)를 세워 대항하거나 유향소 폐지 운동을 전개
하였어요. 결국 선조 36년(1603)에 경재소는 혁파되었으며, 이때 유향소는 향소, 또는 향청으로 명칭이 변경됩니다.
① 유향소의 주요 기능은 수령을 보좌하고 향리를 감찰하며 향촌 사회의 풍속을 바로잡는 것이었어요.
② 사심관과 기인제에 대한 설명입니다.
고려 태조는 지방 호족을 견제하고 지방 통치를 보완하기 위하여 사심관과 기인 제도를 실시하였죠.
③ 조선 시대에 빈민 구제를 목적으로 설치한 것으로는 의창, 상평창, 환곡제(사창제) 등을 들 수 있습니다.
④ 호장, 부호장은 고려 시대 향리들이 담당하였던 직책입니다.
⑤ 수령에 대한 대한 설명입니다.
군현에 파견된 수령은 왕의 대리인으로, 지방의 행정·사법·군사권을 가지고 있었어요.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①번입니다.
유사 기출문제
적합한 유사 문제가 없어 참고할 수 있는 1문제 제시합니다.
19회 고급 28번 문제
28. 조선 후기의 사회 모습 답①
특정 시기의 사료나 자료를 제시하고 그 시기의 사회 모습을 묻는 문제도 자주 출제되는 문제 유형입니다.
특히, 고려 후기~조선 후기에 이러한 유형이 중요하게 출제됩니다.
또한, 개항기~현대 시기에도 이러한 유형이 자주 출제되는데, 이때는 10년 단위 정도의 짧은 시기를 묻는 문제로 출제됩니다.
이 문제에 주어진 자료의 출전이 "일성록(정조 때부터의 기록", "목민심서(정약용의 저서)"이니 조선 후기임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어요.
또한, 주어진 자료의 내용은 '상민, 천민들이 갓을 쓰고 도포를 입는가 하면, 시전 상인이나 상민도 서로 양반이라 부른다.', '아전들이 길에서 양반을 만나도 절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양반들을 대할 때 너 나하며 예의를 차리지 않는다.'는 내용으로 신분제가 문란해진 조선 후기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럼 조선 후기 사회 모습을 생각하며 문제를 풀어나가면 되겠죠?
조선 후기 사회에서는 양반의 수는 크게 늘어나고, 상민과 노비의 수는 갈수록 줄어들었으며, 농민의 분화가 이루어지는 등 그 동안 사회의 기반을 이루었던 양반 중심의 신분제가 동요하였습니다.
이는 농업 기술의 발달과 이로 인한 농업 경영의 변화, 상공업의 발달에 힘입어 부를 축적한 상민이 지위를 높이거나 역의 부담을 모면하려고 납속과 공명첩 같은 합법적인 방법으로 양반 신분을 사거나 족보를 위조하여 양반으로 행세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노비들도 도망, 군공 등의 방법으로 노비 신분에서 벗어나 상민, 또는 양반이 되는 경우가 빈번하게 일어났어요.
한편, 향촌 사회의 부농은 경제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양반으로 성장하여 종래의 전통적인 양반과 대립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향촌 사회는 종래의 재지 사족의 힘이 약화되고, 부농층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향촌 세력의 힘이 충분히 강해지지 못한 가운데, 수령을 중심으로 한 관권이 강화되고 아울러 관권을 맡아 보고 있던 향리의 역할이 커졌습니다.
이에 따라, 종래에 재지 사족인 양반의 이익을 대변하여 왔던 향회는 주로 수령이 세금을 부과할 때에 의견을 물어 보는 자문 기구로 구실이 변하였습니다.
① 경재소는 선조 때 혁파되었습니다(1603).
유향소는 수령을 보좌하고 향리를 감찰하며 향촌 사회의 풍속을 바로 잡기 위한 기구였어요.
경재소는 중앙 정부가 현직 관료로 하여금 연고지의 유향소를 통제하게 하는 제도로서, 중앙과 지방의 연락 업무를 맡
았습니다.
유향소는 폐지와 복립을 반복하다 사림이 중앙 정계를 완전 장악한 선조 때부터 수령권의 강화로 유향소의 지위가 격
하되었으며, 이를 통할하던 경재소도 폐지되었습니다.
이후 유향소는 향청으로 이름을 바꾸어 부르게 되죠.
② 향회는 향안(지방 사족들의 명단)에 이름을 올린 지방 사족들의 총회를 말합니다.
향회는 지방사족의 이익을 대변해 왔으나, 수령권을 비롯한 관권의 강화 속에 주로 수령이 세금을 부과할 때에 의견을
물어 보는 부세 자문 기구로 구실이 변하였습니다.
③ 상민이나 노비들은 납속이나 공명첩 등의 방법을 통해 합법적으로 신분 상승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④ 관권이 커지자 관권을 맡아 보고 있던 향리의 역할도 자연스럽게 커졌습니다.
이는 세도 정치 시기에 수령과 향리의 자의적인 농민 수탈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오죠.
⑤ 노비들도 다양한 방법을 통해 신분 상승을 꾀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①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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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Curious-Boy 작성시간 15.05.08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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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손주연 작성시간 15.05.15 고려 안찰사,향리
조선 관찰사,향리 ㅡ 잘 구분해 두어야겠구요
서원,향교,향약,유향소...
혼자 공부할땐 어렵지 않더니
문제속에선 헷갈리는 부분들 있더군요
한번 더 보아야겠어요^^ -
작성자leeyoung 작성시간 15.07.15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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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구룡바다 작성시간 15.08.03 좌수,별감자리가 유향소에 있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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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ㅊㅇ 작성시간 16.05.13 관찰사, 향리, 수령, 유항소 헷갈리네요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