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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신해품 제4-⑸ 사실단(四悉檀) | [지광]법화경공부

작성자황금빛|작성시간26.06.08|조회수19 목록 댓글 0

부처님의 선교방편(善巧方便)-사실단(四悉檀)

영락과 가늘고 연한 으뜸가는 옷과 아름답게 꾸민 꺼리를 벗어놓고, 다시 거칠고 해지고 더럽고 기름기가 번드르르한 때 낀 옷을 입되, 티끌과 흙을 몸에 어우러지게 하여 오른손에는 거름 버리는 그릇을 잡아 가지고 두려움을 하고 있는 바의 형상으로 모든 일하는 사람에게 말을 하되, 「너희들은 부지런히 일을 하여 게으르며 잘 쉬려고 하지 말지니라.」하고, 방편의 까닭으로써 그 아들을 가까이 함을 얻고는, 뒤에 다시 일러서 말을 하되, 「애달픈 남자여, 너는 항상 여기서 일을 하고 다시는 다른 데로 가지만 말면, 마땅히 너에게는 품삯을 더 주며, 모든 필요한 바 있는 동이, 그릇, 쌀, 밀가루, 소금, 식초 및 속한 것을 스스로 의심하여 어렵게 여기지 말지니라. 또한 늙어서 곤한 심부름꾼이 있어 필요하면 도와 주리니, 스스로 좋아하여 뜻을 편안히 하여라. 나는 너의 아버지와 같으니 다시는 근심과 걱정을 하지 말지니라. 까닭은 무엇인가 하면, 내 나이는 많이 늙었으며 그러나 너는 젊고 굳세며, 네가 항상 일할 때에 속이거나, 게으르거나, 성내거나, 한탄하거나, 원망하는 말이 있은 적이 없으며, 도무지 너에게는 이 모든 나쁜 것이 있음이 다른 일하는 사람과 같이 보이지를 아니하니, 지금부터 뒤로는 낳은 바 아들과 같이 하리라.」하고 곧 때에 장자는 다시 자를 지어 서 주고, 이름을 아이라고 하였나이다. 

신해품의 궁자유 중의 이 대목을 읽을 때마다 우리는 부처님의 대자비에 찬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거룩하신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몸을 낮추시고 "영락과 가늘고 연한 으뜸가는 옷과 아름답게 꾸민 꺼리를 벗어놓고, 다시 거칠고 해지고 더럽고 기름기가 번드르르한 때 낀 옷을 입되, 티끌과 흙을 몸에 어우러지게 하여 오른손에는 거름 버리는 그릇을 잡아 가지고 두려움을 하고 있는 바의 형상으로" 즉, 우리 범부중생의 하찮은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셔서 우리가 알 수 있는 말로서 우리를 구제하기 위하여 가르치심을 주십니다. 
원래 부처님께서는 우리 중생이 부처님의 도에 들게 하도록 가르침을 주시지만 부처님이 깨달으신 본회(本懷)인 제법실상을 설해봐야 우리 중생의 근기가 낮아 도저히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할 수 없으므로 이처럼 우리와 친근한 모습으로 우리의 곁에 나타나셔서 낮은 가르침부터 설하셔서 우리의 근기를 높여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설교하는 방법을 사실단(四悉檀)이라고 합니다. 실(悉)이란 `죄다`, `모조리`라는 뜻이고 단(檀)이란 `준다`, `베푼다`의 뜻으로 일체의 중생에게 교를 남김없이 베풀어주는 그 방법이 곧 사실단입니다. 인간에는 영리한 사람도 어리석은 사람도 있습니다. 착한 사람도 악한 사람도 있습니다. 성질도 욕심도 근기도 가지가지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세계실단(世界悉檀), 위인실단(爲人悉檀), 대치실단(對治悉檀), 제일의실단(第一義悉檀)의 네 가지의 방법으로 우리 중생을 교화하십니다.
첫째 세계실단의 세계란 서간사 또는 세속의 뜻입니다. 우선 우리의 귀가 솔깃해지도록 우리가 관심을 갖는 보통의 세속적인 것을 설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에 관심을 갖도록 유인하는 방법입니다.
둘째 위인실단은 이렇게 관심을 가진 중생의 근기에 맞춰 그에 적당한 가르침을 설하는 방법입니다. 중생의 성품은 가지가지입니다. 그러므로 가르침의 수단도 여러 가지가 되는 것입니다. 각자의 성품이나 수준에 맞춰 가르침을 설함으로서 그 신심의 깊이를 더해가게 하는 것입니다.
셋째 대치실단은 상대의 결점을 지적하고 그 결점을 고치는 길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절복(折伏)이라는 것도 대치실단에 들어갑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어느 정도 들어가게 되면 혼란이 생길 수 있습니다. 팔만사천의 법문중에서 어느 것이 옮고 또 어느 것이 최상의 가르침인지 혼란이 옵니다. 그리고 자신의 판단으로 우열을 논하게 되고 증상만에 빠지기 쉽게 됩니다. 그럴 때 이 대치실단이 필요합니다. 근기가 낮아 성품이 비열한 사람에게 결점을 지적하고 바른 가르침을 설해봐야 원망만 들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으로 하여금 부처님의 길에서 몰아내게 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이는 불성을 끊는 죄악입니다. 그러므로 대치실단이라는 것은 상대방을 살펴, 그러한 비판을 감내할 수 있을 정도로 근기가 성숙되어 있음을 확인한 다음 가르치는 방법입니다.
우리 가정에서도 그러한 일이 흔히 일어납니다. 부모로서 자식이 잘되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이 없겠지만 잘못된 훈육방법은 자식을 밖으로 내몰고 비행청소년이 되도록 합니다. 잘 해보려고 한 것이 결국은 자식의 앞길을 망쳐버립니다. 그러므로 자식을 키우는 부모는 지혜로워야 합니다. 그 지혜는 우리가 신앙하는 법화경을 수지하고 신해함으로서 얻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바른 길로 유인하여 알아듣도록 설명하고 잘못된 점은 지적하면서 가르쳐 나아가는 것이 제일의(第一義)를 알게 됩니다. 제일의(第一義)라는 것은 바로 부처님이 깨닫고 계신 것이므로 그 제일의를 깨닫게 하는 것이 바로 제일의실단입니다. 가르침의 최종 목적인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아이들에게 부모로서 가르침을 주어야 할 때에도 먼저 아이들이 부모의 가르침에 관심을 갖도록 유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눈 높이에서 아이들이 알 수 있는 말로 차근차근 알아듣게 이야기를 해야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야기에는 분명히 목적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잘한 일에는 칭찬을 아끼지 말아야 하지만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따끔하게 타일러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칭찬과 처벌 사이에는 분명한 원칙이 있으며, 그 밑바탕에는 부모의 사랑이 있음을 아이들에게 알게 해줘야 합니다. 이러한 원칙 또는 목적은 아이들이 장성해서는 사회의 일원으로서 훌륭한 인간이 되는 길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 원칙 또는 목적이 바로 제일의실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행동, 말, 사고 등에는 항상 제일의(第一義)를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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