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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의 테러집단이 우리 국민에 대해 가한 잔혹하고도 반문명적인 만행을 단호하게 膺懲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추가 파병부대를 최정예 전투병으로 재편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일각에선 테러와 膺懲의 악순환을 우려하기도 한다.
이와 관련해서,1510년에 있었던 三浦倭亂(삼포왜란)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1504년 4월,薺浦(제포:지금의 웅천)의 왜인 두목 오바리시와 야스코 등이 대마도주의 아들을 대장으로 삼아 4천~5천명의 병사를 이끌고 부산을 공격하여 僉使(첨사) 이우증을 살해하였다.
또한 薺浦의 첨사 김세균을 납치하고 웅천과 동래를 포위하여 공격하기도 했다.
三浦倭亂은 결국 진압되기는 하였으나,이 변란으로 조선 측의 군민 272명이 피살되고 왜인 295명이 참획되었다.
이에 따라 三浦가 폐쇄되고 통교가 끊어지게 되었다.
그후 일본 측에서 사신 붕중을 보내 화친을 청하자,領事(영사)인 성희안이 이렇게 말했다.
'제왕이 오랑캐에 대해서는 마땅히 禽獸(금수)로 대해야 하고 깊이 膺懲할 것은 아닙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화친을 허락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에 맞서 검토관 이효언은 '지금 화친을 허락하면 三浦에 다시 거주하겠다는 요청이 계속 일어날 것입니다.
宋(송)나라 때의 화친은 그때 秦檜(진회) 등의 소인들이 그르친 것입니다'라 하였다.
三浦倭亂과 같은 국가적 변란을 겪은 당시에도 강온 양론이 팽팽히 맞섰던 것이다.
'전투병 위주의 파병' 주장과 '파병 재검토 및 서희·제마부대의 철수'로 엇갈리는 지금과 비슷한 상황이다.
한편,[詩經] <宮> 편을 보면,'戎狄是膺 荊舒是懲'(융적시응 형서시징)이란 구절이 있다.
'戎狄을 이에 막으며 荊舒를 이에 징계하니'라는 뜻인데,膺懲이란 말은 여기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膺懲에는 본래 무도한 공격을 막아내고 그 잘못된 행위를 징벌한다는 뜻이 있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膺은 '가슴'이란 뜻으로 새긴다.
교훈 등을 가슴속에 간직해서 잊지 않는다는 뜻의 服膺(복응)이 그 예이다.
膺에는 '받는다'는 뜻도 있다.
군주의 자리에 오를 천명을 받는 것을 일러 膺록(응록)이라 하는데, 이때의 膺이 그러하다.
懲에는 잘못된 행위에 대해 징계한다는 뜻 외에 '삼가다'는 뜻이 있다.
분노와 욕망을 참고 누른다는 뜻을 가진 懲忿窒慾(징분질욕)의 懲이 그러하다.
<김성진·부산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