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漢字硏究房★

[[고사성어]]宋襄之仁(송양지인)

작성자于天|작성시간06.12.06|조회수210 목록 댓글 0

 

 

[고사성어]宋襄之仁(송양지인)



[字解]

宋 성 송
襄 도울 양
之 어조사 지
仁 어질 인

 

[意義]
송나라 양공(襄公)의 인정이란 뜻으로,
실질적으로 아무런 의미도 없는 어리석은 대의명분을 내세우거나 또는 불필요한 인정이나 동정을 베풀다가 오히려 심한 타격을 받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出典]

십팔사략(十八史略) 권일(卷一).

 

[解義]

춘추 시대인 주(周)나라 양왕(襄王) 2년(B.C.650), 송(宋)나라 환공(桓公)이 세상을 떠났다. 환공이 병석에 있을 때 태자인 자부(玆父)는 인덕(仁德)이 있는 서형(庶兄) 목이(目夷)에게 태자의 자리를 양보하려 했으나 목이는 굳이 사양했다.

그래서 자부가 위(位)에 올라 양공이라 일컫고 목이를 재상에 임명했다.

 

그로부터 7년 후(B.C.643), 춘추의 첫 패자(覇者)인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죽고, 송나라에는 운석(隕石)이 떨어졌다.

이는 패자가 될 징조라며 양공(襄公)은 야망을 품기 시작했다.

그는 우선 여섯 공자간에 후계 다툼이 치열한 제나라로 쳐들어가 공자 소(昭:孝公)를 세워 추종 세력을 만들었다.

이어 4년 후에는 송 제 초(楚) 세 나라의 맹주(盟主)가 되었다.

목이는 '작은 나라가 패권을 다투는 것은 화근'이라며 걱정했다.

 

이듬해 여름, 양공은 자기를 무시하고 초나라와 통교(通交)한 정(鄭)나라를 쳤다.

그러자 그 해 가을, 초나라는 정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대군을 파병했다.

양공은 초나라 군사를 홍수(泓水:하남성 내)에서 맞아 싸우기로 했으나 전군이 강을 다 건너왔는데도 공격을 하지 않았다. 목이가 참다못해 진언했다.

"적은 많고 아군은 적사오니 적이 전열(戰列)을 가다듬기 전에 쳐야 하옵니다."

그러나 양공은 듣지 않았다.
"군자는 어떤 경우든 남의 약점을 노리는 비겁한 짓은 하지 않는 법이오."
양공은 초나라 군사가 전열을 가다듬은 다음에야 공격 명령을 내렸다.

그 결과 열세(劣勢)의 송나라 군사는 참패했는데.세상 사람들은 이를 비웃어 송양지인(宋襄之仁)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양공 자신도 허벅다리에 부상을 입은 것이 악화하는 바람에 결국 이듬해 죽고 말았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자국의 힘이 있어야 중재자도 되고 균형자도 되는것은 국제정치에서는 필수 불가결의 조건임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된다.

어떤 이상을 가지고 정치를 한다는것은 물론 좋은일이다. 그곳에는 꿈이 있고 미래의 희망이 담보 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칼바람이 부는 냉엄한 국제 정치에서 이상이란 잘못하면 스스로에게 독이 되는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

 

출처:초동윤의 고사성어.etc.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