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漢字硏究房★

[[고사성어]]武陵桃源(무릉도원)

작성자于天|작성시간07.02.26|조회수129 목록 댓글 1

 

 

복숭아꽃 흐드러진 물길을 지나....

 

武陵桃源(무릉도원)

 

 

 

 

 

1. 도연명(陶淵明)이라는 술꾼

2. 물길 속의 동굴나라

3. 바람을 밟으며 날아올라

 

 

 


 

 

1. 도연명(陶淵明)이라는 술꾼

 

 

이번에는 현실이 아닌 꿈의 나라로 안내할까 합니다.

우리네 선조들은 산업사회 이전의 농업사회를 함께 살면서, 또 전제왕권에 오래 노출되었던 공통의 경험으로 하여 합의된 이상사회의 모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무릉도원(武陵桃源)’입니다.

오늘은 이 동양의 유토피아에 얽힌 우리 선인들의 콤플렉스, 그 꿈과 희망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무릉(武陵)은 지금 중국의 강서성(江西省) 부근으로, 양자강이 이룬 큰 호수인 동정호(洞庭湖)에 멀지 않은 곳입니다.

도원(桃源)이란 “복숭아(桃) 꽃이 흘러오는 수원지[源]”라는 뜻이지요.

무릉도원이란 결국 “무릉에 있는, 복숭아꽃 흘러오는 (환상의) 수원지”가 되겠습니다.

 

때는 진(秦)시황을 이어 한(漢) 제국이 400년간 융성하다가 북방 오랑캐들의 침입을 받아 남하하여 새로운 왕조를 세움으로써 이원적 왕조가 맞서 있던 시절, 즉 위진남북조(魏晋南北朝)시대입니다.

잦은 전란으로 사람들의 삶이 곤고해지고 열악해지던 난세에 중국 문학사상 가장 뛰어난 시인이 한 사람 태어났습니다.

녹으로 받는 쌀됫박 때문에 굽신거리긴 싫다면서 귀거래사(歸去來辭:고향으로 돌아가련다)를 읊고 은둔한 탁월한 술꾼(?) 도연명(陶淵明)이 그 사람입니다.

사회가 어려울수록 인간 속의 약점들이 불거지게 마련이라, 그가 살던 시대는 권모와 술수, 살기위한 몸부림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이렇게도 추할 수 있을까 하는 환멸에 전율하면서 이 예민한 시인은 그같은 오탁(汚濁: 더럽고 탁함)을 벗어난 세계를 누구보다 진하게 꿈꾸게 되었습니다.

 

무릉도원은 그가 꿈꾼 이상적 세계를 사실적(寫實的)으로 그린 글입니다.

도화원기(桃花源記)라 불리는 이 글은 고금 천하의 명문으로 사람들의 입에 회자(膾炙: 즐겨 오르내림)되어 왔습니다.

원문을 그대로 번역해 보겠습니다.

 


 

 

 

2. 물길 속의 동굴나라

 
진(晉)나라 태원(太元) 연간(A.D 377-397년),
무릉(武陵)에 고기를 잡는 어부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시내를 따라 가다가 어디쯤인지에서 길을 잃고 말았다.
배는 복숭아 꽃이 강 양켠으로 흐드러진 곳을 지나고 있었다.
수백보의 꽤 긴 거리를 그렇게 배는 흘러갔는데, 잡목은 보이지 않고 향기 드높은 꽃들이 선연히 아름답게 피어 있었으며 꽃잎들은 분분히 날리며 떨어지고 있어 어부는 아주 기이하게 여겼다.
앞이 궁금하여 계속 나아가니 숲이 끝나는 곳에 수원(水源)이 있었고 그곳에 산이 하나 막아섰다.
거기에 작은 동굴이 있었는데 희미한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어부는 배를 버리고 동굴입구로 들어갔다.
들어갈 때는 구멍이 아주 좁아 사람 하나 정도 들어갈 만하더니, 몇 십 발자국 나서자 시야가 훤하게 트여왔다.
너른 들판에 집들이 늘어서 있었다.
기름진 전답이며 아름다운 연못, 뽕나무나 대나무 등속이 눈에 들어왔다.
옛날의 (즉 진시황 이전의) 토지구획 그대로 개와 닭 소리가 한가로이 들리고 있었다.
그 사이를 사람들이 오가며 경작하고 있었는데 남녀가 입은 옷이 모두 이국풍이었다.
기름도 바르지 않고 장식도 없는 머리를 하고, 한결같이 기쁨과 즐거움에 넘치는 모습들이었다.
어부를 보더니 크게 놀라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질문에 하나하나 대답했더니 집으로 초대해 술을 내고 닭을 잡아 음식을 베풀어 주었다.
낯선 사람이 왔다는 소문이 온 마을에 돌아 모두들 찾아와 이것저것 물었다.
자기네들은 옛적 선조들이 진(秦) 통일기의 난을 피해 처자와 마을사람들을 이끌고 이 절경에 왔는데, 그 이후 다시 밖으로 나가지 않는 바람에 외부와 격절되고 말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이 대체 어느 시대냐고 묻기도 했다.
진(秦) 이후 한(漢)이 선 것도, 한(漢) 이후 위진(魏晉)시대가 온 것도 알지 못했다.
어부가 아는 대로 일일이 대꾸해주자 모두들 놀라며 탄식했다.
사람들은 교대로 돌아가며 집으로 초대해 술과 음식을 내주었다.
그렇게 며칠을 머문 후, 어부는 이제 가봐야 겠다고 말했다.
마을 사람가운데 누군가가 바깥 세상에는 알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어부는 동굴을 나서서 배에 올라, 방향을 잡아 나가면서 곳곳에 표식을 해 두었다.
고을로 돌아와 태수에게 자초지종을 고했더니, 태수는 사람을 보내 오던 길을 되짚어 표식을 더듬어 나가게 했으나 다시 그 길을 찾아내지는 못했다.
남양(南陽)의 유자기(劉子驥)는 뜻이 높은 은자(隱者)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기뻐하며 그곳을 찾아가려 했으나 병이 들어 죽고 말았다.
그 후로는 그곳을 다시 찾아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일찌기 진시황의 전제 왕권은 이전의 전통적인 사회제도와 가족제도를 송두리째 뒤흔들었습니다.

모든 생산과 인력을 국가중심체제로 전환하여 무력의 통일에 쏟아부었기에 인민들이 받는 고통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었던 것이지요.

그같은 국가사회주의적 총동원령으로 진왕조는 마침내 통일을 이룩할 수 있었지만 얼마 못가 아들대에 허망하게 무너지고 맙니다.

그 전란기에 난을 피해 숨어 들어와 세상과의 교섭을 완전히 끊고 자급자족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그런 나라가 있었습니다.

도연명의 시대 이곳을 한 길잃은 어부가 우연히 발견하게 됩니다.

그 경위를 적어놓은 글이 이것입니다.

 


 

 

3. 바람을 밟으며 날아올라

 

 

도연명은 이 꿈의 나라를 이렇게 그리고 있습니다.

“해가 뜨면 들에 나가 일하고 해가 지면 들어온다.

계절은 순조롭고 풍우는 알맞아 농사를 도와주었고 수확을 전제 권력에 빼앗길 염려도 없는 그런 무정부적 사회.

아이들은 그저 뛰놀고 어른들은 생활의 여유를 찾는 나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이 있을 리 없는 화해와 평화의 그런 공동체.

그러던 어느날 길 잃은 어부가 우연히 이 세계를 방문한다.

무릉의 신비는 그 어부에게 잠시 열렸다가 다시 영원히 닫혀 버렸다.”

도연명은 이 넉넉한 꿈의 나라가 결국 다시 신비 속에 묻혀 버린 것을 한편으로 안타까워 하면서도 그것이 결국은 자신의 마음 속에 있음을 은근히 비추고 있습니다.

묻노니 속세의 때에 절은 사람들이여!
그대들은 먼지와 소음이 없는 그런 세상을 꿈꾼 적이 있는가.
원하건대 가벼운 바람을 밟으며 높이 날아 올라,
그런 이상의 세계로 날아 가고 싶다.

천재 시인 도연명의 붓끝에서 무릉도원은 동양인의 영원한 꿈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그 전통을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사회가 혼란스럽고 전란에 시달릴 때는 사람들의 꿈을 강렬하게 지배했던 이상적 모델로 사람들의 가슴을 휘어잡았습니다.

사람들은 동료인 사람 사이에서 부대끼는 갈등과 긴장에 가장 힘들어 합니다.

조선조 관료 사회는 특히 사람의 인품의 등급을 평가하는 객관적 폭력이 일상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거기서 받는 심리적 스트레스가 아주 큰 사회였습니다.

뜻있는 선비들은 끊임없이 중앙정계를 벗어나 지방근무를 원했거나 아예 정치권을 떠나고자 했습니다.

달리 직업이 없어 떠날 수 없었던 사대부들도 마음은 늘 사람이 사람을 재단하지 않는 전원, 즉 ‘자연’을 노래하고 꿈꾸었습니다.

몸은 관직에 있으면서 마음은 산림(山林)에 있었고, 공식적으로는 유학자이면서 비공식적으로는 도가를 흠모했던 것입니다.

우리네 선인들의 문학 작품 가운데 반절너머 자연시와 풍류의 글이 차지하고 있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하겠습니다. 

 

출처:디지털 한국학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現代始巨安多尼 | 작성시간 07.02.26 감상하고 갑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