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조와 함께 江夏(강하)를 잃은 유표는 유비를 불러 뒷일을 논의했다.
유표는 나이가 많고 병이 위중해 유비에게 형주를 맡아달라고 하였다.
유비는 한사코 맡지 않으려 하였다. 물러나와 제갈량이 그 이유를 묻자, 유비는 자신에게 은혜를 베푼 유표에게 그의 어려움을 틈타 이익을 얻고 싶지 않다고 말하였다.
유표의 후계자 쟁탈전에서 밀려난 큰아들 劉琦(유기)는 채부인의 핍박을 받게 되자
유비를 찾아와 구해주기를 간청하였다. 유기는 또 제갈량을 다락으로 모셔놓고 울면서 계책을 호소하였다. 유기가 세 번에 걸쳐 부탁하자 비로소 제갈량은 황조가 없는 강하에 주둔하라고 말하였다.(그림) 이로써 유기는 유표의 허락을 받아 강하에 군사 삼천을 데리고 주둔할 수 있었다.
208년 7월, 조조는 夏侯惇(하후돈)에게 군사 10만을 주어 신야를 공격하게 하였다.
하후돈은 "유비를 생포하고 제갈량을 사로잡겠다"며 豪言壯談(호언장담)하였다.
순욱은 유비를 가벼이 보지 말라고 충고하였다.
아직 고참 장수들의 인정을 받지 못한 제갈량은 오천 병사로 10만을 대적해야 했다.
유비가 제갈량을 스승으로 대우하자 질투가 난 관우와 장비가 불만을 토로하였다.
그러자 유비는 "내가 공명을 얻은 건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과 같다"고 했다.
친밀한 사귐을 뜻하는 水魚之交(수어지교 )란 말은 여기에서 유래했다.
출처:국제신문 글.서성 열린사이버대 실용외국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