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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三顧草廬(삼고초려)

작성자于天|작성시간07.04.13|조회수598 목록 댓글 0

 

 

[고사성어](삼고초려)

 

 

[字解]

석 삼
돌아볼 고
풀 초
농막집 려(여)

 

[意義]

초가집을 세 번 찾아간다는 뜻으로, 사람을 진심으로 예를 갖추어 맞이한다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줄여서 삼고라고 하며, 삼고지례(三顧之禮) 또는 초려삼고()라고도 한다. 비슷한 말로 삼고지우()가 있다.

 

[出典]

삼국지() 촉지(志) 제갈량전().

 

[解義]

후한() 말기 관우(:?~219)와 장비(:166?~221)와 의형제를 맺고 무너져 가는 한()나라의 부흥을 위해 애를 쓴 유비는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잡지 못하고 허송 세월만 보낸 채 탄식하였다.

유비는 유표()에게 몸을 맡기는 신세로 전락하였다.

관우와 장비와 같은 강한 군사력이 있으면서도 조조()에게 여러 차례 당하였다.

유비는 그 이유를 유효 적절한 전술을 발휘할 지혜로운 참모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고 유능한 참모를 물색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중 유비는 채모(유표의 부하)의 계략을 피하려다 길을 잃고, 우연히 은사()인 사마휘()를 만나게 된다.

사마휘에게 유능한 책사를 천거해 달라고 부탁하자 사마휘는 "복룡()과 봉추() 가운데 한 사람만 선택하시지요"라고 말하였다.

유비는 복룡이 제갈 량임을 알고 그를 맞으러 장비와 관우와 함께 예물을 싣고 양양()에 있는 그의 초가집으로 갔는데, 세 번째 갔을 때 비로소 만날 수 있었다.

이때 제갈 량은 27세, 유비는 47세였다.

 

삼고초려는 유비가 제갈 량을 얻기 위해 그의 누추한 초가집을 세 번씩이나 찾아간 데서 유래하는데, 유능한 인재를 얻기 위해서는 인내심을 발휘하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뜻이 들어 있다. 또한 인재를 알아 볼 줄 아는 안목도 또한 갖추어야 한다.

 

유비는 제갈 량을 얻은 이후 자신과 제갈 량의 사이를 수어지교(:물고기가 물을 만난 사이)라고 말하였다.

제갈 량은 원래 미천한 신분으로 이곳에서 손수 농사를 지으면서 숨어 지냈다.

그는 스스로를 관중()과 악의()에 비유하였지만 최주평()과 서서()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알아 주지 않았다. 그는 뜻을 펼칠 때를 기다린 것이었다.

 

제갈 량은 이후 《출사표()》에서 자기를 찾은 유비의 지극한 정성에 대해 감격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신이 비천한 신분임을 알면서도 싫어하지 않고 외람되게도 몸을 낮추어 제 초가집을 세 번씩이나 찾아 주어 당시의 상황을 물으셨습니다.

이 일로 저는 감격하여 선제께서 있는 곳으로 달려가는 것을 허락한 것입니다."

 

[만화로 깨치는 한자]三顧草廬(삼고초려)

● 付託(부탁) : 어떤 일을 해 달라고 청하거나 맡김. 또는 그 일거리.
● 月貰(월세) : 집이나 방을 빌려 쓰고 다달이 내는 돈.
● 付(줄 부), 託(부탁할 탁), 月(달 월), 貰(세낼 세)

 

출처:NAVER백과사전.경향신문

 

[참고]47살 유비가 27살 제갈량을 만났을 때

 

세상을 경영하겠다는 포부를 안고서 말 안장에 오른 지 20년이 더 지난 어느 날, 유표에게 빌붙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신세가 된 유비(劉備)는 화장실로 볼 일을 보러 갔다가 피둥피둥 살이 오른 자기 허벅지를 문득 발견하고는 유표에게 이렇게 탄식했다.

“제 몸은 항시 안장을 떠난 적이 없어 허벅지에 살이 찔 새가 없었습니다.

한데 이제 말을 타지 않아 허벅지에 살이 올랐습니다.

세월이 쏜살같이 흐르니 저도 이제 곧 늙어갈 터인데 아직 이룬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어 이렇게 슬프기만 합니다.”

유비는 생각했다. 내가 왜 조조만 못할까? 손권만 못할까? 관우나 장비처럼 수족과도 다름 없는 심복이 있는데도 왜 나는 저들에 견주어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할까?
이런 고민을 안고서 유비는 양양이란 지방에서 이름 높은 수경선생 사마휘를 찾아가 그런 신세를 한탄하며 이런 국면을 어떻게 타개할 지 방법을 물었다.

사마휘가 말했다.

“바로 이 고장에 엎드린 용과 봉황의 새끼가 있는데 만나실 의향이 있으신지요?”
이날 대화를 통해 유비는 엎드린 용이 제갈량(諸葛亮. 제갈공명)이며 봉황의 새끼가 방사원(방통)임을 알았다. 그 얼마 뒤 서시라는 사람 역시 공명을 추천했다.

이에 유비는 서시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 사람 한 번 모셔다 주겠소?”
“그 사람은 가서 만날 수는 있어도 데려올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해서 삼고초려(三顧草廬)라는 역사적 만남이 이뤄진다.

이 삼고초려라는 말은 후세가 만들어낸 신화가 아니다. 다름 아닌 공명 자신이 저 유명한 출사표(出師表)라는 글에서 이미 세상을 떠난 유비를 추모하며 밝힌 일화다.

공명이 기거하던 초가에서 두 사람이 만나 나눈 대담을 그 장소 이름을 따서 ’융중대’(隆中對)라 하기도 하고, ’초려대’(草廬對)라 하기도 한다.

세 번이나 자신을 찾아온 정성에 감격하고는 마침내 이 사람을 보좌해 천하를 제패하리란 결심을 굳힌 공명은 이 만남에서 유비에게 다음과 같은 계책을 올린다.

“동쪽으로는 손권과 연합해야만 조조에 항거할 수 있으며, 조조의 군대를 물리치면 조조는 반드시 북쪽으로 돌아가며, 이렇게 되면 형주와 오가 세력을 키워 솥의 세 발과 같은 형세가 될 것이옵니다.”

이 때 유비(161-223)가 47세, 공명(181-234)은 그보다 스무 살이나 어린 27세였다.

공명의 계략은 결국 성공해 유비는 마침내 천하를 삼분하고 촉을 건국했다.

유비가 세상을 떠난 뒤 승상 공명은 그야말로 불철주야로 어수선한 촉국 내부를 다스리고 바깥으로는 북방 정벌을 꾀했다. 하지만 그의 꿈은 번번이 좌절하고, 마침내는 위(魏)와 일전을 앞둔 오장원에서 군중에서 병사함으로써 막을 내렸다.

중국 서주사범대학 역사학과 교수인 여명협(余明俠)이 1996년에 엮어낸 ’제갈량평전’은 소설과 역사가 혼효된 제갈량의 면모에서 소설 ’삼국지연의’를 일소하고자 했다. 이런 작업 과정을 여 교수 스스로는 ’실사구시’(實事求是)라고 부른다.

적벽대전에서 동풍을 불러오는 신출귀몰한 공명을 만날 수는 없지만, 철저히 믿을 만한 기록을 얽어낸 제갈량 또한 소설 삼국지연의의 제갈량 못지 않은 매력적인 인물이다.  신원봉 옮김. 지훈. 644쪽. 2만8천원.

 

출처:http://blog.yonhapnews.co.kr/ts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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