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자는 뒷날 밭(田)과 흙(土)을 합하고, 다시 音符(음부)에 속하는 ‘予’(여)를 더한 형태이다.
用例(용례)에는 ‘野心(야심:무엇을 이루어 보겠다고 마음속에 품고 있는 욕망이나 소망),下野(하야:시골로 내려간다는 뜻으로, 관직이나 정계에서 물러남을 이르는 말)’ 등이 있다.
‘合’자는 뚜껑이 덮인 그릇 모양을 본뜬 것으로 ‘그릇’이 본래 의미였으나 점차 ‘서로 합하다’‘모이다’‘만나다’ 등과 같은 派生(파생)된 뜻이 더 널리 쓰였다.
用例로는 ‘合格(합격:시험, 검사, 심사 따위에서 일정한 조건을 갖추어 어떠한 자격이나 지위 따위를 얻음),談合(담합:서로 의논하여 합의함),意氣投合(의기투합:마음이나 뜻이 서로 맞음)’ 등이 있다.
史記(사기)에 의하면 숙량흘(叔梁紇)은 안씨(顔氏)의 딸과 野合(야합)하여 孔子(공자)를 낳았다.
이때의 野合을 ‘正式(정식) 婚姻(혼인)을 하지 않은 두 남녀의 通情(통정)’으로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唐代(당대)의 張守節(장수절)이 해석하는 野合은 의미가 다르다.
남자는 8개월이면 乳齒(유치)가 나고,8세에 永久齒(영구치)가 난다.
8과 8을 합하면 16이 되는 바, 남자는 16세에 陽道(양도)가 형성되어 通(통)하다가,8과 8을 곱한 64세에 이르면 陽道(양도)가 消滅(소멸)한다.
여자는 생후 7개월 무렵부터 젖니가 나고,7세부터 영구치가 난다.
7과 7을 더한 14세면 陰道(음도)가 通(통)하기 시작한다.
7과 7을 곱한 49세에 이르면 陰道가 모두 斷絶(단절)된다.
당시에는 여자의 나이가 49세(7 ×7)가 넘거나 남자 나이가 64(8 ×8)세가 넘어 결혼하는 것을 野合(야합)이라고 불렀으므로, 사마천이 사기에 공자의 부모가 야합해서 태어났다고 썼던 것이다.
신라 제 29대 太宗(태종:金春秋)과 金庾信(김유신)의 막내 누이 文姬(문희)도 野合에서 婚姻(혼인)으로 이어진다.
文姬는 언니 寶姬의 꿈이 至尊(지존)을 孕胎(잉태)할 胎夢(태몽)이라고 보고 언니로부터 꿈을 샀다.
그로부터 열흘 뒤 김춘추는 유신과 놀다가 옷고름이 떨어졌다.
김춘추는 옷고름을 달기 위해 김유신의 집에 들렀고, 여기서 문희와 눈이 맞아 姙娠(임신)을 하고 말았다.
김춘추와 문희의 情分(정분) 所聞(소문)이 왕에게까지 이르렀다.
결국 두 사람은 婚事(혼사)를 서둘렀고, 둘 사이에서 난 아이가 훗날 三國統一(삼국통일)의 偉業(위업)을 이룬 文武王(문무왕)이다.
신라의 高僧(고승) 元曉(원효)와 瑤石公主(요석공주)의 野合도 흥미롭다.
이미 출가한 신분이었던 원효는 ‘누가 자루 없는 도끼를 빌려주려나, 하늘 받칠 기둥을 깎아 보고싶구나’[誰許沒柯斧 我斫支天柱:수허몰가부 아작지천주]’라는 노래를 읊조리고 다녔으나 그 뜻을 아는 이가 없었다.
태종(太宗)은 그 뜻을 알아차리고 瑤石宮(요석궁)에 홀로된 공주에게 원효를 불러들이게 하였다.
宮吏(궁리)가 왕명을 받들고 원효를 찾아가니, 그는 蚊川橋(문천교)를 지나다가 일부러 물 속에 빠졌다.
요석궁으로 案內(안내)된 원효는 젖은 옷을 말린다는 구실로 그곳에 留宿(유숙)하면서 공주와 운우의 정을 나누었다.
이렇게 태어난 아이가 신라 十賢(십현)의 한사람인 薛聰(설총)이다.
김석제 경기군포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參考]
사마천의 사기에 '숙량흘은 안씨(顔氏)의 딸과 야합하여 공자를 낳았다[紇與顔氏女野合而生孔子]'고 되어 있다.
공자의 아버지 숙량흘은 본시 노나라의 시씨 집안에 장가들어 아홉 명의 딸만을 낳았을 뿐 아들이 없어 다시 첩을 얻었으나 맹피(孟皮)라는 이름의 다리불구인 아들을 낳았다.
그 뒤 60세의 나이로 안씨 집안의 셋째 딸인 안징재(顔徵在)와 정을 통하여 낳은 것이 바로 공자였던 것이다.
숙량흘이 안씨 집안에 청혼을 하자 아버지는 ‘숙량흘은 비록 나이가 들어 늙었지만 집안이 좋고 건장하고 힘이 세다. ’고 하면서 딸들에게 출가할 의사가 있는가 물었다.
첫째,둘째 딸들은 늙은 숙량흘에게 출가하는 것을 거부하였으나 셋째 딸 안징재만이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숙량흘에게 시집가는 것에 동의하였다고 ‘공자가어’는 전하고 있다.
공자의 어머니 안징재는 임신을 하자 이구산(尼丘山)에서 기도를 올렸다고 하는데,공자의 이름이 구(丘)이고,자가 중니(仲尼)라는 것도 이 산과 관계가 깊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마천이 ‘숙량흘과 안징재가 야합해서 공자를 낳았다. ’고 기록한 내용 중에 야합이란 말의 뜻은 정확하게 해석되지 않는다.
이는 문자 그대로 집이 아닌 ‘들판에서 통정을 한다. ’는 뜻인데, 흔히 ‘정식으로 결혼해 절차를 밟지 않은 두 남녀가 부적절하게 정을 통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에 대하여 당시에는 여자의 나이가 49세(7 ×7)가 넘거나 남자 나이가 64(8 ×8)
세가 넘어 결혼하는 것을 야합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史記正義(사기정의)에는 남자는 태어나서 8개월이면 이빨이 돋아나고, 8세가 되면 젖니가 훼손되기 때문에 8과 8을 합하면 16이 되는 바, 남자의 경우 16세에 陽道(양도)가 형성되어 通(통)하다가, 8×8은 64가 되는데, 그러므로 64세에 이르면 남성은 陽道(양도)가 소멸되는 반면 여자는 생후 7개월만에 이빨이 생겨서 7세에 젖니가 빠진다.
7의 둘을 더하면 14가 되고, 따라서 14세에 陰道(음도)가 通(통)한 후, 7×7은 49이니, 그러므로 49세에는 여성은 음도가 모두 단절된다.
혼인의 경우 있어 남녀의 연령이 이를 벗어나면 ‘野合(야합)’이라 하는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