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태대사는 이 비유를 근거로 하여 유명한 5시의 교상판석(五時 敎相判釋)을 세웠습니다.
이 비유에서 장자가 그 아들이 문전에 서 있는 것을 발견하고 사람을 시켜 급히 데려오려니까 그 아들이 아버지를 몰라보고 아버지의 권세와 부유함을 보고 놀라서 기절한 것은 화엄경을 설하심에 비유된 것이라 하여 `궁자경악화엄시(窮子驚愕華嚴時)`, 행색이 초췌한 두 사람을 시켜 그 집에 와서 거름을 치고 청소하는 막일을 시키는 등으로 궁자(窮子)의 수준에 맞는 일을 시키는 것이 아함경(阿含經)을 설하신 것에 비유된 것으로 `제분정가아함시(除糞定價阿含時)`이며, 장자가 몸소 그 아들에 접근하여 여러 가지 당부하고 가르쳐 궁자가 몸은 비록 천한 상태에 있지마는 그래도 집 안팎을 자유롭게 드나들게 되었다고 한 것은 방등경(方等經)을 설하신 것에 비유된 것이라 하여 `출입자재방등시(出入自在方等時)`, 그 뒤 장자가 병이 들어 궁자에게 이르기를 "이 집안의 일을 네가 다 알아서 처리하라."고 하며 재산관리를 맡긴 것은 반야경을 설하신 것에 비유된 것으로 `영지보물반야시(令知寶物般若時)`라 하며, 세월이 흘러 아버지가 임종을 맞으면서 "너는 나의 아들이라. 나의 재산을 전부 너에게 물려주노라."고 재산 상속을 선언한 것은 법화경과 열반경을 설하신 것에 비유된 것이라 `전부가업법화시(傳付家業法華時)`라고 합니다.
이처럼 신해품 제4의 궁자유는 천태대사의 5시 교상판석의 근거가 되는 중요한 품입니다.
원래 인도에서는 불교사상의 발전과 동시에 여러 경전들이 순차적으로 결집되었기 때문에 교상판석이라는 것이 없지만 중국에서는 이러한 경전들이 한꺼번에 들여왔기 때문에 부처님의 가르침의 순서를 놓고 최고의 경전을 밝히는 교상판석이 발달되었으며, 이러한 교판은 단순히 경전의 성립 순서를 밝히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불교사상을 이해하는 체계로서 그 자체가 불교사상으로 발전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최근의 학자들이 직접 인도원전을 가지고 연구한 결과 경전의 성립순서가 중국에서의 교판과 일치하지 않음을 입증하고 있지만, 학문이 아닌 신앙의 관점에서 볼 때 경전의 내용에 따라 교판을 세우는 것은 합당하며, 그 교판에 따라 불교의 사상과 교리를 이해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법화행자들은 최근 불교학자들의 연구성과에 구애받지 말고 천태대사께서 신심을 가지고 교판한 이 오시교의 관점을 유지하며, 우리가 경전중의 왕인 법화경을 받들고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져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