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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사구시(實事求是),

작성자백장 / 서재복|작성시간24.12.23|조회수132 목록 댓글 3

실사구시(實事求是)

사실에 토대하여 진리를 탐구하는 일이란 뜻으로,

공론만 일삼는 양명학에 대한 반동으로서

청조의 고증학파가 내세운 표어로,

문헌학적인 고증의 정확을 존중하는 과학적,

객관 주의적 학문 태도를 일컫는 말이다.

   實 : 열매 실
事 : 일 사
   求 : 구할 구
   是 : 바를 시

출전 : 한서(漢書) 하간 헌왕전(河間獻王傳)

사실에 입각하여 진리를 탐구하려는 태도를 일컫는 말이다.

즉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져 보는 것과 같은

실험과 연구를 거쳐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객관적 사실을 통하여 정확한 판단과 해답을

얻고자 하는 것이 실사구시(實事求是)이다.


이것은 한서(漢書) 卷53 열전(列傳)

第23 경십상왕전(景十三王傳) 중

하간헌왕덕전(河間獻王德傳)에 나오는

'수학호고 실사구시(修學好古實事求是)'에서

비롯된 말로 청(淸)나라 초기에 고증학(考證學)을

표방하는 학자들이 공리공론(空理空論)만을 일삼는

송명이학(宋明理學)을 배격하여 내세운 표어이다.

청나라 고증학파가 내세운 학문의 방법론으로

실질적인 일에 나아가 옮음을 구한다는 말이다.

한나라 경제에게는 유덕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유덕은 하간왕이 되었는데,

고서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것을 좋아했다.

당시에는 진시황이 유학과 관련된 대부분의 서적을

불태운 상황이라서 고서적을 구하기 어려웠고,

책값도 비싸서 적잖은 돈이 필요했다.

유덕이 학문을 좋아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많은 사람이 조상들이 물려준 옛책을 그에게 바쳤으며,

그를 따르는 학자들은 그와 함께

고서를 연구하고 정리했다.

한무제가 즉위하자 유덕은 여러 학자와

고대 학문을 연구해 칭송을 받았는데,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학문 연구를 즐길 뿐만 아니라

옛서적을 좋아하며, 항상 사실로부터

옳은 결론을 얻어낸다(修學好古 實事求是)"고 했다.

'실질적인 일에 나아가 옳음을 구한다' 또는

'사실을 얻는 것을 힘쓰고 항상 참 옳음을 구한다'로

풀이되는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출전은

한서(漢書) 하간 헌왕전(河間獻王傳)에 보이는데,

학문 방법론으로 제기된 것은

청대 고증학자들에 의해서다.

고증학의 학풍은 경전의 일자일구(一字一句)에 대해

정확히 자구를 해석하고 고증하는 것이 특징이다.

고증학자들은 송나라와 명나라의 학문이

경전의 본뜻에 어긋난 주관적인 해석에

빠지는 경향이 있으며,

그것은 허망한 담론이라고 주장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후기

김정희의 '실사구시론'이 유명하다.

그 개요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실사구시라는 말은

학문을 하는 데 가장 요긴한 방법이다.

 

만약 실사(實事)를 일삼지 않고

공소(空疎)한 학술만을 편하다고 여기고,

그 옳음은 구하지 아니하고

선인(先人)의 말만을 위주로 하면

그것은 성현의 도에 배치된다.

한유(漢儒)들은 경전을 훈고함에

실사구시하지 않음이 없었으나,

진(晉) 이후로 노장(老莊)과 불교가 극성함에

학술이 일변해 실사구시와는 상반되었다.

송대의 유학자들은 성리(性理) 등의 일에서

도학(道學)을 천명해 옛사람이

발하지 못한 바를 발하기도 하였으나

오직 육왕학파(陸王學派) 등이 공허함을 답습해

유학을 불교에 끌어들이기도 하고

심지어는 불교를 유학에 끌어들이기도 하였다.

학문의 도는 이미 요(堯), 순(舜), 우(禹), 탕(湯),

문(文), 무(武), 주공(周公)을 귀착점으로 삼은즉

마땅히 실사구시해야 하며

공허한 이론을 따르는 것은 옳지 않다.

 

학자는 한유들이 정밀하게

훈고하는 것을 높이 본받아야만 한다.

성현의 도는 비유컨대 큰 저택과 같아서

주인은 항상 당실(堂室)에 거처하고,

당실은 문지방을 통하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다.

훈고하는 일은 마치 문지방과 같다.

그러므로 학문을 함에 반드시

정밀한 훈고를 구하는 것은

당실에 잘못 들어가지 않게 하기 위함이며

훈고로만 끝내야 할 일도 아니다.

한유들이 당실을 깊이 논하지 않는 것은

문지방이 잘못되지 않으면

당실도 스스로 잘못되지 않기 때문이다.

진송(晉宋) 이후 학자들은 고원(高遠)한 것만을 힘쓰고

공자를 높이면서 성현의 도는 이와 같이

천근(淺近)한 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문지방을 싫어하고 박대해 내팽개치고는

별도로 신묘하고 고원한 것을

초월한 곳에서 구하고자 하였다.

대저 성현의 도는 실천궁행(實踐躬行)하는 데 있으니,

공허한 이론은 숭상하지 말아야 하며,

실한 것은 마땅히 탐구하고 허한 것은 버려야 한다.

그러므로 학문하는 길은 반드시

한학(漢學)·송학(宋學)으로 나눌 것도 아니고

정현(鄭玄),왕충(王充)의 훈고학과 정주(程朱)

성리학의 장단점을 비교할 것도 아니며,

주자학과 상산학(象山學) 등의 문호를 다툴 것도 아니다.

다만, 널리 배우고 힘써 행하되,

오로지 실사구시 한마디 말을

주로 하여 실천하면 된다."

여기에서 김정희의 실사구시론 내용은

두 가지로 압축해볼 수 있다.

 

하나는 정밀한 훈고를 구한다고 하는 것(精求訓詁)이고,

다른 하나는 몸소 행해 실천해야 한다는 것(實踐躬行)이다.

김정희보다 조금 앞서

홍석주(洪奭周)도 실사구시를 말하였다.

 

그의 실사구시는

청대 고증학에 대해 비판적이다.

그는 고증학이 의리를 뒤로 미루는 것에 대해 반대하고

고증과 의리가 병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마찬가지로 공리공론만 일삼는

성리학의 이론에는 반대하며

무실(務實)과 실사(實事)를 강조하였다.

특기할만한 일은 홍석주의 실사구시론이

성리학과 고증학을 조화시키는

방향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이 성리학을 반대하고

고증학만을 추구하는

김정희의 실사구시론과 비교된다.

 

-옮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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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백장 / 서재복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12.23 흐린날씨를 보이는 월요일날 아침시간에 컴앞에서 음악소리와.
    교훈글을 읽으면서 쉬었다 갑니다 오늘의 날씨는 대체로 맑은 한파 날씨를 보인다고 합니다.
    연일 영하의 날씨 속에서 몸 관리를 잘 하시고 한주도 잘 설계도 하시고 즐거운 한주를 보내시길 바람니다.
  • 작성자백장 / 서재복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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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나경주 | 작성시간 24.12.23 한무제가 즉위하자 유덕은 여러 학자와
    고대 학문을 연구해 칭송을 받았는데,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학문 연구를 즐길 뿐만 아니라
    옛서적을 좋아하며, 항상 사실로부터
    옳은 결론을 얻어낸다(修學好古 實事求是)"고 했다.

    오늘날 우리 학문도 종교도 정치도 실사구시 정신으로
    돌아가야 모든 것이 바르게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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