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쓴 이 : 조경구
대부분의 부모님들이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자기 자식이 혹 천재가 아닌가 깜짝깜짝 놀라곤 합니다.
엎어도 천재, 기어도 천재, 일어나 앉아도 천재. 서도 천재, 걸어도 천재. 남들 다 하는 쉬를 겨우 가릴 줄 알게 되어도 천재, 뜻모를 단어를
웅얼거려도 천재.
제가 빨아먹어 흐물흐물해진 과자는 다른 아이에게 쓱 넘겨주고,
저는 기어이 새 과자를 달라고 떼를 써도 천재.
그런데 어쩌면 이 세상의 어린애들은 진정 모두 천재일지도 모릅니다.
그 천재를 진정한 천재로 완성시키지 못하는 이 땅의 부모님, 사회, 제도가 문제겠죠.
여기 다섯 살짜리 천재를 한 명 더 소개합니다. 다만 한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제발 자기 아이와 비교하려 하지 마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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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 때 김시습이라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세 살 때, 유모가 맷돌에 보리를 가는 모습을 보고
이렇게 읊었답니다.
*無雨雷聲何處動(무우뢰성하처동)
(雷는 우레 뢰, 聲은 소리 성, 雷聲은 천둥소리, 하처何處는 어느 곳.
보통 7언시는 2+2+3으로 끊어 읽습니다. 이 시는 無+雨雷聲 즉 "우레
소리가 없다"가 아니라 "無雨인데 雷聲이 何處에서 動하나"로 읽어야
합니다.)
= 비도 없이 천둥소리 어디서 나나
*黃雲片片四方分(황운편편사방분)
(黃은 누를 황, 雲은 구름 운, 片은 조각 편)
=누런 구름 조각조각 사방에 흩어지네
과연 세 살이라고 믿어지십니까? 말이나 겨우 할 나이에 시를 짓다니,
더구나 한시를.....
그런데 다섯 살 때는 또 이런 일도 있었답니다.
정승 허조(許稠)가 찾아와
"나는 노인이니 '늙을 노(老)'자로 글을 만들어 보라"고 하니 즉시 이렇게 받더랍니다.
*老木開花心不老(노목개화심불로)
= 늙은 나무에서 꽃이 피니 마음은 늙지 않았네
단지 늙을 로(老)자를 넣어서 글자 수를 끼워 맞춘 것만이 아니라
천지 자연의 변화하는 이치에 기탁하여, 노인의 젊음을 바라는 마음까지 짚어낸 참으로 멋들어진 글을 지은 것입니다. 그것도 다섯 살짜리 어린 아이가.
이제 바로 그 김시습의 이야기입니다. 어째 만만치 않은 얘기가 이어질 것 같지 않습니까?
*金時習(김시습)이 五歲(오세)에 通中庸大學(통중용대학)하니
(歲는 해 세. 나이 세. 通은 통할 통. 통달하다. 中庸과 大學은 유교의
경전인 사서四書)
= 김시습이 다섯 살 때에 중용, 대학에 능통하니
*世宗(세종)이 聞之(문지)하고
(世宗은 세종대왕, 聞은 들을 문, 之는 그것이라는 뜻의 대명사. 김시습이 똑똑하다는 소문)
= 세종께서 그 소문을 들으시고는
*召致承政院(소치승정원)하사 試之曰(시지왈)
(召는 부를 소, 불러 모은다는 뜻의 소집召集이 있죠. 致는 이를 치. 召致는 불러 오다. 승정원은 조선시대에 왕명을 맡아 보는 비서 기구라고 보면 됩니다. 試는 시험할 시)
= 승정원에 불러와서, 시험해 보고자 말씀하시기를
*童子之學(동자지학)은 白鶴(백학)이 舞靑松之末(무청송지말)이로다 하니
(童은 아이 동. 舞는 춤출 무, 靑은 푸를 청. 松은 소나무 송. 어떤 판본에는 허공 공空으로 된 곳도 있습니다. 末은 끝 말)
= "동자의 학문은 흰 학이 푸른 소나무 끝에서 춤추는 것과 같도다" 하시자
*時習(시습)이 對曰(대왈)
= 시습이 대답하여 아뢰기를,
*聖主之德(성주지덕)은 黃龍(황룡)이 飜碧海之中(번벽해지중)이니이다 하다
(聖은 성스러울 성, 主는 임금 주, 黃은 누를 황, 龍은 용 룡, 황색은 중앙의 색이므로 임금을 상징하고, 용도 임금을 상징하는 동물입니다.
飜은 뒤집을 번, 한문을 우리말로 뒤집어 풀이하니까 번역飜譯입니다. 碧은 푸를 벽, 푸른 눈이기 때문에 벽안碧眼의 서양인이라고 합니다. 碧海는 푸른 바다, "뽕나무 밭이 푸른 바다가 되었다"는 뜻의 한자 성어는? 그렇죠, 바로 상전벽해桑田碧海입니다)
= "임금님의 덕은 누런 용이 푸른 바다 가운데서 꿈틀거리는 것 같습니다." 하고 말했다.
童子(동자)의 학문과 聖主(성주)의 덕, 춤추는 白鶴(백학)과 꿈틀거리는 黃龍(황룡),
靑松(청송)의 끝과 碧海(벽해)의 가운데, 참으로 정확하고도 상상력 넘치는 댓구입니다.
과연 입이 딱 벌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나라의 최고 높은 분 앞에서 눈하나 깜박이지 않고
(물론 때묻지 않은 어린아이니까 오히려 더욱더 그럴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임금의 성덕을 찬양하는 최상의 댓구를 쏟아낸 다섯 살짜리 어린 소년.
(이게 어른들의 입에 발린 아부가 아닌 것 또한 분명합니다)
이건 앞서 본 무일이 정도의 재치 차원이 아닌 듯합니다. 분명 한 수
윕니다.
*上(상)이 敎曰(교왈)
(上은 윗 상이지만 여기서는 임금, 敎는 가르칠 교. 임금의 명령을 敎라고 부릅니다.)
= 임금께서 명을 내리시기를
*待年長學業成就(대연장학업성취)하여 將大用(장대용)하리라 하고
(待는 기다릴 대, 長은 긴 장, 자랄 장. 成은 이룰 성, 就는 나아갈 취.
將은 장차 장)
= "네가 나이 들어 학문이 이루어지길 기다려, 장차 크게 쓰겠노라"고
약속하고,
아직 어린 관계로 지금 당장은 쓸 수 없겠지만
네가 벼슬에 오를 수 있는 나이가 되고, 학업이 크게 이루어지면 장차
등용하겠다.
그러고 나서 세종은 곁에 있던 세자(문종)와 세손(단종)을 가리키면서
"저 두 사람이 너의 임금이 될 것이다. 잘 기억해 두어라" 라고 했다고
합니다.
임금으로부터 인정받은 천재성, 그리고 출세와 등용의 보장.
한미한 집안에 태어난 김시습으로서는 대단한 영광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임금께서는 말로만 칭찬하고 만 게 아닙니다.
*卽賜帛五十匹(즉사백오십필)하여
(卽은 곧 즉, 즉시, 賜는 하사할 사. 帛은 비단 백)
= 즉시 비단 오십 필을 하사하시며
*使自運去(사자운거)한대
(使는 ~로 하여금 ~하게 하다)
= 스스로 운반해 가도록 하니
어린 김시습은 이것을 어떻게 가져갈까요? 하인 불러서? 퀵서비스 택배로? 땡입니다.
분명히 스스로, 자기 힘으로 가져가라고 했죠?
다섯 살짜리 천재 소년의 머리에서 과연 어떤 방법이 나올지....
자, 여러분들도 한 번 생각해 보시죠. 잠시 생각할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
허허 아직도 방법을 생각해내지 못하였다구요?
그렇다면 가져갈 자격들이 없으시군요.
모두 압수하겠사옵니다. 여기 놓고 그냥들 가시지요.
김시습을 보세요, 김시습을. 그 어린 아이가 어떤 지혜를 발휘해서 가져가는지.
*時習(시습)이 遂結其端(수결기단)하여 引之而出(인지이출)하다.
(遂는 성취할 수. 마칠 수. 부사로는 드디어, 마침내. 結은 맺을 결, 묶다. 端은 바르다[단정端整한 옷차림]는 뜻의 단, 끝[말단末端]을 뜻하기도 합니다. 引은 당길 인.)
= 시습이 마침내 그 끝을 묶어 끌고 나갔다.
네, 그렇게 해서 가지고 갔군요.
무거워 도저히 들고 갈 수는 없고,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깊은 생각에
잠긴 아이,
마침내,,,둘둘 말린 비단을 좍 풀어서, 한 끝을 몸에 묶은 뒤
비단들의 끝과 끝을 서로 묶어 이어 한 줄로 죽 만들었답니다.
이제 그것을 끌고 늠름하게 대궐 문을 나가는 어린 신동. 눈이 휘둥그래진 대신들.
그 뒤로 줄줄줄 끌려가는 50필이나 되는 오색 찬란한 비단. 도성을 뒤덮은 비단의 물결,
연도에 늘어선 백성들의 박수와 함성. 하늘에서 뿌려지는 색종이 꽃들. 카퍼레이드...
정말 장관(壯觀)입니다.
근데 이게 과연 잘 한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지만. 결과적으로는 멀쩡한 새 비단에 흙칠이나 하고 다 망가뜨리는 일
아닌지..... 게다가 또 이게 과연 가능하기는 가능한 걸까요?
한 모퉁이를 돌아섰습니다. 바닥에 닿는 부분이 많아지면서 점점 끌기가 힘들어집니다.
앗, 이때 비단 자락이 모퉁이 주춧돌에 걸렸습니다. 더 이상 나아가질
못하고 있습니다.
버둥대는 신동, 힘껏 당깁니다. 그러나 아~ 그만 비단 한쪽이 찌익 찢어지고 맙니다.
허허 이 방법으로는 안되겠군요. 그렇다면.....
얼만큼 걸어간 뒤 돌아서서 뒤에 늘어진 비단을 잡아 자기 쪽으로 끌어다 놓고
또다시 얼만큼 걸어간 뒤 돌아서서 비단을 잡아 끌고......가긴 가겠지만 글쎄요,
이런 모습 보고 있느니 차라리 사람 시켜서 집에다 갖다 주라고 하겠습니다.
근데 "어린 소년이 비단을 과연 어떻게 집으로 가져갔을까" 같은 건
"고구마를 가지고 과연 크리스마스 트리에 불을 켤 수 있을까" 같이
살아가는 데 별로 그렇게 큰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을 실험을 위해
고구마를 몇 가마씩이나 쪄서 금속판 사이에 쳐발라 없애는
"호기심 천국"같은 프로그램에서나 다룰 주제일 듯합니다.
여기서는 그게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요.
*由是(유시)로 名振天下(명진천하)하여
(由는 말미암을 유, 是는 이것을 뜻하는 시, 振은 떨칠 진.)
= 이로 말미암아 이름을 천하에 떨쳐서
*稱以五歲神童而不名(칭이오세신동이불명)하다
(稱은 일컬을 칭, 칭찬할 칭. 以는 써 이. ~로써, "다섯 살짜리 신동[五歲神童]"으로 불렸다. 不名은 뭘까요? 이름이 나지 않았다? 이름이 없었다?? 이름이 불량했다??? 아닌데...)
= 오세신동이라고 일컫고,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다.
이 때문에 김시습은 이후 '김오세(金五歲)'라고도 불려지게 됐다고 합니다.
나이 30을 넘어도 '오세', 50이 되어도 '오세'.
설악산에 있는 오세암도 바로 김시습의 이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하죠.
하지만 이렇게 화려한 출발과 부푼 기대가
한 순간에 오히려 그의 인생을 좌절과 방랑으로 몰고 가는 이유가 되었으니...
어려서부터 임금께 천재성을 인정받고, 출세의 꿈을 키우면서 충성을
다짐하던 왕조가
세조의 등장으로 하루아침에 눈앞에서 사라져버린 순간,
이 땅의 천재 김시습의 벼슬에의 꿈도 함께 사라진 것입니다.
그는 세조의 왕위찬탈에 반발하여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다가
평생을 기행을 일삼으며 떠돌아다니게 됩니다.
자신의 친구였던 서거정·신숙주 등이 쿠테타의 공신으로 높은 벼슬에 앉아 있을 때
김시습은 거지 행색을 하고 백주대로에서 이들을 꾸짖었으며,
사육신(死六臣)이 처형당했을 때, 처벌이 무서워 아무도 나서지 못하는 것을
홀로 나서서 그들의 시신을 수습하여 강 건너 노량진에 묻어주었습니다.
지금의 노량진역 옆에 사육신묘(死六臣墓)가 있게 된 연유입니다.
이 때문에 세상에선 그를 사육신이라는 이름에 짝하여 생육신이라고
부릅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세조 쿠데타의 일등 공신 한명회가 한강 가에 압구정(狎鷗亭 : 狎은 가까울 압. 친할 압. 鷗는 갈매기 구. 亭은 정자 정, "갈매기와 벗삼아 지내는 정자")을 짓고 그 현판에,
*靑春扶社稷(청춘부사직)
(扶는 도울 부, 지탱할 부, 社는 토지신 사, 稷은 곡식신 직, 사직은 백성의 복을 위해 제사하는 토지의 신인 사(社)와 곡식의 신인 직(稷)을
아울러 이르는 말. 나라를 창건한 자는 제일 먼저 왕가의 선조를 받드는 종묘(宗廟)와 더불어 사직단을 지어서 백성을 위하여 종묘사직에
복을 비는 제사를 지냈다. 여기서 사직은 조정, 국가의 뜻으로 보면
됨)
= 청춘엔 사직을 붙들었고
*白首臥江湖(백수와강호)
(白首는 흰 머리, 곧 늙음을 의미. 臥는 누울 와. 江湖는 강과 호수, 자연)
= 늙어서는 강호에 누웠노라
라고 써 붙였습니다. 김시습이 이걸 보고는 지탱할 부(扶)자를 위태로울 위(危)자로 고치고, 누울 와(臥)자를 더러울 오(汚)자로 고쳐 놓고
갔습니다. 그 풀이가 어떻게 됩니까?
*靑春危社稷(청춘위사직) 白首汚江湖(백수오강호)
"청춘엔 사직을 위태롭게 했고, 늙어서는 강호를 더럽혔도다."
김시습은 이렇게 세상과 어울리지 못하고 떠돌아 다니다가
1493년 성종 24년, 충청도에 있는 홍산의 무량사에서 봄비 내리는 가운데
한 많은 생을 마감하니 그의 나이 59세였다고 합니다.
김시습의 고뇌와 방랑을 더듬어보며 우리는
어지러운 시대에 대응하는 지식인의 처신을 생각해 봅니다.
자신을 세상에 맞추기에는 지조가 허락하지 않고
그렇다고 자기가 세상을 개조하기에는 역부족이었으니,
가능한 선택은 세상을 벗어나는 것.
그리하여 그는 평생 세상을 떠돌아다니며 사는
불우한 아웃사이더(방외인 : 方外人)가 되고 만 것입니다.
그렇지만 뒤집어 보면 방외인은 또한 자유인이기도 합니다.
유가의 머리, 불가의 옷, 선가의 음식.
儒, 佛, 仙 삼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었던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