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三顧草廬(삼고초려)
[字解]
[意義] 초가집을 세 번 찾아간다는 뜻으로, 사람을 진심으로 예를 갖추어 맞이한다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줄여서 삼고라고 하며, 삼고지례(三顧之禮) 또는 초려삼고(草廬三顧)라고도 한다. 비슷한 말로 삼고지우(三顧知遇)가 있다.
[出典] 삼국지(三國志) 촉지(蜀志) 제갈량전(諸葛亮傳).
[解義] 후한(後漢) 말기 관우(關羽:?~219)와 장비(張飛:166?~221)와 의형제를 맺고 무너져 가는 한(漢)나라의 부흥을 위해 애를 쓴 유비는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잡지 못하고 허송 세월만 보낸 채 탄식하였다. 유비는 유표(劉彪)에게 몸을 맡기는 신세로 전락하였다. 관우와 장비와 같은 강한 군사력이 있으면서도 조조(曹操)에게 여러 차례 당하였다. 유비는 그 이유를 유효 적절한 전술을 발휘할 지혜로운 참모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고 유능한 참모를 물색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중 유비는 채모(유표의 부하)의 계략을 피하려다 길을 잃고, 우연히 은사(隱士)인 사마휘(司馬徽)를 만나게 된다. 사마휘에게 유능한 책사를 천거해 달라고 부탁하자 사마휘는 "복룡(伏龍)과 봉추(鳳雛) 가운데 한 사람만 선택하시지요"라고 말하였다. 유비는 복룡이 제갈 량임을 알고 그를 맞으러 장비와 관우와 함께 예물을 싣고 양양(襄陽)에 있는 그의 초가집으로 갔는데, 세 번째 갔을 때 비로소 만날 수 있었다. 이때 제갈 량은 27세, 유비는 47세였다.
삼고초려는 유비가 제갈 량을 얻기 위해 그의 누추한 초가집을 세 번씩이나 찾아간 데서 유래하는데, 유능한 인재를 얻기 위해서는 인내심을 발휘하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뜻이 들어 있다. 또한 인재를 알아 볼 줄 아는 안목도 또한 갖추어야 한다.
유비는 제갈 량을 얻은 이후 자신과 제갈 량의 사이를 수어지교(水魚之交:물고기가 물을 만난 사이)라고 말하였다. 제갈 량은 원래 미천한 신분으로 이곳에서 손수 농사를 지으면서 숨어 지냈다. 그는 스스로를 관중(管仲)과 악의(樂毅)에 비유하였지만 최주평(崔州平)과 서서(徐庶)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알아 주지 않았다. 그는 뜻을 펼칠 때를 기다린 것이었다.
제갈 량은 이후 《출사표(出師表)》에서 자기를 찾은 유비의 지극한 정성에 대해 감격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신이 비천한 신분임을 알면서도 싫어하지 않고 외람되게도 몸을 낮추어 제 초가집을 세 번씩이나 찾아 주어 당시의 상황을 물으셨습니다. 이 일로 저는 감격하여 선제께서 있는 곳으로 달려가는 것을 허락한 것입니다."
[만화로 깨치는 한자]三顧草廬(삼고초려)
● 月貰(월세) : 집이나 방을 빌려 쓰고 다달이 내는 돈. ● 付(줄 부), 託(부탁할 탁), 月(달 월), 貰(세낼 세)
출처:NAVER백과사전.경향신문
[참고]47살 유비가 27살 제갈량을 만났을 때
세상을 경영하겠다는 포부를 안고서 말 안장에 오른 지 20년이 더 지난 어느 날, 유표에게 빌붙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신세가 된 유비(劉備)는 화장실로 볼 일을 보러 갔다가 피둥피둥 살이 오른 자기 허벅지를 문득 발견하고는 유표에게 이렇게 탄식했다. 한데 이제 말을 타지 않아 허벅지에 살이 올랐습니다. 세월이 쏜살같이 흐르니 저도 이제 곧 늙어갈 터인데 아직 이룬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어 이렇게 슬프기만 합니다.” “바로 이 고장에 엎드린 용과 봉황의 새끼가 있는데 만나실 의향이 있으신지요?” 이에 유비는 서시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 삼고초려라는 말은 후세가 만들어낸 신화가 아니다. 다름 아닌 공명 자신이 저 유명한 출사표(出師表)라는 글에서 이미 세상을 떠난 유비를 추모하며 밝힌 일화다. 세 번이나 자신을 찾아온 정성에 감격하고는 마침내 이 사람을 보좌해 천하를 제패하리란 결심을 굳힌 공명은 이 만남에서 유비에게 다음과 같은 계책을 올린다. 유비가 세상을 떠난 뒤 승상 공명은 그야말로 불철주야로 어수선한 촉국 내부를 다스리고 바깥으로는 북방 정벌을 꾀했다. 하지만 그의 꿈은 번번이 좌절하고, 마침내는 위(魏)와 일전을 앞둔 오장원에서 군중에서 병사함으로써 막을 내렸다.
출처:http://blog.yonhapnews.co.kr/ts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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