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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硏究房★

[[고전]]東文選(동문선)

작성자우천|작성시간03.12.07|조회수494 목록 댓글 0


東文選序 - 徐居正(1420∼1488)


▶ 해제
東文選은 성종의 명을 받들어 서거정, 강희맹, 노사신 등이 삼국시대 후반기로부터 신라 및 고려를 거쳐 조선 초기에 이르기까지 우리 詩人·文士들의 수많은 우수한 작품들이 망라되어 있는 巨作이다.
그 序文은 동문선을 엮게 된 문화적·역사적 배경과 수록된 글의 수준과 성격에 대해 설명해 놓은 것이다.
어떠한 글이 진정한 文인가를 밝혀 놓았으며, 우리 선인들의 문학사상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乾坤 肇判, 文乃生焉. 日月星辰, 森列乎上 而爲天之文, 山海岳瀆, 流峙乎下 而爲地之文. 聖人 畵卦造書, 人文 漸宣, 精一 中極, 文之體也, 詩書 禮樂 文之用也. 是以代各有文, 而文各有體, 讀典謨, 知唐虞之文, 讀訓 誓命, 知三代之文. 秦而漢, 漢而魏晉, 魏晉而隋唐, 隋唐而宋元, 論其世 考其文, 則以文選文粹文鑑文類諸篇, 而亦 論後世文運之上下者矣. 近世論文者, 有曰宋不唐, 唐不漢, 漢不春秋戰國, 戰國 不三代唐虞, 此誠有見之論也.
吾東方, 檀君 立國, 鴻荒莫追, 箕子 闡九疇 敷八條, 當其時 必有文治可尙, 而載籍 不存. 三國 鼎峙, 干戈日尋, 安事詩書. 然在高句麗 乙支文德 善辭命, 抗隋家百萬之師, 在新羅 入唐登第者 五十有餘人. 崔致遠 黃巢之檄 名震天下, 非無能言之士 而今皆罕傳 良可嘆已.
高麗氏 統三以來 文治漸興. 光宗 設科取士, 睿宗 好文雅, 繼而仁明 亦尙儒雅, 豪傑之士 彬彬輩出. 當兩宋遼金 攘之日, 屢以文詞 得紵國患, 至元朝, 由賓貢中制科 與中原才士,   上下者 前後相望. 皇明 混一, 光岳氣全, 我國家列聖 相承, 涵養百年, 人物之生於其間, 磅 精粹 作爲文章, 動湯發越者 亦無讓於古. 是則 我東方之文, 非漢唐之文 亦非宋元之文, 而乃我國之文也. 宜興歷代之文  行於天地間, 胡可泯焉 而無傳也哉.
奈何, 金台鉉 作文鑑 失之疏略, 崔瀣 著東人文 散逸尙多, 豈不爲文獻之一大慨也哉. 恭惟殿下 天縱聖學, 日御經筵 樂觀經史, 以篇翰著述 雖非六籍之比 然亦可見文運之興替. 命領敦寧府事 臣盧思愼 吏曹判書 臣姜希孟 工曹判書 臣梁誠之 吏曹參判 臣李坡  臣居正,  集諸家所作粹 爲一帙. 臣等 仰承隆委, 採自三國 至于當代 辭賦詩文 若干體, 取其詞理 醇正 有補治敎者, 分門類聚 釐爲百三十卷, 編成以進, 賜名曰 東文選.
臣居正 竊念, 易曰, 觀乎人文 以化成天下. 盖天地 有自然之文, 故聖人 法天地之文, 時運 有盛衰之殊, 故文章 有高下之異. 六經之後 有漢唐宋元皇朝之文 爲近古, 由其天地 氣盛, 大音 自完, 無異時 南北分裂之患故也.
吾東方之文, 始於三國 盛於高麗 極於盛[聖]朝, 其關於天地氣運之盛衰者, 因亦可考矣. 況文者 貫道之器. 六經之文 非有意於文 而自然配乎道, 後世之文 先有意於文 而或未純乎道. 今之學者, 誠能心於道 不文於文, 本乎經, 不規規於諸子, 崇雅黜浮 高明正大, 則其所以羽翼聖經者 必有其道矣. 如或文於文 不本乎道, 背六經之規 , 落諸子之科臼, 則文非貫道之文 而非今日開 之盛意也.
然今 聖明在上 天地氣盛, 人物之應期而生 以文鳴世者 必于于而興焉, 亦何患乎無人也. 臣雖不才, 尙當秉筆 之. 戊戌.
[東文選], [四佳集]


▶ 해설
서거정이 1478년 {東文選}을 편찬하고 그 경위와 의도를 밝힌 서문.
동문선은 성종의 명으로 서거정 등이 편찬한 신라 때부터 조선 초까지의 시문선집으로 130권이다.
기존의 시문을 선집했으나 책의 편찬의도, 시문의 질적 선택, 양적 안배에서 15세기 후반 정치·문화의 담당층이었던 훈구관료층의 의식이 들어가 있다.
이들은 조선왕조에 이르러 그 정점에 이른 우리 나라 역대 문학을 정리하여 중국의 문학에 비견하려 하였다.

서거정이 서문에서 "여기에 실린 글들은 우리 동방의 문학으로 송·원의 문학도 아니오, 한·당의 문학도 아니다."라고 선언한 데서 우리 문학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엿볼 수 있다.
나아가 전통있는 문화국가로서 기존의 문헌을 정비하고, 내용이 순정해서 교화에 도움이 될만한 글들을 선별해서 후세에 문학의 전범을 보이고자 하였다.
이글에서는 또한 {동문선}편찬의 당위성을 당당히 주장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시문은 삼국에서 시작해서 고려에 성했고, 자신이 살고있는 시대에 극성했다고 나타내고 있다.
즉 당시의 문물이 매우 높은 수준에 있기 때문에 {동문선}의 편집의 시대적 산물이라고 당위성을 역설하였다.

[동문선서]에서 서거정은 天之文, 地之文, 人之文이란 용어를 사용하여 文의 개념을 우주 자연의 원리가 구체화된 표상으로 정의하고, 人之文의 결정을 儒家 經典으로 보았다.
이는 불교와 노장학을 배척하고, 유교로 통치 이념을 삼아 모든 문화를 새롭게 정비하던 당시의 상황 속에서 나온 것이다.
또 문학은 道 즉 유가의 가치를 표현하는 도구라는 貫道說을 주장하였다.
이는 문학을 자연스런 감정의 표현물이 아니라 내면적 심성 수양을 통해 경전에 근본하여 나오는 정제된 인격의 산물로 보는 입장으로, 16세기에 이르러서는 이황을 비롯한 도학파 문인들에 의해 道文一致論으로 발전한다.


▶ 해석 東文選
천지가 개벽하자, 문이 생겼습니다. 위에 있는 해·달과 별들은 하늘의 문(天之文)이 되었으며, 솟아 있는 산과 흐르는 물은 땅의 문(地之文)이 되었습니다. 성인이 卦를 긋고 글자를 만들어 인문(人之文)이 점차 베풀어졌으니, 제왕이 마음을 정일하게 가져서 백성에게 도를 세우는 것은 문의 본질이요, 詩書禮樂은 문의 쓰임입니다.
따라서 시대마다 각각의 문이 있고, 문에도 각각의 체재가 있으니, {書經}에 있는 典·謨를 읽으면 요순 시대의 문을 알 수 있고, 訓· ·誓·命을 읽으면 하·은·주 3대의 문을 알 수 있습니다. 진에서 한으로, 한에서 위·진으로, 위·진에서 수·당으로, 수·당에서 송·원으로 내려오면서, 그 시대를 논하여 그 문을 상고하면 {文選}·{文粹}·{文鑑}·{文類} 등 여러 편찬으로써, 대개 후세 문운의 높고 낮음을 논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근대에 문을 논하는 이가 말하기를, "송의 문은 당만 못하고, 당은 한만 못하며, 한은 춘추전국시대만 못하고, 춘추전국시대는 3대·요순 시대만 못하다"하였으니, 이것은 진실로 옳게 본 것입니다.
우리 동방에서 단군이 나라를 세운 것은 먼 옛날이라 상고할 길이 없고, 기자가 九疇를 밝히고 8條를 폈으니, 그 당시에 반드시 볼 만한 문화가 있을 것이나 기록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고구려·백제·신라 세 나라가 대치하고 있었을 때에는 날마다 전쟁을 일삼았으니 어찌 시경·서경과 같은 문이 발전했겠습니까. 그러나 고구려에서는 을지문덕이 외교의 글을 잘하여 수의 백만 군사에 항거하였으며, 신라에서는 젊은이들을 당나라에 유학시켜 빈공과에 급제한 자가 50여 명이나 되었습니다. 특히 최치원은 황소 토벌의 격문을 지어 이름을 천하에 울렸습니다. 이렇게 글 잘하는 사람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지금 전하는 것이 드무니 진실로 탄식할 일입니다.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한 이래로 문화가 점차로 일어나서, 광종이 과거를 설치하여 선비를 뽑았고, 예종이 문학을 좋아하였으며, 계속하여 인종·명종 역시 유학을 숭상하여 호걸스런 선비가 찬란하게 많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북송·남송·요·금 등이 침범했을 때에 여러 번 외교문서로서 국가의 환란을 풀었으며, 원나라 시기에는 賓貢으로 과거에 올라 중국의 才士들과 상하를 다투는 이가 많았습니다. 명나라 시기에는 우리나라에서도 백여년 동안 뛰어난 군주가 계속 나오셔서 인재를 키우셨으니, 그들이 지은 글들도 뛰어나서 지난날에 손색이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 동방의 문학입니다. 송원의 문학도 아니고 또 한당의 문학도 아니며 바로 우리나라의 문학입니다. 마땅히 중국 역대의 문학과 함께 천지간에 나란히 통행해야 하거늘, 어찌 없어지는 채로 두어 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김태현이 편찬한 {文鑑}은 소략하고, 최해가 편찬한 {東人之文}은 散逸한 것이 많으니 어찌 크게 개탄할 일이 아닙니까?
공손히 생각건대 전하께서는 하늘이 내신 성인의 학문을 갖추셨는데도 날마다 경연에 납시어 경전과 역사책을 즐겨 보시면서, "문예의 작품이 비록 6경에 견줄 것은 아니나, 문운의 성쇠를 볼 수 있을 것이다."하시며, 영돈녕부사 노사신, 이조판서 강희맹, 공조판서 양성지, 이조참판 이파와 저에게 명하시어, 여러 사람의 작품을 가려 모아서 한 질을 만들게 하셨습니다. 신들이 명을 우러러 받고 삼국으로부터 지금 시대에 이르기까지의 辭賦·詩文 몇 가지의 형식을 수집하여 그 가운데 글과 이치가 순정하여 교화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취하여 선발·정리하여 130권을 편성하여 올렸더니 {동문선}이라고 이름을 내리셨습니다.
신 서거정이 생각하오니 {주역}에 이르기를, "인문을 관찰하여 천하를 교화한다"하였습니다. 대개 천지에는 자연의 문이 있으므로 성인이 천지의 문을 모범으로 삼았으며, 시대의 운수에 성하고 쇠함의 다름이 있으므로 문장에도 높고 낮음의 차이가 있습니다. 6경 뒤에는 오직 한당송원과 명의 문이 가장 옛것에 가까우니, 그것은 그 당시에 천지의 기운이 성하였으므로 큰 음향이 절로 완전하여 다른 시대처럼 남북 분열의 폐단이 없었던 까닭입니다.
우리 동방의 문(글)은 삼국에서 시작되어 고려에서 성하였고, 융성한 조정(조선)에 와서 극치를 이루었으니, 그것이 천지 기운의 성하고 쇠함에 관계되는 것임을 인하여 또한 가히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물며 문(글)이라는 것은 도를 꿰는 그릇임에랴. 육경의 문(글)은 글자체에(글을 짓는 데에, 문장을 수식하는 데에) 뜻을 둠이 아니나 자연히 도에 짝하고(부합하고), 그 후세의 글들은 먼저 글에 뜻을 두나 혹간은 아직 도에 순수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학자들이 진실로 능히 도에 마음을 두고, 글 자체를 꾸미는데 힘쓰지 않으며, 경전에 근본을 두고(경전을 근본으로 삼고), 제자백가에서 규범을 본받지 아니하며, 전아한(바른) 것을 숭상하고 부화한(허황된) 것을 멀리하여 내치고, 높고 밝고 바르고 크게 하면, 곧 성인의 경전[유교의 경전]에 도움이 되는 바의 것이 반드시 그 길(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만약 도에 뿌리 밖지 아니하며, 문을 위한 문을 하고, 제자백가에 빠져 육경의 법칙에 어긋난다면, 그 문은 도를 꿰는 문이 아니어서, 오늘날 전하께서 계발해 주신 거룩한 뜻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하오나 지금 성스럽고 밝으신 이가 위에 계시며 천지의 기운이 성하니, 뛰어난 인물이 시기에 응하여 태어나서 문으로써 세상에 울릴 이가 반드시 연달아 일어날 것이니, 어찌 사람이 없으리라 걱정하겠습니까? 신이 비록 재주가 없사오나 오히려 마땅히 붓을 잡고 기다리겠습니다. 무술년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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