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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한자]]後悔(후회)/反省(반성)

작성자于天|작성시간04.08.18|조회수73 목록 댓글 0

 

[생활한자] 悔(후회)와 反省(반성)

우리가 살면서 후회도 여러 번 하고 반성도 많이 한다,
그런데 후회와 반성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후회도 반성도, 자신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고자 하는 것임에는 마찬가지이지만 그 절실한 정도에서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어느 것이 더 절실함을 담고 있는 것일까?

아마 독자들은 반성에다가 더 무게를 두고 생각할 지 모른다.
후회는 좀 소극적인 것 같고 반성은 무언가 더 생산적이고 적극적인 것 같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실은 후회가 더 진솔하고 더 절실하다. 자신의 잘 못과 실수에 대한 자책감이 더 강하다.
후회는, 다시 그 짓을 하지 않겠다는 아픔이 동반하고 그것이 내적 동력으로 살아있는 상태라는 점에서도 반성과는 차이가 난다.

반성이라는 것은, 물론 반성도 반성 나름이겠지만, 통상적으로 반성이라는 것은 후회만큼 그렇게 절실하지 않다.
‘내가 왜 그러지’, ‘이건 좀 문제가 있네’ 또는 ’이래서는 안 되는데‘ 이런 정도이다.
후회는 쉽게 하지 않지만 반성은 쉽게 한다.
반성을 거듭하지만 정말 반성한대로 사람이 바뀌는 일은 없다.
반성하고 그리고 돌아서서 이내 그 짓을 되풀이하기를 반복한다. 반성도 되풀이하고.

문제는 나쁜 습관인데, 잘 못된 사고방식, 행동방식, 관계방식이 습성이 되고 그것이 관성이 되면서 그러한 관성의 중력장을 차고 나오지 못한다.
웬만한 반성으로 그 중력장을 차고 나오지 못한 채, 반성마저 관성이 되고 만다는 이야기다.
관성에서 탈출하지 못하는 한, 달라질 것이 없다.
숱한 반성을 하고 또 해도 달라질 것이 없다.
평생을 반성하고 또 해도 사람이 달라지지 않는 이유는 반성이 관성의 힘을 이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달라질 것이 없다.

그러나 관성을 부정한다는 것, 관성의 중력장을 차고 나온다는 것,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엄청난 추진력과 결단력을 필요로 한다.
자기 관성을 부정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자신이 한번 죽어야 한다는 이야기에 다름 아니다. 그런 정도의 결단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걸 수 있는 ‘올 인’을 하지 않는 한, 반성은 관성의 중력장으로 흡수되고 만다.

어쩌면 우리들의 통상적인 반성이란 것은, 자신의 관성과 타협하는 선에서 이루어지는 지 모른다. 그러니까, 자신의 관성을 부정하지 않는 선에서, 그리고 그것과 정면으로 대결하지 않는 정도에서 그렇지만 자신도 그것을 고치려고 노력하고 있고 애쓰고 있다는 것을 자기위안으로 갖기 위해서 반성을 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반성은 처음부터 관성과의 타협적인 산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반성이 관성이 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무수한 반성 뒤에, 끝내는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 갔을 때, 우리는 후회를 하게 되는 것일까?

배영순(영남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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