虎牢關(호뢰관) 전투에서 呂布(여포)가 패하자 董卓(동탁)의 군대는 사기가 떨어졌고 平地(평지)에 있는 洛陽城(낙양성)을 지키기 어려웠다. 이에 동탁의 사위이자 參謀(참모)인 李儒(이유)가 長安(장안)으로 遷都(천도)할 것을 건의하였다. 도읍을 옮긴다는 것은 국가의 大事(대사)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군신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동탁은 천도하였다.
동탁은 천도에 앞서 바닥난 軍糧(군량)과 軍費(군비)를 채우기 위해 낙양의 富豪(부호)들을 갈취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그들이 袁紹(원소)와 관련이 있다는 구실을 붙이고 부호의 집마다 反臣逆黨(반신역당)이란 깃발을 꽂은 후 부자들을 성 밖으로 끌어내어 죽이고 그들의 재산을 몰수하였다. 뿐만 아니라 낙양의 백성들을 몰아서 장안으로 데려가면서 그들의 재물까지 강탈하였다.
또 왕실의 陵墓(능묘)와 대신들의 묘를 파헤치고 보물을 찾아내 천여 대의 수레에 실어 장안으로 옮겼다. 그리고 낙양을 떠나기 전에 종묘, 궁궐, 관청 등 궁성을 모두 불태워 버렸다. 200년 동안 帝國(제국)의 수도로 繁盛(번성)하였던 洛陽(낙양)은 이렇게 하여 잿더미로 변하였다. 그림은 동탁의 심복 李(이각)과 郭(곽사)의 병사들이 낙양의 長樂宮(장락궁)을 불태우는 장면이다.
출처:국제신문 글.서성 열린사이버대 실용외국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