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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大同江(대동강)/鄭知常(정지상)

작성자于天|작성시간07.01.10|조회수944 목록 댓글 0

 

 

[漢詩]大同江(대동강) - 鄭知常(정지상).

 

 

雨歇長堤草色多(우헐장제초색다) 하니,

送君南浦動悲歌(송군남포동비가) 라.

大同江水何時盡(대동강수하수진) 고,

別淚年年添綠波(별루년년첨록파) 라.

 

비 그친 기다란 방죽에 풀빛이 짙은데

님을 보내는 남포에 슬픈 노래 울려 퍼지네.

대동강 물은 어느 때에나 마를 것인가.

이별의 눈물이 해마다 푸른 물결에 더해지네.

 

[出典]

동문선(東文選) 권19.

 

[解析]

* 送人(보낼 송,사람 인)-사람을 떠나 보냄

* 雨歇(비 우,쉴 헐)-비가 그치다

* 長堤(긴 장,방죽 제)-긴 언덕, 둑

* 草色多(초색다)-풀빛이 짙다,풀빛이 선명함의 뜻으로 여기서 '多'는 '짙다, 푸르다, 선명하다'로 풀이됨

* 送君(송군)-친구를 보냄

* 南浦(남포)-대동강 하구에 진남포. 이별장소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 動悲歌(동비가)-슬픈 이별의 노래가 울리다

* 何時盡(하시진)-어느 때 다하리(마르리)

* 別淚(별루)-이별의 눈물

* 添綠波(첨록파)-푸른 물결에 보태다

* 이제현(李齊賢)의 역옹패설(櫟說)에는 제4구가 "別淚年年添作波"로 되어 있는 이 시를 소개해 놓고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연남 양재가 이 시를 옮겨 적을 때 '別淚年年漲綠波'라고 썼는데,'작(作)'과 '창(漲)' 두 글자 모두 원만하지 못하다. 마땅히 이것을 '添綠波'라 해야 할 것이다

[燕南梁載,嘗寫此詩,作'別淚年年漲綠波'.予謂'作'·'漲'二字,皆未圓,當是添綠波耳]."

 

[作者]

정지상 鄭知常(?~1135), 고려시대의 문신,시인. 본관 서경(西京). 호 남호(南湖). 초명 지원(之元). 서경 출생.

1114년(예종 9) 문과에 급제, 1127년(인종 5) 좌정언(左正言)으로서 척준경(拓俊京)을 탄핵하여 유배되게 하고, 1129년 좌사간(左司諫)으로서 시정(時政)에 관한 소를 올렸다.

음양비술(陰陽秘術)을 믿어 묘청(妙淸) ·백수한(白壽翰) 등과 삼성(三聖)이라는 칭호를 받으면서, 서울을 서경으로 옮길 것과 금(金)나라를 정벌하고 고려의 왕도 황제로 칭할 것을 주장하였다.

1130년 지제고(知制誥)로서 산재기(山齋記)를 지었으며, 뒤에 기거랑(起居郞)이 되었다.

1135년(인종 13) 묘청의 난 때 이에 관련된 혐의로 김안(金安) ·백수한과 함께 김부식(金富軾)에게 참살되었다.

시(詩)에 뛰어나 고려 12시인의 한 사람으로 꼽혔으며 역학(易學) ·불전(佛典) ·노장철학(老莊哲學)에도 조예가 깊었다.

그림 ·글씨에도 능했으며 저서로는 정사간집(鄭司諫集)이 있다.

 

[]

고려 예종 때의 문신 정지상이 지은 七言絶句로 송우인(送友人), 송인(送人)이라고도 한다.

동문선과  대동시선(選) 에 수록된 우리 나라의 이별을 주제로 한 시로서는 최고의 작품으로 꼽힌다.

이 시는 당시 얼마나 불리어졌던지 악부로 여겨졌다 한다.

이 시는 이별시의 백미(白眉)로 중국 당나라 시인 왕유(王維)의 송원이사안서(送元二使安西)에 비견되어 해동의 양관삼첩(陽關三疊)이라 일컫는 시이다.

여성적인 느낌의 이 시와 남성적인 느낌의 왕유시를 비교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기교면으로 보면 전·결구의 처리가 기막히며 특히 결구의 과장적 기법이 바로 천고의 절창이 되게 하였다고 보아도 무리는 아니다.

 

기구 :봄 날에 산뜻한 비가 내려 더욱 싱그러운 봄 날이다.

잔뜩 웅크리고 있었던 기나긴 겨울의 소심함을 떨쳐 내고 사랑하는 님과 산책이라도 즐길 꿈을 꿀 수 있는 희망의 계절이 찾아 온 것이다.

영원히 그 순행을 멈추지 않는 자연의 위대함에 다시 감사하고 픈 그런 때이다.

 

승구 :봄날의 아름다운 꿈과 다르게 님과 이별을 했다.

마음 속에 슬픔이 가득하고 절망스럽기만 하다.

자연의 싱그러움과 달리 작자는 님을 보내고 슬픔의 눈물만 흘려야 한다.

 

전구 :님과의 이별을 대동강 탓으로 돌리고 있다.

마치 바다가 육지라면 이별은 없었을 것을 하고 읊조리는 유행가처럼 자신을 원망하지 않고 애꿋은 강물만 탓할 정도로 비감(悲感)에 북바쳐 있는 것이다.

 

결구 :이 구절은 신운(神韻)이 감돈다는 절창이다.

강물이 마르지 않는 이유를 자신의 이별 눈물이 강물에 더해지기 때문이라고 과장을 하고 있다. 정지상의 시적 재능을 여실히 보여 준다.

 

[解說.1]

정지상의 송인(送人)은 우리나라 한시 중 송별시(送別詩)의 최고작이다.

님이 떠나지 못하도록 계속 와야 할 비도 개고 말았다.

항구의 긴 둑엔 비에 씻긴 풀들이 푸르름을 더하고 있으니 이별의 애달픔이 더 고조된다.

전구(轉句)에서 시상은 전환되어 대동강물이 이별의 눈물로 마를 날이 없다고 했다.

자기의 사연을 일반화하면서 동시에 대동강의 사정을 그려 일방적인 자기 슬픔의 토로에서 벗어났다.

 

[解說.2]

이 작품은 고려 시대 한시의 대표작으로 지금까지 널리 애송되고 있는 이별가이다.

임을 보내는 정한이 담긴 칠언 절구의 한시로서 대동강 남쪽 나룻가의 풀빛 짙은 언덕을 배경으로 임을 떠나 보내는 애절한 마음을 자연에 대비시켰다.

특히 이 시는 강변의 푸른 언덕과 파란 강물의 아름다운 색조를 대비적으로 그려내고 있으며, 이별의 슬픔과 별리의 눈물을 강물의 비교하는 것도 인상적이다.

대조, 도치, 과장법에 이어 대동강변의 남포라는 지명은 이 시의 구체성과 함께 향토적인 정서를 환기시켜 준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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