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가 제갈량을 찾아가려고 할 무렵 사마휘가 찾아왔다.
유비가 제갈량에 대해 묻자 사마휘는 먼저 그의 친구 네 사람을 들었다.
박릉의 최주평, 영천의 석광원, 여남의 맹공위, 그리고 서서였다.
또 제갈량은 스스로를 전국시대 管仲(관중)이나 樂毅(악의)에 비기지만, 사마휘가
보기엔 姜太公(강태공)이나 張良(장량)에 맞먹는 인재라고 하였다.
三顧茅廬(삼고모려)란 말은 우리에겐 三顧草廬(삼고초려)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
직역하면 '띠풀로 지은 집을 세 번 돌아보다'는 말로, '세 번 초막을 방문하다'는 뜻
이다. 유비가 隆中(융중) 마을에 제갈량을 세 번 찾아간 일을 말한다. 이 말은 뛰어난 사람을 모시기 위해서는 정성과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유비는 선물을 준비하고 관우와 장비를 데리고 융중의 臥龍崗(와룡강)으로 제갈량을 찾아갔다. 제갈량이 산다는 초가집에 이르자 유비가 가볍게 사립문을 두드렸다.
조금 후 동자가 나오더니 "선생은 오늘 아침 일찍 외출하셨습니다"라고 말했다.
언제 돌아오느냐고 물으니 동자는 언제 올지 모른다고 했다.
돌아오는 길에 제갈량의 친구 최주평을 만났는데 그 역시 제갈량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고 했다. 제갈량의 運身(운신)은 마치 龍(용)처럼 변화무쌍하다는 비유이다.
그림은 융중을 찾아간 유비 일행의 모습이다.
출처:국제신문 글.서성 열린사이버대 실용외국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