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공비례(過恭非禮)
지나치게 공손한 것은 도리어 실례가 된다는 말
한창 제철이어서 인지 여기저기 결혼식장이 신랑 신부가족과 賀客(하객)들로 붐빈다. 婚主(혼주)에게 하객들이 인사말을 한다. “축하드립니다.” 따져 보면 이 말은 군더더기 말을 겹치고 있다. 祝賀(축하)의 賀에 이미 공손과 존경의 뜻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축하합니다”로 족하다. 단정하게 차려입은 司會者(사회자)가 마이크 앞에서 말한다. “주례 선생님의 주례사가 계시겠습니다.” 이것도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말이다. ‘주례사가 계시다?’ 예식을 맡아 主宰(주재)하는 주례에게 恭待(공대)말을 하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하지만 인격체도 아닌 ‘주례사’에게 까지 공손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시간 있으십니까”도 문제 있는 말이다. “당신의 간은 건강하십니까”는 噴飯(분반)을 금치 못하는 말이 된다. ‘분반’이란 웃음을 참지 못해 입에 물었던 밥을 내뿜는다는 뜻으로 이제는 예스러워 보이는 말이 되었다. 肝(간)은 신체의 일부인 臟器(장기)인데 아무리 간이 중요하다고 그런데 까지 존댓말을 할 수는 없다. “발이 아프십니까”는 아픔을 느끼는 사람에게 공손스럽게 하는 말이므로 괜찮다.
이런 例(예)들은 어법에 맞지 않을지언정 공손스런 말투로 봐줄 수는 있다. 그러나 고약한 건 ‘저희 나라’다. 이 말처럼 황당무계하고 오만 불손한 말은 없다. 어째서 이 나라가 자기네 나라란 말인가. 당연히 ‘우리나라’다. 물론 공손스레 말한다고 한 것이 지나쳐서 우습게 된 것이다.
과공(過恭)은 비례(非禮)라고 했다. 지나치게 공손한 것은 도리어 실례가 된다는 말이다. 過해서, 지나쳐서 좋은 건 없다. 과식하면 배탈나고 과욕으로 敗家亡身(패가망신)할 수 있고 과로하다 過勞死(과로사)까지 한다. 어느 날 子貢(자공)이 스승 孔子(공자)에게 물었다. “子張(자장)과 子夏(자하), 둘 중 누가 더 낫습니까.” 둘 다 공자의 제자다. 공자가 말했다. “자장은 지나치고 자하는 모자란다.” “그럼 자장이 낫겠네요.” “지나친 건 모자람과 같으니라(過猶不及 과유불급).”
출처:http://blog.naver.com/bidanin/40021929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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