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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訥言敏行(눌언민행)

작성자于天|작성시간07.03.25|조회수198 목록 댓글 0

 

 

[고사성어]訥言敏行(눌언민행)

 

 

[字解]

訥 말 더듬거릴 눌
言 말씀 언
敏 민첩할 민
行 행실 행

 

[意義]

더듬는 말과 민첩(敏捷)한 행동(行動)이라는 뜻으로, 말하기는 쉬워도 행(行)하기는 어려우므로, 말은 둔하여도 행동(行動)은 민첩(敏捷)해야 함을 이르는 말이다. 

[出典]

논어(論語) 이인편(里仁篇).

 

[解義]

본래 유가(儒家)에서는 배우는 사람의 자세로서 ‘눌언민행’해야만 스승의 가르침을 제대로 따를 수 있다는 것이다.

 

공자는 논어(論語) 이인(里仁)편에서, “군자는, 언어에는 둔하여도 실천하는데는 민첩해야 한다[(君子欲 訥於言 而敏行(군자욕 눌어언 이민행)].”라고 가르치고 있으며, 이 말은 논어의 여러 곳에서 언급하고 있다. 공자는 자신의 수제자(首弟子)로 칭송하던 안회(顔回)를 《논어》위정(爲政)편에서 “내가 안회와 종일토록 이야기를 하여도 어기지 않음이 못난이 같다[吾與回言終日 不違如愚(오여회언종일 불위여우)].”고 하여 겉보기는 그러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내가 한 말을 충분히 터득하고 있을 터이다 하고 평가한 말의 한 구절이다.

 

서울신문 儒林 (423)을 보면 ‘訥言敏行’(눌언민행)이라는 말이 나온다. 말은 더듬거리듯 신중하게 하지만 행동은 敏捷(민첩)하게 한다’는 뜻이다.

 

‘訥’자는 말을 하기 위해 혀를 입 밖으로 내민 모양을 형상화한 ‘言’과 문 안에서 밖을 내다보는 사람을 뜻하는 ‘內’(내)를 합하여 ‘말주변이 없음’을 나타내었다. 用例(용례)에는 ‘訥辯(눌변:더듬거리는 서툰 말솜씨),語訥(어눌:말을 유창하게 하지 못하고 떠듬떠듬함)’이 있다.

‘言’의 字源(자원)에 대해서는 ‘입으로 피리를 부는 모양’‘木鐸(목탁)을 거꾸로 놓은 모양’‘혀를 입 밖으로 내민 형상’ 등 여러 가지 설이 있다. ‘言中有骨(언중유골:예사로운 말속에 단단한 속뜻이 들어 있음),言語道斷(언어도단:어이가 없어 말하려 해도 말할 수 없음)’ 등에 쓰인다.

‘敏’자는 ‘여자가 머리에 손을 올려 비녀를 꽂으며 손질하는 모양’으로, 그 손놀림이 기민함에 着眼(착안)하여 ‘재빠르다’는 뜻을 나타냈다. 用例에는 ‘敏捷(민첩:재빠르고 날쌤),銳敏(예민:무엇인가를 느끼는 능력이나 분석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아주 빠름)’ 등이 있다.

‘行’은 ‘네거리’를 상형한 글자다. 후대로 오면서 ‘거리, 걷다, 움직이다’의 뜻이 派生(파생)되었고,‘行列’(항렬)같은 단어에서는 ‘항’으로 읽기도 한다. ‘行脚(행각:어떤 목적으로 여러 곳을 돌아다님),行動擧止(행동거지:몸을 움직여 하는 모든 짓)’등에서 쓰임을 확인할 수 있다.

 

實踐(실천)이 따르지 못하는 말은 곧 남에게 失望(실망)을 주게 마련이다. 옛 선인들이 가능한 한 말을 語訥(어눌)하게 하려고 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실행을 前提(전제)로 하지 않고 가볍게 내뱉는 말은 인격까지 무너뜨리고 만다.

 

조선 영조 때의 학자 병계(屛溪) 윤봉구(尹鳳九)는 어릴 적부터 말을 더듬거렸다. 그를 가르치는 훈장은 그런 병계를 못마땅하게 여겼고 결국 봇짐을 꾸려 집으로 돌아가려 했다. 병계는 간곡히 哀願(애원)하여 훈장을 눌러 앉혔다. 병계는 말은 더듬거렸지만 생각이 깊어 훗날 대학자가 되었다.

 

또한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의 世宗朝(세종조) 相臣編(상신편)에는 古佛(고불) 孟思誠(맹사성)에 얽힌 일화가 전한다. 맹 정승이 고향을 다녀오는 길에 龍仁(용인)을 지날 무렵 비를 만나 客店(객점)에서 하룻밤 묵기로 했다. 먼저 방에 들어 있으려니 귀티 나는 한 젊은이가 들어왔다. 그는 허름한 차림의 맹사성을 村老(촌로)로 보고 장기 두기를 청했는데 連敗(연패)하자 약이 올라 村老를 놀려주려고 公堂問答(공당문답)을 제안했다. 먼저 맹 정승이 시작했다.“무엇 하러 서울에 가는公?” “녹사(錄事:조선 시대에, 의정부나 중추원에 속한 하급 벼슬아치를 통틀어 이르던 말)시험 보러 간堂.” “내가 합격시켜줄公?”“사람을 놀리는 것은 옳지 않堂.”……

며칠 후 맹 정승의 執務室(집무실)로 한 젊은이가 녹사 합격 인사를 왔다. 그가 바로 일전의 젊은이임을 알아보고는 이렇게 물었다.“어떻게 된 일인公?” 그러자 그 젊은이는 面前(면전)의 右議政(우의정)이 바로 며칠 전 객점에서 만난 村老임을 알고 깜짝 놀라 넙죽 엎드려 “죽어 마땅하옵니堂.”이라 했다고 한다.

 

배우는 사람은 스승과 논쟁하거나 자신의 주장을 내세워 스승의 가르침과 대립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과거 성현(聖賢)들의 가르침이었다. 이 말은 분명 말보다 행동에 앞장서라는 말이다. 말만 번지르르하고 행동이 이에 따르지 못하는 그런 사람들에 대한 경고로 보아야 할 것이다.

 

출처:NAVER백과사전.서울신문[儒林 속 한자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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