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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적인 일에서 옮음을 구한다
옛날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를 보면 영정조(英正祖) 시대의 실학자(實學者)들을 세 개의 학파로 분류하면서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등 고증학(考證學)에 치중하는 학자들을 실사구시학파(實事求是學派)라고 분류했다. 그러나 ‘실사구시’란 말은 꼭 고증학파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실학자들, 나아가서는 모든 학자들, 더 나아가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다 해당되는 말이다.
‘실사구시’란 이 말은, 후한(後漢)의 반고(班固)가 지은 한서(漢書) 하간헌왕전(河間獻王傳)에 맨 먼저 나오니, 생긴 지가 이미 2000년 가까이 된다.
그런데 중국에 와보니, 이 말은 일상 대화에서 많이 쓰이고 있다. 특히 정치지도자나 학자들이 많이 쓰는 편이다. 모택동(毛澤東)이 ‘실사구시(實事求是)’라고 쓴 글씨도 곳곳에 붙어 있다. 이 말을 특히 많이 쓴 사람은 중국개혁개방의 총설계자 등소평(鄧小平)이다. 그의 개혁노선은 ‘실사구시’ 정신에 입각한 것이다. 실사구시란 ‘실제적인 일에 입각해서 올바른 길을 택하는 것’이다.
중국에 맞지도 않는 마르크스이론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중국 지도자들의 생각을 과감하게 바꾸도록 한 사람이 등소평이고, 생각을 바꾸는 데 크게 작용한 말이 ‘실사구시’다. ‘실사구시’정신에 입각하여 표명한 등소평의 말 가운데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흰 고양이냐 검은 고양이냐를 막론하고, 쥐를 잡아야 좋은 고양이다.(不管白猫黑猫, 住耗子, 就是好猫).” 즉 공산주의건 자본주의건 잘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사회주의가 사람이 먹을 밥이 될 수가 없다(社會主義不能當飯吃).” 사회주의 자체가 사람 밥 먹여주는 것이 아니니, 사람을 가난하게 만들면, 사회주의도 얼마든지 뜯어고칠 수 있다는 의미다. 사회주의에는 본래 시장경제가 없었다. 그러나 등소평은 과감하게 “사회주의제도에 시장경제 하지 말라는 규정이 어디 있느냐?”라고 하면서 자본주의의 시장경제원리를 사회주의에 도입시켰다.
“발전이 바로 좋은 방법이다(發展就是硬道理).” 결국 발전하는 것이 최고라는 뜻이다. 아무리 좋은 사상이라도 국가의 경제발전이 없어 후진국으로 낙후되면 안 된다는 뜻이다.
1978년 등소평이 개방한 이래로 중국은 지금 경제적으로 엄청나게 발전하였다. 개혁개방을 처음 시도할 때, 반대하는 정치지도자들도 많았지만, 등소평은 자기의 실사구시 노선을 추진하여 중국을 세계적인 경제대국으로 만들었다.
반대로 북한의 김일성(金日成)이나 그 아들 김정일(金正日) 같은 경우에는 교조주의적(敎條主義的)인 공산주의에 갇혀 개혁개방을 못하였다. 그 결과, 낙후된 경제상황으로 인하여 많은 백성들을 굶겨죽이고 있다.
예를 들면 벼를 한 평에 몇 포기 심어라, 농작물 가운데서 쌀은 몇% 이상 심고, 옥수수는 몇% 심어라는 것까지 당(黨)에서 결정하여 명령하고 있다고 한다.
땅이 기름지면 좀 많이 심어도 되고, 좀 메마르면 적게 심어야 하는데, 기름지거나 메마르거나에 상관없이 심는 포기까지 정해져 있으니, 농사가 잘될 수 있겠는가?
사람이 어떤 일을 하면서 실사구시 정신으로 하면 훨씬 더 적응을 잘할 수가 있고,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발전할 수가 있다. 나라도 마찬가지다.
(*實 : 열매 실. *事 : 일 사. *求 : 구할 구. * 是 : 옳을 시. 이 시)
출처:경남신문 한자로 보는 세상 글 허권수(경상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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