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는 궁자유의 내용중에서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아야 할 부분만을 가려서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나이가 벌써 아주 어려서 아버지를 버리고 도망해 가서"
이 경문은 우리가 업이 무겁고 천박한 미혹의 중생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본래 우리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부처님이 될 수 있는 좋은 성질(正因佛性)이 있지만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고 나이가 들수록 점점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멀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을 아버지를 버리고 도망간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 오래 머물되, 혹 십이나 이십에서 오십 해에 이르러 나이는 이미 오래되고 많아졌어도, 더욱 다시 가난하고 어려워 사방으로 뛰어다니면서 밥과 옷을 구하면서"
이 경문에서 다른 나라란 부처님의 가르침이 없는 곳을 말하며, 나이가 들수록 가난하다는 말은 우리 인간들은 나이가 들수록 아집에 빠져 더욱 미혹해져 부처님의 가르침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은 점점 더 가난해집니다. 그래서 그 가난한 마음을 채우기 위해 이런 저런 것들을 해보지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고 오히려 미혹만 더하는 것입니다.
"차츰차츰 여행하며 다니다가 우연히 본 나라로 향하였나이다."
이 경문은 우리 중생들이 미혹 속에서 헤매다가 우연히 부처님의 가르침을 접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또는 `한번 믿어 볼까 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을 말합니다. 저 자신 가만히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40여년을 살아오면서 몇 번이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접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또한 불교에 관심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는 그 가르침을 받지 않고 그냥 지나쳐버렸습니다. 이처럼 누구에게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접할 연(緣)이 주어지지만 그냥 지나쳐버리기 쉽습니다.
"가난한 아들은 아버지가 큰 힘과 권세가 있음을 보고, 곧 두렵고 무서움을 품고 여기에 이르러 온 것을 후회하며"
이 경문은 우리 중생이 신불(神佛)에 대해 갖는 두려움을 표현한 것입니다. 우리 중생들은 업이 무겁고 죄가 많기 때문에 훌륭한 사람을 보면 스스로 두려움을 가짐을 말한 것입니다.
"가만히 이런 생각을 하되, 「이는 혹시 바로 왕이거나, 혹은 바로 왕과 같으니, 내가 힘써 머슴살이를 하여 물건을 얻을 곳이 아니니, 가난한 동네에 가서 이르러 일할 땅이 있으면 부지런히 하여 옷과 밥을 쉽게 얻는 것만 같지 못하도다."
이 경문은 우리 중생들이 작은 법을 즐겨함을 표현한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너무 훌륭하여 도저히 따라서 하기가 어려울 것으로 지레짐작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려하지 않고 그 대신 외도(外道)의 낮은 가르침을 찾거나 하는 것을 말합니다.
"만약 오래까지 여기에 머물면, 혹은 보고 못살게 굴며 억지로 나에게 일을 시킬 것이리라.」이런 생각을 하고는 빨리 달아나 갔나이다."
이 경문은 힘든 것을 싫어하는 우리 중생의 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처럼 높은 가르침을 수행한다는 것은 무척 힘든 일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힘든 일을 기피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힘들게 노력하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불교는 특히 법화경은 그러한 노력을 하는 과정에서 많은 공덕을 눈앞에 나타나 보여주셔서 불퇴전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일으키게 하는 가르침입니다. 그러므로 힘들 것이라고 지레짐작으로 겁을 먹고 도망갈 것이 아니라 부처님이 계신 문 안으로 빨리 들어가야 합니다.
"때에 부자인 장자는 사자자리에서 아들을 문득 알아보고는, 마음이 크게 기쁘고 즐거워서 곧 이런 생각을 하되, 「나의 재물과 곳집에 감춘 것을 지금에는 맡길 곳이 있도다. 내가 항상 이 아들을 생각하고 그리워하여도 볼 인연이 없더 니, 홀연히 스스로 왔으니 심히 나의 원과 맞음이로다. 내가 비록 나이는 늙었으나 오히려 일부러 탐하고 아꼈노라.」하고, 곧 곁의 사람을 보내어 급히 쫓아가서 데리고 돌아오게 하였나이다."
이 경문은 부처님의 자비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부처님께서는 우리가 아무리 졸렬(拙劣)한 인간이라 하더라도 내치지 않고, 품에 안으시려고 합니다. 그리고 곁의 사람이란 부처님의 가르침을 홍포(弘布)하는 사람입니다.
"이 때에 장자는 장차 그 아들을 달래어 인도하고자 하여 방편을 베풀어서 비밀히 형상과 얼굴이 여위어서 쇠약하여 위엄과 덕이 없는 자 두 사람을 보내되,"
`형상과 얼굴이 여위어서 쇠약하여 위엄과 덕이 없는 자 두 사람`이란 소승의 성문승과 연각승을 비유한 것입니다. 게송(偈頌)에서는 "곧 방편으로써 다시 다른 사람인 애꾸눈이며 난장이고 추하여 위엄과 덕이 없는 자를 보내되,"라고 하였습니다. 대승의 보살승이나 불승에 비해서 소승은 애꾸눈이며 난장이고 추하여 위엄과 덕이 없는 방편설법으로 우리 중생이 작은 법을 즐겨함으로 방편소승으로 우리를 문 안으로 인도하시고자 하는 부처님의 자비를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비밀히라는 것은 본 마음을 숨기고라는 뜻이고 본마음이란 바로 실대승(實大乘)인 법화경의 가르침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때 궁한 아들은 먼저 그 품삯을 받고 이윽고 함께 거름을 버려주니, 그 아버지는 아들을 보고 불쌍히 여기고 그리고 기이하게도 여기었나이다. 또 다른 날에 창살 가운데로 멀리서 아들의 몸을 보니, 병들어 파리하고 시달려서 야위었으며 거름과 흙과 티끌과 먼지에 땀이 나서 더러우며 깨끗하지 못하니,"
이는 부처님께서 보신 우리 중생들의 모습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중생들은 생.노.병.사에서 벗어나지 못한 때가 끼어 더러운 미혹의 존재인 것입니다.
"곧 영락과 가늘고 연한 으뜸가는 옷과 아름답게 꾸민 꺼리를 벗어놓고, 다시 거칠고 해지고 더럽고 기름기가 번드르르한 때 낀 옷을 입되, 티끌과 흙을 몸에 어우러지게 하여 오른손에는 거름 버리는 그릇을 잡아 가지고 두려움을 하고 있는 바의 형상으로 모든 일하는 사람에게 말을 하되, 「너희들은 부지런히 일을 하여 게으르며 잘 쉬려고 하지 말지니라.」하고, 방편의 까닭으로써 그 아들을 가까이 함을 얻고는, "
이 경문은 부처님께서 우리 중생들을 구제하시기 위해서 방편의 몸(應身佛)으로서 이 세상에 출세(出世)하셨음을 비유한 것입니다. 즉, 우리 인간의 눈높이에 맞추어 우리를 교화하시기 위해 구원실성(久遠實成)의 본불(本佛)이시지만 `영락과 가늘고 연한 으뜸가는 옷과 아름답게 꾸민 꺼리를 벗어놓고, 다시 거칠고 해지고 더럽고 기름기가 번드르르한 때 낀 옷을 입되, 티끌과 흙을 몸에 어우러지게 하여 오른손에는 거름 버리는 그릇을 잡아 가지고 두려움을 하고 있는 바의 형상으로` 우리의 옆에 나타나셔서 성불의 길을 가르치시고 또한 계속 수행할 것을 권하시는 것입니다.
이 후의 경문은 교리(敎理)상으로도 아주 중요한 내용이 많으므로 별도의 장으로 상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나이가 벌써 아주 어려서 아버지를 버리고 도망해 가서"
이 경문은 우리가 업이 무겁고 천박한 미혹의 중생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본래 우리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부처님이 될 수 있는 좋은 성질(正因佛性)이 있지만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고 나이가 들수록 점점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멀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을 아버지를 버리고 도망간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 오래 머물되, 혹 십이나 이십에서 오십 해에 이르러 나이는 이미 오래되고 많아졌어도, 더욱 다시 가난하고 어려워 사방으로 뛰어다니면서 밥과 옷을 구하면서"
이 경문에서 다른 나라란 부처님의 가르침이 없는 곳을 말하며, 나이가 들수록 가난하다는 말은 우리 인간들은 나이가 들수록 아집에 빠져 더욱 미혹해져 부처님의 가르침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은 점점 더 가난해집니다. 그래서 그 가난한 마음을 채우기 위해 이런 저런 것들을 해보지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고 오히려 미혹만 더하는 것입니다.
"차츰차츰 여행하며 다니다가 우연히 본 나라로 향하였나이다."
이 경문은 우리 중생들이 미혹 속에서 헤매다가 우연히 부처님의 가르침을 접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또는 `한번 믿어 볼까 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을 말합니다. 저 자신 가만히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40여년을 살아오면서 몇 번이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접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또한 불교에 관심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는 그 가르침을 받지 않고 그냥 지나쳐버렸습니다. 이처럼 누구에게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접할 연(緣)이 주어지지만 그냥 지나쳐버리기 쉽습니다.
"가난한 아들은 아버지가 큰 힘과 권세가 있음을 보고, 곧 두렵고 무서움을 품고 여기에 이르러 온 것을 후회하며"
이 경문은 우리 중생이 신불(神佛)에 대해 갖는 두려움을 표현한 것입니다. 우리 중생들은 업이 무겁고 죄가 많기 때문에 훌륭한 사람을 보면 스스로 두려움을 가짐을 말한 것입니다.
"가만히 이런 생각을 하되, 「이는 혹시 바로 왕이거나, 혹은 바로 왕과 같으니, 내가 힘써 머슴살이를 하여 물건을 얻을 곳이 아니니, 가난한 동네에 가서 이르러 일할 땅이 있으면 부지런히 하여 옷과 밥을 쉽게 얻는 것만 같지 못하도다."
이 경문은 우리 중생들이 작은 법을 즐겨함을 표현한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너무 훌륭하여 도저히 따라서 하기가 어려울 것으로 지레짐작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려하지 않고 그 대신 외도(外道)의 낮은 가르침을 찾거나 하는 것을 말합니다.
"만약 오래까지 여기에 머물면, 혹은 보고 못살게 굴며 억지로 나에게 일을 시킬 것이리라.」이런 생각을 하고는 빨리 달아나 갔나이다."
이 경문은 힘든 것을 싫어하는 우리 중생의 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처럼 높은 가르침을 수행한다는 것은 무척 힘든 일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힘든 일을 기피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힘들게 노력하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불교는 특히 법화경은 그러한 노력을 하는 과정에서 많은 공덕을 눈앞에 나타나 보여주셔서 불퇴전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일으키게 하는 가르침입니다. 그러므로 힘들 것이라고 지레짐작으로 겁을 먹고 도망갈 것이 아니라 부처님이 계신 문 안으로 빨리 들어가야 합니다.
"때에 부자인 장자는 사자자리에서 아들을 문득 알아보고는, 마음이 크게 기쁘고 즐거워서 곧 이런 생각을 하되, 「나의 재물과 곳집에 감춘 것을 지금에는 맡길 곳이 있도다. 내가 항상 이 아들을 생각하고 그리워하여도 볼 인연이 없더 니, 홀연히 스스로 왔으니 심히 나의 원과 맞음이로다. 내가 비록 나이는 늙었으나 오히려 일부러 탐하고 아꼈노라.」하고, 곧 곁의 사람을 보내어 급히 쫓아가서 데리고 돌아오게 하였나이다."
이 경문은 부처님의 자비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부처님께서는 우리가 아무리 졸렬(拙劣)한 인간이라 하더라도 내치지 않고, 품에 안으시려고 합니다. 그리고 곁의 사람이란 부처님의 가르침을 홍포(弘布)하는 사람입니다.
"이 때에 장자는 장차 그 아들을 달래어 인도하고자 하여 방편을 베풀어서 비밀히 형상과 얼굴이 여위어서 쇠약하여 위엄과 덕이 없는 자 두 사람을 보내되,"
`형상과 얼굴이 여위어서 쇠약하여 위엄과 덕이 없는 자 두 사람`이란 소승의 성문승과 연각승을 비유한 것입니다. 게송(偈頌)에서는 "곧 방편으로써 다시 다른 사람인 애꾸눈이며 난장이고 추하여 위엄과 덕이 없는 자를 보내되,"라고 하였습니다. 대승의 보살승이나 불승에 비해서 소승은 애꾸눈이며 난장이고 추하여 위엄과 덕이 없는 방편설법으로 우리 중생이 작은 법을 즐겨함으로 방편소승으로 우리를 문 안으로 인도하시고자 하는 부처님의 자비를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비밀히라는 것은 본 마음을 숨기고라는 뜻이고 본마음이란 바로 실대승(實大乘)인 법화경의 가르침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때 궁한 아들은 먼저 그 품삯을 받고 이윽고 함께 거름을 버려주니, 그 아버지는 아들을 보고 불쌍히 여기고 그리고 기이하게도 여기었나이다. 또 다른 날에 창살 가운데로 멀리서 아들의 몸을 보니, 병들어 파리하고 시달려서 야위었으며 거름과 흙과 티끌과 먼지에 땀이 나서 더러우며 깨끗하지 못하니,"
이는 부처님께서 보신 우리 중생들의 모습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중생들은 생.노.병.사에서 벗어나지 못한 때가 끼어 더러운 미혹의 존재인 것입니다.
"곧 영락과 가늘고 연한 으뜸가는 옷과 아름답게 꾸민 꺼리를 벗어놓고, 다시 거칠고 해지고 더럽고 기름기가 번드르르한 때 낀 옷을 입되, 티끌과 흙을 몸에 어우러지게 하여 오른손에는 거름 버리는 그릇을 잡아 가지고 두려움을 하고 있는 바의 형상으로 모든 일하는 사람에게 말을 하되, 「너희들은 부지런히 일을 하여 게으르며 잘 쉬려고 하지 말지니라.」하고, 방편의 까닭으로써 그 아들을 가까이 함을 얻고는, "
이 경문은 부처님께서 우리 중생들을 구제하시기 위해서 방편의 몸(應身佛)으로서 이 세상에 출세(出世)하셨음을 비유한 것입니다. 즉, 우리 인간의 눈높이에 맞추어 우리를 교화하시기 위해 구원실성(久遠實成)의 본불(本佛)이시지만 `영락과 가늘고 연한 으뜸가는 옷과 아름답게 꾸민 꺼리를 벗어놓고, 다시 거칠고 해지고 더럽고 기름기가 번드르르한 때 낀 옷을 입되, 티끌과 흙을 몸에 어우러지게 하여 오른손에는 거름 버리는 그릇을 잡아 가지고 두려움을 하고 있는 바의 형상으로` 우리의 옆에 나타나셔서 성불의 길을 가르치시고 또한 계속 수행할 것을 권하시는 것입니다.
이 후의 경문은 교리(敎理)상으로도 아주 중요한 내용이 많으므로 별도의 장으로 상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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