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조양에서 강유(오른쪽)가 등애와 싸우고 있다. |
|
262년 姜維(강유)는 잔도를 복구하고 무기를 정비하면서 황제 劉禪(유선)에게 위를 정벌하겠다는 表文(표문)을 올렸다. 조정에서 반대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유선은 허락하였다. 강유의 여덟 번째 북벌이었다. 강유는 夏候覇(하후패)를 선발대에 내세워 眺水(조수)의 북쪽에 있는 眺陽(조양)으로 곧장 쳐들어 갔다.
하후패는 조양성의 성문이 크게 열려 있는 것을 보고 위군이 성을 버리고 달아난 줄 알고 들어섰다. 성안으로 막 들어서니 吊橋(적교)가 갑자기 닫히면서 성 위에서 화살과 돌덩이가 소나기처럼 떨어졌다. 하후패를 비롯하여 5백 병사는 모두 화살에 맞아 죽었다. 후군을 거느리고 간 강유는 성 아래에 진지를 세웠다. 이때 조양에서 25리 떨어진 侯河(후하)라는 작은 성에서 미리 준비하고 있던 鄧艾(등애)가 군사를 이끌고 강유를 공격하였다. 강유는 크게 패하였다.
강유는 張翼(장익)에게 기산을 몰래 공격하게 하고 자신은 후하성의 등애를 공격하였다. 이를 안 등애가 등충에게 후하성을 맡기고 자신은 군사를 빼돌려 기산을 방어하러 나갔다. 이를 알아챈 강유도 부첨에게 공격을 맡기고 자신은 기산을 공격하는 장익을 도우러 갔다. 힘을 얻은 장익은 강유와 함께 등애를 공격하였다. 등애는 퇴각하여 기산으로 올라갔고, 강유는 기산을 포위하였다.
출처:국제신문 글 서성 열린사이버대학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