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원 동기인 초등 선생님께서 교정의 바싹 말라 떨어지지 않는 나뭇잎을 신기해하셨다. 보통 3월 말이면 한 두 잎 남아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수형 그대로 유지하며 풍성하게 달려있는 잎들이 놀랍고, 봄이 되면 새 잎이 어찌 나올까 궁금하다고 하셔서 자료를 찾아보고 설명해드렸다. 제주도 감귤원에는 비료과다, 양분 불균형으로 빨리 낙엽이 지는 '이상낙엽' 현상도 있다고 하는데, 오히려 쉽게 잎이 떨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풍, 낙엽의 현상을 듣더니 흐뭇해하시는 표정이었다.
보통 단풍은 붉은색?노란색?갈색의 3가지 색깔로 나타나는데 단풍나무?신나무?담쟁이덩굴 등은 붉은색이 돋보이고, 은행나무?아까시나무?자작나무는 노란색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또 감나무는 붉은색과 노란색이 섞여 더욱 오묘한 색채를 자랑한다. 가을철이 되면 월동준비의 첫 단계로 나무는 나뭇잎과 가지 사이에 ‘떨켜층’을 만드는데 이 떨켜층이 형성되면 나뭇잎은 뿌리에서 충분한 물을 공급받지 못한다. 이때 생성된 양분은 잎 안에 남게 되고 이로 인해 잎 안 산성도가 증가한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잎 안에 쌓인 녹말로 인해 엽록소가 파괴되고 대신 엽록소 때문에 보이지 않던 ‘카로틴(Carotene)’이나 ‘크산토필(Xanthophyll)’ 같은 노란색을 띠는 색소가 보이기 시작한다. 또 ‘안토시아닌(Anthocyanin)’ 같은 붉은색을 보이는 색소가 새로 생성되기도 한다. 곱게 물든 은행잎. 은행잎을 물들이는 색소는 크산토필이다. 단풍잎이 붉게 물드는 과정은 은행잎이 노랗게 되는 것보다 복잡하다. 단풍잎에서 붉은색을 내는 색소는 ‘안토시아닌’이다. 그리고 안토시아닌은 나뭇잎이 광합성으로 만들어낸 당분이 여러 단계의 화학반응을 거치면서 생성된다. 특히 식물들이 활성산소 생성을 억제해 잎이 낙엽으로 변하는 것을 늦추려고 안토시아닌을 만든다는 것이 최근 연구에서 밝혀지기도 했다. 참고로 타닌(Tannin) 성분이 있는 참나무류나 너도밤나무의 나뭇잎들은 낙엽이라고 오해하기 쉽지만 잘 보면 커피색의 아름다운 단풍을 품고 있다. 그런데 최근 외국의 식물학자들이 단풍잎은 원래 노랗게 물들었는데 환경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붉은색을 띠도록 진화해왔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그 환경 변화는 다름 아닌 ‘진딧물’이라는 것이다. 잎에서 영양분을 빨아먹는 진딧물이 특히 노란색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한국 미국 캐나다는 산줄기가 대부분 남북으로 뻗어있는 지형이다. 그래서 계절에 따라 기온이 변해도 진딧물이 남북으로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번성할 수 있었다. 나무가 일부러 복잡한 화학반응을 거쳐서라도 잎을 붉게 물들여야 했던 이유다. 이에 비해 유럽에는 많은 산줄기가 동서로 뻗어있다. 진딧물을 포함해 산 속에 사는 여러 동?식물이 기온변화에 따라 옮겨갈 장소가 부족해 자연스럽게 줄었다는 게 연구진의 추측이다. 때문에 유럽의 단풍잎은 굳이 붉게 변하는 수고를 안해도 됐다는 얘기다. 한편, 어린잎이나 줄기가 새롭게 발생하면서 일시적으로 붉은색을 보이다 잎이나 줄기가 성장하면서 붉은색이 없어지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단풍이 아니고 어린잎이나 줄기의 엽록소를 만드는 세포 내의 구조가 완성되지 않은 게 나타나는 것이다. 안토시안은 자외선을 잘 흡수하는 성질이 있고 안토시안을 많이 갖고 있는 조직은 나뭇잎의 표피뿐이다. 때문에 연약한 어린잎이나 줄기가 빨갛게 됨으로써 자외선의 해를 피하는 것이다. 잎이 성숙함에 따라 안토시안은 분해돼 없어지며 엽록소에 의해 녹색으로 변하게 된다. 대부분 식물의 잎들은 녹색을 나타내나 예외적으로 단풍나무의 개량종인 공작단풍, 홍단풍과 같은 나무나 자주색 양배추, 베고니아 등과 같은 초본은 계절과 관계없이 붉은색을 띠고 있다. 이들 식물은 정상적인 녹색종에서 갈라져 나온 변종인 경우가 많은데 안토시안과 공존하는 엽록소에 의해 정상적인 광합성을 해나간다. 단풍이 드는 시기는 기온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한다. 먼저 단풍은 서서히 기온이 낮아질 때 더욱 아름다우나 급격히 기온이 떨어지면 단풍의 멋이 줄어드는 것이 보통이다. 단풍은 하루 중 최저기온이 5도 아래로 내려가야 든다. 그런데 온난화로 인해 기온이 높게 유지된다면 그만큼 단풍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 기온이 떨어지면 나뭇잎 안에서는 초록색을 내는 엽록소(클로로필)가 파괴된다. 봄 여름 내내 엽록소의 기세에 눌려있던 색소들이 바로 이때 기지개를 펴기 시작한다. 보통 나뭇잎에는 색소가 70여 가지나 들어있다. 그리고 기온이 단풍에 영향을 미치는 기간은 대략 1개월가량이다. 즉 10월 초에 단풍이 드는 설악산은 9월 초부터 1개월 동안의 기온을 분석하면 단풍이 언제 찾아오는지 알 수 있다. 또 단풍은 일교차에도 영향을 받는데 일교차가 크면 단풍이 빨리 든다. 일교차가 크면 그만큼 최저기온도 낮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안보다는 일교차가 큰 내륙 지역에서, 평지보다는 높은 산에서 단풍이 빨리 찾아온다. 단풍은 강수량에도 영향을 받는다. 강수량이 적으면 단풍이 들기 전에 잎이 말라버려 낙엽이 돼 버린다. 또 강수량이 많으면 잎이 일찍 떨어진다. 정상 부근은 좋다가도 가을가뭄이 이어지면 단풍의 원색이 살아나지 않고 바짝 말라버린다. 그래서 좋은 단풍을 보려면 적정 수준의 강수량이 중요하다. 사계절 기후변화가 뚜렷한 우리나라의 단풍은 세계적인 절경으로 유명하다. 나무들은 겨울을 나기 위해 잎을 떨어뜨려야 한다. 잎에는 수분이 많아 이를 그대로 갖고 있으면 동해(凍害)를 입게 된다. 겨울에 물이 부족해 식물이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물의 손실을 방지하기 위해 잎의 호흡을 담당하는 기관인 기공을 닫아야 한다. 그런데 기공은 수분을 증발시키는 곳일 뿐 아니라 광합성에 필요한 이산화탄소가 들어오는 통로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수분 부족을 피하기 위해 기공을 닫으면 잎에서 광합성이 일어날 수 없게 된다. 또 주변의 온도가 낮으므로 잎에서의 생화학 반응의 속도는 더욱 느려져 잎은 죽고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결국 낙엽은 식물이 온도와 수분 부족에 적응해서 생긴 현상이다. 가을에 나뭇잎이 떨어지는 낙엽수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은행나무와 단풍나무 같은 낙엽수는 늦가을에 떨켜를 만들어 일제히 잎을 떨어뜨리고 벌거숭이가 된다. 그러나 밤나무나 떡갈나무는 떨켜를 만들지 않는다. 본래 이들 식물이 더운 지역에 살았기 때문에 떨켜를 만들어 낙엽을 떨어뜨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 주된 학설이다. 그 때문에 이들 식물은 겨울이 되어 잎이 갈색으로 변하고 바싹 마르더라도 가지에 붙어 있다가 겨울의 강풍에 조금씩 나무에서 떨어져나가는 것이다. 낙엽수로 유명한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에 나오는 담쟁이덩굴 역시 떨켜를 만들지 않는 식물이다. 낙엽수의 잎 수명은 보통 1년이다. 상록수의 잎은 많은 종류가 2~3년간 유지되다가 새로운 잎이 나게 되면 떨어진다. 보통 상록수로 불리는 침엽수는 낙엽을 만들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침엽수도 낙엽수와 다른 생리 메커니즘을 가졌을 뿐 낙엽을 만드는 것은 마찬가지다. 다만 낙엽수처럼 가지만 앙상하게 남을 정도로 전부다 털어내는 수준이 아니라 어느 정도 몸의 부피를 줄이는 수준에서 잎을 떨어낸다. 침엽수 역시 동절기에는 광합성이나 증산작용 등의 대사작용이 줄어듦으로 인한 불필요한 낭비를 줄이기 위해 몸을 움츠리는 것이다. 가을산에 가보면 소나무 숲 안에 노랗게 변한 솔잎들이 떨어져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소나무의 잎은 한 번 생기면 계속 붙어있는 것이 아니고 잎이 새로 나고 2년이 지나면 잎을 감싸고 있는 비늘이 떨어져 나가면서 잎이 죽는 패턴을 반복하게 된다. 즉 3~4년은 걸려야 새로운 잎이 생기기 때문에 겨울철에도 나뭇잎이 떨어지지 않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참고로 침엽을 가진 상록수 중에는 30년 이상 잎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있다.
낙엽을 떨군 후 식물들이 어떻게 겨울나기 준비를 하는가? 낮은 온도에서 식물들은 광합성 중 효소반응인 암반응(온도가 제한요인)이 급격히 감소한다. 그러나 광화학반응인 명반응(빛이 제한요인)은 온도에 별 영향을 받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낮은 온도에서 식물은 환원된 NADPH2를 축적하게 되고, 결국 순환적 광인산화반응에 의해 ATP를 다량 생산하게 된다. ATP의 다량 생산은 ATP를 필요로 하는 단백질의 합성(흡열반응)을 촉진하게 된다. 이렇게 하여 축적된 수용성 단백질은 빙점을 낮추게 되어 영하의 날씨에도 얼지 않게 된다. 순수한 물은 0℃에서 얼기 시작하지만, 순수한 물에 용질을 많이 녹아있을 수록 빙점은 낮아지게 된다. 세포는 고형물과 액체상태의 물질이 혼합되어 있는 상태이므로 빙점이 항상 0℃이하이기 마련이다. 그래서, 세포가 얼기 시작했다면 이미 온도가 상당히 낮아진 상태다. 세포 내에서 물은 대개 -10℃이내에서 얼기 시작하지만, 조건에 따라 -36℃까지도 얼지 않고 냉각되는 경우도 있다. 이와 같이 빙점 이하의 온도에서 일어나는 피해를 막기 위하여 식물들은 몇 가지 방법으로 겨울을 준비한다. 식물은 당, 유기산, 아미노산, 단백질 등의 용질을 세포에 축적하여 빙점을 낮춘다. 그러나, 이 방법만으로 극히 낮은 온도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에 충분하지가 않으므로 휴면아를 만들어 혹독한 겨울 동안의 추위를 견뎌낸다. 휴면아는 가을에 기온이 5℃ 정도 떨어지면서 형성되는데, 이것은 -40℃ 정도의 혹한을 견딜 수 있으므로 식물들은 겨울이 시작되기 전에 휴면아를 만들어 -20℃~-30℃ 정도의 기온에도 세포는 얼지 않고 겨울을 나게 된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