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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신해품 제4-⑵ 궁자유(窮子喩)

작성자황금빛|작성시간26.06.08|조회수31 목록 댓글 0
이 품에는 수보리(須菩提), 가전연(迦 延), 가섭(迦葉), 목건련(目 連)의 4대 성문이 법화경의 설법을 듣기 전까지는 소승의 깨달음에 스스로 만족할 뿐 부처님의 깨달음의 경지에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부처님의 깨달음을 얻어보려는 용기도 가져 보지 못하였는데, 앞의 비유품 제3에서 성문인 사리불에게 수기(授記) 주심을 보고 성문도 성불할 수 있다는 세존의 선언(일불승)을 확인하게 됩니다. 따라서 그동안의 자기들의 잘못을 반성하고, 부처님께 크나 큰 고마움을 느끼고 구하지도 않은 한량없는 보배를 얻은 느낌이라고 하며, 자기들이 이해한 내용을 궁자유(窮子喩)라는 비유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궁자유(窮子喩)는 법화칠유 중 두 번째의 비유로 일곱 가지 비유 중에서 가장 유명할 뿐만 아니라 모든 경전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그래서 백미에 꼽히는 비유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비유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이 지금 비유를 들어 이 뜻을 잘 밝히겠나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있어 어린 나이에 부모 버리고 도망가 타국에 오랫동안 머물다가 10세, 20세, 내지 50세에 이르러 나이 이미 많고 또 빈곤 더하여 사방으로 옷과 음식 구하려 다니며 각처를 유랑하다가 점점 본국으로 향하여 우연히 그 아버지인 장자(長者)의 집 문전에 이르렀으나 아들은 그 집이 자기 아버지의 집 인줄을 몰랐는데, 이 때 장자는 사자좌에 앉아 있다가 아들을 보자 이내 알아보아 마음 크게 기뻐서 곧 이런 생각하되, 나의 재물창고 지금 물려줄 것 있어 나는 항상 이 아들 생각했는데 문득 그를 보니 내 소원 풀렸음이라. 내 비록 늙었으나 (예같이) 재물을 아끼는 까닭에 곧 옆에 있는 사람 보내어 급히 쫓아가 데리고 돌아오게 하였으나, 그 아들은 갑자기 자기를 잡아가려고 하는 줄 알고 놀랍고 두려움에 질려 땅에 넘어지고 기절하게 되자 이때 장자는 강제로 끌어 올 것이 아니라 방편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다시 행색이 초췌한 두 사람을 보내어 유인하여 데려와 거름을 치고 청소를 하는 막일을 하도록 하였나이다. 그러던 어느 때, 아버지는 일하고 있는 아들을 찾아가 여러 가지로 위로하고 여기에서 오래오래 일하고 있도록 당부하였고 그 후 그 아들은 점차 그 집의 여러 가지 사정과 재산관리에 능숙하게 되기는 하였으나 아직도 주인이라는 생각은 없었나이다. 그러다가 여러 해가 지난 뒤 그 집 주인은 몸이 점점 노쇠하여 머지않아 임종에 이를 것을 알고 많은 사람을 불러놓고, 말하되 `여러분은 알지니, 이는 나의 아들이오! 나에게서 태어난 아들이라 어느 성에서 나를 버리고 달아나 처량하고 괴롭게 보낸지(伶 辛苦) 오십여년이라. 이 애의 본래 이름은 아무개요 나는 아무개라. 그 옛날 본성(本城)에 머물며 걱정하여 찾다가 홀연히 여기서 우연히 그를 만나 같이 살게 되니(得之) 이 애가 실로 나의 아들이요, 나는 실로 그의 아버지라 지금 나의 소유 모든 재산이 다 이 아이의 소유라 먼저 주고받은 것도 이 아이가 모두 아는 바`라 하니, 세존이시여! 이 때 아들은 아버지의 이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해 일찍이 없었던 일이라 하며 생각하기를 나는 본래 마음에 바라던 바가 (아무것도) 없었는데 지금 이 보배창고가 스스로 굴러옴이라 했나이다."

이 비유에서 장자란 곧 부처님이십니다. 그리고 궁자란 바로 사방으로 보잘 것 없는 옷과 음식 구하러 다니며 각처를 유랑하는 즉, 고통에 벗어나려고 우리의 마음 밖에서 길을 찾아 헤매는 미혹한 우리 중생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 중생들은 본래 부처님의 아들로서 누구나 부처님이 될 수 있는 소질 즉, 불성을 우리 속에 갖추고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자비의 부처님께서는 방편을 써서 차근차근 우리의 근기를 높여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궁자유를 읽으면서 장자의 아들이 처음부터 장자의 곁을 떠나지 않았으면 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입니다. 우리 중생들은 본래 정인불성(正因佛性)이라 하여 태어날 때부터 부처님이 될 수 있는 좋은 성품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미혹하기 때문에 그 불성을 개발할 생각을 못하고 부처님의 곁을 떠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좋은 연(緣)에 의해서 이러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어떠한 난간을 무릅쓰고라도 부처님이 계시는 집으로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으로부터 재산을 상속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헤어진 부처님의 품으로 돌아가서 부처님의 아들로서 재산을 상속받는 다는 것이 바로 불자(佛子)의 자각(自覺)인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불퇴전(不退轉)이라는 말처럼 힘든 것이 없습니다. 우리 생활을 되돌아보면 우리는 하루에도 몇천 번씩 지옥계에서 불계(佛界)까지의 10계를 유전하고 있습니다. 법화경을 독경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떨 때는 열심히 환희하는 마음을 가지고 경을 읽습니다. 그러다가 어떨 때는 무척 읽기가 싫어집니다. 법화경이 거룩한 경이라는 사실을 철저하게 믿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지만 게으른 마음이 생깁니다. 그런 마음이 바로 부처님으로부터 받는 재산을 잃는 것입니다. 장자의 아들처럼 나이 어릴 때(어리석어서) 아버지(부처님)를 버리고(가르침을 저버리고) 도망하여 다른 나라(육도 윤회의 삼계화택)에 가서 오래(깨닫지 못하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부처님이 계시는 우리의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적어도 인간계 밑으로 퇴전(退轉)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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