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投筆從戎(투필종융)
[字解] 投(던질 투) 筆(붓 필) 從(좇을 종) 戎(군사 융)
[意義] 붓을 던지고 군대를 따른다는 뜻으로,학문(學問)을 포기(抛棄)하고 종군(從軍)함을 비유한 말이다. 기필종융(棄筆從戎)이라고도 한다.
[出典] 후한서(後漢書) 권77 열전(列傳)제37 반초전(班超傳).
[解義] 동한(東漢) 초, 부풍(扶風) 안릉(安陵:지금의 섬서성 함양)에 반고(班固)와 반초(班超:32-102) 형제가 있었다. 그들의 부친은 서한(西漢)의 학자 반표(班彪)로서 사기후전(史記後傳)의 저자이다.
서한 말의 시대적 소용돌이를 겪으면서 반씨 집안은 점차 빈곤해지기 시작했다. 형 반고가 한(漢) 명제(明帝) 영평(永平) 5년, 즉 서기 62년, 낙양(洛陽)에서 교서랑(校書郞)을 맡게 되자, 동생 반초도 어머지와 함께 낙양으로 옮겨왔다.
낙양에서의 생활이 어려웠으므로, 반초는 관청에서 문서를 베껴주고 생계를 유지하였지만, 그는 이 일이 오래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당시 북방의 흉노들은 끊임없이 한나라의 북쪽 변경을 침입하였는데, 조정에서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었다.
어느 날, 반초는 문서를 베끼면서, 문득 변방을 안정시켰던 역사적인 인물들의 업적을 생각하고, 당시의 형세를 연상되어 마음이 괴로웠다. 그는 생각할수록 분이 일자, 홧김에 붓을 내던지면서 외쳤다[嘗輟業投筆嘆曰]. "대장부는 큰 뜻을 품고, 부개자(傅介子)나 장건(張騫)처럼 나라의 변방을 안정시키는 일을 해야 하거늘 어찌 하루종일 붓만 들고 있을 수 있겠는가?" 부개자와 장건은 모두 서역(西域)에 출사하여 공을 세운 사람들이다. 주위에 있던 동료들이 그의 말을 비웃자 반초는 "소인배가 어찌 장사(壯士)의 뜻을 알겠는가"라고 말하였다.
이후 반초는 31년 동안이나 서역에 머물면서 흉노의 지배를 받던 서역 국가들을 정복하는 등 한나라의 세력을 확장하는 데 공을 세웠다. 여기서 유래하여 투필종융은 문인 또는 학자가 글쓰기나 학문을 포기하고 종군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사용된다.
*班(나눌 반) 超(넘을 초) 扶(도울 부) 陵(큰 언덕 릉,능) 彪(무늬 표) 嘗(맛볼 상) 輟(그칠 철) 嘆(탄식할 탄) 傅(스승 부) 介(끼일 개) 騫(이지러질 건)
[English] -To throw aside the brush and join the army.[투필종융(投筆從戎)] -To throw away the pen and take up the sword in defence of the country.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펜을 버리고 칼을 집어 들다] -To give up civilian pursuits to join the army. [군대에 입대하기 위하여 민간(民間)의 직무를 포기하다] -To give up intellectual pursuits for a military career. [군사적 경력(經歷)을 위하여 지적인 추구(追求)를 포기하다]
출처:풀어쓴 중국고전.NAVER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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