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의 말을 마친 수보리 등의 4대성문은 자신들이 부처님의 아들임을 분명히 알지 못하고 늘 가지가지 괴로움 가운데서 번민하고 있었음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이 세 가지 괴로움의 까닭으로써 나고 죽는 가운데에서 모든 뜨거운 고달픔을 받고 미혹하여 아는 것이 없어서 작은 법에만 즐거이 집착하였나이다."
우리들은 괴로움이라는 의미를 힘들고 괴롭다는 정신적, 육체적 고통으로 극히 좁은 범위로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즐거움도 괴로움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들에게 공부를 열심히 시켜서 좋은 성적을 올렸을 때 부모들은 즐거워합니다. 그러나 이이들에게는 그것이 부담이 됩니다. 다음에는 더 좋은 성적을 올려야 한다는 심적인 압박감이 스트레스가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성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 큰 노력을 해야 합니다. 노력을 하는 것 자체는 나쁠 것도 없고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지만 그것이 스트레스로 괴로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삶 자체가 모두 괴로움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괴로움의 정체를 바로 알고 올바르고 현명하게 대처함으로서 행복한 생활을 누려갈 수 있는 것입니다.
위의 경문에서처럼 우리의 삶에서 우리가 겪게되는 이 모든 괴로움을 세가지 괴로움(三苦)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3고는 고고(苦苦), 괴고(壞苦), 행고(行苦)입니다.
먼저 고고(苦苦)는 누가 보아도 즉시 괴로움임을 알 수 있는 괴로움입니다. 병이 들어서 아픈 것과 같은 고통에서 오는 괴로움입니다.
괴고(壞苦)는 지금까지 즐겁다, 재미있다고 생각한 것이 차차 파괴되어 없어지는 이유로 괴롭게 느끼는 것입니다. 화무십일홍이라고 합니다. 꽃이 예쁘게 핀 것을 보면 마음이 즐겁습니다. 그러나 그 예쁜 꽃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곧 떨어져 버립니다. 무상(無常)인 것입니다. 그래서 괴로운 것입니다. 이러한 괴로움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크게 느낍니다. 몸이 아프고 기력이 옛날과 같지 않음을 느낄 때면 젊은 날에 대한 아련한 기억과 함께 서글픈 마음이 듭니다. 그런데 이 괴고가 있기 때문에 인색한 마음이 생깁니다. 특히 지위가 높을수록, 가지고 있는 것이 많을수록, 나이가 들수록 인색한 마음이 더 생깁니다.
예를 들어 아이들은 어릴 때는 부모를 잘 따릅니다. 부모가 어디를 가던지 꼭 따라가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크면 자기 나름의 세계를 가지게 되고 서서히 부모와 멀어집니다. 이 때 부모들은 자식들에 대해 서운한 감정을 가집니다. 좀 더 커서 사회에 진출하게 되면 자식 얼굴보기도 어려워집니다. 그러면 `이놈들이 나를 싫어하는가` 하는 의혹도 생기게 됩니다. 옛날처럼 부모 주위에서 부모를 즐겁게 하던 그때가 그리워집니다. 자꾸 서운한 감정이 커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식이 결혼해서 며느리가 들어오게 되면 고부간의 갈등이 생깁니다. 시어머니 쪽에서는 `내 자식`이라는 생각을, 며느리 쪽에서는 `내 남편`이라는 서로 나에게 속한 사람이라는 의식이 정면충돌하여 갈등이 생기게 됩니다. 나의 것에 대한 집착과 괴고에 의한 인색함이 바로 갈등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바른 신앙입니다. 곧 마음공부입니다. 놓는 것입니다. 괴고가 우리 삶의 본질 중의 하나임을 깨닫고 나를 그리고 인색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먼저 버려야 할 사람은 바로 윗사람인 것입니다. 세상을 많이 산만큼 좀 더 현명하게 처신을 해야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버림으로서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 법화행자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인 것입니다.
행고(行苦)는 사물이 변해 가는 것이 괴로움이 되는 것입니다. 행(行)이란 사물이 변화하는 것으로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 나쁘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사랑이 있습니다. 처음 남녀가 만나 사랑을 느끼면 두 사람 사이가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떨어지기 싫어집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 사랑이 식고 상대의 나쁜 점이 자꾸 보입니다. 싫어집니다. 결혼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위 말하는 권태기가 옵니다. 그럴 때 사람들이 행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포기하는 것이고 둘째는 극복하는 것입니다. 상대를 이해하고 상대의 입장에서 상대가 원하는 것을 해주는 마음이 있다면 극복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을 버려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올바른 신앙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올바른 신앙은 우리의 생활을 행복하게 해주고 안온(安穩)하게 해준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나만을 생각해서는 이러한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삼고의 원인을 부처님께서는 사성제에서 분명히 밝히셨습니다.(사성제에 대해서는 근본불교교리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곧 무상이란 것입니다. 인간이란 존재가 무상하기 때문에 그리고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는 데 그런 나에 집착하기 때문에 갈애(渴愛)가 생기고 그것이 바로 고의 원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고를 멸하여 열반적정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그 길은 방편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세상과 떨어져서 나만의 열반적정을 찾아 헤매는 일이 우리 법화행자에게는 있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세상과 부딪치면서 그리고 세상 속에서 법화경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함으로서 부처님처럼 일체 중생에게는 아니더라도 나 개인뿐만이 아니라 나의 가족과 그리고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라도 행복을 주고 또한 나로 인해 행복함을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바로 진정한 법화행자의 길이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