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한자] 潔癖症(깨끗할 결/버릇 벽/증세 증)
우리 사회가 집단적 潔癖症에 빠진 것은 아닌지
청와대 핵심 참모 중의 한 사람이 노무현 대통령의 도덕적 潔癖症을 거론한 적이 있다.
이 도덕적 潔癖症이야말로 그의 '노무현다움'이라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참여정부의 출범 이후 우리 사회가 집단적 潔癖症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다.
경제는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주변국들과 민족의 정체성을 뒤흔들 역사전쟁이 진행되고 있으며,기업체마다 피 말리는 기술경쟁의 와중에 있는데도 정치권은 과거사 문제로 나날을 보내니 이야말로 潔癖症의 격랑에 모든 것이 떠내려가는 듯한 형국이다.
'無恒産(무항산)이면 無恒心(무항심)'이라 하고 '衣食(의식)이 족해야 예절을 안다'고 했거니와,공장들이 문을 닫고 많은 이들이 당장 먹고 입을 것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서야 사회정의와 역사적 진실,민족자존이란 공염불에 불과할 터이다.
우리는 현실을 도외시한 정치권력의 潔癖症은 자칫 災殃(재앙)이 되기 쉽다.
나치스 정권의 유태인 학살과 폴포트 정권의 양민학살,士禍(사화)와 黨爭(당쟁)에 의한 士林(사림)의 도륙 등은 결국은 결벽증에 사로잡힌 자들의 집단적 狂氣(광기)가 만들어낸 참화인 것이다.
이런 참화를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肅淸(숙청)이라는 말부터가 潔癖症을 상징하고 있다.
혹자는 사회 일각의 한자 학습 및 사용에 대한 극단적인 거부감을 문화적 潔癖症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동북아 경제권의 급부상에 따라 한자 지식의 유용성이 날로 높아지고 있는데도,慕華思想(모화사상)에 함몰되었던 구시대적 상황에 대한 반대논리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2천여자의 한자만 알아도 우리 문화의 총체적 이해는 물론 주변국가와의 인적·물적 교류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는 獨斷이라는 것이다.
癖은 부수가 암시하듯,병의 일종이다.
'옆으로 비끼다'의 뜻이니,몸과 마음이 한쪽으로 치우쳐 균형을 잃어버리면서 생겨나는 병이 곧 癖인 것이다.
자신이 처해 있는 현실이나 주변 사람을 고려하지 않고 潔白을 추구하는 것은 미덕이 아니라 병인 것이다.
모든 일에는 緩急(완급)이 있고,모든 지위에는 그 자리에 맞는 상황윤리가 있기 마련이다.
그 緩急을 조절하지 못하고 상황윤리를 외면하면서 淸正(청정)과 潔白(결백)을 주장하는 것,이것이 곧 이 시대가 가장 경계해야 할 潔癖症일 듯하다.
<김성진·부산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