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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구천에서 관우가 조조군을 수몰시키고 있다. 왼쪽 아래는 방덕을 생포하는 주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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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성을 포위한 관우는 상처가 낫자 지형을 살피러 나갔다. 우금은 방덕이 공을 세울까 경계하여 번성 북쪽 계곡에 주둔하며 함부로 공격하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그곳 지명이 罾口川(증구천)이란 말을 듣고 관우가 말했다. "물고기가 그물 주둥이에 들어갔으니, 살아날 수 있겠나?" 罾(증)은 그물이란 뜻이다. 관우는 水沒計(수몰계)를 쓰기로 하고서, 군사를 높은 지대로 옮기고 襄江(양강)의 수문을 막았다.
때는 마침 팔월이라 연일 내리는 비에 하천이 불었다. 폭우가 내리는 밤 관우가 둑을 트게 하자, 조조군은 모두 사나운 강물에 휩쓸려 떠내려갔다.
평지도 한 길이 넘게 물이 올랐다. 우금과 방덕 등은 산 위로 올라갔다.
날이 밝자 관우가 배를 타고 진격하니 우금은 주위에 부하가 50여 명에 불과한 걸 보고 항복하였다. 오로지 방덕만이 필사로 저항하였다.
관우군이 포위하고 화살을 쏘자 조조군의 태반이 죽었다. 방덕은 군사들을 독려하여 계속 싸웠으나 衆寡不敵(중과부적)이었다. 주창이 배를 뒤집어 방덕을 생포하였다.
관우 앞에 끌려 나간 우금과 방덕은 뚜렷이 대비되었다. 우금은 땅에 엎드려 절하면서 살려달라고 애걸하였다. 관우는 죽여 봤자 칼만 더러워진다면서 우금을 형주의 감옥으로 호송시켰다. 이에 반해 방덕은 무릎을 꿇지 않고 꼿꼿이 선 채 항복을 거부하였다. 관우는 어쩔 수 없이 투항하지 않는 방덕을 참수하였다.
출처:국제신문 글. 서성 열린사이버대 실용외국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