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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천석 논설주간 |
미국 자동차 산업을 이끌어 오던 제너럴 모터스(GM)와 포드 자동차 사람들에게 지난 5일은 두고두고 잊을 수 없는 날로 기억될 듯합니다.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가 두 회사 회사채(會社債)의 신용 등급을 ‘투자 부적격’으로 판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들 말로는 ‘정크본드(junkbond)’, 이를테면 ‘막가는 주식’ 수준으로 내려앉았다는 것입니다.
‘정크본드’의 ‘정크(junk)’는 쓰레기나 값싼 고깃덩어리를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사실 지난 세기 내내 GM과 포드는 미국 자동차의 대표라기보다 자동차 자체의 대명사였습니다.
‘성자필쇠(盛者必衰)’, “한때 영화롭던 모든 것엔 그늘이 지는 날이 반드시 오고야 만다”는 옛 글귀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입니다.
“목숨 있는 것은 언젠간 사라지고 말리라”는 ‘생자필멸(生者必滅)’이 사람이 피할 수 없는 길이라면, ‘성자필쇠’는 사람이 만든 것들의 벗어날 수 없는 운명입니다.
국가도 사람이 만든 것이라서 ‘성자필쇠’의 수레바퀴를 돌릴 수밖에 없습니다.
국가들이 성(盛)했다 쇠(衰)하기를 되풀이하는 무대가 역사의 세계입니다.
그래서 사려(思慮)깊은 국가, 깨어있는 국민일수록 역사를 돌아보고 흥망의 이치를 더듬어보려 애쓰는 것입니다.
“한때 영화를 누리던 모든 것엔 반드시 그늘이 지는 날이 오고야 만다”는 것은 불변의 법칙입니다.
그러나 영화로운 기간을 얼마나 늘리고, 그늘이 지는 때를 얼마나 늦출 수 있느냐의 여부는 사람의 노력과 의지에 달려있는 법입니다.
“한 번 다스려지면 한 번은 어지러워진다”는 ‘일치일란(一治一亂)’의 역사를 굽어보는 ‘흥망사(興亡史)’나 ‘쇠망사(衰亡史)’를 쓰고 또 찾아 읽는 것도 그런 노력과 의지의 표현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흥망사’나 ‘쇠망사’를 쓸 때, 그리고 그것을 찾아 읽을 때가 그 나라 그 국민의 의식이 제일 건전할 때였다는 사실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앞서간 사람들이 일어서고 넘어졌던 발자취가 오늘의 사람들에게 작은 성공에 우쭐하거나 웬만한 고난에 주저앉지 않도록 마음을 키워주기 때문입니다.
“겸허(謙虛)하라, 그러나 용기를 잃지 말라”는 교훈이 흥망사나 쇠망사에는 늘 담겨있는 것입니다.
그런 역사책으로 가장 널리 읽힌 건 아마 영국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쇠망사(History of the Decline and Fall of the Roman Empire)’일 것입니다.
기번은 이 책의 첫 권을 1776년에 내놓고 1788년 마지막 권을 끝냈습니다.
처음 찍은 200질(帙) 가운데 절반은 영국 내에서, 나머지 절반은 식민지 아메리카로 팔려나갔습니다.
때는 격동의 시절이었습니다.
바다 건너 유럽 대륙엔 프랑스 혁명전야의 파도가 일렁이고, 영국 자신은 미국 독립전쟁에서 패퇴해 최대의 식민지를 잃는 내우외환(內憂外患)에 시달리던 무렵입니다.
지도자는 신념을 잃은 채 방황하고, 국민들은 불안해서 서성대던 시절입니다.
이런 시대 분위기가 기번으로 하여금 로마제국쇠망사를 쓰게 하고, 영국 국민에게 그걸 찾아 읽도록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때 그 영국이 가장 건강했었습니다.
그로부터 멀지않은 1815년 영국은 워털루 전투에서 프랑스군을 격파해 나폴레옹을 대서양 외딴 섬 세인트 헬레나로 유배(流配)시키고, 세계 육지 면적의 4분의 1과 세계 인구의 4분의 1을 통치하는 ‘영국에 의한 평화(Pax Britanica)’라는 시대를 열게 됩니다.
영국 국민과는 달리 식민지 아메리카의 지식인들은 로마제국쇠망사 속에서 권력의 유혹 앞에서 허물어지는 인간의 약점을 보았습니다.
권력에 대한 견제와 균형의 필요성을 새삼 깨닫고 그걸 미국 헌법의 기둥으로 삼게 되는 계기의 하나가 됐던 것입니다.
마음에 걸리는 대목은 기번이 로마제국 쇠망의 원인으로 무엇보다 ‘정신의 쇠퇴’, 바로 경박해진 국민과 경박해진 지도자를 꼽고 있는 것입니다.
검소하고 소박한 기풍(氣風)을 잃어버린 국민과 그런 국민에게 영합하는 지도자가 만나 쇠망의 골짜기로 굴러떨어졌다는 지적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중후(重厚)하고 근엄하며 확신에 찬 지도자와 근면하고 검소하고 남에게 기대지 않는 국민이 만나 나라를 만들어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 반대입니까.
훗날 한국흥망사는 오늘의 우리 모습을 어떻게 기록할까요.
(강천석 조선일보 논설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