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兵貴神速(병귀신속)
[字解]
[意義] 병사를 다룸에 있어서는 신속함이 제일이라는 뜻이다.
[出典]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곽가전(郭嘉傳).
[解義] 전한(前漢) 말기의 정치적 혼란 속에서도 명문가 출신 원소(袁紹)는 기주(冀州)의 지방 장관에 임명되어 그의 세력은 강대해졌다. 이때 원소의 통치 지역 북쪽에는 오환(烏丸:소수 민족의 취락)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요서(遼西)에 있는 선우(單于)의 세력이 가장 컸다. 원소는 선우를 만만치 않다고 판단하여 그를 화친정책으로 회유하여 후방지역의 군사적 보루로 삼았다. 이때 원소는 조조(曹操)와 화북 지역을 양분하여 상호 견제하던 중 조조로부터 불의의 습격을 받고 대패하였으며, 분한 마음을 참지 못하고 피를 토하고 죽었다.
원소가 죽자 세 아들 가운데 원소가 총애하던 막내인 원상(袁尙)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기주의 장관이 되었는데, 이것이 장남 원담(袁譚)과 대립하게 된 원인이 되었다. 조조는 형제간의 불화를 절호의 기회라고 여겨 두 형제를 공격하였다. 두 형제는 할 수 없이 화해하였지만 오래 가지 못하고 원담이 원상을 공격하여 영토를 차지하였다. 맏형에게 영토를 빼앗긴 원상은 둘째 형 원희(袁熙)에게 피신하였다. 조조는 형제로부터 고립된 원담을 멸망시켰다.
또한 원희의 세력 내에서도 초촉(焦觸)과 장남(張南)이 반란을 일으키자 원희와 원상 두 형제는 북쪽에서 강대한 세력을 형성하는 선우에게 의지하였다. 조조의 세력이 날로 확장되자 선우는 변경지역에서 군대를 일으켜 조조를 괴롭혔다. 마침내 조조는 선우의 빈번한 침략을 좌시하지 않고 괴멸하기로 작정하였으나, 문제는 병사, 말, 식량, 물의 더딘 수송이었다.
그래서 조조가 책사 곽가에게 방책을 물으니 곽가는 “병귀신속입니다. 먼저 경기병(輕騎兵)만을 보내십시오”라고 대책을 말하였다. 조조는 곽가의 전술을 받아들여 경기병을 이끌고 진격하였다. 비록 선우가 진두지휘한 병력은 큰 차이가 났으나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는 경기병의 특성을 적절히 사용하여 순식간에 선우의 군대를 전멸시켰다. 병귀신속은 병사들의 특성을 상황에 따라 잘 살려 유효 적절하고 신속하게 이용한다는 뜻이다.
출처:NAVER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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