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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의 연회 자리에서 손준이 제갈각을 살해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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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흥 방어에 성공한 제갈각은 다음해 253년 여세를 몰아 직접 20만 대군을 거느리고 위를 공격하였다. 제갈각은 위의 전방 요새인 合肥(합비)의 新城(신성)을 포위하고 석 달을 공격했으나 함락시키지 못하였다. 장기전에 지친 병사들이 병이 들자 제갈각은 어쩔 수 없이 회군하였다.
제갈각은 敗戰(패전)의 책임이 자신에게 몰릴까 두려워 오히려 장수들을 좌천시키거나 참형에 처했다. 또 심복을 시켜 근위대를 장악하였다. 왕실의 宗親(종친)으로 그동안 근위대를 관장하던 孫峻(손준)은 자신의 권한을 빼앗기자 제갈각을 살해할 모의를 하였다. 손준은 먼저 황제 손량의 동의를 얻어낸 뒤, 장막 뒤에 무사를 숨기고 연회를 베푼다며 제갈각을 초청하였다. 손준은 연회에서 제갈각을 죽이고 그 가문을 멸하였다. 이후 동오의 권력은 손준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다.
원래 제갈각은 어려서부터 총명하였다. 6살 때 아버지 제갈근을 따라 궁중 연회에 참여했는데, 손권이 나귀를 끌고와 그 얼굴에 백묵으로 '諸葛子瑜'(제갈자유, 자유는 제갈근의 자)라 썼다. 원래 제갈근의 얼굴이 길쭉했기에 이를 본 좌중의 사람들이 폭소를 터뜨렸다. 이때 어린 제갈각이 나서더니 백묵으로 두 글자를 보태어 '諸葛子瑜之驢'(제갈근의 나귀)라 만들어 주위의 찬탄을 받았다. 나중에 제갈근은 아들이 지나치게 총명한 것을 보고 "이 애 때문에 집안을 보전하지 못하겠구나"라고 한탄하였다.
출처:국제신문 글 서성 열린사이버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