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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먹고 잘 사는 법] 신토불이의 허와 실
15년 전부터 ‘신토불이’ 자주 등장… 토종ㆍ외국 농산물, 영양 면에서는 큰 차이 없어 한국인은 백인보다 소화관이 길어 밀이나 고기보다는 쌀과 나물이 더 적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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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토불이(身土不二)’라는 말은 우리나라에서 생산하는 토종 농산물의 소비를 권장하기 위한 홍보 전략으로 널리 애용되고 있다.
15년 전 농협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신토불이’란 말을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몸(身)과 땅(土)은 결코 서로 무관한 둘(二)이 아니다’는 뜻이 된다.
좁게는 ‘우리 땅에서 나는 음식물이 우리 몸에 가장 좋은 것’이라는 뜻으로, 넓게는 ‘우리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이 개념 자체에 대해 반론을 제기한다.
‘신토불이’라는 말이 일본식 조어이고 우리 식으로 표현한다면 ‘신토여일(身土如一)’이 맞는다고 주장한다.
‘신토불이’라는 말은 원래 불교의 불이(不二) 사상에서 나온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말이다.
불법(佛法)에서는 서로 고유한 두 존재이면서도 이들의 존재 근원이 하나인 사실을 두고 ‘이이불이(二而不二)’ 즉 둘이면서 결코 둘이 아닌 하나로 표현한다.
이를 ‘불이(不二)’로 줄여 만든 말이 불이사상(不二思想)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것은 반야심경(般若心經)에 나타나 있는 불이사상으로, ‘색불이공(色不二空) 공불이색(空不二色)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다.
‘신토불이’라는 용어는 이런 불이사상과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을 연구한 한국학의 대가 이을호(李乙浩)가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는 조선사람이니 조선의 시를 즐겨 짓겠다[我是朝鮮人 甘作朝鮮詩]”는 다산의 말은, 비록 한문을 빌려 쓰지만 결코 중국적인 시가 아니라 조선적인 시를 써야 한다는 ‘신토불이’적 발언이었다.
이런 뜻을 이어 이을호는 우리 땅에서 나와 다시 우리 땅으로 돌아가는 한민족의 육신은 같은 곳에서 나온 토종의 농산물과 결코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철학적, 종교적, 토속적 어구로 표현했다.
그런데 오늘날의 ‘신토불이’는 국제경쟁에 내몰리고 있는 우리 농산물의 소비를 촉진시키기 위한 일종의 전략적인 구호가 아닐까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국산식품이 무조건 외국산보다 우수하다는 주장에는 분명 문제가 있으나, 우리가 살아온 환경을 생각한다면 한마디로 무시할 비 과학적인 얘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음식을 먹는 것은 필요한 영양분을 섭취하기 위해서다.
즉 우리 몸의 조직을 만들고 활동 에너지를 공급하게 될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무기질 등과 같은 필수 영양분은 밖에서 공급돼야 한다.
따라서 영양분의 공급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국산이나 외국산이나 크게 다를 게 없다.
그런 면에서는 ‘신토불이’라는 개념을 고집하기 힘들지만 ‘신토불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몇 가지 예도 있다.
먼저 우리의 소화관 길이가 백인의 경우보다 길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살아온 환경이 고기보다는 곡물을 먹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의 환경이 벼 농사에 적합하여 밀 대신 쌀을 먹어 왔기 때문에 상당수가 밀을 주식으로 여기지 않고 심지어 알레르기 반응까지 보인다.
이는 ‘신토불이’의 섭리가 발현된 결과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현대에 와서 우리는 필수영양분을 과다 섭취하여 비만으로 치닫고 있다.
그리하여 요즘 좋은 먹거리의 중요 덕목은 ‘우리의 입맛은 살려주면서 영양가는 낮아야 되고 섬유질 등이 풍부하여 포만감을 느끼게 하며 건강을 높여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우리 몸에 맞는 기능성 물질이 풍부하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그런데 기능성 물질은 어떻게 해서 생물체에서 생성되는 것이며 토종 식품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이 대목에서 ‘신토불이’ 먹거리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된다.
우리가 농작물로 재배하는 식물 대부분은 소위 속씨 식물(밑씨가 씨방 안에 들어 있고 씨방이 자라서 열매가 된다)로서 약 3억년 전 지구상에 나타났다.
이들은 꽃가루를 매개해 줄 곤충을 유인하는 수단이 필요하면서도 자기 자신을 먹는 해충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수단이 필요했다.
즉 식물은 필수영양분 외에도 새로운 화합물을 합성하여 아름다운 색으로 치장하거나 기분 좋은 향기를 내어 곤충을 유인했다.
또 화밀(花蜜ㆍ꽃의 꿀샘에서 분비하는 꿀)을 생산하거나 잉여 꽃가루를 만들어 곤충에게 보답했다.
반면 해충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가시나 털로 곤충의 접근을 기계적으로 막았고, 역겨운 냄새, 맛이 좋지 않은 화합물, 소화를 방해하는 물질, 독성화합물 등을 만들어 해충의 접근을 막았다.
이처럼 생물은 적(敵)은 물론 자연재해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고, 먹이를 탐색하며 해독(解毒)하는 과정에 필요한 2차 대사물을 합성해야 했고 그렇지 못한 것들은 도태되고 말았다.
그런데 식물이 자신을 위하여 합성하는 2차 대사물 중 상당수는 인간에게 여러 가지 기능성 물질로 활용되고 있다.
이와 같이 식물과 동물은 먹고 먹히고, 방어하고 극복하는 과정을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되풀이했는데, 이런 과정을 소위 공진화(共進化)라 하며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이런 식물과 곤충간의 관계는 식물과 동물, 동물과 동물간의 관계에도 적용되며 인간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이 인과관계를 증명하려면 특정한 식물에 소량으로 들어있는 화학성분을 확인ㆍ합성하여 사람에게 먹이면서 결과를 비교해 봐야 한다.
곤충의 경우에는 이미 잘 증명되었지만, 2차 대사물은 그 양이 적을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 미치는 효과도 미미한 편이라 전형적인 서양과학의 접근방식으로 실험하기는 쉽지 않다.
더욱이 이런 기능성 물질은 개별적으로 작용하기보다는 여러 종류가 합쳐 상승적으로 또는 대항적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아 분석적인 서양과학 방식보다 오히려 여러 가지를 섞어 종합적으로 보는 동양과학 방식이 더 좋은 접근방식이 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여러 가지 재료를 혼합하여 처방하는 한약이다.
‘신토불이’ 사상(思想)에서 사람의 병은 장기(臟器)의 불균형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그 땅에서 나는 먹을거리에서 처방을 찾는 것이 옳다는 이론이다.
요즘 들어 식생활이 서양식으로 크게 바뀌면서 성인병을 비롯한 여러 가지 문제점을 겪고 있다.
이런 문제를 예방하거나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옛날 우리 방식인 채식 위주의 식생활로 돌아가라고 권고한다.
우리가 먹는 여러 가지 곡물과 채소는 모두 자연계에서 공진화해 오던 식물을 개량한 것들이다.
그렇지만 채소의 유전자에는 아직도 선조 식물이 자연계에서 생존하며 축적해 온 유전형질이 남아 있어 여러 기능성 물질을 생산한다.
물론 이런 곡물이나 채소가 모두 국내에서 우리와 함께 공진화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곡류에서는 콩 정도가 순수한 토종이라고 할 수 있지만, 수많은 채소와 곡물이 들어와 오랫동안 우리와 같은 땅과 기후에서 함께 진화해 왔기에 이제는 ‘우리 것’이라 해도 큰 무리가 없다.
그리고 ‘신토불이’라는 개념은 우리만의 전유물이라기보다는 동서양 모두 공감하는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서양학자들도 “인간은 먹거리로 규정된다. 먹거리가 창출하는 것은 물질적인 육체에 그치지 않고 도덕적인 천성을 이루기도 한다” “당신이 먹는 음식을 알려 준다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는 등 ‘신토불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많이 남겼다.
결론적으로 세계 각 나라는 저마다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생산하는 농산물 종류와 질에서 차이가 나고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도 달라진다.
각 나라마다 다른 먹거리를 먹으며 고유의 문화를 세워 나가는 것이다.
따라서 ‘신토불이’가 우리 것만 무조건 고집하는 구호가 아니라, 우리의 건강을 위해서는 우리와 함께 오랫동안 공진화해 온 먹거리가 더 좋을 수 있다는 사실로 받아들여져야 할 것이다.
출처:주간한국 글.부경생 한국농업과학협회 회장ㆍ서울대 명예교수 ksboo@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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