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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바람을 밟으며 날아올라
도연명은 이 꿈의 나라를 이렇게 그리고 있습니다.
“해가 뜨면 들에 나가 일하고 해가 지면 들어온다.
계절은 순조롭고 풍우는 알맞아 농사를 도와주었고 수확을 전제 권력에 빼앗길 염려도 없는 그런 무정부적 사회.
아이들은 그저 뛰놀고 어른들은 생활의 여유를 찾는 나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이 있을 리 없는 화해와 평화의 그런 공동체.
그러던 어느날 길 잃은 어부가 우연히 이 세계를 방문한다.
무릉의 신비는 그 어부에게 잠시 열렸다가 다시 영원히 닫혀 버렸다.”
도연명은 이 넉넉한 꿈의 나라가 결국 다시 신비 속에 묻혀 버린 것을 한편으로 안타까워 하면서도 그것이 결국은 자신의 마음 속에 있음을 은근히 비추고 있습니다.
- 묻노니 속세의 때에 절은 사람들이여!
- 그대들은 먼지와 소음이 없는 그런 세상을 꿈꾼 적이 있는가.
- 원하건대 가벼운 바람을 밟으며 높이 날아 올라,
- 그런 이상의 세계로 날아 가고 싶다.
천재 시인 도연명의 붓끝에서 무릉도원은 동양인의 영원한 꿈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그 전통을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사회가 혼란스럽고 전란에 시달릴 때는 사람들의 꿈을 강렬하게 지배했던 이상적 모델로 사람들의 가슴을 휘어잡았습니다.
사람들은 동료인 사람 사이에서 부대끼는 갈등과 긴장에 가장 힘들어 합니다.
조선조 관료 사회는 특히 사람의 인품의 등급을 평가하는 객관적 폭력이 일상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거기서 받는 심리적 스트레스가 아주 큰 사회였습니다.
뜻있는 선비들은 끊임없이 중앙정계를 벗어나 지방근무를 원했거나 아예 정치권을 떠나고자 했습니다.
달리 직업이 없어 떠날 수 없었던 사대부들도 마음은 늘 사람이 사람을 재단하지 않는 전원, 즉 ‘자연’을 노래하고 꿈꾸었습니다.
몸은 관직에 있으면서 마음은 산림(山林)에 있었고, 공식적으로는 유학자이면서 비공식적으로는 도가를 흠모했던 것입니다.
우리네 선인들의 문학 작품 가운데 반절너머 자연시와 풍류의 글이 차지하고 있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하겠습니다.
출처:디지털 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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