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霑霑自喜(점점자희) [字解]
그런데 두영은 큰 아들인 유계의 정통적인 지위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 일로 인하여, 두태후는 두영에게 불만을 품게 되었다. 위의 원인으로 두영은 줄곧 중책을 맡지 못하고, 황후나 황태자의 집안을 관리하는 첨사(詹事)라는 작은 관직에 머물러 있었다. 두영 역시 이 점에 대하여 불만을 가지고 있던 터라, 병을 구실로 하여 사임하였다.
효경제 3년이 되던 해, 오왕(吳王)과 초왕(楚王) 등 7명의 제후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위급한 때인지라 황제는 두영을 불러 들여 그를 대장군에 임명하고 금 천 근을 하사하였다. 두영은 은퇴한 두 명의 장군과 여러 현사(賢士)들을 추천하고, 하사 받은 금(金)은 궁전의 복도에 늘어놓고 군인들이 필요한대로 가져가 여러 가지 비용에 쓰게 하였으며, 정작 자신은 한 푼도 가져가지 않았다.
반란이 평정되자 두영은 위기후(魏其侯)에 봉해 졌으며, 그의 명망은 크게 높아졌다. 조정에서도 중요한 일을 논할 때면, 두영의 의견을 존중하였으며, 두영에 대한 두태후의 태도도 점차 바뀌어 갔다. 그러나 황제는 한사코 그를 그다지 신임하지 않았다.
얼마 후, 승상 유사(劉舍)가 무능함 때문에 관직에서 물러나자, 두태후는 황제에게 그 후임으로 위기후 두영을 추천하였다. 그러자 한경제는 이렇게 말했다. "태후께서는 제가 위기후를 애석하게 여겨 승상으로 임명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시는지요? 위기후는 뽐내기만을 좋아할 뿐으로 경솔한 행동이 많아서 승상이 되어 중임을 맡기에는 어렵습니다[魏其者, 霑霑自喜耳, 多易, 難以爲相持重]." 한경제는 끝내 위기후 두영을 등용하지 않았다.
*魏(나라 이름 위) 其(그 기) 侯(과녁 후) 竇(구멍 두) 景(볕 경) 帝(임금 제) 劉(성씨 류) 啓(열 계) 觀(볼 관) 津(나루 진) 詹(이를 첨) 事(일 사) 舍(집 사) 持(가질 지) 重(무거울 중).
[English] -Very happy with oneself.[점점자희(霑霑自喜)] -To hug oneself on-.(-을 기뻐하다) * hug: 꼭 껴안다 -To pat oneself on the back. (우쭐해지다, 자랑하다) * pat: 톡톡 가볍게 치다 -To lick one's chops. (입맛을 다시다) * lick: 핥다 chop: 턱 =To lick one's lips.
출처:풀어쓴 중국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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